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단서

이영은展 / LEEYOUNGEUN / 李泳恩 / painting   2017_0607 ▶︎ 2017_0613

이영은_몸의 단서_캔버스에 유채_116.8×91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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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주말_12:00pm~06:00pm

갤러리 너트 Gellary KNOT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 94 (와룡동 119-1번지) 동원빌딩 105 Tel. +82.(0)2.3210.3637 galleryknot.com

episode 1 ● 1-3 승강장에 있는 그녀를 보았다. 같은 곳에 있는 그녀를 가끔 본 것 같다. 횡단보도를 지나다가 본 여성이 그녀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녀는 특별히 눈에 띄지도, 예쁘지도 않은 보통의 여자다. 단지 그녀는 지금 이 시간 즈음이면 조용한 승강장에 또각 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걸어와서는 미동도 없이 열차가 들어오는 방향을 바라보며 서 있는, 뒷모습이 인상 깊은 여자다.

이영은_platform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45.5×53cm_2017
이영은_struggle_캔버스에 유채_90×65cm_2017

episode 2 ● 나의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 집 근처 어딘가에 자신의 물건을 떨어뜨렸다고 한다. 나는 그 물건을 찾기 위해 그녀의 동선을 되짚으며 여기 저기 기웃거렸다. 몇 시간 전 그녀와 함께 걸어왔던 길을 거슬러 가다 보니 손수건 하나가 보였다. 그녀에게 이것이 맞냐고 물었다. 그녀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다른 누군가가 잃어버린 손수건인가 보다. 빨갛고 화려한 이 손수건의 주인은 왠지 이 물건이 없으면 굉장히 불안해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시 길을 걸었다. 어느새 그녀를 마중 나갔던 편의점을 지나서 한참을 더 가고 있었다. 조금 가다 보니 장갑 한 짝이 보인다. 이런 장갑을 가지고 있을 것 같진 않지만 친구에게 이것이 맞냐고 물었다. 그녀는 이번에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조금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차근차근 주변을 둘러보았다. 떨어진 장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스타킹 한 짝이 보인다. 그녀에게 이게 맞냐고 물었다. 그녀는 맞다고 대답했다. 그녀가 나를 만나기도 전의 어느 길목이었다.

이영은_struggle_캔버스에 유채_116.8×72.7cm_2017

출근길, 또 퇴근길. 오늘 내가 오고 가는 길에는 그 길을 공유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내가 밟은 계단을 누군가가 뒤이어 밟고 올라오고 버스를 기다리던 내 옆에 누군가 와서 함께 기다리고 버스가 오면 그 사람은 홀로 남아 또 누군가와 그 자리를 공유하고... 우리는 상당히 규칙적으로, 많은 시간을 낯선 누군가와 공존한다. 말 한번 섞지 않고 그저 몇 번의 눈길을 보내며 짧게는 몇 초, 길게는 한 두 시간의 순간을 타인들과 함께한다. 그렇게 반복되는 낯선 공존의 시간에서 작가는 타인의 존재여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던 그 사람이 내 시야에서 벗어난 순간 흐릿해져 사라질 것만 같다. 소멸이나 실종이 아니다. 내 눈과 내 공간에서 벗어난 세계는 실존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며 동시에 그 안을 맴돌던 사람들의 존재가 더욱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영은_platform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17
이영은_platform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17
이영은_platform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17

이런 기분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던 순간에도 불현듯 찾아오곤 한다. 상대가 지금 이 순간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매 순간 내리꽂는 시선의 범위는 어디까지 인지 짐작은 하지만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느끼는 것과 같이 타인에게 동감할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몸을 경계로 하여 외부로 표시한 것들만을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타인은 각각 한 명의 '나'로써 이 세계를 살아간다. '나' 또한 모두의 타인이며 '타인'은 모두 각각의 나이다. 그들도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독립된 사생활과 사유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며 가끔은 자신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을 상대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하며 답답해하기도 한다. 이러한 생각들 때문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의 흔적을 발견하거나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들으며 흐릿하게나마 그의 존재가 나와 같음을 인지하게 된다.

이영은_그녀의 시간_캔버스에 유채_90×60cm_2017

누군가의 몸이 담겨있던 옷가지들, 항상 지나는 그 길에 옷 더미가 흩어져있는 상황들, 스타킹의 반복적 출연은 어느새 그것이 단순히 스타킹이 아닌 어떤 대상물, 혹은 피부로 느껴지게 한다. 사람의 껍데기 같아 보이는 옷가지들은 이내 몸이 어디로 갔는지에 대한 의문을 만들어내고 껍질로 여겨지던 천 조각들은 그것들이 몸인듯 계속해서 흔적처럼, 실제처럼 남겨지고 내가 지나온 길에 생긴 누군가의 흔적, 내가 남기고 간 어떤 흔적, 어떤 인물을 떠올리게 하는 많은 표면적 단서들은 타인의 삶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되는 작은 통로가 된다. ■ 이영은

Vol.20170607b | 이영은展 / LEEYOUNGEUN / 李泳恩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