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네르기아 ĕnergía

임상빈展 / IMSANGBIN / 任相彬 / multimedia   2017_0629 ▶ 2017_0808 / 일,월요일 휴관

임상빈_Fish-Tank 2_알루미늄에 염료승화프린트_150×100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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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0629_목요일_03:00pm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일,월요일 휴관

소울아트스페이스 SOUL ART SPACE 부산시 해운대구 해운대 해변로 30 Tel. +82.51.731.5878 www.soulartspace.com blog.naver.com/soulartspace

모든 것은 변화한다. 어떠한 종류의 사물/생물/자연의 현상(모양/상태/기질)도 그것이 처한 환경(조건/맥락/필요)에 따라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변화는 힘을 수반한다. 그 힘은 박제가 되어버린 과거형이 아니라 이순간 이곳에서 나에게 유효할 수밖에 없는 강력한 현재형이다. 힘은 도구로 발현된다. 이번 전시에서 나는 여러 미디어의 장점을 활용하여 다양한 종류의 기운생동을 표현하고자 한다. 1층에서는 사진작품이, 그리고 2층에서는 회화, 드로잉, 그리고 영상작품이 전시될 것이다. 네 가지 미디어는 미술도구상자 안에 들어있는 여러 장비들로 비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힘을 쓰는데 망치를 활용하면 계속 박고 싶고, 펜치를 활용하면 계속 조이고 싶고, 본드를 활용하면 계속 붙이고 싶고, 클립을 사용하면 계속 끼우고 싶을 것이다. 각양각색의 기운생동을 깊이 체감하고 널리 나누는 전시가 되기를 바란다. 1. 힘 이야기 ● 우리는 실생활에서 'energy(에너지)'라는 단어를 종종 사용한다, 이 단어가 사람을 지칭하는 경우에는 정력/활기와 같은 육체적/정신적 기운/힘/의지와 관련을 맺는다. '에너지가 있다/넘친다'라던지 '에너지가 없다/딸린다' 등이 그 예이다. 혹은 재료를 지칭하는 경우에는 빛/열/물질 등의 잠재적 동력 자원과 관련을 맺는다. '태양/핵 에너지', '에너지 보존/소비/위기' 등이 그 예이다. ● 이번 전시에서 나는 에너지의 라틴어 어원인 'ĕnergía(에네르기아)'가 갖는 5가지의 함의에 주목한다. '진행형'(충전/방전되고 있는 상태), '장소성'(축적/소진되어온 영역), '특정형'(특별히 다른 위치/특성), '집단성'(밀집/집중되는 현상), '파괴성'(강력한 영향력과 해소)이 그것이다.1)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첫째, '진행형'과 관련해서, 접미사 '–ia'를 사용하면 '상태'의 현재 개념이 강조되는 듯 느껴진다. 이 접미사는 종종 질병 증상 등 비정상적 상태를 강조하기 위해 쓰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2) ● 둘째, '장소성'과 관련해서, 접미사 '–ia'를 사용하면 '영역'의 단위 개념이 강조되는 듯 느껴진다. 이 접미사는 영토를 가진 국가/지역을 규정짓기 위해 쓰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3) ● 셋째, '특정형'과 관련해서 접미사 '–ia'를 사용하면 '특별'의 다름 개념이 강조되는 듯 느껴진다. 이 접미사는 특정 장소의 상태, 특정 개인의 소속/직위, 혹은 특정 행사를 지칭하기 위해 쓰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4) ● 넷째, '집단성'과 관련해서, 접미사 '-ia'를 사용하면 '군집'의 집합 개념이 강조되는 듯 느껴진다. 이 접미사는 단수라기 보다는 '복수/복합'을 지칭하기 위해 쓰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5) ● 다섯째, '파괴성'과 관련해서, 위에서 언급된 '진행형', '장소성', '특정형', '집단성'의 접미사 '-ia'가 활용된 '에네르지아'라는 단어는 '파괴성'을 강하게 시사하는 듯 느껴진다. 이 단어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거나 가지고자 하는 사물/현상/조직을 표현하기 위해 쓰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6)

임상빈_Persons_람다 프린트_130×100cm_2017
임상빈_Yachts and the Sea_나무틀에 람다 프린트_ 52×190.5cm(상), 35.5×190.5cm(하)_2017

2. 사진이 만들어내는 풍경: 초실제적 극사실성 ● 나는 사진의 힘은 마치 언제 내가 수줍어했던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냐는 듯, 당당하게 우리 앞에 자신을 뽐내는 풍경의 '초실제적 극사실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초실제적 극사실성'이란 너무 사실적이어서 실제를 초월할(실제보다 더욱 실제인 것만 같은) 정도이거나, 혹은 실제를 초과해버리는(정도를 넘어 이제는 실제에서 이탈해버리는) 상태를 지칭한다.7) ● 내가 좋아하는 사진은 실제와 이미지가 지속적으로 관련을 맺으면서도 끊임없이 긴장하고 충돌하고 미끄러지고 어긋나면서 묘한 창조적/비평적 거리를 생성하는 풍경이다. 고차원적인 사진이 되려면, 작가의 의도가 동기로만 끝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의미로 연결되어야 한다. 또한 작품의 의미가 하나로 규정/이해되지 않고 끝없이 심화/확장/대치/분열/이동/격상되는 다면적 해석으로 나아가야 한다. ● 나는 사진 매체를 통해 특별한 에네르기아를 표현하고자 한다. 특정 집단이 특정 장소에 모여 만들어내고 있는 파괴적인 힘의 발산을 목도하는 것은 그야말로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간 많은 사람, 높은 건물, 명화, 혹은 웅대한 자연이 만들어내는 밀집된 풍경에 주목하여 왔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특별히 다른 생명체(어류)로도 소재를 넓혀 인간사를 새롭게 돌아보고자 하였다. 다른 생명체들을 관찰하다 보니 어느 순간, 사는 게 참 다들 엇비슷하다는 생각에 연민의 감정이 들었다.8) ● 전시되는 사진 작품의 풍경과 관련해서, 'Persons'는 2016년 말과 2017년 초에 대한민국에 거주했던 국민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촛불집회가 막 시작되는 풍경이다. 'The 1st Day'는 12월 31일에 동해를 방문, 1월 1일 새벽, 해돋이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다 한 작은 마을의 사람들이 넓은 공터에 모이는 것을 보고 덩달아 참여했던 풍경이다. 'Pool and the Sea'는 호주 본다이 해변가에 위치하며 인접한 바다와 경계를 연출하는 인공풀장을 목도하는 풍경이다. 'Yachts and the Sea'는 시드니의 해안부두에서 탑승한 유람선 안에서 바라본, 바다 위에 뒤섞이듯 떠있는 수많은 요트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다. 'The World's 10 Tallest in 2020'은 일본 도쿄의 한 호텔방에서 창문을 통해 바라본, 2016년 예상으로 2020년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10위 이내의 건물들이 모여있는 풍경이다. 'Fish-Pond'는 하와이 돌 파인애플농장 연못에서 먹이를 던져주니 경쟁하듯 모여들던 수많은 잉어들의 풍경이다. 'Fish-Tank 2'는 속초 해변가의 한 횟집에서 하염없이 바라본, 어항 속 오징어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다.9) ● 전시되는 사진 작품의 형식과 관련해서, 'The World's 10 Tallest in 2020'는 통상적인 단면화의 형식을 따르지만 구조적으로는 실내와 실외를 명확하게 구분 짓는다. 'Pool and the Sea'와 'Yachts and the Sea'는 내가 그간 진행해온 다면화의 형식을 따르며, 이미지의 가상성과 물질성, 그리고 구조적인 리듬을 강조한다. 이와 더불어 이번 전시에서는 특별히 두 가지의 새로운 형식을 시도했다. 첫째로 '왜곡 액자'를 활용했다. 일반적으로 사진 이미지 하면, 사각의 프린트와 액자가 떠오른다. 하지만 나는 'Persons'와 'The 1st Day'에서 사각의 정형(격格)을 변형(파破) 함으로써 이미지의 외각이 내부의 이미지와 적극적으로 교감하고 반응하기를 원했다. 둘째로 '구멍 이미지'를 활용했다. 'Persons'와 'The 1st Day'도 변형 이미지라 할 수 있지만, 'Fish-Pond'와 'Fish-Tank 2'는 이미지의 표면에 실제로 물리적인 구멍을 내어 이미지의 가상성을 위반하며 물질적인 존재감을 부여했다. 이를 강화하고자 특별히 일반 인화지가 아닌 알루미늄을 재료로 선택하게 되었다.10)

임상빈_The 1st Day_람다 프린트_84.4×152.4cm_2016
임상빈_Museum 1,2,3,4_패널에 아크릴채색_61×45.7cm_2010, 2017

3. 덮는 행위의 회화성: 물질적 정신성 ● 나는 회화의 힘은 마치 언제나 그래왔다는 듯이, 보면 볼수록 우리 앞에 조금씩 자신을 드러내는 '물질적 정신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질적 정신성'이란 너무 물질적이어서 정신계가 도무지 보이지 않거나 너무 정신적이어서 비물질적일 수 밖에 없는 양 극단이 아닌, 드러내고 싶은 바를 물질로 표현하려는 의지(표현주의적 표출) 혹은 물성의 한계에 조건 지어지는 상태(인상주의적 습득)를 지칭한다.11) ● 내가 좋아하는 회화는 그 재질(바탕)에 그 재료(요소)를 그 기법(구축)으로 묻혀가면서 축적되는 물질적 증거와, 이와 더불어 내뿜는 사상과 감정의 정신적 호흡이 진하고 풍부한 흔적과 향기로 진동하는 장소이다. 고차원적인 회화가 되려면,12) 심오한 정신계를 기묘한 물질계로 소위 '이거구나' 싶게, 즉 말이 되게 잘 풀어내어야 한다.13) ● 나는 회화 매체를 통해 특별한 에네르기아를 표현하고자 한다.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회화는 '부활(resurrection)'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제대로 완성되지 못한 이전 작품의 부분, 혹은 전체를 덮어버림으로써 보류된 회화에 새로운 용기를 부여한다. 사실 붓질을 하는 행위 자체가 몸의 마력이 발현되는 과정이기에 어떠한 종류의 에너지도 드러나지 않는 회화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추고 싶었던 춤은 화면 안에 멋지게 붓을 휘저어대는 통속적이고 당연한 방식이 아니라 물감을 듬뿍 묻힌 두 손을 회화의 피부에 슬슬 문지르는 마사지였다. 이를 통해 멈춰버린 이전의 회화에 다시금 숨을 불어넣음으로 새 생명을 부여하는 독특한 방법론을 보여주고 싶었다. 과거를 어루만져주거나 지워버리다 보니, 아직도 보이는 듯, 혹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듯, 원본과 탈바꿈이 서로를 의지하며 부활의 사건을 증거하는 사도가 되었다. 헌 삶이 없으면 새 삶이 없기에 서로는 필요할 수 밖에 없다.14) ● 전시되는 회화 작품과 관련해서, 'Residue, Water, and 5 Years' 프로젝트는 2011년부터 2016까지 때로는 자주, 때로는 가끔씩 꾸준히 진행되었다. 다른 작업을 진행하다 남은 아크릴 물감을 붉은 계열, 노란 계열, 초록 계열, 푸른 계열로 나누어 물에 희석시켜 쏟아버리는 행위가 축적된 작업이다. 'Museum' 프로젝트는 2010년 제작된 후 2017년에 텁텁한 반투명한 막으로 여러 번에 걸쳐 둔탁하게 덮어버린 작업이다. 'City' 프로젝트는 2010년 제작된 후 2017년에 기름기 있고 습윤한 검은 막으로 얇게 덮어버린 작업이다. 'Covered' 프로젝트는 2008년 제작된 후 2017년에 얇고 투명한 수많은 막으로 덮어버려 이전의 자취는 약간만 남아있는 작업이다. 'Blue' 프로젝트와 'White' 프로젝트는 2011년 제작된 후 2017년에 반투명한 여러 막으로 덮어버려 이전의 자취가 거의 없어진 작업이다. 'River' 프로젝트와 'Road' 프로젝트는 2008년 초에 제작되었다가 반년이 흐른 후 특정 부분의 질감과 유광 처리를 통해 조형요소 간의 물성의 차이가 강조된 작업이다. ● 전시되는 회화 작품의 형식과 관련해서, 하나의 프로젝트는 일관된 형식 하의 비교적 작은 크기의 여러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사실 이는 작업하다 멈추었던, 서로 별 관련 없는 작품들이 여럿 있었기에 가능했다. 연작을 선호한 이유는 첫째로, 작품들을 함께 배치함으로써 큰 벽 안에서 구조적인 리듬감을 연출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둘째로, 개별 작품 안에서도 덮임과 덮음이 함께 존재하는 것을 보여주듯이, 작품 간에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진행된 양태를 통해 내밀한 차이의 감각을 극대화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임상빈_Road 1,2,3_패널에 유채_45.7×61cm_2008
임상빈_Residue, Water, and 5 Years-RED, YELLOW, GREEN, BLUE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1.4×52.8cm_2011~16

4. 분출하고 다듬는 드로잉: 방출과 정비 ● 나는 드로잉의 힘은 불현듯 스치는 착상을 언제라도 자유롭게 '방출'하거나, 오랜 기간 꼬여온 생각의 실타래를 이 순간 가다듬으며 '정비'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방출과 정비'란 함께 가기 쉽지 않은 대립항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번 전시에서 에너지를 대방출하는(확 던져버리는/그만 놓아버리는) 행위에 이를 섬세하게 가다듬는(살살 매만져주는/딱 잡아주는) 행위를 더해 양대 기운(양/음)의 상생을 유도하고자 한다. ● 전시되는 드로잉 작품과 관련해서, 'The Trace' 프로젝트는 1번부터 17번으로 구성되어 있는 연작 시리즈이다. 이 시리즈는 두 가지의 단계를 따라 제작된다. 우선, 무심(우연)의 단계이다. 물감을 듬뿍 묻힌 붓으로 화면 속에 확 흔적을 남긴다. 다음으로, 유심(필연)의 단계이다. 던져진 흔적의 성긴 느낌을 섬세한 펜을 활용하여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몇몇 부분을 슬슬 보완/조정하며 매만진다.15) ● 전시되는 드로잉 작품의 형식과 관련해서, 1번부터 16번으로 가면서 흰 배경과 검은 자국이 강약의 흐름을 일으키며 나름의 장단을 탄다. 그러다 갑자기, 마지막 17번은 검은 면으로 가득 찬 공간을 보여준다. 이는 생성의 흔적과 과정의 매만짐이 더 이상 차이를 일으키지 않는 혼돈과 통합의 지점이다. 나는 이 시리즈를 마치 한 곡의 음악처럼 구성하고자 했다.

임상빈_The Trace 1~16_종이에 아크릴채색, 펜_29.4×20.6cm_2017
임상빈_Persons_단채널 영상_00:10:00_2003~17

5. 모으고 또 모은 영상: 환영적 생생함 ● 나는 영상의 힘은 연관되는 이미지가 수없이 많이 축적되고 나열되는 동적 과정 속에서 한편으로는 날것(raw) 같은 매력을 발산하면서도 실감나게 경험되는, 내 눈 앞에서 정말로 막 벌어질 것만 같은 '환영적 생생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영상에서 보여지는 이미지의 묶음은 실제로 있을 법한 특정 사건과는 별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상 편집의 마법을 통해 천연덕스러울 만치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조적 흐름의 운율을 잘 보여준다면 그 경험은 매우 생생하고 실제적이 된다. ● 전시되는 영상 작품과 관련해서, 'Persons'는 2003년부터 2017년까지 나에게 찍힌 사람들의 사진 이미지를 모아 나름의 구조로 영상을 조직하여 대 방출하는 자료기반(data-based) 프로젝트이다. 이를 통해 도대체 인간들을 왜 이렇게 집요하게 모아보았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고자 했다. 결국은 인간이 답이라는 반문 또한 해보고 싶었다. ● 개인적으로 돌이켜보면, 나는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시 풍경을 촬영하기 시작했으며, 지금까지 정말 많은 양의 사진을 찍어왔다. 하지만 그간 저장장치 크기의 한계나 갑작스런 죽음/도난, 좋지 못한 사진, 작업에 사용된 사진 등의 이유로 너무도 많은 사진이 지워지고 사라졌다. 앞으로 더 사라지기 전에 아직까지 살아남은 이들을 한데 모아 추모해주고 싶었다. 물론 공연장에서의 노련한 배우로 포장해준다기 보다는 아직 공연에 오르지 못하고 마냥 대기하는 배우들의 초조하고 어색한 기다림과 같은 성긴 느낌을 주고자 했다.16) ■ 임상빈

* 주석 1) 1) ~ 4)는 접미사 '–ia'의 특성 자체에 대한 관심, 5)는 접미사와 연결된 'energy'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1)~ 5) 모두는 관성과 같이 그 상태를 지속하려는 힘을 의미하는 스피노자의 'conatus(코나투스)', 나아가 자연의 총체적인 작동 원리이자 생명의 유기적인 활동을 고양시키는 원료인 동양 철학의 '기(氣)'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2) malaria(학질), pneumonia(폐렴), anemia(빈혈), anoxia(산소 결핍증), aphasia(실어증), paranoia(편집증), phobia(공포증) 등이 그 예이다. 3) 영토의 경우로는 Italia(이탈리아), Romania(루마니아), Albania(알바니아) Serbia(세르비아), Nigeria(나이지리아), Somalia(소말리아), Columbia(콜롬비아), Australia(호주) 등이 그 예이다. 4) 특정 장소의 경우로 utopia(어디에도 없는 장밋빛 이상향)와 distopia(비극적 종말의 미래상), 특정 개인의 경우로 insignia(계급장), 특정 행사의 경우로 Lupercalia(고대 로마 다산/풍요의 신 Lupercus를 위한 축제) 등이 그 예이며 특히 이들은 위에 언급한 진행형, 장소성 개념과도 연관이 크다. 5) 복수의 경우로는 amphibia(양서류, 단수: amphibian), reptilia(파충류, 단수 raptile)를 들 수 있다. 특히 라틴어에서 -ium, -ion으로 끝나는 단어는 종종 -ia로 복수형이 된다. 복합의 경우로는 정규군인들로 구성된 통합체 조직인 military(군대)와 대비되는 militia(민병대: 긴급상황 시에 뭉치는 시민구성원 집단 복합체 조직)를 들 수 있다. 6)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역사와 권능, Holy Spirit(성령)의 성스러운 aura(기운)를 의미하고자 이 단어를 자주 활용해왔다. 요즘에는 태양, 핵 에너지 등 현존하는 가장 파괴적인 에너지원을 언급할 때 이 단어를 종종 사용한다. 러시아어로 이 단어는 우주왕복선, 핵폭탄 등을 발사할 수 있는 구소련의 추진 로켓 시스템을 지칭하며, 실제로 우주 관광산업에 투자하는 기관들(RKK Energia, RSC Energia)의 이름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네덜란드의 한 기관(ENERGIA)은 이 단어가 여성명사인 점에 착안하였는지 에너지 정책을 양성평등과 연결시켜 사업을 전개한다. 7) 사진 매체는 전통적으로 흑백, 칼라 필름의 현상을 통해 특정 시간, 장소에 사물이 실제로 놓여있는 물리적인 풍경을 광학적으로 세세하게 재현함으로써 사진으로 찍힌 이미지는 실제로 벌어진 사건으로부터 비롯한다는 믿음을 강화해 왔다. 그러나 점차로 암실의 인화 기법이 발달하고 추후에는 디지털 언어의 활용이 고도화되면서 각각의 사진 이미지는 더 이상 특정 시공에 구속되지 않게 되었다. 이제 사진 이미지는 실제와 전혀 관련이 없는 가상의 환영 그 자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구축된 환영은 때로는 실제 같거나, 혹은 실제보다 더더욱 실제 같은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며 우리들을 들어오라고 유혹한다. 믿지 못하면서도 믿게 되고, 믿으면서도 한편으로 믿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아이러니를 매혹적으로 자극하는 것이다. 8) 어쩌다 보니 지금 여기에 이 모양으로 태어나 공동 운명체를 이루고 아등바등 살고 있는 것, 이는 어떤 종으로 태어났든지 다 마찬가지이지 싶다. 물론 그냥 사는 걸 넘어 이제는 잘 살고 싶어하고, 한술 더 떠 더 잘 살고 싶어하는 밑도 끝도 없는 욕망으로 보자면 단연 인간이 으뜸일 것이다. 9) 보통 나의 사진 작업은 사진을 찍은 시점과 최종 작업으로 완결된 시점의 시기적인 격차가 상당하다. 예를 들어 'Fish-Pond'의 경우에는 2013년에 완성이 되었으나 그간 아쉬움에 공개하지 못하다가 2016년에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다른 여러 작품들도 이와 같은 이유로 시차가 존재한다. 이 현상은 뒤에 회화작업을 설명하면서 언급되는 '새 생명 부여하기' 방법론과 개념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된다. 10) 이미지의 실제 '구멍'은 지우고 싶으나 방편적으로 볼 때 완전히 지울 수는 없는 하이데거와 데리다가 언급한 '말소(sous rature)'의 개념과 관련이 있다. 물론 나의 경우는 지워졌으나 원래 없는 게 아니라 다 볼 수 없다 뿐이지 원래는 있다는 느낌을 시각적인 흔적으로 주고자 했다. 무조건 다 볼 수 있는 풍경, 즉 괄호를 열고 닫는 완결의 닫힌 공간보다는 부재의 x함수를 통해 나름대로의 상상력으로 빈 공간을 채워 넣으면서 리듬을 만드는 것이 기운생동하고 변화무쌍한 과정의 열린 미학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선택한 재료는 '알루미늄'이다. 물성이 잘 느껴지고 유기적인 형태로 자르는 것이 용이한데다가 일반적인 인화지와 비교할 때 재질이 독특하여 파격을 드러내기에 적합해 보였기 때문이다. 11) 회화 매체는 오랜 세월 동안 '감각적 재현(물성 묘사)'과 '관념적 표현(사상 투영)'의 양대 대립항 사이에서 자신의 영역을 확장, 발전시켜왔다. 전자의 예로는 원시 동굴벽화에서 느껴지는 대로 사물을 묘사하는 방식을, 후자의 예로는 이집트 미술이나 중세 미술에서 생각하는 대로 사물을 구성하는 방식을 들 수 있다. 또 다른 전자의 예로는 그리스 미술, 혹은 르네상스 미술의 인본주의가 '감각적 재현'을 부활시킨 것을, 후자의 예로는 사진 등 과학기술의 발달과 교육의 대중화가 현대미술을 '관념적 표현'의 방향으로 몰고 간 것을 들 수 있다. 이렇듯, 기나긴 역사 속에서 회화 매체는 이제는 새로움의 한계에 다다랐다는 회의가 들 정도로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스스로를 도전해왔다. 하지만 아주 어려서부터 미술을 접해왔던 나에게 회화는 풋풋한 고향이며, 온갖 고민과 유희로 버무려져 사람의 맛이 듬뿍 나는 예술적인 성소이다. 12) 이전에 언급된 고차원적인 사진의 속성은 고차원적인 회화에도 적용된다. 13) 심오한 정신계의 예로는 1) '야릇하게 달콤하여 몹시 처연함'과 같은 하나로 명쾌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아이러니한 심상(다면), 2) '도무지 어쩌자는 건지 모를 막연함'과 같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숭고함의 불가해하면서도 숨막히는 매혹(영성), 혹은 3) '역시 인간이라면 어쩔 수가 없구나'와 같은 인간애에 기반한 알레고리적인 수긍(연민) 등을 들 수 있다. 반면 기묘한 물질계의 예로는 1) 심하게 과장/왜곡/변형된 상태(막 나감), 2) 속을 숨기는 뻔뻔한 외양(애매함), 3) 보는 사람을 불안/불편하게 하는 태도(답답함), 4) 마치 외계에서 온 것만 같은 생경함(이상함), 5) 묘하게 감정을 자극하는 특질(떨림), 6) 언제나 그래왔듯 일관된 방식(꾸준함), 7) 그렇게 보면 말이 되는 관점(이해함), 8) 혹은 뭐 별로 한 거 없는 듯한 행위(비움) 등을 들 수 있다. 14) 전시되는 회화 작품의 기원과 관련해서, 1999년 학부 시절 진행했던, 망친 작품들을 바닥에 눕혀 놓고 많은 양의 기름을 들이부은 후 말리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한 '막(Veil)'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캔버스 왁구가 짜진 상태에서 기름을 들이부으니 왁구 사이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출렁거리며 고이는 현상에 매혹되었던 그때가 기억에 선하다. 15) 이전에 언급된 회화의 방법론이 과거의 불만족스러운 흔적을 덮어버리는 것이라면 드로잉의 방법론은 과거의 성긴 흔적을 정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두 방법론 모두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완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한다. 16) 1인 미디어 시대, 프로덕션 팀을 가지지 않은 개인 작가라 할지라도 하나의 장면으로 이루어진 사진을 통제/장악하는 것은 그리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이미지로 이어지는 동영상을 홀로 연출하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동영상이 사진과 똑같은 고해상도가 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즉, 한 개인 작가가 영상 제작을 위해 최첨단 기술(high-tech)에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보통 위험하다. 뛰어난 작가는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조금이나마 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정말로 잘 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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