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톱의 저녁(The evening of biotope)

최경선展 / CHOIKYUNGSUN / 崔敬善 / painting   2017_0913 ▶ 2017_1002

최경선_고택사람들_캔버스에 유채_35.4×53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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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선 블로그_outframe.kr

초대일시 / 2017_0913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3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순례적공간의 더께와 빛 ● 최경선이 생명과 삶에 대한 성찰 위에서 작업을 해 온 것은 그가 화가의 소명을 자신의 삶 속으로 받아들인 그 순간부터다. 그는 생활이 엮어 놓은 여러 관계들 속에서 제 역할을 묵묵히 해내는 것만큼이나 작가의 눈으로 목격한 것을 기록하는 행위 또한 중요하게 여겨왔다. 그런 관계로 관객은 작품을 통해 작가의 일상적 풍경과 인물들, 감정의 파열과 회복, 사유와 깨달음의 흐름을 함께 한다. 그 과정에서 풍경의 형태로 옮겨온 작품은 그곳에 머물렀을 작가의 의식과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과 포개어진다. 그래서 최경선의 회화는 재현되거나 표현된 질료적 대상을 넘어 우리들 사이 사이, 세상의 틈과 틈을 이어주는 매개로서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최경선_마치저녁처럼_캔버스에 유채_72.5×90.7cm_2017

최경선의 여섯 번째 개인전 『비오톱의 저녁』의 신작들은 이전 작품들에 비해 단순해진 화면 구도가 인상적이다. 작품의 대부분은 가로로 마주한 두개 내지 세개의 색면 위로 크고 작은 얼룩이 추상적인 인상을 강조한다. 첫인상이 채 남기 전에 색면의 경계 위로 여러 인물들의 흔적과 움직임에까지 눈길이 닿으면 색 덩어리는 일순간 하늘과 대지, 숲과 강처럼 자연의 모습으로 둔갑한다. 시공간의 콜라주처럼 인물과 배경 사이에 놓인 의미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일렁이는 대기는 더욱 낮게 가라앉고 있다. 아마도 저녁이라는 시간을 암시하는 차갑고도 어두운 색감 때문일 것이다. 네이비, 블루, 그린, 바이올렛 등을 주도적으로 사용하면서 각 장면들은 지붕, 나무, 지평선처럼 현실적인 장소를 지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공간-현실의 파편들이 무작위로 조합된 누군가의 꿈-으로 해석되기 쉽다. 하지만 최경선의 회화는 꿈에 관한 것이 아니다. 모든 작업은 그가 마주했던 현실을 말하고 있다.

최경선_물고기_캔버스에 유채_52.9×45.4cm_2017

최경선의 풍경과 인물은 물리적 현실공간에서 시작하여 경험적 주체가 인식한 질서에 따라 재구성된다. 그래서 작품은 우리가 알고 있는 주변 풍경과는 매우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 「감추어진 땅(2016)」, 「수레국화(2016)」 등과 같이 작가는 비어 있는 공간을 주시하였다. 대기는 여러 색깔의 활발한 붓자국을 겹쳐 밀도 높게 처리하였으며 작품 안 인물을 감싸고 있다. 작가의 세계는 깊은 바다 속처럼 모든 존재가 연결되고 맞닿아있어 인물의 호흡과 움직임에 조응하여 공간의 구조와 형태가 달라진다. 대기는 공허하게 빈 상태가 아니라 생명과 에너지가 넘쳐 흐르는 원천으로 존재한다. 생명에 대한 관심은 이번 전시 제목 『비오톱의 저녁』에서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비오톱(biotope)을 "생명이 가득 찬 우리 삶의 영역이자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 형태의 상징"으로 설명한다. 관습적으로 풍경화는 자연의 조화와 법칙을 드러내는 구상물을 아름답게 배치하여 장르적 가치를 얻는다. 반면 최경선의 회화는 무한한 가능성과 생명을 품은 공간과 인물 사이의 생동하는 관계를 시각화 하는 실험에서 본질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최경선_비오톱의저녁_캔버스에 유채_60.5×72.7cm_2017

「물고기」 연작은 시간과 공간 사이의 흥미로운 관계를 감각적으로 포착한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어두워져 가는 하늘이 보이고 그 아래 반딧불처럼 빛나는 아이가 천진한 모습으로 홀로 앉아있다. 느슨하게 기대어 앉아 활짝 웃는 아이의 발 아래로 물결과 같은 흐름이 빠르게 지나간다. 일정한 방향을 지닌 붓질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하나의 장소 속에서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감지하게 한다. 물길처럼 흐르는 것은 지나간 시간이 누적되고 각인된 장소의 울림이다. 시간과 장소가 오버랩된 신비한 이곳에서 아이는 그저 자신의 놀이에 빠져있다. 게다가 아이는 나뭇가지가 아닌 어긋나고 겹쳐진 공간의 흐름 위에 걸터앉아 장소의 안과 밖 경계를 무색하게 만든다. 관객은 그 어떤 곳이라도 즐거운 놀이터로 만들어버리는 아이의 모습에서 공간과 합일을 이루는 자유로운 인간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최경선_수레국화_캔버스에 유채_45.3×37.2cm_2016

이번 전시는 공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외에도 시간과 기억이 투영되고 생명과 죽음이 순환하는 만유(萬有)의 근원으로 대지를 주목하고 있다. 작가의 새로운 관심을 반영하듯 신작 「마치저녁처럼」, 「로즈메리」, 「제자리」의 하단 대부분이 거칠고 광활한 대지로 채워졌다. 푸른 빛에 가까운 하늘이 지평선 위에 걸렸음에도 짙게 깔린 대지의 인상이 압도적이다. 눈 앞에 놓인 것은 어두운 풍경이다. 그렇지만 해가 떨어져 만들어낸 둔탁하고 무거운 어둠은 아니다. 작품은 여러 장의 네거티브 필름이 겹쳐진 것처럼 선명하지는 않지만 여러 형태와 흔적들이 드러났다가 이내 가라앉아 어둠 속에 스며들어 있다. 물감을 바르고, 겹치고, 묽게 흘리고, 뿌리는 과정에서 풍경은 균일하지 않은 층을 드러내고, 중첩되고 교차된 여러 겹의 막이 쌓인다. 이처럼 붓이 지나는 속도와 물감의 농도와 같은 물질적 흔적들과 같은 최경선의 독특한 마티에르는 이질적 공간의 연결고리이자 서술방식이다. 마치 고장 난 카메라에 걸린 오래된 필름처럼 여러 시간과 이질적인 공간이 한 컷에 누적되어 모호하면서도 매력적인 축적물로 드러난다. 거대한 산맥의 지층단과 같은 시간의 더께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 그도 그럴 것이 최경선의 풍경을 이루는 막과 막 사이에는 이야기가 흐른다. 작게는 작가가 목격하고 경험했던 다양한 순간들에 대한 기억이고, 크게는 그 땅 위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사람들의 이야기, 즉 역사다.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어두운 대지는 수차례의 붓질로 쌓아 나간 결과다. 그래서 모든 색을 품고 있는 듯한 풍부한 정서적 감각을 얻는다. 마치 하나의 음에 여러 다른 음이 얹혀 아름다운 화음이 되는 것처럼 작품 속 어둠의 빛은 온갖 다양한 음색과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바로 이것이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조화의 모습이다. 나와 너, 그들과 우리,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은 대지 위에서 펼쳐지는 생명의 향연이다.

최경선_자라는집_캔버스에 유채_31.6×40.7cm_2014~6

최경선의 지난 십여 년간의 작품 전개를 살펴보면 화면의 층은 더욱 깊어지고 색 또한 어두워졌다. 작가는 검은 그늘과 덩어리들 사이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빛을 찾고자 했다. 마치 죽음을 딛지않은 생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작품은 깊은 사유와 묵상에 닿아 있었다. 작가에게 어둠은 죽음과 고통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 어둠은 사멸의 지점으로서 끝이 아니라 새로움으로 연결되는 다릿돌이다. 밤이 지나야 새 빛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상실과 죽음의 두려움을 넘어서야 비로소 존재의 기쁨과 성찰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작가에게 가장 의미있는 시간은 저녁이다. 행복과 긍정의 밝은 에너지를 미덕으로 삼는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에서 최경선의 회화는 다소 생경하다. 욜로(You Only Live Once)는 오늘의 시대적 경향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강박을 여실히 드러낸다. 안타깝게도 현실의 삶은 감각적 쾌락과 욕망의 달콤한 환상으로 가득 차 있는 원더랜드가 아니다. 인간의 육체는 고통에 가장 민감하고 마음은 언제나 쉽게 상처받는다. 어두운 화면 아래로 희미하게 드러나는 여러 흔적과 형태들의 존재처럼 최경선의 회화는 심연을 향한다.

최경선_집으로가는길_캔버스에 유채_65.2×90.8cm_2016

오랜 시간 지켜 본 최경선은 순례자의 눈을 지닌 화가다. 길 위의 순례자는 항상 낮은 곳에서 진실을 찾으며 주변의 모든 존재들로부터 의미를 성찰하여 진리로 나아가는 이정표로 삼는다. 작가는 인간에 대한 관심을 그것을 둘러싼 시공간에 대한 인식으로 확대시켜, 그들 사이에 맺어진 관계적 의미를 감각의 영역에서 전달하고자 하였다. 메를로 퐁티가 대상의 지각이 일어나는 현재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과거와 미래의 이중 지평의 연속으로 설명한 것처럼, 작품 속 인물들은 공간의 다층적 표현 안에서 신체적 경험의 한계를 넘어선다. 신체의 공간과 역사의 공간은 끊임없이 교차하며 단선적 시간에 대한 판단에 혼선을 일으킨다. 비로소 인간은 유한성과 불완전성의 장벽을 벗어나 진정 자유로운 생명으로 거듭난다. 이번에 최경선 작업의 여정을 따라가보니 동양적 사고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가시적 형태를 초월하여 대상과 그 주위의 허공마저 포괄하는 공간 의식은 의경(意境)의 또 다른 표현이다. 불교의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 "법(法)은 홀로 생기지 않으니, 경(境)에 의지해서 생겨난다"는 것처럼, 우리는 삶의 풍경 속에서만 진리에 다다를 수 있다. 책 속에 박제된 이론이 아닌 실제 삶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다면, 그 깨달음은 보다 흥겹고 생기 넘치는 것이어야 한다. 이번 『비오톱의 저녁』전에서 최경선은 비로소 순례자라는 고된 무게를 내려놓고 삶이라는 순례적 공간을 산책자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걸을 준비를 마친 듯하다. ■ 김문정

Vol.20170913d | 최경선展 / CHOIKYUNGSUN / 崔敬善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