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OCI YOUNG CREATIVES 손선경-희미한 현재

손선경展 / SONSEONKYUNG / 孫仙鏡 / animation   2017_0713 ▶︎ 2017_0805 / 일,월요일 휴관

손선경_Juggling Boy_HD 애니메이션 영상_loop_2017

초대일시 / 2017_0713_목요일_05:00pm

작가와의 대화 / 2017_0726_수요일_07: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수요일_10:00am~09:00pm / 일,월요일 휴관

OCI 미술관 OCI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45-14(수송동 46-15번지) Tel. +82.(0)2.734.0440 www.ocimuseum.org

언제든 시작하고 언제든 끝낼 수 있는 것 ● 손선경은 「Taxidermy in」과 「Taxidermy out」을 선보인 2013년 이래로 흑백 드로잉과 애니메이션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사슴 박제가 있는 방에 물이 한 두 방울씩 떨어지다 가득 차거나 토르소 조각 아래 좌대에 물이 차는 모습을 간결하게 묘사했다. 기계적으로 무한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두 편의 애니메이션은 검정 잉크로 표현한 물의 수위 변화를 통해 극적 반전을 만들어낸다. 전자에서는 박제되어 죽은 줄 알았던 사슴이 물에 잠기자 숨을 쉬고 있었다는 듯 물거품을 일으키고, 후자에서는 닫힌 상자인 줄 알았던 좌대의 바닥이 터지며 순식간에 물이 새어버린다. ● 그러나 서사가 있는 애니메이션은 손선경의 작업에서 드문 편이다. 흑백 애니메이션 작업 초기에는 백색과 흑색의 대비에 주목했던 듯하다. 가령 'Taxidermy' 2부작 이래로 「Swimming Pool」(2013), 「glass」(2014), 「Hand and Hand」(2014)에서도 백색은 고체, 흑색의 액체로 상정된다. 흑색은 수영장을 채운 물, 컵에 담긴 물, 손을 담그는 물을 지시한다. 물론 흑색은 백색의 간섭 속에서 움직임을 표시할 수 있지만 말이다. ● 흑백 탐구는 유동성을 넘어 조명에 대한 해석으로 이어진다. 백색은 빛을, 흑색은 어둠을 나타낼 테다. 그 중 「Story of Light」(2014)는 전구와 야외 풍경을 통해 인공조명과 자연광을 대비시키며, 흑백 이미지의 기호 체계가 그리 정밀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밝은 회색조 배경색이 완전한 백색이 될 때 우리는 (전구의 색상은 몰라도) 전구불이 밝혀졌다 인식할 수 있지만, 좀 더 복잡한 체계를 지닌 자연광에 관해서는 푸른 하늘이 짙어가는 지, 밤이 깊어 가는 지 분별할 수 없어서 흑백의 변화는 그저 모호한 신호만 남길 뿐이다.

손선경_Matriochka_HD 애니메이션 영상_loop_2017

이후로 작가는 '인물' 시리즈에 집중적으로 몰두한다. 십 여 개의 짧은 애니메이션에서 거의 몰개성하게 단순화된 등장인물은 간단한 동작을 반복한다. '움짤'에 가까운 다양한 이미지는 '반복'적 행위에 대한 작가의 관심에 따라 수집되거나 안무로서 고안된 것이다. 먼저, 수집된 이미지로는 (허공에서) 열 맞춰 줄넘기를 하거나 골프채나 테니스 라켓을 휘두르는 것처럼 운동하는 모습이 많다. 수집보다 안무에 가까운 건 양 손에 컵을 쥐고 물을 옮겨 따르거나, 방 안에서 물구나무 서기를 하거나, 창문 너머로 공을 던지는 이미지이다. 이 중 뒤의 두 가지는 폴란드의 애니메이션 감독 즈비뉴 립진스키(Zbigniew Rybczynski)의 「탱고」(1980)를 인용한 것으로, 단순 동작을 반복하는 등장인물의 수가 점점 늘어나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리는 방 안에서 동선과 타이밍만을 이용해 절묘하게 안무한 작업을 다소 기계적으로 해석했다. 수집과 안무 외에 좀 더 '애니메이션'적인 왜곡 혹은 상상력이 엿보이는 작업(「Matryoshka, inside matryoshka, Matryoshka」)도 있지만 예외적이다. ● 앞서 '인물' 시리즈라고 명명한 일련의 작업은 '아포리즘' 시리즈라고 바꿔 부르는 편이 더 적절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다소 건조하게 동작들을 수집하는 대신 제목에서 짧은 아포리즘 글쓰기를 선보인다. 몇 가지만 예를 들자면, 「Discipline is not a dirty word.」, 「You just do that, and keep doing that again and again and again.」, 「People like repetition. People are, in fact, pretty happy in religious rite in which the same action is repeated over and over again.」. 예외가 없지는 않지만 제목 대부분이 한두 줄의 완성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주로 '반복적 행위'에 관한 생각을 담고 있다. 한 때 파격적 글쓰기이자 철학으로서 고안되었던 아포리즘은 지식이 파편화되고 세속적으로 소비되는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깨우침을 주는 경구가 아니다. 그저 사유의 상투성을 드러낼 뿐이다.

손선경_Long Waiting_HD 애니메이션 영상_loop_2016
손선경_Tennis Girl_HD 애니메이션 영상_loop_2016

손선경이 '반복'에 대해 말하며 '상투적인 형식'을 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는 작업에 관해 설명하며 '반복'이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손선경에게 '반복'이란 사소함, 일상, 삶, 패턴과 관련되며, 이는 작업의 동기가 된다. ● "아티스트가 하루하루 반복해서 선을 긋는 반복적 제스처의 의미는 무엇인가? 왜 사람들은 일상의 반복적 삶의 패턴을 갖고 있는가? 왜 반복적 구조 안에 안도감을 갖는가? 이 삶의 반복 패턴에 숨겨진 의미는 무엇인가? 작업에서 일상적 소소한 반복은 어떻게 표현되는가? 이런 질문들이 작업 하는데 주요 동기가 된다. " (손선경의 작업 노트에서 발췌) ● 움직이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수십 장의 프레임을 '반복'해서 그려야 하는 애니메이션 장르를 채택한 이유도 '반복'하는 것에 대환 관심에서 비롯된 것일까? 삶 자체가 이미 '반복'이라고 인식한다면 애니메이터의 삶은 '반복'의 '반복'일 터이다. 그런데 '반복'에 대한 손선경의 생각은 단지 횟수에 관한 사전적 의미와 관련되지 않는다. 오히려 '반복적인 일상'에 대한 통속적 감정, 소소함과 동요 없음에서 오는 안도감에 가깝다. 즉, '소시민적 삶의 질서'야말로 작가가 천착하고 있는 주제일 것이다.

손선경_Jumpings_HD 애니메이션 영상_loop_2016
손선경_Stitch_HD 애니메이션 영상_loop_2017
손선경_Fase_HD 애니메이션 영상_loop_2016

다만, '반복'이라는 화두가 개인의 일상적 삶에 대한 서술에 그치지 않고 예술 창작과 얽히는 순간, 나는 "예술작품은 개념 없는 독특성의 자격에서 반복된다."는 들뢰즈(Gilles Deleuze)의 기대 섞인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여기서 손선경의 작업에 관해 말하기 위해 심각한 오용과 과용 탓에 미술계에서 암묵적으로 금기가 된 들뢰즈의 이름을 언급하는 위험을 감수하려 한다. 나는 '반복'의 가능한 예술적 개념과 이념을 생각해보기 위해 손선경의 작업과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대조하며 읽어보기를 제안한다. 이는, 손선경의 작업이 들뢰즈의 이념을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현대 예술에 대한 들뢰즈의 통찰과 어긋나는 지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들뢰즈의 무거운 책을 요약하는 대신 그가 자주 사용하는 축제에 대한 비유를 참고하자면 (가령 '참된 혁명은 축제의 분위기'), 반복한다는 것은 마치 축제와 같이 '다시 시작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반복하는 역설적인 것이며, 더하기가 아니라 'n승'의 셈법을 따른 '고양시키는 것'이다. '반복'에 대한 이런 사유는 초월론적 가상의 장소를 벗어나 '사유의 생식성'을 되찾는 길로 향한다. 반면 손선경의 작업에 나타나는 '반복'은 언제든 시작하고 언제든 끝낼 수 있는 것이다. 들뢰즈에게 '반복'이란 독특한 것(singularity)의 역설적인 반복이었지만, 손선경에게 '반복'은 특수하고 개별적인 것(particularity)의 무미건조한 나열처럼 보인다. 이러한 무표정성은 무엇을 지시하는가. 모든 것이 반복된다는 일반화(generalize)는 보편성(universality)에 관해 무엇을 놓치거나 무/의식적으로 무시하고 있을까. 아직은 머뭇거리는 태도로만 보인다.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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