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유진경 臥遊眞景: 끝없는 산과 강 그 사이에 노닐다

윤영경展 / YOUNYOUNGKYOUNG / 尹英京 / painting   2017_0915 ▶ 2017_0926 / 월요일 휴관

윤영경_강산무진 2017_종이에 먹_213×148cm×6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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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금호미술관 KUMHO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삼청로 18(사간동 78번지) Tel. +82.(0)2.720.5114 www.kumhomuseum.com

윤영경의 『와유진경』展을 맞이하며 ● 사랑하면 사생한다. 우리 산천에 대한 사랑으로 산 정상에 올라 눈 길 닿는 끝까지 사생하였다. 저 먼 곳까지 가슴에 담아 화폭으로 옮겼다. 화폭에 담은 산천은 모두 화가가 살던 곳이었다. 화가가 10여년 사생한 산수는 옛 살던 시간과 공간이 담긴 기억 저장소가 되었다. 이 기억 저장소가 하얀 종이 위에 검은 먹으로 줄줄이 꽃피었다. ● 윤영경의 「강산무진 2017」은 세로 210cm, 가로 150cm 되는 종이 30장을 이어 총 길이 45m에 달하는 장대한 수묵진경산수이다. 전시에서는 5-6장씩 끊어서 모두 23장을 선보인다. 전통시절 가로로 긴 두루마리 산수는 세로가 1m가 안되었고 가로는 10m를 넘는 것이 없었는데 윤영경은 이를 가뿐히 뛰어 넘었다. 윤영경은 가로로 긴 두루마리와 진경산수, 두 전통을 같이 살려냈다. 지금은 희미해진 전통산수 형식과 내용에 새 생명을 불어 넣은 것이다. 덕분에 우리시대의 '신 진경산수'가 가능하게 되었다.

윤영경_강산무진 2017_종이에 먹_213×600cm_2017
윤영경_강산무진 2017_종이에 먹_213×600cm_2017_부분

가로로 긴 두루마리 산수의 전통은 깊고도 멀다. 겸재 정선은 금강산 입구부터 내금강 마지막인 비로봉까지 긴 두루마리에 담아 몇 날 며칠의 여정을 한 폭에 담았었다. 두루마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시선을 옮기면서 겸재가 걸었던 그 길을 따라 걷는 것처럼 윤영경의 작품을 따라 가다보면 고성 동해바다에서 시작한 여정이 통영 남해바다를 거쳐 어느덧 경기 과천 관악산 자락까지 이어진다. 이것이야 말로 방안에 있으면서 참 경치를 유람한다는 와유진경(臥遊眞景)이 아니런가. ● 고성에서 통영으로 다시 과천으로 산맥은 흐른다. 진경산수가 이상산수가 되었다가 다시 진경으로 이어진다. 진경과 이상산수는 실경인 듯 실경아닌듯 자연스럽게 흐른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을 그림 전체에 적용하여 하늘에서 날며 산과 물을 굽어보는 이 경험이야말로 드론을 이용한 버추얼 리얼리티인 것이다.

윤영경_강산무진 2017_종이에 먹_187×150cm×5_2017
윤영경_강산무진 2017_종이에 먹_187×150cm×5_2017_부분
윤영경_강산무진 2017_종이에 먹_187×150cm×5_2017_부분

윤영경은 새로운 준법(皴法)을 창안하였다. 겸재가 서릿발 같은 금강산 화강암 덩어리를 표현하기 위해 세로선을 여러 번 그어 내려 새로 만든 붓질을 겸재준이라 부르는 것처럼 윤영경이 꿈틀거리는 산맥을 묘사하기 위해 새로 만든 검은 칠과 흰 바탕을 윤영경준이라 부를 수 있다. 결국 화가의 창의성이란 주변을 사생하는데 가장 적합한 방법을 새로 만드는데 있다. ● 겸재가 바위산은 선으로, 흙산은 점으로 하여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냈다면 윤영경은 흙산의 흐름을 위주로 하였기 때문에 흙산 안에서 먹칠로 양의 기운을, 여백으로 음의 기운을 표현하였다. 새로운 준법의 탄생이라고 이를 만 하다.

윤영경_강산무진 2017_종이에 먹_203×150cm×5_2017
윤영경_강산무진 2017_종이에 먹_203×150cm×5_2017_부분
윤영경_강산무진 2017_종이에 먹_203×150cm×5_2017_부분

촘촘하게 짙은 먹은 산맥의 튀어나온 부분이고 비워 둔 흰 종이는 산맥의 들어간 부분일테니 흑백은 땅의 솟음과 가라앉음이다. 윤영경은 무수한 능선과 골짜기를 마치 조물주가 손으로 차근차근 빚은 듯 정성 들여 선 긋고 칠하고 비웠다. 더군다나 먹색마저 짙어서 그림 속 산들은 천년만년 버틸 것처럼 굳세고 활기차다. 저 단단한 기운은 땅속을 흐르는 화강암 기운일 것이며 저 윤기 있는 빛깔은 푸른 나무들의 싱싱함일 것이다. ● 먹빛 하나로 이어진 저 산맥은 기의 덩어리이다. 저 덩어리는 살아 꿈틀거린다. 이 땅의 기운이 살아서 벋어 나간 모습을 이보다 대담하게 그린 화가는 없었다. ● 살던 곳의 기억이 아름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윤영경의 기억은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새삼 일깨워주는데 그 의미가 있다. 그러고 보니 산이 대부분인 이 땅에서 산수는 무궁무진한 사생의 소재가 된다. 하지만 아무리 많아도 사랑하지 않으면 그리지 않는 법이다. 조선선비가 겸재 정선의 산수를 보고 이 땅을 사랑하였듯이 우리들은 윤영경의 산수를 보고 금수강산이 아름다운 땅이라는 것을 제대로 깨닫는다.

윤영경_강산무진 2017_종이에 먹_2017_부분

율곡 이이선생은 말하길 문장은 배워서 능할 수 없으나 기운은 길러서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기운을 기르는 방법은 산수와 벗하는 것이 최상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언제나 산수와 벗하기는 쉽지 않다. 이때 윤영경이 그린 호방장쾌한 산수는 기운을 북돋는데 있어 진짜 산수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 동양화의 색인 수묵, 동양화의 줄기인 산수, 산수의 꽃인 진경, 이 셋이 가득한 윤영경의 대작 「강산무진 2017」은 동양화의 정통을 찾아 맛보길 원하는 그림애호가들에게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와 같은 기쁨이 될 것이다. ■ 탁현규

Vol.20170917i | 윤영경展 / YOUNYOUNGKYOUNG / 尹英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