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ween flip turns

박지혜展 / PARKJIHYE / 朴智慧 / installation   2017_0907 ▶ 2017_1001

박지혜_QQQ_혼합재료_45×45×9cm_201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70629e | 박지혜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7_0907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목~일요일_11:00am~06:00pm / 월~수요일_예약 후 방문 * 예약문의_platform.outsight@gmail.com

아웃사이트 out_sight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35가길 12 (혜화동 71-17번지)1층 www.out-sight.net

실패를 (찢어)보기 ● 어떤 조직이나 공동체 내에서 매뉴얼은 권력을 가지기에 매력적이다. 어떻게 매뉴얼이 권력을 가진다는 것인가? 수많은 시행착오의 반복 끝에 '다시는 이렇게 하지 말자'는 다짐에서 나온 결과물이 매뉴얼이다. 때문에 매뉴얼은 무한 신뢰를 얻으며, 그에 의해 운영되는 방식들을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그렇기에 매뉴얼은 권력을 소유한다. 매뉴얼이 꼭 집단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인식 체계에도 고단한 인생사와 그로 인한 성장을 거쳐 만들어진 일종의 개인 매뉴얼이 있다. 타인 대하는 법, 특정 상황 대처법 등 나름 양식화된 매뉴얼이 존재한다. 이 또한 실수를 방지할 수 있는(혹은 이불 속에서 하이킥을 날리지 않기 위한) 나만의 단단한 방패가 된다. 결국, 모든 매뉴얼은 인간이 실패를 두려워한다는 증거이고, 그렇게 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우리는 알고 있다. 매뉴얼은 늘 어긋나며 꼼꼼하고 체계적인 매뉴얼일수록 오히려 행위의 제약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박지혜_(    ) 버리는 날_단채널 영상_00:06:03_2017
박지혜_(    ) 버리는 날_단채널 영상_00:06:03_2017

작년, 박지혜 작가의 작가노트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작가가 매뉴얼화 된 시스템을 혐오하며 그 안에 굴러가는 모든 것에 회의적일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성급한 짐작은 오해를 만든다. 작업에 소모되는 에너지와 시간에 비해 너무도 쉽게 끝나버리는 전시, 전시 과정에서 오는 피로감, 그리고 작품 폐기의 과정을 겪으며 이제'쓸모 있는 예술 활동'을 추구한다는 작가의 말에서 나는 노동과 미술계 구조의 문제만 읽는 실수를 한 것이다. 물론 편견은 작가와의 인터뷰 후 아주 쉽게 무너졌다. 작가가 시스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거기에 날 선 태도로 응수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안에 속한 자신을 인지하고 있다. 다만 '제약'의 지점 그리고 정교해 보이는 시스템 뒤의 허점을 찾아내고, 이를 작업에 위트 있게 반영한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그 안에 자신의 노동의 의미와 그 존재 가치에 대한 질문을 배치한다.

박지혜_Between flip turns展_아웃사이트_2017
박지혜_Between flip turns展_아웃사이트_2017

전작들에서 쓸모 있는 예술 작품이 되기 위해 매뉴얼에 따른 이른바 효율적인 방식을 작품에 적용했다면, 777레지던시에서의 개인전 『No one in charge』에서는 매뉴얼의 허점을 기성품의 공정형식에 빗대며, 화환의 타이포(「그 어느 날」(2017)), 상장의 로고(「QQQ」(2017)) 등을 통해 비효율적이지만 룰이기에 따라야 하는 시스템의 모순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번 개인전 『Between flip turns』에서는 미디어가 노출하는 획일적인 여성의 이미지(「전사의 후예」(2017)), 정해진 틀 안에서 제지당하고 감시당하는 움직임(「보호관찰」(2017)) 등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지만, 쉬이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마주하게 만든다.

박지혜_보호관찰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7
박지혜_전사의 후예_아크릴판_높이 55cm 내외_2017

전시 제목에 등장하는 플립 턴(flip turn)은 사전에 따르면 수영장 끝에 다다랐을 때 앞쪽으로 반 정도 돈 다음, 벽을 두 다리로 힘차게 밀어 다시 반대편을 향해 나아가는 턴이다. 수영선수들은 경기에서 정해진 루트를 돌 때마다 플립 턴을 꼭 해야만 한다. 초반에는 힘찼던 그 움직임이 장거리 경주에서는 체력고갈로 인해 조금씩 느려진다. 이 고통스러우면서도 지루한 반복이 언제 끝날 것인지 확인하는 것은 경기를 보는 이에게도 괴로운 일이다. 그럼에도 선수는 완주해야 하며 심지어 순위권 안에 들어야 한다. 이 움직임은 반복되는 수직적 조직문화, 목표달성이라는 이상을 위한 희생, 그리고 그것을 부추기는 사회를 충분히 떠올리게 만든다. ● 「보호관찰」은 바닥에 열심히 크레파스로 낙서하는 로봇 청소기의 어처구니없는 귀여움에 실소를 내뿜다 이내 슬퍼지는 작품이다. 키치적인 장식을 얹은 로봇청소기는 작가가 달아준 눈과 팔을 달고 바지런히 움직이지만, 실제로 눈이 없을 그들은 자신들에게 허용된 유일한 공간인 바리케이드 내 이곳저곳을 부딪치며 튕겨 나간다. 배터리가 닳아야지만 멈출 로봇의 미래는 더 이상 귀엽지 않은데, 관객은 애처롭게 그들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그들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그 끝을 기다리는 위치에 놓인다. ● 장면을 조감하여 우리가 속한 구조를 보게 만드는 또 다른 작품은 「( ) 버리는 날」(2017)이다. 이 영상은 작가가 제작 당시 모든 것을 쏟아 부었을 작품을 버리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작가 외에 누구에게도 이날은 특별하지 않다. 그저 이웃 공동체가 정한 쓰레기 버리는 날에 불과하다. 그 틀 안에서 사람들은 정해진 방식대로, 규칙적으로 움직여 자신에게 쓸모없어진 물건들을 내놓는다. 해체된 작품은 사각형의 아파트 단지와 주차장의 정돈된 구조 사이에서 무색하게 자리한다. 예술이라는 이름하에 만들어졌을 그 고단한 노동의 결과가, 체제 안에서 쓸모없는 것으로 귀결되는 씁쓸한 과정을 작가는 덤덤하게 보여주고 있다.

박지혜_그 어느날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7
박지혜_완벽하게 쓸모없는_플립시계_12×33×8.5 cm_2016

박지혜 작가가 노동을 이야기하든, 시스템을 이야기하든 그 안에는 지속가능한 방식을 찾고자 하는 작가의 간절한 바람이 있다. 그만큼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기에 쓸모 있게 사는 것을 추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실패는 그래서 더더욱 두렵다. 효율성을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작가는 관찰과 조급함의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속도의 걸음 사이에서 지속 가능한 리듬감을 찾으며 자신의 작품이 쓸모 있을 수 있는 지점을 진지하게 탐구한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완벽하게 쓸모없는」(2016)을 떠올렸다. 플립시계에 부착된'완벽한'에서 시작하여 '쓸모없는'으로 끝이 나지만 다시 '완벽한'으로 시작되는 것처럼, 작가는 부당함에 하소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웃으며 시스템의 허점을 헤집는다. 그래서 나는 박지혜 작가의 작품의 그 시니컬한 실소와 그 뒤에 남겨지는 씁쓸한 여운을 좋아한다. ● 이제 작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넘어 효율이라는 이름의 사회적 합의 혹은 그 실체를 가리고 있는 레이어들을 찬찬히 살피며 작업의 장을 넓힐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계속해서 작가의 작업은 오해를 받을 수도 있으며, 스스로를 갈아내며 작업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특유의 정교한 작품을 통해 실패라는, 외부에서 정해준 두려움을 갈기갈기 발라줄 것(!)을 기대하게 된다. ■ 김미정

Vol.20170915d | 박지혜展 / PARKJIHYE / 朴智慧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