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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운展 / KIMYEOWOON / 金여운 / installation   2017_0426 ▶ 2017_0507 / 월,화요일 휴관

김여운_Pixel 6_캔버스, 와이어, 낚싯줄, 스틸링_68×35×36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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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운 홈페이지_www.yeowoonkim.com

초대일시 / 2017_0426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화요일 휴관

아티팩트 갤러리 Artifact Gallery 84 Orchard Street, New York, NY 10002 Tel. +1.212.475.0448 www.artifactnyc.net

깊이를 더해가는 사고의 실험에 대하여 ● "Not to be confined by the greatest, yet to be contained by the smallest, is divine." 16세기에 살았던 이냐시오 로욜라(St. Ignatius Loyola)의 묘비명에 나오는 문구다. 이 문구는 200년 후 횔덜린(Fridrich Hölderlin)의 명작 『히페리온(Hyperion)』의 대전제로 사용되었다. 이 문구를 200년 후 프랑스 철학자 장 뤽 낭시(Jean-Luc Nancy)가 『현전으로의 탄생(The Birth to Presence)』에서 다시 사용했다. 어떤 것이 제아무리 위대하더라도 능가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아무리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기꺼이 품어준다. 그런 것이 과연 있을까? 있다 해도, 우리는 그 이름을 알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다. 그런 것이 없다 해도, 우리는 그 이름을 부르려 하고 들으려고 한다. 우리는 매우 유한한 존재이다. 그러나 무한한 것이 있음을 아는 존재이다. 이 유한한 존재의 생각 자체는 무한하다. 예술은 무한을 이야기하려는 인간의 의지이다. 그런데 인간이 어째서 무한을 생각하고 무한을 표현하려고 하는가? 내가 말하려는 김여운 작가의 의도는 이와 관련되어 있다.

김여운_Pixel 8_캔버스, 와이어, 낚싯줄, 스틸링_71×32×27cm_2016
김여운_Pixel 9_캔버스, 와이어, 낚싯줄, 스틸링_94×58×31cm_2017

그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최초에 의사소통을 위해서 땅바닥에 무언가를 그렸을 것이다. 소통이 잘 되었을 것이다. 소통이 되면 공통된 관심사가 펼쳐지고, 그 관심사는 내일에 대한 염려였을 것이다. 불안한 내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무한한 것을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무한정 펼쳐진 먹을 것을 그려놓으면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위로도 되었을 것이고 의욕도 생겨났을 것이다. 이러한 그림의 행위는 나중에 제사로 발전되었고 제도화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제사는 마술의 세계이다. 이 마술의 세계를 비판하기 위해서 문자가 태어났다. 마술은 현실과 가상의 구분을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그림은 구슬이며 문자는 구슬을 꿰는 실이다. 문자는 숫자와 결합하여 세계를 코드화시켰다. 코드화는 흐트러진 구슬들을 모아 정리해주는 구슬 끈처럼 세계를 이성적으로 파악하게 해준다. 코드화는 바로 방정식이며 근대과학을 낳았다. 나중에 과학기술은 카메라 렌즈와 컴퓨터 발명까지 가능하게 했다. 그런데 컴퓨터의 이미지는 0과 1이라는 이진법이 만들어낸 것이다. 최초의 마술인 이미지를 비판하기 위해 만든 문자가 오히려 더욱 정교해진 마술을 만들어버린 오늘날이다. 따라서 우리는 정교한 과학기술의 세기에 모든 것의 신비로부터 벗어나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마술 속에 빠져 살고 있는 것이다. ● 과학이라는 것도 사실은 마술이다. 현실의 법칙은 뉴턴 과학에 의지한다. 미시세계는 양자역학에 의지한다. 지구 밖의 상황은 상대성이론에 의지한다. 미시세계와 현실의 경계와 현실과 지구 밖의 경계에 회색지대(grey zone)가 존재한다. 이 회색지대는 어떠한 법칙으로도 규정할 수 없다.

김여운_A Piece of Chaewon Playing with High Bar_ 프레임, 사진, 낚싯줄, 퍼티, 와이어, 스틸링_41×87×64.5cm_2016
김여운_A Piece of Flowers_프레임, 사진, 낚싯줄, 퍼티, 와이어, 스틸링_52.5×29×34cm_2016
김여운_A Piece of Pink Flowers_프레임, 사진, 낚싯줄, 퍼티, 와이어, 스틸링_72×48×36cm_2016

김여운 작가의 문제 의식은 이러한 차원과 맞닿아있다. 작가는 세계를 과학이나 표준 수치로 파악하는 행위를 진리라고 생각하는 판단에 의문을 제기한다. 회화에서 사용되는 캔버스라는 틀 역시 사회의 제도를 닮았다. 고정된 하나의 시점을 정해서 최대한의 내용과 기법을 담아내라고 요구한다. 그것은 정지된 한 순간의 사건을 표상한다. 일종의 정지된 프레임의 화면이다. 그런데 작가는 유동적인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고 싶었다. 캔버스를 비정형적으로 비틀어 짜거나 캔버스를 벽이 아닌 공중에 매다는 발상은 통쾌한 해방감을 준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기존의 관념을 허물기 위해서 펼치는 전략적인 아방가르드 시도가 아니다. 우리의 시각에 대한 문제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바라보고 만지고 느끼는 세계가 실은 우리의 의식이 만들어낸 현상이다. 이를 쇼펜하우어는 표상이라고 불렀고 불교에서는 오온(五蘊)이라고 한다. 완벽하다고 생각되는 우리 시각은 불완전하다. 우리 눈앞에 펼쳐진 세계는 캔버스 화면처럼 안정적이지도 않을뿐더러 몸이 움직이면서 늘 따라서 움직이며 보고자 하는 것만 보게 된다. 세계 자체를 전일하게 파악할 수가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세계는 시간 차이와 관심의 시야로 만들어낸 파편들의 모자이크(짜맞춤)이다. 관심 영역 밖에 있던 나머지 모든 것은 무의식이라는 하수구로 흘려 보낸다. 김여운 작가의 신작 시리즈가 모빌처럼 공중에 매달리는 이유이다. 우리의 의식은 낱개의 시각 파편들을 시간이라는 축과 신체의 움직임이라는 축으로 쌓아 올리면서 눈앞의 현상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김여운 작가는 현상학적 분석을 토대로 세계와 회화의 본질과 한계를 보여주려 한 것이다.

김여운_A Piece of Sky_프레임, 사진, 낚싯줄, 퍼티, 와이어, 스틸링_108×166.5×86.5cm_2016

이렇게 회화의 본질을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는 무엇인가? 우리는 "예술은 다가올 미래의 예고편이다."는 문장에 대하여 생각해보아야 한다. 예술에서 벌어진 일들이 현실에서 어김없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기는 힘들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패러다임에 관한 이야기라면 이해하기 쉽다. 특정 시기에 세계를 바라보는 방법을 패러다임이라고 한다. 이 패러다임은 연속선상으로 발전하는 선적 모델이 아니다. 그것은 단절되기도 하며 때로는 나선적이고 유동적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패러다임은 과학자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아티스트들이 먼저 선취해서 보았던 꿈과 비전에서 비롯될 때가 많았다. 김여운 작가는 외부세계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먼저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진정한 타인에 대한 이해와 포용은 나에 대한 절실한 이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나아가 인간에 대한 절실한 이해는 세계에 대한 바른 이해로 도약시켜준다. 작가는 철저한 자기 이해를 바탕으로 대상 · 자연 · 우주 · 세계를 작동시키는 원리의 수순으로 인식을 넓히고자 하는 것이다. 작가는 무한에 대한 사고의 실험을 거듭하려는 것이다. 더욱이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가 말하는 책임감이 선취되는 인식일 것이다. 작가의 사고 실험은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작가는 깊이를 더할 것이고 우리는 우리가 미처 모르고 지나갔던 우리와 세계에 대한 진실한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예술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타자를 이해하자는 바람이 불 때 그러한 패러다임이 언젠가 정치 · 경제 · 사회 영역으로 확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여운 작가는 지금 매우 아름다운 시도를 펼친 것이다. ■ 이진명

Vol.20170426g | 김여운展 / KIMYEOWOON / 金여운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