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대공원_다시

김준수展 / KIMJOONSOO / 金準洙 / photography   2017_0425 ▶ 2017_0430 / 월요일 휴관

김준수_37° 32' 54.498 N 127° 4' 53.586 E_갱지에 프린트_250×200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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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0425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30am~06:00pm / 월요일 휴관

류가헌 ryugaheon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106(청운동 113-3번지) Tel. +82.(0)2.720.2010 www.ryugaheon.com blog.naver.com/noongamgo

사진가 김준수의 어린이대공원 연작에 관한 비평적 메모 ● 하나. 사진가 김준수(金準洙,Kim Joonsoo,1969년생)는 2009년 어린이대공원을 촬영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여타 작업을 병행 전개하느라 쉽게 진척되지 못하던 이 프로젝트가, 완성된 프린트의 형태로 1차 정리된 때는, 2015년. ● 하나.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에 위치한 어린이대공원은, 대통령 박정희의 유신 독재 시절이었던 1973년 5월 5일 어린이날을 기념해 개장했다. 종합 어린이 놀이 시설로 출범한 어린이대공원은, 1967년 4월 15일 개관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평양학생소년궁전에 대항하려는 뜻을 품고 있었다. 당연히 규모도 더 커서, 당시 52억 규모의 예산을 투여한 "동양 최대 규모"의 시설로 홍보됐다. 동·식물원, 어린이종합유희장, 분수대, 수영장, 야외 음악당, 관망대와 식당 등을 갖춰 안정적으로 운영됐으나, 박정희 정권의 붕괴 이후 투자와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퇴락을 거듭했다. 2006년 무료 공원화됐고, 2009년 개장 36년 만에 대대적으로 재단장했다. 따라서 현재는, 가족 단위 휴식 공간으로 공간 정체성이 변화한 상태다. ● 하나. 사진가 김준수는 본디 다큐멘터리 작가로 활동해왔지만, 어린이대공원 프로젝트에서는 새로운 접근 방법을 시도했다. 박정희 정권기에 '국민'으로서 교육받고 성장한 작가는, 어린이대공원을 여러 기억이 중첩된 공간으로 해석했다. 작업의 1단계에서 사진가는, 어린이대공원의 주요 장소에 사적인 감상을 투사한 채, 직관에 의거한 포스트-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기로 작정했다. 그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방식과 유형학적 사진의 방식 모두를 피해보기로 작심했더랬다. ● 하나. 다음은 작업 초기에 김준수가 작성한, 작업에 관한 진술이다: "진실의 공간이라기보다는 거짓의 프로파간다 공간에 가까운, 어린이대공원. 그곳에서 인생의 무력함을 실감하게 되는 것을 왜일까? 오늘의 한국 사회 자체가, 재단장된 어린이대공원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왜 어린이대공원에서,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늪 같은, 우울과 상실감에 사로잡히고 말까? 그곳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익숙함에서, 안도감과 불쾌감을 동시에 마주한다. 내게 낯익은 대상이었던 어린이대공원을 낯선 공간으로 재포착함으로써, 혹시 이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지는 않을까? 새로 포착한 진실로 구시대의 진실을 갱신하는 일은 옳을까?" ● 하나. 다큐멘터리 사진의 문법은, 이미 1960년대 후반에 의문에 부쳐진 바 있었다. 1967년 뉴욕 현대미술관의 사진 전문 큐레이터 존 샤르카우스키(John Szarkowski, 1925-2007)가 기획한 그룹전 『새로운 기록(New Documents)』은, '다큐멘터리 이후의 사진'이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았다. 전시에 초대됐던 사진가 리 프리드랜더(Lee Friedlander, 1934-)는, (개리 위노그랜드, 다이앤 아버스와 함께) 큰 주목을 받았다. 프리드랜더는 1961년부터 1970년까지 미국 각지를 여행하면서 새로운 차원의 기록 사진을 촬영했다. 모텔/호텔방의 텔레비전 화면에 등장한 인물들을 실내 장식과 함께 촬영한 사진, 자동차 내부에서 가로의 풍경을 촬영한 사진 등이 그의 대표작이었다. 즉, 하나의 유형을 설정하고 기록을 전개해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것이 새로운 '다큐먼트 미학'의 핵심이었다. ● 하나. 미국에서 제기된 '다큐먼트 미학'을 보다 심화시킨 주인공은, 독일의 사진가 부부 베른트 베허(Bernd Becher, 1931-2007)와 힐라 베허(Hilla Becher, 1934-2015)였다. 소위 '신즉물주의(Neue Sachlichkeit)의 전통을 잇는 사진 유형학(Photography Typology)'의 주창자로 꼽히는 이 부부 듀오는, 1960년대 초중반 독일의 루르(Ruhr) 공업 지대를 배회하며 촬영을 반복하고 필름과 프린트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다큐먼트 미학'에 눈을 떴다. 하지만, 기성의 다큐멘터리 사진 문법을 초극한 베허 부부가, 제 성과를 갈무리해 널리 이름을 알린 때는, 첫 사진작품집 『익명의 조각: 기술적 구조의 유형학(Anonyme Skulpturen: Eine Typologie technischer Bauten, Anonymous Sculptures: A Typology of Technical Construction)』을 발간한 1970년이었다. 베른트 베허는 1976년 뒤셀도르프미술학교의 교수가 됐고, 그의 지도 아래 소위 독일 유형학 사진가의 계파—안드레아스 구르스키(Andreas Gursky, 1955-), 토마스 슈트르트, 토마스 루프, 칸디다 회퍼 등을 포괄하는—가 형성됐다.

김준수_37° 32' 54.498 N 127° 4' 53.586 E_피그먼트 프린트_50×63cm_2010

● 하나. 김준수는 1차 작업을 통해, 21곳의 장소에서 촬영한 21점의 프린트를 귀결 지었다. 한데, 거의 모든 결과물에서, 포스트-다큐멘터리 사진의 어떤 전형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진실을 포착했다기보다는 진실을 직조하고 연출해내는, 소위 연출 사진의 초기적 양상을 재방문한듯한 느낌이 강했다. 작가는 각 작업에 객관적 장소의 층위를 부여하기 위해, 촬영 장소의 적확한 GPS 값을 개별 작업의 제목으로 삼았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체계적 정보로서의 장소 값과 매칭된, 포스트-다큐멘터리 사진은, 과연 해당 장소의 어떤 리얼리티를 포착해낸 것일까? 직관에 의거한 사진은 과연 온전히 직관을 담는가? ● 하나. 2016년, 2차 작업에 나선 김준수는, 사진의 물적 리얼리티를 재귀적으로 기록해보기로 작정했다. 작가는 다시 한 번 촬영 장소를 찾아, 마치 그래픽 디자이너가 (인쇄물의 물리적 특성이 드러나도록) 포스터를 들고 기록 사진을 찍듯, 1차 작업의 프린트물을 직접 들고 선 채 기록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장소에 결부된 사진은, 무미건조한 기록 사진의 관점을 통해 기록됐다. 소규모 스튜디오의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즐겨 사용했던 컨벤션을 차용했지만, 작가는 사진을 한 명의 개인으로 간주한 채 '인물 독사진을 찍는다'고 망상했다. 하여, 포스트-다큐멘터리 사진으로 기록된 장소의 이미지-프린트를, 해당 장소의 풍경 일부로서 재차 기록한 결과는 흥미로운 질문이 됐다. 사진의 리얼리티 직조 능력에 대한 증거 기록으로서의 질문이자, 비물질적 이미지로 인지되고 기억되는 과정에서 휘발되는 사진의 물성에 대한 질문이자, 포스트-다큐멘터리의 어법과 유형학적 고찰 방법의 결합 가능성에 대한 질문. ● 하나. 그렇다면, 1차 작업의 결과물 21장과 2차 작업의 결과물 21장, 양자 가운데, 진짜 작업은 어느 쪽일까? 작품의 기록 사진은 별도의 작품이 되는가? 1차 작업의 결과물과 2차 작업의 결과물이 상충하는 바는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까? ● 하나. 작가는 2017년의 개인전에서, 1차 작업의 결과물을 작품집으로 엮고, 일종의 제한 열람을 실시해보기로 결정했다. 전시장 벽에 붙은 관습적 사진 프린트가 비물질적 이미지로 인지되고 이내 기억 속에서 휘발되는 일에 저항해보기로 작정한 것. 대신 전시장 벽면을 메우는 역할은, 2차 작업의 결과물에게 맡기기로 했다. 고품질의 프린트로 전시하는 게 아니라, 자연의 사진 이미지로 위장된 도심의 공사장 가림막처럼 기능하도록, 벽면을 입자가 굵은 프린트로 랩핑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가짜-장소를 제시하는 벽면 랩핑의 문법을 통해 진짜-장소를 지시한다. 둘째, 진짜-장소에서 기록된 변형된-리얼리티의-사진은, 다시 한 번 진짜-사진으로서의 현존성을 주장하며 관람객의 인지적 리셋을 유도한다. 사진의 전시 방식을, 제 작업에 맞춰 재창안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재창안의 과정에서 반복적 수행성은 어떤 역할을 맡고 있을까? ● 하나. 2014년 5월 리처드 프린스(Richard Prince, 1949-)의 1981년작 「영적인 아메리카(Spiritual America)」 가 뉴욕 크리스티스 경매에서 작가의 최고가인 $3,973,000에 낙찰됐다. (2017년 현재 2위의 기록.) *아동 포르노그래피 이미지로 간주될 수 있어 큰 논란이 됐던, 나체 상태의 미성년기 브룩 쉴즈의 모습을 담은 영화 홍보용 배포 사진을 전유한 작업이다. ● 하나. 2012년 5월 제프 월의 1992년작 「죽은 병사들이 말하다(Dead Troops Talk [A vision after an ambush of a Red Army patrol, near Moqor, Afghanistan, winter 1986])」 가 뉴욕 크리스티스 경매에서 작가의 최고가인 $3,666,500에 낙찰됐다. (2017년 현재 5위의 기록.) *리얼리티의 재구성-구현에 심혈을 기울여온 제프 월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참상을 새로운 연출 사진—좀비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구식 역사화 같기도 한—으로 재포착해낸 노작이다. 이 연출 장면을 위해 작가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소품의 고증에도 일일이 신경을 섰다. 인물들은 부분 촬영됐고, 나중에 디지털 편집을 통해 하나의 화면으로 통합됐다. ● 하나. 2011년 11월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의 1999년작 「라인 II(Rhein II)」 가 뉴욕 크리스티스 경매에서 역대 사진 최고가인 $4,338,500에 낙찰됐다. (2017년 현재 1위의 기록.) *디지털 작업을 통해 추상적 평면성을 띠도록 조작된 사진이다. ● 하나. 2011년 5월 신디 셔먼(Cindy Sherman, 1954-)의 1981년작 「무제 #96(Untitled #96)」 이 뉴욕 크리스티스 경매에서 역대 사진 최고가인 $3,890,500에 낙찰됐다. (2017년 현재 3위의 기록.) *신디 셔먼의 수행적 전유 사진 작업 가운데, 흑백으로 제작된 「무제 필름 스틸(Untitled Film Stills)」 연작에 이어 시도된 컬러 연작 가운데, 대표성을 띠는 것으로 간주되는 프린트다. 그는 1980년에 후막 촬영 기법을 활용해, 영화의 언어로 재현되는 전형적 여성성을 직접 연출-연기해 전유했고, 1981년엔 주류 영화에서 타자화된 모습으로 재현되는 여성 캐릭터를 탐구 대상으로 삼아, 예의 연출-수행 장면을 영화 스크린의 배율로 포착-제시했다. 대중적 미디어를 통해 재현되는 것들이 구현해내는 2차적 리얼리티를 탐구하는, 새로운 비평 방식을 개척해낸 셈이었다. ● 하나. 2009년 6월 22일 (미국 뉴욕 주 로체스터에 본사를 둔) 코닥사가 코다크롬(Kodachrome, 1935-2009)의 단종을 발표했다. ● 하나. 2008년 6월 길버트와 조지의 1973년작 「여왕 폐하께(To Her Majesty)」 가 런던 뉴욕 크리스티스 경매에서 역대 사진 최고가인 $3,765,276에 낙찰. (2017년 현재 4위의 기록.) ● 하나. 2007년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의 사진 「99 센트 II 딥티콘(99 Cent II Diptychon)」 (2001)이 런던 소더비스 경매에서 334만6천456 달러에 낙찰됨으로써 역사상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된 사진으로 등극했다. (2006년 5월 뉴욕 소더비스 경매에서 같은 작업의 세 번째 프린트가 약 225만 달러에 거래되고, 같은 해 11월 모상업화랑에서 같은 작업의 두 번째 프린트가 약 248만 달러에 판매된 바 있다.) (2017년 현재, 역사상 여섯 번째로 비싼 가격에 거래된 사진이다.) ● 하나. 2006년 에드워드 스타이켄(Edward Steichen, 1879-1973)의 사진 「연못-월광(The Pond – Moonlight)」 (1904)이 뉴욕 소더비스 경매에서 292만8천 달러에 낙찰됨으로써 역사상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된 사진의 자리를 차지했다. (2017년 현재 열 번째로 비싼 가격에 거래된 사진이다.) *에드워드 스타이켄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사진부 큐레이터로서 소위 스트레이트 사진의 문법이 국제화하도록 애를 썼지만, 정작 본인은 인상파적 화면을 추구하는 구식 사진가로 역사에 남았다. ● 하나. 2005년 리처드 프린스의 재촬영 사진 「무제(카우보이)(Untitled[Cowboy])」 (1989)가 뉴욕 크리스티스 경매에서 124만8천 달러에 낙찰됨으로써 역사상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된 사진으로 기록됐다. (2017년 현재, 역사상 여덟 번째로 비싼 가격에 거래된 사진이다.) *타인의 광고용 사진을 담은 광고 인쇄물을 부분 재촬영한 사진이 이러한 기록을 세웠을 때, 기존의 스트레이트 사진을 고수해온 소위 '정통파 사진가'들은 큰 상실감을 느꼈다. ● 하나. 1999년대 후반 유형학적 사진의 유행과 함께 (인화지를 알루미늄판과 투명 아크릴 사이에 압착하는 독일의 특수 제판 기술인) 디아젝(Diasec; 특허 출원 승인은 1973년)이 서구 미술계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독일의 사진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가 디아젝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때는 1994년경으로 알려져 있다. *디아젝은 미술시장에서 사진 프린트의 물신성을 유지하고 항구성을 약속하는 장치로 기능했었으나, 그 유행은 2008년 이후 급격히 쇠락했다. ● 하나. 1990년 2월 미국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토마스 놀(Thomas Knoll, 1960-)과 존 놀(John Knoll, 1962-) 형제가, 레스터 그래픽 편집 프로그램인 '어도비 포토샵 버전 1.0(Adobe Photoshop Ver. 1.0)'을 매킨토시 컴퓨터용으로 출시했다. 애초엔 스캐너로 입력된 이미지를 편집하기 위해 고안됐으나, 곧 이미지 편집을 위한 만능 프로그램의 지위에 올랐다. (1994년 9월 레이어 기능을 도입한 '어도비 포토샵 버전 3.0'이 출시됐고, 이후 디지털 작업이 아날로그 작업의 품질과 능률을 따라잡기 시작한다.) ● 하나. 1989-1991년 미국의 미술가 제프 쿤스(Jeff Koons, 1955-)가 연인 치치올리나와 함께 촬영한 포르노그래피 행위/사진/영상/간판/조각 작업 「메이드 인 헤븐(Made in Heaven)」 연작을 발표해 세상에 충격파를 던졌다. ● 하나. 1981년 프랑스의 미술가 소피 칼(Sophie Calle, 1953-)이, 탐정에게 의뢰해 자신의 하루를 추적하고 사진과 문서로 기록한 작품인 「그림자(The Shadow)」를 발표했다. 작가는 제 모친으로 하여금 탐정 사무소에 자신의 추적을 의뢰하도록 꾸몄고, 그렇게 해서 얻은 기록물을 제 개념적 초상으로 제시했다. ● 하나. 1981년 미국의 페미니스트 사진가 세리 레빈(Sherrie Levine, 1947-)이 워커 에반스의 사진 도록을 재촬영해 제작한 프린트 「무제 (워커 에반스 이후)(Untitled [After Walker Evans])」(젤라틴실버프린트, 10.2×12.7cm)를 발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재촬영을 통한 공격적 전유가 문화계를 뒤흔드는 순간이었다. ● 하나. 1979년 더글러스 크림프((Douglas Crimp, 1944-)는 미국의 비평지인 『옥토버』(October)의 봄호(Vol. 8, Spring)에 평문 "그림들(Pictures)"을 기고했다. 논자는 글머리에서 자신이 『그림들』전을 기획하며 '그림(picture)'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가, "전시에 초대된 작가들이 알아 볼 수 있는 이미지를 사용한다는 두드러진 특징을 드러내기 위해서일뿐만 아니라, 주요하게는 이 단어가 띠는 모호함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했던 것은, 작가들이 미디엄, 즉 매체의 전통적 범주를 벗어나는 방식, 그리고 그를 통해 가능해진 새로운 작품의 경지였고, 그에 대해 크림프는 다음과 같이 단언했다: "약 10년 전부터 많은 작가들이 자유로이 미디엄을 바꾸거나 혹은 하나의 미디엄을 다른 꼴로 "변조"하거나 또는 일체의 물리적 발현을 회피함으로써, 미디엄의 본래 특성은, 말하자면, 더 이상 우리에게 예술가의 활동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더글러스 크림프는 전유의 비평 방법이, 특히 사진과 영상을 통한 전유의 방법이 현대미술계에 확산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평론가/큐레이터다. ● 하나. 1977년 미국의 비평가 수전 손택(Susan Sontag, 1933-2004)이 저서 『사진에 관하여(On Photography)』를 출간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수전 손택의 영향 아래, 사진 이미지를 이론적 객체로 사고하는 태도가 널리 확산했다.

김준수_어린이대공원_다시展_류가헌_2017

하나. 1977년 미국의 큐레이터이자 평론가인 더글러스 크림프가 기획한 소규모 그룹전 『그림들(Pictures)』이 대안공간 아티스츠스페이스(Artists Space)에서 열렸다. 참여한 작가는, 로버트 롱고(Robert Longo), 세리 레빈, 트로이 브라운터크(Troy Brauntuch), 잭 골드스틴(Jack Goldstein), 필립 스미스(Philip Smith), 이렇게 5인에 불과했으나, 사진과 비디오 등을 이용해 이미지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세대의 등장을 알린 기념비적 기획이었다. ● 하나. 1970년대 후반 캐나다인 사진가 제프 월(Jeff Wall, 1946-)은, 영화 촬영 현장과 제작 관행을 고찰하며, 특정한 사건 혹은 상황의 재연출이 지니는 다층적 해석의 가능성과 힘을 발견했고, 영화적 재현/재연의 특성을 스틸 사진 제작에 적용하려 애썼다. 그를 통해 사진가는 작품 제작의 원점이 되는 사건(상황)과, 그것을 재연출한 사건(상황) 사이의 거리를 사진으로 포착해냈다. 그리고 1979년엔, 제 사진을 광고 간판처럼 라이트박스로 제작해 전시하는 독특한 방법을 확립했다. 오늘날 평자들은 이러한 방식을 '(포스트)미디엄의 재발명' 혹은 '(메타-)미디어 리믹스'라고 부른다. ● 하나. 1968년 미국의 건축가 로버트 벤추리(Robert Venturi, 1925-), 데니즈 스콧 브라운(Denise Scott Brown, 1931-), 스티븐 아이제노어(Steven Izenour, 1940-2001) 3인은 라스베이거스를 자동차로 여행하며 도시의 특성을 탐구하는 사진 기록을 남겼다. 그 성과는 1972년 연구서 『라스베이거스의 교훈: 건축적 형태의 망각된 상징주의(Learning from Las Vegas: the Forgotten Symbolism of Architectural Form)』로 출간됐다. (1977년에 펴낸 개정판이 폭넓은 비평적 호응을 얻었다.) ● 하나. 1966년 미국 서부의 개념미술가 에드 루셰이(Ed Ruscha, 1937-)는 오프셋 인쇄 책자 형태의 작품 『선셋 스트립의 모든 빌딩(Every Building on the Sunset Strip)』을 발표했다. 작가는 로스엔젤리스의 상업 지구인 선셋 스트립을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며 모든 건물의 입면을 촬영하고, 그 결과를 이어 붙여 파노라마 이미지를 완성한 뒤, 아코디언 형태로 접었다 펼칠 수 있는 책자를 제작했다. 책자의 높이는 17.8cm고, 펼쳤을 때 너비는 761cm에 달한다. ● 하나. 1955년 1월 26일,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25주년을 기념한 대규모 사진전 『인간가족(The Family of Man)』이 개막했더랬다. 학예실 사진부장이었던 사진가 에드워드 스타이켄이 기획한 이 전시는, 사진을 인류 공통의 언어로 제시했고, 대중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당해 5월 8일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폐막한 이후, 세계 85개 도시를 순회했고, 총 9백만 명이 관람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시는 1957년 4월 3일부터 28일까지 한국 서울의 경복궁 미술관에서 한국민을 맞았고, 이제 막 발돋움하는 단계에 있던 한국 사진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전시 유치에 앞장섰던 인물은 임응식[1912 - 2001]. 내한전의 주최는 미 공보원, 후원은 문교부, 내무부, 한국사진작가협회 공동이었다.) *소위 매그넘 스타일의 스트레이트 사진 문법은, 이 전시를 통해 국제화했다. (국내의 경우엔,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의 졸업생들이 주요 일간지의 사진부 기자로 일하면서 보도사진의 문법이 널리 확산했고, 그 이후 그 문법은 한창기와 『뿌리 깊은 나무』의 사진가들을 통해 변형-업데이트됐다.) ● 하나. 1952년 프랑스의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Henri Cartier-Bresson, 1908-2004)은 사진집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을 발간했다. 프랑스판의 제목은 『찰나의 이미지들(Images à la Sauvette)』이었다. *사진적 리얼리티의 예술적 금자탑. ● 하나. 1826년 프랑스인 니세포르 니엡스(Nicéphore Niépce, 1765 – July 5, 1833)는 현전하는 최고(最古)의 사진을 촬영했다. 『그라의 창문에서 본 풍경(View from the Window at Le Gras)』이 바로 그것. 카메라 옵스쿠라로 8시간의 장기 노출 끝에 얻은 불명료한 이미지는, 여전히 변화하고 있는 사진의 위상과 기능 따위를 추적할 때, 남상점(濫觴點)으로 꼽기에 적절하다. *사진은 애초에, 원근법적 고찰 방식을 바탕으로 광화학 반응을 활용해 흑백의 평면 이미지를 도출해내는, 일종의 반자동화한 음영-회화였음을 상기하자. ● 하나. 2017년 현재, 오늘의 디지털 사진은, 포토-리얼리스틱 회화의 디지털 파일과 큰 차이가 없는 존재가 되고 있다. 구식 다큐멘터리 사진의 리얼리티가 유효성을 상실하면서, 전문 사진가의 고품질 사진 프린트는 대체로 20세기 후반의 사진적 리얼리티를 의태하는 공예적 존재가 됐다. *옛 사진의 리얼리티가 포집해냈던 모종의 현존성은, 오늘날 짧은 길이의 고화질 라이브 동영상으로 옮겨가고 있다. ● 하나. 2010년대의 사진술과 사진의 관습으로 포착할 수 있는 오늘의 리얼리티는 무엇일까? ● 하나. 일찍이 작가 마르셀 뒤샹은 너무나 미묘해 거의 지각하거나 언명하기 어려운 차이를 가리켜, '인프라-신(infra-thin[inframince])'이라고 칭한 바 있었다. 그는 '내뱉은 담배 연기에서 숨냄새를 분리해낼 수 없을 때, 총탄의 발사 소리와 근거리 피사체의 표면에 생기는 총알구멍을 별도의 사건으로 인지해내기 어려울 때, 우리는 그 상태를 인프라-신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프라-신'이라는 개념은 1930년대에 고안돼 1945년 3월 잡지 『뷰(View)』—뒤샹 특집호였던—를 통해 처음 발표됐다고 알려져 있지만, 퐁피두센터에 소장된, '인프라-신'이라는 표제 아래 관련 45개의 수기 메모를 정리해 봉투에 담아놓은 다큐먼트 묶음은, 1960년대, 즉 말년의 산물로 추정된다. 1980년에 출간된 『마르셀 뒤샹, 메모들(Marcel Duchamp, Notes)』의 한 챕터가 "Inframince / Infrathin"으로 묶여 있기도 하다.) ● 하나. 지난 2014년, 그래픽 디자이너 듀오 슬기와 민은 뒤샹의 아이디어를 차용해, '인프라-플랫(infra-flat)'이라는 개념어를 제시했다. 세상을 편평하게 압축하는 그 힘이 도를 넘어 오히려 역전된 깊이감을 창출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뜻한다고 했다. 즉, 세상은 이미 초납작(수퍼플랫)하지만은 않다는 말씀. ● 하나. 그에 화답해, 근년의 나는 '인프라-리얼(infra-real)'이라는 개념어를 새로 제시했다. 이는, 세상을 유동하는 맵핑 이미지로 재매개-재현해버리는 스마트기기 환경에서, '리얼함이나 리얼리티를 리얼하게 대체하는 의태된 리얼함이나 리얼리티(mimetic realness/reality as a substitute state or quality for realness/reality)'를 실재 혹은 실재하는 것의 리얼함/리얼리티와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 현상을 총칭한다. 현대시각문화예술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전환이, '리얼한 것의 귀환'으로 특징지어졌다면,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이자 포스트-컨템퍼러리한 질서로서의 좀비-모던한 오늘의 시각문화예술은, 실감하기 어려운 양태의 '리얼한 것의 소멸'로써/로서 설명될 수 있다. ● 하나. 김준수의 어린이대공원 연작은 실상 인프라-리얼리티의 오늘을 재구성한다. 실재 혹은 실재하는 것의 리얼함/리얼리티를 대치하는, 리얼함/리얼리티를 리얼하게 대체하는 의태된 리얼함/리얼리티를, 비평적으로 재연하는 셈. 그는 사진가의 오늘을 촬영하고 제시하는 일을 통해, 과거에 가능했던 모종의 사진적 리얼리티를, 제한된 양태 혹은 재규정된 양식으로 (재)소환해냈다. ● 하나. 뒤샹이 제시한 인프라-신의 진짜 핵심은, 실제로 벌어진 일의 존재와 그를 지각-인지한 바 사이의 차이와 거리를 가시화-언명하기 어렵다는 데 있었다. 구식 불가지론에 대응하는 인지 모델 창출 및 시뮬레이션 불가론 같은 것. 즉, 당대 지각-인지 심리학에 대한 뒤샹의 화답이었다. ● 하나. 마찬가지로, 인프라-플랫이 포스트-수퍼플랫의 심도와 구식 심도 사이의 차이를 가시화-언명하기 어려운 오늘의 상황이나 리얼리티를 지시한다고 하지만, 진짜 핵심은, 수퍼플랫한 시각뇌로 지각-인지해낸 세계상의 왜곡된 심도와 이리저리 중첩 변형된 실재 세계의 심도 사이의 차이를 가시화-언명하기 어려운 오늘의 한계 상황이나 리얼리티를 지시하는 데 있을 것이다. ● 하나. 고쳐 말하면, 김준수의 1차 작업 결과는 인프라-플랫하다. 2차 작업의 결과는 인프라-리얼하게 구식 리얼리티를 (일시적으로?) (재)소환해냈다. 앞으로 1차 작업과 2차 작업의 사이를 인프라-신하게 재결합시켜낼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가능하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 ■ 임근준 AKA 이정우

추신) 촬영 장소 21곳의 GPS 정보는 다음과 같다: 37° 32' 58.41" N 127° 4' 42.918" E 37° 32' 55.902" N 127° 4' 57.756" E 37° 33' 1.89" N 127° 4' 41.022" E 37° 32' 58.326" N 127° 4' 33.426" E 37° 32' 56.808" N 127° 4' 54.966" E 37° 33' 4.29" N 127° 4' 58.98" E 37° 33' 5.43" N 127° 5' 2.664" E 37° 32' 57.03" N 127° 4' 55.674" E 37° 32' 56.412" N 127° 4' 54.714" E 37° 32' 54.642" N 127° 4' 54.726" E 37° 32' 54.498" N 127° 4' 53.586" E 37° 32' 59.28" N 127° 4' 43.038" E 37° 33' 5.82" N 127° 4' 51.864" E 37° 33' 6.252" N 127° 5' 3.018" E 37° 33' 6.492" N 127° 5' 2.976" E 37° 33' 4.278" N 127° 5' 1.488" E 37° 33' 2.676" N 127° 5' 0.432" E 37° 32' 51.33" N 127° 4' 58.194" E 37° 32' 49.596" N 127° 4' 55.248" E 37° 32' 55.896" N 127° 4' 57.708" E 37° 32' 55.35" N 127° 4' 58.032" E

Vol.20170425b | 김준수展 / KIMJOONSOO / 金準洙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