Chaos - 작고 큰 우주 , 피어나는 生의 의지

노재환展 / NOHJAEWHAN / 盧在煥 / painting.printing   2017_0418 ▶︎ 2017_0510

노재환_Chaos_종이에 혼합재료_50×30cm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70118a | 노재환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7_0418_화요일_06:00pm_EK아트갤러리

2017_0418 ▶︎ 2017_0429 관람시간 / 10:30am~06:00pm / 토요일_11:00am~04:00pm / 일,공휴일 휴관

EK아트갤러리 EK-ART GALLERY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50길 24(한강로2가 86-1번지) Tel. 070.8158.8239 www.ekartgallery.com

2017_0501 ▶︎ 2017_0510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시선 부산시 서구 흑교로 99 Tel. +82.(0)51.254.7750

터지는 색감, 무수히 움직이는 물감의 흔적들. 질서 내지 않은 색들이 울리는 공간은 음악으로 가득 차 보인다. 인공의 터치가 들어가지 않은 공간- 화면은 언뜻 무질서해 보인다. 작가는 그것을 카오스라 말한다. 이성적인 질서가 들어가 있지 않기에, 우리가 알아챌 사물들이 들어가 있지 않기에, 온통 물감과 물감의 움직임이 만드는 자율적 리듬만이 남아있는 공간의 구성이기에 혼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카오스의 세계는 인간 역사 이전의 우주의 시원으로부터 지금의 우주, 코스모스(cosmos)를 이루는 구조적 요소를 일컫는 것이니, 역설적으로 보면 우주적 질서를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노재환_Chaos_종이에 혼합재료_50×30cm

우주적 본연이든, 개별적 본연이든 그 기저에는 움직임이 있다. 시간은 인간의 공간에서 뿐만 아니라 우주의 공간을 관통하고 지배하는 폭력의 기재이다. 시간은 모든 것들을 움직이게 만들고 우주는 그 시간의 축 위에서 팽창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천체물리학의 입장이다. 노재환은 그러한 우주, 카오스의 근간을 이루는 행위에서 아름다움의 근간을 추구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현대미술은 시각이 가지는 근간을 탐구하고 추구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그러한 경향은 지금껏 우리의 시각이 가지는 본다는 관념을 뒤흔들면서 혼돈을 야기 시킨다. 혼돈으로 가려면 알고 있는 익숙함을 버리는 것이다. 알고 있는 사물을 치움으로서 관객들은 익숙함에서 낯섦으로 변모한다. 낯섦은 질서에서 혼돈으로 이끄는 통로이다. 거기에서 새로운 질서로 향한 문, 혼돈이 시작된다

노재환_Chaos_종이에 혼합재료_70×50cm
노재환_Chaos004_종이에 혼합재료_50×30cm

노재환의 화면에는 사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사물이 있어야할 자리에 물감들이 만드는 공간이 있다. 한편에서는 어두운 공간에서 발현하는 밝음을 향한 공간, 다른 이면에서는 밝은 공간에서 어둠으로 향하는 공간들이다. 같은 이미지가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를 하는 공간으로도 변화한다. 그 공간을 이루는 것. 화면은 사물이 사라진 흔적의 공간, 카오스의 공간이다. 그러므로 앎 이전의 근원으로 향한 공간, 혼돈 속이다. 혼돈은 무질서해 보이지만 우주의 질서이다. 단지 인간의 인식 하에서 무질서해 보이는 것이다. 혼돈은 그러므로 혼돈이라고 번역하기에 무리가 있다. 그리스의 언어 카오스(chaos)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노재환이 만드는, 관객에게 공유하고 싶어 하는 공간은 근원의 흔적들이 만드는 이미지들이다. 거기에는 인간의 앎, 인식이전의 이미지들, 흔적들이 남아 이루고 형성된 공간들이다.

노재환_Chaos-빅뺑_종이에 혼합재료_100×70cm
노재환_wing_종이에 혼합재료_70×50cm

마블링의 방식은 물감과 물의 성질이 다름을 이용한 자연적이고 우연적인 방식을 사용하는 기법이다.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이 방식에 개입할 수 있는 것은 작가의 선택이다. 물감과 물감들이 만드는 화면은 혼돈이라고 불리지만 피어나는 것들, 생으로 향한 움직임의 역동성을 가진다. 피어나는 것은 움직임이다. 움직이기에 피어날 수 있다. 그 움직임은 생명으로 이루어져 있고, 생명은 움직임의 결과들, 진행들이다. 그래서 생은 피어나고 지는 것을 순환시킴으로서 지금에 이른다. 봄은 다시 오지만, 지금 봄은 지나간 봄이 아닌 새로운 봄이다. 늘 우리는 새로운 시간 속에서 미지의 시간을 여행한다. 작가가 추구하는 것은 그러한 혼돈이다. 같아 보이지만 같지 않는. 달리 보이지만 같은 구조에 있는 것들. 그런 것들은 기존의 질서, 관념을 깨어야만 만나는 근원, 원형질 같은. 그러한 이미지를 관객들에게 툭 선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카오스는 생으로 피어나는 욕망을 향하고 있다고 보아야한다.

노재환_새 bird_디지털 판화_39×27cm
노재환_꽃_디지털 판화_39×27cm

'혼돈 속 우연과 즉흥의 상태 즉 무질서하고 혼돈의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현상들 속에도 질서와 규칙성을 지배하는 조형적 법칙이 존재하며 그것의 형상들과 혼돈 속 정체성을 작품으로 만들었다. 이 작업들은 무질서하고 예측이 불가능한 현상 속에 숨어 있는 정연한 질서를 실험하여 미지의 공간에 대한 새로운 표현, 혹은 메타포를 제시하는 것이다.' 우연과 즉흥이 필연과 질서로 변화하는 지점은 우주의 시선으로 옮길 때이다. 물과 물감이 혼합되거나 따로 움직이는 작용을 하는 것은 인간의 질서에서 움직이는 않은 한 자연적 질서에 따른다. ● 무의식의 확장은 작품의 디지털화이다. 원본을 종이나 캔버스를 사용하여 완성하고, 그 원본의 이미지를 디지털화함으로서 무수히 많은 변화를 가지는 작품으로 진화시킨다. 디지털화된 이미지는 하나의 사건을 복수의 사건으로 변모시킨다. 하나의 작품이 같으면서 다른 복수의 작품으로 동시에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작가는 디지털이 만들어 주는 수많은 우연성을 만나고 동시에 선택하는 것이다.

노재환_꽃에게_디지털 판화_39×27cm
노재환_정물_디지털 판화_39×27cm

원본과 복제. 복제와 복제에 의한 변화. 그 변화의 변화는 원본과 복제의 진위라는 개념을 지우고 새로운 질서를 찾는 계기를 제공한다. 복제된 원본은 디지털의 공간에서 변화를 거친다. 같은 이미지의 다른 시선. 차이는 그러한 의미에서 사유의 전환이라는 계기를 만드는 중요한 방식이다. 차이의 반복을 통하여 만나는 질서. 그 질서를 통하여 관객은 작가가 보이고자 하는 질서를 보는 것이다. ● 여기서 우리가 보는 것은 작가가 선택한 우주의 질서, 우연과 우연이 비선형적으로 이루는 질서의 아름다움이다. 작가는 자신의 개입을 최소한 하지만 전체를 지배하는 선택을 통하여 자신이 가고자하는 질서를 보여준다. ● 그 질서는 피어나는 것들, 생명에의 의지이다. ■ 이호영

Vol.20170418a | 노재환展 / NOHJAEWHAN / 盧在煥 / painting.pr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