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 Parallax

이경미展 / LEEKYOUNGMI / 李慶美 / painting.installation   2017_0914 ▶︎ 2017_1020

이경미_Other Planes of the Moon_자작 나무 패널에 유채_55×55×7cm×4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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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미 홈페이지_http://www.leekyoungmi.com

초대일시 / 2017_0914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 토요일_10:00am~05: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플래닛 GALLERY PLANET 서울 강남구 논현로175길 93(신사동 531번지) 웅암빌딩 2층 Tel. +82.(0)2.540.4853 www.galleryplanet.co.kr

인류학적 그리기- 이경미의 '우주' 속에서 ● 우주는 인간을 매료시킨다. 인간은 늘 우주를 동경해왔다. 어느 연대기를 살았는지, 어느 위도와 경도에 거주했는지, 어떤 문화적 환경을 영위했는지에 관계없이 인간은 우주를 꿈꾸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고정되어 있다고 믿었던 시대에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이루어진 후에도, 달에 첫 발을 내딛었던 1969년 7월 20일에도, 행성과 소행성에 탐사선을 너끈히 착륙시키는 지금까지도…… 인간이 우주를 바라보고, 그것을 해독하는 정도에 따라 한 시대가 마감되고, 다음 시대가 열렸다. 우주는 그 자체로 담론을 생산한다. 인간의 구술성은 우주에서 나온다. 이것은 우주의 이야기다. ● 오래 전 지구에 뿌려졌으나 어머니의 부재와 아버지의 죽음을 치렀던 작가의 연대기를 돌아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해에 태어난 고양이 '나나'를 작가는 필사적으로 지켰다. 사라짐 혹은 상실을 일찍 배워버린 작가는 무의식의 풍경으로 유년시절을 기억한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이곳'과 아버지가 고꾸라진 세상의 '저곳'을 한 화면에 포개었다. 어머니라는 상상계와 아버지라는 상징계, 현실의 공간과 비현실의 이상향. 작가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편집증적으로 채웠다. 저부조 형식의 입체 구조물을 지탱하는 사실적인 아름다움은 형식을 완성시켰고, 무의식을 상징하는 물[水]이 현실을 지우는 풍경은 내용을 완결 지었다. 누가 그랬던가. 좋은 결과물은 지독한 연애소설과 엄격한 과학이 위태롭게 결합할 때 나온다고. 자아를 있는 그대로 대면하되 스스로 지시하는 세계를 편집증적으로 구현하는 이경미의 그림이 그러하다. 자신의 삶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과거의 삶이 남겨준 재료들을 재배치하여 지금-여기를 돌아보게 만드는 그림. 한편에는 완벽한 '코즈모폴리턴'의 태도로, 다른 한편에는 '미개인'의 감각으로 그리는 그림. 이것은 이경미라는 개인의 이야기다.

이경미_Solitude_Journey to Nowhere_자작 나무 패널에 유채_40×30×6cm×3_2017

이경미는 우주라는 특정한 세계에 작가의 특정한 정체성을 쏘아 올린다. 작가는 큐브 모양의 나무 패널 8면에 대기권과 지각을 결합한 우주를 그리는 작업으로 귀환했다. 8개의 화면은 인간의 운명을 지탱하는 연월일시(年月日時)라는 네 가지 기둥[四柱]을 간지(干支)로 정리한 팔자(八字)를 떠올리게 한다. 캘리포니아 주 마운틴 뷰에 위치한 구글플렉스에 걸려 있는 지도 화면 「리퀴드 갤럭시」도 8개의 스크린으로 구성되었다니 묘한 생각이 든다. 우주를 바라보는 일이 '천문'이라는 시간과 '풍수'라는 공간을 생각하는 일임을 확인하게 된다. 우주를 정밀하게 파헤치는 서쪽의 과학과 천지인(天地人)을 숭상하는 동쪽의 뿌리는 결국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주를 통해 인간을 알겠다는 것이고, 우주와 인간 세계의 기본 요소이자 변화의 동인을 살피겠다는 것이다. 때마침 세상은 하늘의 이치[天文]를 인간의 운명의 이치[人文]로 전환하는 데 관심을 보인다. 모두가 불안한 까닭이다. ● 오래전, 부모와의 인연의 끈이 떨어져버린 작가는 지도를 몸에 지니지 않은 채 지구를 떠돌았다. 대신 그는 우주라는 '테라 인코그니타'(Terra Incognita, 미지의 땅)로 인도하는 그림을 지도로 삼았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지도를 통해 이곳에서 저곳으로 나아갔다. 지도를 그리기 위해 하늘의 달과 별을 올려다보았다. 2세기경, 프롤레마이오스가 지도의 위쪽을 북극으로 잡기 위해 바라보았던 것은 밤하늘에서 유일하게 꼼짝하지 않는 별(북극성)이었다. 불안한 호기심으로 지도를 품고 지구를 떠돌던 인간을 우주는 그렇게 지켜주었다. 부모와의 기억을 소거당한 채 문명을 유목하던 작가를 미술은 그렇게 지켜주었다.

이경미_Solar System at the moment_자작 나무 패널에 유채_55×55×7cm×9_2016

시대는 달라졌다. 우리는 스마트폰의 지도 애플리케이션에 의존해 일상을 구성한다. 지도의 기능도 달라졌다. 과거의 지도가 이곳과 저곳의 공간의 감각을 일깨워주었다면 이제는 나의 현재 위치를 확인시켜주는 준거점이 되었다. 우주를 올려다보고 지도를 그리며 세상의 드넓음에 전율했던 인간은 자신만의 지도를 보유한 세상의 배꼽이 되었다. 세상의 시작과 끝을 유추하는 것보다 나의 현재 위치가 중요한 시대, 나의 몸이 도달하지 않은 장소를 SNS의 풍경으로 소유하는 시대, 전 세계 지도와 건물 안팎을 즉각적으로, 실시간으로 스마트폰에 쏙 들어가게 만드는 시대. 이런 시대에 이경미는 우주를 그린다. 구글 맵스라는 이름으로 사진을 찍고, 이미지를 컴퓨터에 입력한 뒤, 거리 차원과 위성 차원에서 볼 수 있도록 렌더링하고 그 화상을 화소로 나눈 응용과학의 시대에 '고작' 그림을 그린다. 무슨 상관이랴. 중요한 건 '태도'가 아니던가. 당연히 이경미의 그림은 거대 기술기업의 테크놀로지와 다르다. 더 인간적이고, 더 감정적이다. 그래서 전시 제목이 '시차'(parallax)다. 별과의 거리를 측정할 때 사용하는 비약이 심한 관측법을 내걸었다. 전시장 바닥에는 볍씨를 깔고, 서너 개의 망원경을 설치했다. 철저히 작가의 시선으로 세계를 관측하고, 알고 싶다는 욕망의 시스템을 구현했다. 생각해보면 우주는 늘 지구보다 과잉이거나 결핍으로 존재했다. 우주를 몸으로 겪을 수 없어서 인간은 지나치게 우주를 상상했고 그만큼 무력했다. 그 시차는 극복할 수 없었다. 시차와 비약. 그것이 예술의 힘이다. 오래전, 기술이 예술로 전환하게 된 결정적 조건은 그것이었다. 시인이 '다른 말들을 찾아 헤매는'(신형철) 존재가 되었을 때, 그리는 자가 '다른 이미지들'을 찾아 헤맸을 때 예술은 기술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이경미_시차 Parallax展_갤러리 플래닛_2017

사실 세상에 다른 말과 다른 이미지는 없다. 다르게 보일 뿐이고, 다르게 쓰일 뿐이다. 그 다름은 대부분 세상에서 쓸모없다고 버려지는 데서 나온다. 위성 항법 장치가 제공하는 경로 계획보다, 실시간 교통 정보보다, 스마트폰에서 구글 맵스를 사용하여 좌표를 설정하는 애플리케이션보다 쓰임새가 부족한 붓과 물감을 어떤 이는 유용하게 탈바꿈시킨다. 기술은 눈앞의 삶을 분석적으로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그리는 자는 자신이 받은 예술적 인상을 그리는 데 집중한다. 그리하여 관객이 자신을 보게 만든다. 우주를 통해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이경미의 능력은 정확한 시선이나 개념의 정밀성과는 관련이 없다. 그보다는 그가 실제로 겪었던 서로 다른 생활 세계의 경이로움을 믿으라고 권면한다. 지구의 시공간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작가의 기운(氣運)이 느껴지고, 현실의 한 부분을 잘라내어 분투한다고 달라질 게 없다는 무위(無爲)가 전해진다. 그 깨달음의 순간에 '나'라는 존재는 흐릿해진다. 미술을 하는 자에게 자아는 거기까지로 족하다. 프로페셔널 아티스트는 나를 딛고 일어나 세계를 그린다. 아마추어는 자아에 빠져 제자리에서 동동거린다. 그러니 무엇이 그려졌는지를 보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그리는 자가 고민한 세계를 보아야 한다. 그리는 자를 추동케 하는 충동을 느껴야 한다. 그 미술 '이전'의 마음을 직시할 때 미술은 새롭게 보인다. 작가의 삶 뒤에서 일어난 경이로움을 관객이 이해하는 지점에서 예술은 격발한다. 우리는 이경미의 우주 앞에서 지구를, 행성을, 그리고 푸른 우주를 상상하게 되었다. 세상의 극점을 떠올리고, 이름 없는 장소를 꿈꾸게 되었다. '이곳에 있기'와 '그곳에 있기'를 이미지로 연결하는 이경미의 작업이 머무는 동안 전시장은 우주와 지구 사이의 공동구역이 된다.

이경미_Utopia on the Periphery_Planet_자작 나무 패널에 유채, 현미, 삼각대, 망원경_가변설치_2017

사실, 그리는 자가 무엇을 그리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는 자에게 중요한 것은 미술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다. 지금 그리고 있다는 것, 아직도 그리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일상이 어떻게 흘러가든지, 설령 꼬깃꼬깃 구겨지는 순간에도 미술과 대면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그것이 그리는 자의 의무다. 그렇기에 그리는 자는 아무거나 그려서는 안 된다. '막' 그린다는 것은 형식의 반복을 견디고, 그리는 행위를 일상과 맞바꾸고, 도저히 그려지지 않는 고비를 극복하고, 더는 그릴 것이 없다고 자복하는 자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본능 같은 그림이다. 이경미의 그림이 그러하다. 편집증과 도착증을 강렬히 오가는 그림의 기세는 화가의 본능이 주도했음을 일깨운다. 작가는 실제로 있는 곳과 상상으로 만들어낸 곳을 자신의 힘으로 하나의 세계로 종결시킨다. 그의 그림 속에서 우리의 일상은 낯선 세계가 되고, 낯선 세계는 일상이 된다. 그 교차점에서 자아는 타자로 연결되고, 나의 기억은 공통된 기억으로 승화된다. 세상이 달라졌다. 미술도 달라지고 있다. 그러나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여전히 남아 있다. 도도한 기술의 시대에 그리는 자가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그림, 우리에게 그리는 자의 문제의식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우는 그림, 기술의 텍스트가 보유하지 못한 예술적 문맥을 품은 그림 앞에서 우리는 인간임을 느낀다. 미술은 다층적 해석을 유도하는 인류학적 그리기가 되어야 한다. ■ 윤동희

이경미_The Planet_Dive to the Core_자작 나무 큐브에 유채_72×28cm_2017_부분

Antoropological drawing-In the "universe" of Lee Kyoung-mi ● The universe fascinates humankind. Humans have always yearned for the cosmos and dreamed of the universe, irrespective of when they lived in the timeline of history, at which latitude or longitude they inhabited and under which cultural circumstances they led a life. Even in the times of which the earth was believed to be fixed in the center of the universe, even after the Copernican change was made, even when the humanity landed on the moon for the first time on July 20 of 1969 and even today space probes are easily landed on the planets and asteroids… One period ended and a new period opened according to the degree of how humans look at the universe and how we decipher it. The universe itself produces discourses. The human orality stems from the universe. This is a story about the universe. ● The artist "was scattered" on earth long time ago, but went through the absence of her mother and the death of her father. We will reflect on her chronicle. Artist Lee kyoung-mi desperately defended her cat "Nana" that was born in the same year in which her father passed away. Artist Lee learned the lesson of disappearance or loss too early in life and remembers her childhood with the unconscious landscape. She overlapped "this side" where she misses her mother and "other side" where her father has gone. The imagination world called "mother", the symbolic world called "father" and the utopia between the reality and unreality, the "gap" between consciousness and unconsciousness… she filled all these spaces with paranoia. The realistic beauty supporting the stereoscopic sculpture in low relief completed the form, while the landscape of which water symbolizing unconsciousness erases the reality completed the content. You might have heard of this: A good result comes out when an incurable love story is precariously combined with the stern science. This can be applied to the paintings of Lee kyoung-mi, who realizes the self-indicating world with paranoia, while facing her ego as it is. Beyond the mere delivery of her life to us, her paintings relocate the materials left by the past life and lead us to reflect on "here and now." On one hand, her paintings present perfect "cosmopolitan" attitude, and on the other hand, they are painted with the "barbarian" sense. This is a private story of Lee kyoung-mi. ● Lee kyoung-mi launches her particular identity into the particular world called "the universe." The artist returned with the work of drawing the universe, in which the atmosphere is combined with the earth surface on the eight sides of the cube-shaped wooden panels. The eight screens remind us of destiny with eight letters of which the four pillars of "year, month, day and hour" supporting the human destiny are arranged by the Sexagenary Cycle. It is curious to know that "Liquid Galaxy", the map screen hung in Googleplex located at Mountain View of California, is also composed of eight screens. We can confirm that looking at the universe is the task of thinking of the time of "astronomy" and the space of "Feng shui (geomancy)." We come to realize that the science of the West investigating the universe with accuracy ultimately coincides with the roots of the East revering "Heaven-Earth-Humans." It is to understand humans through the universe and explore the basic elements and the agent of changes of the universe and the human world. Precisely, the world shows interests in transforming the reason of the heaven (astronomy) into the reason of human destiny (humanity). It is because everyone is uneasy. ● Long time ago, when the tie of karma with her parents was disconnected, she has been wandering about the earth, without carrying any map with her. Instead, she picked up a drawing as a map guiding her to the universe, "Terra incognita (the unknown land)." From ancient to modern times, humans have been moving forward different directions accompanied by the map. To draw the map, we looked up at the moon and the stars of the sky. In the 2nd century, what Ptolemy was observing in the night sky to set the upper part of the map as the north was the Pole Star which was the only motionless star. This way, the universe was patient enough to keep humans, who were wandering about the earth carrying the map with anxious curiosity. Art kept the artist Lee, who has been leading a nomadic life around the border of the civilization accompanied by the erased memory with her parents. ● Times have changed. Now we frame our daily lives by depending on the map application of Smartphones. The function of the map also changed. While the map of the past aroused the spatial sense to indicate directions, today's map serves as a reference point confirming my current position. Humans, who used to be thrilled about the vastness of the world while looking up at the universe, now became the navel of the world owning the map of their own. We are living in the era of which my current position is more important than conjecturing the start and the end of the world. We are living in the era of possessing the unreached places with the sceneries of social media. We are living in the era of which we simply insert the world map and inside and outside the building in Smartphones on the immediate and real-time basis. In such an era, Lee kyoung-mi paints the universe. In the era of applied science of which people take pictures under the name of Google Maps, input the image in computer, practice rendering and split the images into pixel to allow the view from the level of distance and that of satellite, what Lee kyoung-mi does is "nothing but" painting pictures. It is not a big deal. What really matters is the "attitude." Without doubt, her paintings are different from the technology of huge technology enterprises. Her paintings are more human and more emotional. For this reason, the exhibition is titled "Parallax." She puts up the observation method with strong incoherence used for measuring the distance from stars. On the floor of the exhibition hall, she spread rice seeds and installed a few telescopes. She realized the system of the desire for observing the world and knowing the world thoroughly from the perspective of her own. Come to think of it, the universe has more superfluity or deficiency than the earth and the universe has been always this way. Since it was impossible to experience the universe with our own body, we have excessively imagined the universe and we have been helpless to that extent. It was not possible to overcome the parallax. Parallax and incoherence… that is the power of art. It was the decisive condition that made technology or techniques transform into art. When a poet became a soul "roaming around looking for other words" (quotes from Shin Hyung-cheol), and when a painter wanders about seeking "other images", art broke loose from technology. ● In effect, there are other words or other images in the world. They just look different and used in a different way. The difference in most cases is produced by being abandoned for its uselessness in the world. She metamorphoses the brushes and watercolors into something useful. Such objects lack usefulness in comparison with the path planning provided by GPS, real-time transport information and application of establishment of coordinates based on Google Maps on Smartphones. Technology concentrates on describing immediate life in the analytical way. The artists focus on drawing the artistic impression he or she received. This way, they make the audience look at them. The ability of Lee kyoung-mi leading us to reflect on our lives through the universe is irrelevant to the exact gaze or the conceptual precision. Instead, she encourages us to believe the wonder of the heterogeneous life she had experienced for real. We can sense her energy showing her dissatisfaction of the time and space of the earth, and we can perceive her "inaction" vision in the sense that striving for a severed fragment of reality will not bring any change. At the moment of awakening, "my" existence becomes dim. For the ones who carry out art, the ego can be sufficient up to that point. Professional artists draw the world, by surmounting "me." On the contrary, amateurs fall into narcissism and stay stagnant in the same place without progress. It is not enough to look at what is painted. We need to look at the world about which the artist has concerned. We need to feel impulse enough to stimulate the artist. When we look straight at the heart "prior to" the art, art looks new. At the moment of which the audience understands the wonder occurred behind the artist's life, the outburst of art is made. In front of the universe of Lee kyoung-mi, we were able to imagine the earth, the planets and the green universe. We thought of the apex of the world and dreamed of nameless places. As far as her works connecting "being here" and "being there" with images stay, the exhibition hall becomes a joint area between the universe and the earth. ● Actually, what the artist draws or paints is not very important. What matters is that the artist needs to prove that art is inevitable. What matters is that the artist confesses that he or she is still painting and is in the process of painting. What matters is to have the will to face art regardless of the situation of one's daily life including the most frustrating moment. That is the obligation of an artist. For this reason, the artist must not draw any object at random. The act of "blind" and "random" drawing is only possible for an artist who endures the repetition of forms, exchanges the act of drawing with his or her daily life, overcomes the critical moment of inability of drawing and confesses that there is nothing more to draw. It is equivalent to instinctive drawing. This is the case of drawings of Lee kyoung-mi. The vigor of her paintings which are intensely crossing between paranoia and perversion gives a clue as to how this was led by her instinct. With her own power, the artist completes the real place and the place created by her imagination as one world. In her paintings, our daily lives turn into an unfamiliar world and the unfamiliar world becomes our daily lives. At the intersection, the ego is connected to "other" and my memory is sublimated into a common one shared with "other". The world has changed. So has art. But there is still something left that is not supposed to change. We feel that we are humans, in front of the paintings proving that the artist is alive with vivacity in the era of haughty technology, the drawings awakening the importance of critical mind of the artist and the paintings embracing the artistic context which is beyond the capacity of the text of technology. Art is supposed to be an anthropological drawing inducing us into the multifarious interpretations. ■ Yun Dong-hee

Vol.20170917c | 이경미展 / LEEKYOUNGMI / 李慶美 / painting.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