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편화된 사랑 Fragmented Love

박지혜展 / PARKJIHYE / 朴智惠 / video.installation   2017_0901 ▶︎ 2017_0930 / 일,월요일 휴관

박지혜_Rumination / 반추 / 反芻_단채널 영상, 사운드트랙_00:06:30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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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0901_금요일_05:00pm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한국메세나협회_호텔베르누이_미디어아트플랫폼(M.A.P)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와트 ART SPACE WATT 서울 종로구 성균관로4길 21(명륜2가 96번지) 2층 gallerywatt.com

"서로 더 많이 환대적이고 그와 동시에 조금 덜 환대적이 되는 순간에, 환대적이면서 비환대적이 되는 순간에, 비 환대적인 것으로서의 환대적이 되는 순간에(동시성 없는 동시성, 불가능한 공시성의 순간, 순간 없는 순간)서로 분리된다." (자크 데리다, 『환대에 대하여』, 동문선, 2004, p. 106.)

박지혜_Rumination / 반추 / 反芻_단채널 영상, 사운드트랙_00:06:30_2017

며칠 전 1914년에 쓰여진 일본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읽었다. 여긴엔 말로 설명할 수 없고, 행동으로 보여줄 수 없는 언어가 있다. 이 책을 덮는 순간, 나도 모르게 주인공의 간략한 사건 중심으로 요약하는 나를 발견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사건 요약이 아니라, 사람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게 한다. 소설 속 정황들을 그리고 동시에 내 삶의 상황들에 대한 되새김질을 반복시킨다. 차가운 이성이 뜨거운 내면에 첨벙거리면서 허우적거리길 바란다. 이러한 행위와 시간이 도대체 왜 필요한 걸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지독하고 고독하게 자신에게만은 엄격해야 하는 순간 즉, 내면을 반추하는 시간을 왜 거듭해 가면서 시간을 보내야 할까. 때로는 실패의 실패를 반복하면서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박지혜_Fragmentation / 파편 / 破片_단채널 영상, 사운드트랙_00:06:31, loop_2017

이러한 생각의 연결 선상에서 9월 첫째 날 열리게 될 박지혜 작가의 개인전 서문쓰기를 시작한다. 이 작가를 처음 만나게 되었을 때, 사람의 심리를 영상채널로 작업하는 작가의 글을 써내려 갈 수 있을까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간 역사적 사건과 시대적 정황, 사회적 분위기, 논리로 결말을 맺어야 하는 이론 등이 전시서문의 주요 쟁점이었다. 실상 내 존재를 또 다른 존재들과 연결시키며 형언할 수 없는 심리들을 과연 언어로 옮겨낼 수 있을까에 대한 일종의 불안심리가 극심히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가 박지혜 작가의 글을 쓰게 되면 뻔 한 작품 설명 위주의 전시 서문은 피해야지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박지혜_Affection / 유정 / 有情_3채널 영상, 보이스, 사운드트랙_00:06:12_2016

발터 벤야민은 글을 쓰는 습관과 주의력에서 일찍이 머릿속으로 계산된 이론보다는 무의식으로 습득한 손의 수공예적 훈련을 더 높이 평가했다. 또한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을 맞이하는 순간 그 전날 읽었던 책의 내용이 모두 기억하고, 바깥 소음까지 떠올렸던 습관들에서 우리는 깨어있음과 꿈이 스스럼없이 연결되고 있는 시간성임을 발견한다. 아침, 낮, 밤의 획일적인 시간이 아니라 밤과 아침사이, 아침과 낮 사이 등의 시간에서 우리는 특별함을 부여한다. 즉, 밤과 아침사이와 아침과 낮 사이에서 아침, 낮, 밤이 가지고 있는 고유 속성을 깨지 않는다. 밤과 아침사이에서 우리는 평범하지 않고 그렇다고 특수하지도 않는 시간성을 발견한다. 이때 우리는 우리게 주어진 24시간 안에서 그간 의미화 하지 않았던 텅 빈 공간이 있는 시간성을 마주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 상정되어 있는 영상 속의 시간이 바로 이러한 시간대가 아닌가 싶었다.

박지혜_Affection / 유정 / 有情_3채널 영상, 보이스, 사운드트랙_00:06:12_2016

이렇게 보편도 특수도 아닌 상황과 시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때 자크 데리다의 『사막 속의 사막(Desert in desert)』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데리다의 해체는 해체를 위한 해체론이 아니다. 다양한 파편들이 전체주의로 통합되는 것에 반하는 해체이다. 따라서 하나의 파편들이 결국 전체를 이루는 하나의 요소가 아니라 하나의 전체를 이룰 수도 있다.

박지혜_Affection / 유정 / 有情_3채널 영상, 보이스, 사운드트랙_00:06:12_2016

『파편화된 사랑』에서 명명할 수 없는 것들을 명명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의미화 할 수 없는 것들을 의미화 할 수 있을까에 대한 파편적 실험이다. 영상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계를 관계 짓기를 통해 관계를 와해시키고, 사건이 촉발했을 것 같은 위기감을 통해 아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음을 동시에 전달한다. 즉, 전시에서 선보여지는 다섯 개의 파편화된 영상은 말 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영상의 내러티브 형식을 빌리되 이 형식을 파괴한다. 때문에 다섯 개의 파편들은 하나의 전체를 이루지 못한다. 또한 하나하나의 영상의 파편은 전체로 분석해 내기 불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여러 파편들은 같이 모여 있지만 이 파편 하나하나는 전체를 이루기 위한 요소가 아닌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이와 같은 파편화된 영상작업을 만나게 된다. 우리 주변에 나와 타인의 관계 맺기에 둘러싼 단순치 안은 심리와 감정 때문에 우리는 이 작업을 주시하고도 특정한 결론에 이르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특정한 결론에 이르지 못하는 이상야릇한 느낌을 계속 끈질지게 간직해야 한다. 극도의 불안감, 안도감, 불쾌감, 긴장감, 편안함 등 여러 감정의 요소들이 회오리치면서 결국 남게 되는 감정의 찌꺼기를 진득하니 반추해 보기로 하자. ■ 이은주

Vol.20170903j | 박지혜展 / PARKJIHYE / 朴智惠 / video.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