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영, 미영, 미영

흑표범展 / Black Jaguar / drawing   2017_0916 ▶ 2017_1002

흑표범_선영, 미영, 미영_한지에 혼합재료_103×131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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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표범 홈페이지_black-jaguar.com

초대일시 / 2017_0916_토요일_06:00pm

워크숍 A / 2017_0923_토요일_06:00pm B / 2017_0930_토요일_02:00pm 사전참가신청(필수)_goo.gl/oWxkgt

후원 / 서울시_서울문화재단 2017 문래창작촌 지원사업 MEET 창작부문 선정작

관람시간 / 12:00pm~06:00pm

스페이스 XX SPACE XX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128가길 1 B1 www.facebook.com/spacexx

흑표범 개인전 『선영, 미영, 미영』이 문래동 철공장 지대에 위치한 space xx에서 9월 16일부터 10월 2일까지 열린다. 전시는 선영, 미영과 같이 평범한 이름을 가진 여성들을 고대 신화 속 괴물들의 모습으로 표현한 신작 드로잉들을 선보인다. ● 창세 여신이 삶과 죽음을 모두 관장하였던 고대 농경사회와 달리 청동기 이후 가부장제가 발전함에 따라 남신들이 등장하면서 신화 속 여신들의 입지는 점차 줄어갔다. 고대 여신의 무한한 능력을 상징하였던 뱀이나 새와 같은 동물의 이미지가 후대에는 세이렌, 히드라 등으로 변화해 여신을 열등하고 부정적인 존재로 왜곡하였다. 헤라클레스 같은 남성 영웅들에 의해 처단, 살해되는 여성적 괴물들을 우리 시대 평범한 여성들의 초상으로 다시 그리면서 가부장적 역사 속에서 덧씌워진 여성혐오의 이미지를 다시 반사한다. ● 한편 사전 신청자를 모집해 전시기간 중 비공개 꿈 워크숍을 진행한다. 참여자의 꿈(수면) 이야기를 추상 드로잉으로 투사해보며, 동시대 여성들의 무의식을 함께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진다. ■ 스페이스 XX

흑표범_수영, 수연, 선영_한지에 혼합재료_103×147cm_2017

괴물들, 물어 뜯지 않는 ● 그림과 닮은 얼굴을 한 이들이 그림 앞을 서성인다. 그러나 닮은 것은 얼굴뿐이다. 그림 속 존재들의 목 아래로는 털 달린 네 발 짐승의 몸이, 혹은 비늘이나 깃털이 돋은 몸이 이어져 있다. 짐승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므로, 때로는 여러 개의 머리와 여러 개의 꼬리를 갖고 있으므로, '괴물'이라 불리는 존재들이다. 언젠가 어디에선가는 신으로 모셔졌을 존재들, 그러나 어느 시점에 신화 속 싸움에서 패배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존재들이다. ● 저들 중에 있을 것이다. 선영과 미영과 미영이. 흔한 이름들이다. 너무 흔해서 잊어버린, 그러나 너무 흔해서 곧 다시 마주치고 마는 이름들이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이름이 있고 자신만의 삶이 있다지만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출석을 부르면 종종 두 명이 함께 대답하게 되는 이름, 누구에게나 두세 명쯤 같은 이름의 친구가 있는 이름, 그런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어쩌면 언제나 타인과 연결된 삶을 산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작가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들을 기억했다. 동년배들이 모이면 언제나 있었던 그런 이름을 가진 이들을 불러 모아 그들의 삶을 엿보고 꿈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태어났다, 이 괴물들은 말이다. 맥없이 살았던 이들에게 주어진 괴물의 몸, 지워진 괴물에게 주어진 사람의 얼굴, 서로에게 그것은 자그마한 선물이었을 것이다. 괴물들의 초상이, 여성들의 초상이 모인 이 곳에서 두 존재는 서로를 만나 새로운 존재를 얻는다.

흑표범_은경_한지에 혼합재료_144×75cm_2017

네 해 전, 그러니까 2013년에 작가는 낡은 시계들에 얼굴을 그려 넣고 있었다. 80년 5월 광주에서 총칼에 맞아 뭉개진 얼굴들, 더 이상 알아볼 수 없게 된 얼굴들의 상처를 물감이며 보석이며로 채워 넣었다. 그는 그리웠다고 했다. 면식이 없었으므로 원래의 모습을 알 수조차 없었던 얼굴들, 그 얼굴의 주인들이 그리웠다고 했다. ● 바로 전작인 '타인의 세계' 연작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같은 화풍을 가진, 마찬가지로 여성들을 그린 이 작업들을 두고 여러 해 전의, 그것도 광주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말이다. 그때부터이지 않았을까, 하고 느낀다. 작가가 사람들에게 얼굴을 선물하고자 했던 것이, 자신의 붓을 통해 그들의 잃어버린 삶을 되찾아 주고자 했던 것이 그때부터이지 않았을까, 하고 느낀다. ● 5월 광주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기렸던 'Who All Are Coming'부터 세월호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을 만났던 ― 그리고 그 기록을 자신 또한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보았던 ― 'Vega'를 거쳐, 주변의 여성들에게 잘 맞는 옷을, 아니면 아예 괴물의 몸을 선물한 '타인의 세계'와 '선영, 미영, 미영'까지, 조금씩 다른 길을 거치며 작가는 같은 곳을 향하고 있는 듯하다.

흑표범_은정_한지에 혼합재료_144×75cm_2017

그런데 이것이 좋은 선물일까? 세이렌도, 히드라도, 심지어는 구미호나 케르베로스마저도, 이미 힘을 잃은 괴물들이 아닌가. 이 오래된, 낡은 괴물-이미지들을 지금 되살리는 것에 어떤 힘이 있을까. 이미 죽은 괴물들의 몸을 입는 것이, 선영과 미영과 미영에게 어떤 힘을 줄 수 있을까. 가부장 사회의 영웅들이 이미 물리친 이 괴물들이 지금 살아 돌아 온들, 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 이 이미지들이 직접 대답할 수는 없는 문제일 것이다. 그에 대한 답은 아마도 그림 밖에, 전시장 밖에, 선영과 미영과 미영의 삶에 있을 것이다. 이들은 인간들의 ― 정확히는 남자들의 땅이 되어 버린 이 세계에서 다시 괴물이, 다시 여신이 되어 시계를 되돌리고 새 세계를 열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남긴다는 점에서 이 이미지들은 어쩌면 관객들을 위한 것은 아니다. 선영과 미영과 미영을 위한, 그리고 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눈 작가 자신을 위한, 선물들이다.

흑표범_성주, 정화, 지영, 문화, 은혜, 은정, 수연, 지현, 민선_한지에 혼합재료_260×400cm_2017

사람 얼굴에 짐승의 몸을 한 이 이미지들은 그러니까, 어떤 암호 같은 것이다. 작가와 선영과 미영과 미영이 어디선가 마주했다는, 털 속, 비늘 속, 제 속을 내어 보이고 친구가 되기로 했다는, 그리하여 괴물 같은 제 몸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기로 했다는 ― 죽어도 죽지 않은, 죽여도 죽지 않는 존재가 되기로 했다는 약속을 몰래 알려주는 그런 암호 말이다. ● 이 비밀스런 약속에 관객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작은 통로가 있다. 전시장에 걸린 그림들 사이로 난 작은 문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금색 술이 둘러진 방, 이 방에서는 작가와 선영과 미영과 미영이 만나 나눈 꿈 이야기들이 나직이 울려 퍼진다. 괴물 이미지들에 직접적으로 영감을 준 듯한 괴물이 나온 꿈 이야기에서부터 조금은 더 일상적인 이야기까지, 선영과 미영과 미영이 어떤 꿈들로 어떤 삶을 소화하며 꾸려가는지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흑표범_Hidden Figures_단채널 영상_00:19:10, loop_2017

이십 분쯤 앉아 영상을 다 보고 나오면, 그제야 보이는 어떤 것들이 있다. 암호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북실한 털, 단단한 비늘, 변함 없는 짐승의 몸들 위로 이제야 달리 보이는 것은 얼굴들의 표정이다. 뒤늦게 깨닫는다. 그들은 괴물의 표정을 하고 있지 않음을, 무언가를 집어 삼키려는, 물어 뜯으려는, 하다 못해 불이라도 뿜어 보려는 표정을 하고 있지 않음을 말이다. ● 배 한 척을 금방이라도 침몰시킬 듯 둘러싸고서도 그들은 악에 받친 표정을 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히 어딘가를 바라보거나, 숫제 씩 웃고 있을 뿐이다. 기껏 선물 받은 괴물의 몸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들은 온화하다. 칼에는 칼로, 불에는 불로 맞서리라는 투지가 담긴 표정이 아니다. 이것이 두 번째 암호쯤 될 것이다. 그들의 방식으로 맞싸우는 것이 아니라, 나의 방식으로 살아가리라는, 그럼으로써 이겨내리라는 약속을 담은 두 번째 암호 말이다.

흑표범_선영, 미영, 미영展_스페이스 XX_2017

그림 속 얼굴들을 닮지 않은, 내가 전시장을 서성거린다. 그림 속에 있는 것은 강해 보이는, 그러나 나를 공격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괴물들이다. 아니, 내게 아예 관심이 없어 보이는 괴물들이다. 그런 괴물들이 모인 이 전시장에서 나는 무엇일까? 관객? 내게 자신을 보아달라고 말하지 않는 저 괴물들 앞에서, 내가 관객일 수 있을까? 오히려 쓸모 없는 불청객이지는 않은가. ● 내 곁을 지나며 서성이고 있을 선영과 미영과 미영, 그들일 것이다. 그림 속 괴물들이 기다리고 있는 이들은, 그림 속 괴물들이 마주 보고자 하는 이들은, 그리고 그림 속 괴물들을 마주 보고자 하는 이들은, 바로 그들일 것이다. 그림의 주인공인 그들이야말로 이 전시의 적절한 관객일지도 모른다. 전시가 열리기도 전에 이미 자신을 그린 이미지들을 모두 보았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인터넷을 통해 이 이미지들을 선영, 미영, 미영과 먼저 공유했다.) ● 물어 뜯지 않는 괴물들, 집어 삼키지 않는 괴물들, 그러나 고대의 전설로부터 살아 돌아와 색색의 비늘과 털로 자신의 존재를 뽐내는 괴물들을 생각한다. 오직 선영과 미영과 미영에게 주어진 선물들을 생각한다. 당신의 이름에도 이들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면, 당신의 삶에, 당신의 꿈에 이들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면, 어쩌면 당신도 기쁘게 받아 안을 수 있을까, 이 선물들을. 이 괴물들을. ● "글쓴이 안팎은 대학에서 미학을 공부하고 있다. 연구자, 혹은 페미니스트 활동가로서 예술 혹은 정치에 관한 글들을 쓰며 살고 있다." ■ 안팎

흑표범_선영, 미영, 미영展_스페이스 XX_2017

이번 전시 『선영, 미영, 미영』은 선영, 미영과 같이 평범한 이름을 가진 여성들을 고대 신화 속 괴물로 표현한 드로잉들과 그녀들의 꿈(수면) 이야기를 수집한 영상을 선보인다. ● 그림 속 등장하는 괴물들은 뱀, 새 등이 여성과 결합한 형상인데, 『사라진 여신들의 역사, 위대한 어머니 여신 /장영란 /살림』이라는 책을 보면 본래 이 동물들은 고대 창세 여신의 무한한 능력을 상징하는 귀한 존재들이었다고 한다. 물과 출산이 중요했던 고대 농경사회에서 뱀과 새는 각기 땅과 하늘의 물을 상징했다. 하지만 수렵과 유목생활로 변화하고, 철을 다루게 되면서 여신의 입지는 줄어갔고, 남신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뱀과 새는 히드라, 세이렌 같은 악마적 이미지로 변형되어 동서양 곳곳에서 헤라클레스 같은 남성 영웅들에 의해 처단, 살해당하는 패턴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재생산 되어왔다.

흑표범_선영, 미영, 미영展_스페이스 XX_2017

선영이나 미영 같은 이름은 나의 세대에게 익숙하다. 나는 이들과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녔으며 그들은 내 언니나 동생 혹은 친구들이었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그러한 이름을 가진 여성들을 SNS에서 모집하였고, 꼭 그런 이름이 아니더라도 이 프로젝트에 흥미를 가지고 참여하고 싶어 하는 여성들을 포함시켰다. 일단 확정이 되면 그리기 적당한 이미지를 찾기 위해, 그녀들의 페이스북 사진첩을 뒤지는데 이 과정에서 좋아하는 음식, 자주 가는 장소, 함께 있는 사람 등 그들의 삶을 엿보게 된다. 또 이들 중 다섯 명은 작업실이나 단골 카페 등 그녀들에게 편안한 장소에서 직접 만나 꿈 이야기를 들었다. 기억나는 꿈 중에 여성으로서의 기억이 담긴 꿈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나의 요청에 그녀들은 어머니, 초경, 동성 친구들, 따돌림, 쫓아오는 남자들, 범선을 파괴하는 이무기가 등장하는 생생한 무의식을 들려주었다. 나는 그 이야기들에 모두 공감할 수 있었고 그 이야기들이 서로 기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지난 몇 달 간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다른 여성의 사진첩을 들여다보고, 그의 삶의 반경에 방문하고, 꿈 이야기를 나누며 그림으로 그려내는 일련의 과정은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과정이었고, 어릴 적 친구를 사귀었던 과정과도 비슷했던 것 같다. 평범한 이름을 가진 여자들이 들려주었던 꿈속은 고통스럽고, 무서웠지만 꿈속에서 그녀들의 내적 자아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괴물 이무기의 수하들로 좀비같이 달려드는 병사들을 향해 돌을 던질 때, 선영은 "무서워서 벌벌 떠는 게 아니라 생각보다 무섭지 않고, 요 정도면 내가 해볼 만하겠다. 우리가 물리칠 수도 있겠다." 그런 마음이었다고 했다.

흑표범_선영, 미영, 미영展_스페이스 XX_2017

완성한 그림을 메신저로 보내주면 그녀들은 즐거워하였고, 개중에는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으로 지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머리가 셋 달린 케르베로스나 하체가 뱀인 괴물로 그려진 자신들의 모습에서 그녀들은 어떤 통쾌함을 느꼈다고 했다. 나 역시 작업 과정 속에서 쾌를 느꼈다. 어릴 적 잽싸게 "반사!"라고 외치면 상대가 나를 때리지 못하거나, 나를 때린 만큼의 배수로 되맞는 게임이 있었다. 나는 어릴 때 놀던 식으로 오래된 혐오를 비틀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선영의 말대로 어쩌면 물리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무서워서 벌벌 떠는 게 아니라 해볼 만하다는 호기로 즐겁게 그렸다. 그리고 이제 내가 만난 그녀들의 용기와 우정을 세상에 힘껏 반사하려 한다. ■ 흑표범

꿈 워크숍 Dream workshop * 사전 신청 필수 동시대 여성들의 무의식을 함께 이야기해보는 꿈투사 워크숍입니다. 사전 신청자에 한해 소규모로 구성된 비공개 워크숍으로, 워크숍A 프로그램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워크숍B 프로그램은 드로잉을 중심으로 꿈투사를 진행합니다. - 꿈 워크숍A: 9월 23일 18:00 – 21:00 - 꿈 워크숍B: 9월 30일 14:00 – 17:00 - 신청링크: goo.gl/oWxk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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