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길 감각하고, 그때 거길 기억한다.

류장복展 / RYUJANGBOK / 柳張馥 / painting   2017_0501 ▶ 2017_0528

류장복_악몽을 꾼거야_리넨에 유채_90.9×72.7cm_20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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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0509_화요일_02:00pm

부대행사 / 김광석 기타연주_현장 드로잉 '너그리기'

관람시간 / 10:00am~06:00pm

권진규미술관 강원도 춘천시 동면 금옥길 228 Tel. +82.(0)33.243.2111 www.dalasil.com

악몽을 꾼 거야 ● 2014년 봄, 추적추적 창밖에 비가 내렸다. 주룩주룩 빗물이 창을 타고 흘러내렸다. 오늘은 늦게까지 침대를 떠나지 않았다. 비오는 날이라 어두침침하기도 했고 본래 오전은 활동시간이 아니었다. 누워있지만 어쩌면 가장 왕성하게 뇌의 활동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그래도 정오를 넘기지 않았는데 왠지 몸이 무거웠다. 비스듬히 베개를 등에 받치고 태블릿 피시를 집어 들었다. 펜의 굵기를 큰 놈으로 골라 설정하고 투명도를 조절하여 창을 그리기 시작했다. ● 시시때때로 잠에서 깨어 창밖을 본다. 2층 높이의 창밖은 공원의 나무들과 길 양편의 가로수로 겹겹이 중첩되어 꽤 훌륭한 숲속의 풍경이 연출된다. 때때로 멀리 휴양지에 와있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방의 한쪽 벽을 차지하는 창으로 쏟아지는 자연을 언젠가부터 경이로운 마음으로 맞아들였다. 자연의 가운데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연을 만끽하며 하루를 연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가. ● 벅찬 기쁨을 그림으로 그려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태블릿 피시를 장만했다. 발광하는 화면이라 어두운 데에서도 그릴 수 있고 무엇보다 누워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어떤 자세로도 그림그리기가 가능하다. 흔들리는 자연의 현상을 매순간 순도 높은 감각으로 받아내어 옮기기만 하면 된다. ● 한 시간 남짓 다소 몽롱한 상태에서 시작하여 깨어나는 감각에 따라 이미지의 활기를 더해가는 그림의 여정이 태블릿 피시의 화면에 고스란히 담겼다. 발광체의 화면은 제아무리 덧그려도 물감과 달리 투명성을 잃지 않았다. 이렇게 얻은 디지털 이미지를 A4용지에 프린트하여 작업실 벽에 붙여놓았다. 어떤 날 하루 90.9 x 72.7cm 크기의 캔버스를 꺼내 그 그림을 보고 그리기 시작했다. 열 번 정도 유성물감을 말린 후 막 가을로 접어들었을 때 어느 정도 이미지가 드러났다. ● 그동안 붉은 털모자와 목이 긴 장화를 신고 있는 새의 목각인형을 까만 바탕에 까만 글씨로 '탁류'라고 박아 놓은 화집 위에 올려놓고 창턱 가운데쯤에 새로 그려넣었다. 밖을 바라보는 새를 통해 관조의 시선을 얻고 싶었다. 본래 있었던 책의 등에 finish animal testing의 문구가 들어갔다. 그즈음 생체실험용 마루타, 채식주의자 등등에 관한 정보이미지가 몸속을 돌고 있었다. ● 2016년 늦가을, 다시 그림을 꺼냈다. 며칠을 두고 보았다. 창밖으로 거대한 고래가 보였다. 자살하는 고래. 몇 백 마리의 고래가 집단으로 해변에 올라와 떼죽음을 의식이라도 치르듯 감행한다든지, 햇빛도 안 드는 밀폐된 공간에 한 달이 넘도록 방치했더니 제 스스로 물에 떠오른 채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례가 있다. 인간세상을 향해 소리치는 생명체의 웅변적인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리는 듯하다. ● 얼마 후 고래는 침몰하는 세월호로 바뀌었다. 배를 배경으로 부엉이 한 마리가 힘찬 날갯짓으로 정면을 향해 날아왔다. 연이어 관련 이미지가 소환됐다. 짐승의 울음을 터뜨리며 절규하는 팔 달린 토루소의 여인상이 등장했고, 책의 표지를 타임지로 대체했으며, 종이쇼핑백에 표지제목 the strongman's daughter를 써넣었다. ● 독재자의 딸이 시인 김수영을 떠오르게 했다. 하얀 런닝구를 입고 낡은 소파에 팔을 괴고 물끄러미 쳐다보는 시인의 얼굴에서 군사독재시절의 시대상이 읽혀졌다. 엄혹한 시절의 한가운데에서 공포와 분노, 슬픔과 혐오의 감정을 몰아내며 그는 소리쳤다. 시여, 침을 뱉어라! ● 시인의 시선이 머무는 허공에 종이한복인형이 나타나 엉성한 손동작으로 무언가를 설명하려고 애썼지만 무거운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다. 겁먹은 듯 엉거주춤한 자세로 총을 들고 나타났던 병정도 얼마 못가서 사라졌다. 그 자리에 커다란 관절인형이 들어섰다. 스스로 타자가 되어버린 목각관절인형은 공감의 능력을 상실한 사이코패스 인간을 은유한다. 줄에 매달린 인형은 안정된 자세로 땅에 발을 붙이기 어렵다. ● 2017년 4월, 어느덧 다시 봄이다. 흙으로 빚은 붉은 화분에 도톰한 잎사귀를 지닌 이름 모를 식물이 어린 떡잎처럼 씩씩해보였다. 절망과 희망이 교차했다.

류장복_가는 자는 가지 않는다._리넨에 유채_65.1×53cm_2015~17

가는 자는 가지 않는다 ● 가는 자는 가는 매순간을 채운다. 같은 시냇물에 발을 담글 수 없는 것처럼 흐르는 시공간을 가는 자는 가지 않는다.

류장복_단꿈_리넨에 유채_90.9×72.7cm_2014~17

단꿈 ● 입가에 옅은 미소가 남았다. 단꿈이라도 꾸었나.

류장복_당신을 축하합니다_리넨에 유채_65.1×50cm_2015~17

당신을 축하합니다 ● 탄생은 축복이다. 존재하는 그 순간부터 사건이다. 존재의 나아감이 또 다른 사건을 부르며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주체의 단독성을 갖게 한다. 대상이 될 수 없는 주체는 무한으로 나아가는 유한자의 거듭되는 변신 그 자체다.

류장복_애인인아애_리넨에 유채_65.1×45.5cm_2014~17

애인인아애 ● 사랑하면 사랑받고, 미워하면 미움 받고.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러한데 늙은 중에게 따로 구할 지혜가 어디 있겠느냐는 선승의 우렁찬 중얼거림이 귓전을 맴돌며 때린다.

류장복_이브_리넨에 유채_90.9×72.7cm_2014~17

이브 ● 내일이 두렵다. 그렇지만 오늘 설렌다. 전날은 늘 그렇다.

류장복_흔들리는 오후2시_리넨에 유채_53×45.5cm_2014~17

흔들리는 오후2시 ● 살아있어 감각한다. 물끄러미 보고, 더듬어 만지거나, 소리에 이끌리고, 체취를 호흡하며 맛본다. 감각은 흔들림이다. 흔들리는 흐름 안에서 흔들리는 감각의 지속으로 살아있다. 감각이 살아 살고, 감각이 죽어 죽는 게 아닌가. 흔들리는 오후 너를 내안에 들여 또 하나의 생명을 품는다. ■ 류장복

Vol.20170502i | 류장복展 / RYUJANGBOK / 柳張馥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