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주.ZIP-수직풍경 Handwoven Landscape 手織風景

최덕주展 / CHOIDUKJOO / 崔德珠 / craft   2017_0919 ▶ 2017_1019 / 일,공휴일 휴관

초대일시 / 2017_0919_화요일_05:00pm

주최,주관 / 파라다이스 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파라다이스 집 Paradise ZIP 서울 중구 동호로 268-8 Tel. +82.(0)2.2278.9856 www.p-zip.org

미(美)와 용(用), 그리고 수도(修道)하는 마음의 생활공예-최덕주.ZIP: 수직풍경展에 부쳐1. 현대사회로 들어서면서 음악에는 '실용 음악'이라는 장르가 독립해 있고, 체육에는 '생활 체육'이라는 분야가 생겼다. 그러나 미술의 경우는 일찍부터 이 '실용'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은 것을 공예라고 부르며 하나의 장르로 확립되어 왔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한 시대의 미술사는 건축 조각 회화 공예 순으로 서술하고 있다. ● 공예(Craft)는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미술(Art)과 같지만 생활과 실용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는 다르다. 즉 공예는 미(美)와 용(用)을 동시에 추구한다. 이것이 공예의 본질이다. 공예는 이런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각 민족마다 생활 속의 쓰임새가 낳은 결과물로서 다양한 공예작품을 낳았다. 흔히는 도자공예, 목공예, 금속공예, 유리공예, 염직공예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편의상 재질에 따라 구분하는 것일 뿐 공예의 특성이나 본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고도의 산업기술을 요하는 기술공예와 수공예(手工藝)로 나눌 때 공예의 성격이 명확해진다. 영국의 윌리엄 모리스가 주창한 '공예운동'은 산업혁명 시대에 잃어가는 바로 이 수공예의 가치에 대한 환기였고 인간성과 인간적 체취의 회복을 위한 항의였다. ● 우리나라에도 멋진 수공예의 전통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아마도 사랑방가구를 비롯한 목공예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를 꼽자면 지금 공예가 최덕주가 보여주고 있는 '조각보'이다. 일찍부터 우리나라 전통 보자기의 아름다움에 주목한 '한국자수박물관'의 허동화 관장은 보자기 자체는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지만 조각보의 전통을 갖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했다. 조각보는 서양에서 두 천 사이에 솜을 넣고 누비는 퀼트(qilt)와 비슷한 것 같지만 그 발상과 결과는 전혀 다르다. ● 조각보는 우리 조상들이 물화(物貨)가 귀하던 시절 창안해낸 생활의 슬기였다. 의생활을 위해 옷을 빚어 만들면서 남은 작은 천 조각을 버리지 않고 이를 아름답게 이어 붙여 새로운 쓰임새로 만든 결과물이었다. 윌리엄 모리스의 공예운동 관점에서 보면 이보다 더 훌륭한 생활공예는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 나 어렸을 때 우리 옆집에는 '내재봉소'가 있었다. 6.25동란이 끝나고 얼마 안 된 시절이었기 때문에 물자는 더욱 빈약하여 발재봉틀을 갖고 있는 이 집 대청마루에는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 천 조각으로 조각보를 만들곤 하였다. 그리고 우리 집 밥상보도 어머니가 만든 조각보였는데 그때는 아무런 감정 없이 그런가 보다 했을 뿐이다. ● 그러다 미술사를 전공하면서 민예(民藝)에 관심을 갖고 민화, 장승, 민속공예 등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서 조각보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되었다. 조각보를 처음 만났을 때의 첫 인상은 누구나가 그렇게 말하듯 '몬드리안 추상화의 원조'같은 감동이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풍기는 인간적 정취는 다랑이 논이나 그 옛날 경지 정리가 되지 않은 산골의 논두렁을 보는듯한 향토적 서정의 한 자락을 풍기는 것이었다. 그것은 분명 삶의 체취였고 면면히 이어져오는 한국인의 DNA 속에 들어 있는 민족적인 서정의 산물이었다. ● 공예가 최덕주가 조각보 작업을 하게 된 동기 또한 여기에서 멀지 않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가 바느질 하는 모습을 보는 걸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할머니가 시집오실 때 가지고 온 장롱을 열어보는 게 저한테는 엄청나게 재미있는 일이었구요. 귀주머니나 베갯모, 수저집 등 귀퉁이는 낡고 헤졌지만 정감 있는 그런 것들을 보는 게 참 좋았어요." (최덕주) 그렇게 내재되어 있던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의 정서가 결국 최덕주를 조각보 공예가로 나아가게 했던 것이다. 2. 최덕주가 본격적으로 조각보 공예를 시작한 것은 1999년, 40대 중년의 나이에 들어서였다. 창작의 길로 들어서기엔 늦은 나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조각보의 경우는 그 나이쯤 되었기 때문에 더 애정을 가질 수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 이전까지는 생활취미로 바느질을 손에서 놓지 않은 충실한 가정주부였지만 이제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여 자기 시간을 갖게 되면서 어려서부터 간직해온 조각보 공예가로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 1999년 그는 자수공예 명장인 김현희 선생의 「전통공예학교」 학생이 되었고, 2000년엔 국립중앙박물관의 천연염색 과정도 수료하였다. 그러면서 염색 공방을 찾아가 직접 천에 물감을 들이기도 하면서 좋은 조각보를 만들기 위한 나름대로의 수련 과정을 밟았다. ● 사실 조각보라는 장르는 그리 어려운 공예가 아니다. 기술은 바느질만 할 줄 알면 되고, 기학학적 구성을 하는 디자인 감각과 재료를 선택하는 안목만 키우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가능하다는 것과 잘 한다는 것은 다르다. 조각보 또한 공예이기 때문에 여기는 장인적 수련과 연찬이 필요하고 수많은 시험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단련해야 한다. ● 바느질 솜씨는 연륜 속에 숙련되어가는 것이고, 디자인 감각은 반은 타고난 센스에 의존하고 반은 노력하고 찾으면 되겠지만 재료의 선택과 발굴은 다르다. 원래 조각보라는 것은 쓰다 남은 천 조각을 이어붙인 것이었지만 현대 생활공예로서 조각보는 아름다운 천을 사용하여 더 높은 차원의 생활공예로 나아갈 수 있다. 재료의 장점과 약점을 파악하지 않고는 좋은 공예가가 될 수 없다. 요컨대 재료의 성질을 장악해야 한다. ● 이리하여 최덕주의 재료에 대한 연구와 탐색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고급 천을 사용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서정과 멋을 살리기 위해서는 산업사회에서 멀어져 있는 천연 직물과 염료의 개발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 다행히도 한산모시, 안동포, 상주명주 등 우리의 전통 천에는 어떤 명품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네 서정이 깃들어 있다. 물감의 경우 화학염료가 아니라 쪽(파랑), 잇꽃(분홍), 치자(노랑), 감(갈색), 쑥(초록), 양파(주황), 먹(검정) 등으로 물감을 들여야 제 맛이 나고 제 멋을 드러낼 수 있다. 그리고 이것도 채도와 명도를 맞추기 위해서는 발효시기를 놓치지 않고 절기에 맞추어 본인이 직접 작업해야 자기 취향에 맞출 수 있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최덕주의 조각보에서 그만의 칼라를 보여준 것에는 이런 수고로움이 동반되었기 때문이다. ● 하나의 작품으로 조각보를 만드는데 있어서 핵심이 되는 조형요소는 기하학적 구성과 색채의 배합이다. 여기부터는 크래프트가 아니라 아트와 관계된다. 조각보 공예가는 무엇보다도 전통 조각보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길라잡이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자수박물관에서 간행한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 보자기』에는 도저히 평범한 우리네 할머니들이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없는 아주 모던한 감각의 명작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이는 조각보 공예가들의 영원한 교과서라 할 만하다. ● 한편 오늘날의 조각보 공예는 불가불 현대미술, 특히 추상미술과 깊은 관계를 갖게 된다. 원조로 따지자면 전통 조각보가 앞서는 것이지만 현대미술로의 성과는 기하학적 추상이 더 높이 성취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성취를 다시 현대 조각보 공예가 흡수하여 또 다른 차원의 공예미술로 이끌어 가는 것이 오늘날 조각보 공예가의 작가적 사명이고 과제로 될 수밖에 없다. ● 현대미술사의 추상미술에 나오는 거장들, 몬드리안은 물론이고 말레비치, 아르프 같은 절대추상, 마크 로드코, 모리스 루이스 같은 색면파 추상도 현대 조각보 공예의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2008년 쇳대박물관에서 열린 최덕주의 첫 개인전 때 내가 현대미술가 중 누구를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파울 클레라고 했다. 그런데 2013년 오스트리아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그의 작품 도록을 보니 어딘지 수화 김환기와 비슷한 감각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구성과 색감의 세련미가 그렇게 느끼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위해 이 점에 대해 작가에게 직접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조각보에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나올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의 미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답을 얻은 것은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백제의 궁궐에 대해 말한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 이상으로 잘 설명된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런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어요." (최덕주) ● '검이불루 화이불치', 즉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미학을 가슴에 지니고 창작에 임한다는 것은 전통 계승을 위해서도 작가적 개성의 획득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고도 유리한 자세일 것이다. ● 나는 평론가의 입장이기 때문에 창작자의 입장에 대해 다는 모른다. 그래서 작업하면서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노동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나의 조각보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서너 달, 길게는 반년이 걸리는데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면서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이냐고 물으니 자세를 가다듬고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바느질을 하는 것이 마음의 수양을 동반한다고 생각해요. 무심히 집중해야 하잖아요. 그러는 사이 제 마음도 힐링이 되고요. 그리고 딴 생각이 머리 속에 들어 있을 때 바느질은 예쁘지가 않아요." (최덕주) ● 이 말을 들으면서 나는 유럽 중세시대 수도원에 공방이 있어 여기에서 성경을 필사하고 교회에 필요한 여러 예배 공예품을 만드는 것이 수도하는 마음의 연장에 있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렇다. 나는 공예란 미와 용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해 왔는데 여기에 수도하는 자세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덧붙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최소한 좋은 공예가가 되고 훌륭한 공예품이 되기 위해서는. ● 조각보 공예가 최덕주가 획득한 예술적 성취를 미술작품을 비평하듯이 분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다. 낱낱 작품에서 그의 구성 솜씨가 어떻고, 색채 감각이 어떻고를 말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천이라는 재료와 그것을 사용한 디자인 감각 내지 취향을 말하면서 우리는 더 효율적으로 그의 조각보 작품을 즐길 수 있다. 공예이기 때문에 절대로 감상자에게 어떤 예술적 긴장이 강요되지 않을 것이다. ● 멋지다. 예쁘다. 앙증맞다. 단색조인데도 화려한 분위기가 있다. 화려한데 틔지 않아서 좋다. 구성이 단순해서 더욱 마음에 든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최덕주의 『수직풍경』展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랬으면 된 것이 아닌가. ■ 유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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