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미디어아트: 포스트 휴먼 The 4th Media Art: Post Human

2017광주디자인비엔날레 특별展 2017 Gwangju Design Biennale Special Exhibition   2017_0901 ▶ 2017_1105

4차 미디어아트: 포스트 휴먼展_광주시립미술관_2017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에브리웨어_아트센터 나비 E.I.Lab_김기철 변지훈_이이남_왕리엔청_신승백 김용훈_백남준

주최 / 광주시립미술관_광주디자인센터 후원 / 백남준아트센터_아트센터나비 큐레이터 / 변길현 코디네이터 / 정은지

관람시간 / 10:00am~06:00pm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문화가있는날)_10:00am~08:00pm

광주시립미술관 GWANGJU MUSEUM OF ART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52 본관 1,2전시실,로비 Tel. +82.(0)62.613.7100 artmuse.gwangju.go.kr

포스트휴먼 ● 포스트휴먼이란 '인간의 유전자 구조를 변형하고 로봇이나 기술을 인체에 주입하면서 진화된 상상 속 인종. 또는 그런 인종이 사는 시대'를 말한다. 이외에도 인간이 멸종된 이후 펼쳐지는 새로운 시대를 의미할 수도 있다. 아직은 그러한 시대가 아니고 그저 상상일 뿐이라고 폄하하기에는 이미 많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인공지능이 이세돌을 이긴 것보다, 이세돌의 난감해하는 그 표정이 우리에게는 더 충격이었다. 우리는 이제 컴퓨터, 인터넷,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 등 100여 년 전에는 상상에 불과했던 것들이 지금은 현실이 된 세상을 목격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그것들이 없이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가끔은 헐리우드의 공상과학영화를 보면서 포스트휴먼의 공포와 불안감을 느끼기까지 한다. 상상 속 인종이 태어나는 또는 인간이 멸종된 포스트휴먼은 상상을 넘어 현실이 될 것인가?

백남준_코끼리 수레 Elephant Cart_혼합재료_293×633×153cm_2001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 Nam June Paik Estate

첫 번째 미디어아트 ● 백남준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플럭서스에 속하여 미술 활동을 하면서, 캔버스 대신 텔레비전을 택하였다. 플럭서스는 캔버스 대신 각종 매체(media), 예를 들면, 대중 매체(mass communication)나 기성품(ready made), 퍼포먼스, 엽서, 포스터 등을 그들의 전략적 도구로 활용하였다. 그들 이전에도 매체(media)를 이용한 작가들이 있었으나, 그것을 대외적으로 선포하고 매체를 이용한 작품을 성공적으로 한 작가들은 드물었기에 플럭서스 유파가 첫 번째 미디어아트의 주역들이라고 할 수 있다. ● 플럭서스 유파의 대표적인 인물은 요셉 보이스(1921~1986)였으며(요셉보이스의 조각 작품은 그 과격성 때문에 1974년 1회 뮌스터조각프로젝트에서 전시를 거부당하기도 하였다. 수도원 마당에 거대한 돌덩어리를 가져다 놓는 구상이었다.) 그는 펠트와 기름덩어리를 모티프로 하여 당시로서는 전위적인 조형작품과 기이한 퍼포먼스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한 시대의 미술사를 개척한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백남준은 요셉 보이스가 뒤셀도르프 대학교수를 그만 두자 그 후임 교수가 될 만큼 독일로 유학 간 이후 요셉 보이스와의 친교를 통해서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백남준의 설치작품과 비디오아트, 퍼포먼스 등은 모두 이때 발아하였고 성장했으며, 백남준만의 천재성으로 백남준은 이후 비디오아트를 개척하여 오늘날 세계 최고의 비디오 아티스트로 기록되고 있다. ● 오늘날은 미디어아트로 이름이 통일되었지만 1980년대나 90년대만 하더라도 미디어아트란 단어는 생소했고, 비디오아트로 알려졌었다. 그것은 순전히 과학기술의 발전과 연관되어 있었다. 첫 번째 미디어아티스트들인 플럭서스유파가 활동하던 시기의 최첨단 매체는 텔레비전과 신문, 잡지, 엽서, 전화, 포스터, 공연이었다. 그들은 당시의 최첨단 매체를 소재로 작품활동을 하였으며, 다시 말하지만, 당시로서는 너무나 전위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한 작가들, 작품들은 잊혀졌다. 살아남은 것은 요셉보이스, 백남준 정도였다.

에브리웨어_회고록 Memoirs_혼합재료_150×50×50cm_2011

두 번째 미디어아트 ●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는 오늘날 미디어아트의 뿌리와도 같다. 그를 쫒아 수많은 작가들이 영상을 소재로 하는 미디어 아트를 하였으며 그것들이 대략 1970~90년대에는 비디오아트라는 장르로 불렸다. 그러므로 이들 비디오 아티스트들이 두 번째 미디어아트의 주역들이었다. 그 중에서 탑 오브 탑은 백남준이었다. 백남준은 1963년 세계 최초의 비디오아트 전시로 기록되는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텔레비젼』展을 개최하였으며, 1969년에는 미국 최초의 비디오아트 그룹전 『창조적 매체로서의 TV』에 무어먼과 함께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브라」를 출품하였다. 1977년에는 카셀도큐멘타에서 요셉보이스, 더글라스 데이비스와 함께 인공위성을 이용한 「위성 원격 생방송」을 공연하였고, 1986년에는 서울, 도쿄, 뉴욕을 위성으로 연결하는 「바이 바이 키플링」을 방송하였다. 1992년에는 아예 전시제목에 비디오아트를 넣은 『새로운 비디오 조각』展(뒤셀도르프 한스마이어 갤러리), 『백남준 비디오 아트 30년』展(서울 갤러리현대, 원화랑, 갤러리미건)이 개최되어 한국인들에게 텔레비전을 이용한 작업이 비디오아트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1993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대표로 나가서 「전자 고속도로 베니스에서 울란바토르까지」 프로젝트를 한스 하케와 함께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였다. 1984년 뉴욕과 파리를 위성으로 연결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방송하여 세계인을 놀라게 하였고, 2000년도 구겐하임미술관의 『백남준의 세계』展을 개최하여 그의 전 생애를 조감하였다. 모니터형 텔레비전을 이용한 백남준의 작품은 오늘날 기술의 발달로 보존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옛날 구형 텔레비전 부품이 없다고 한다.) 말 그랟로 미디어아트 역사의 기념비로 남아있다.

아트센터 나비 E.I.Lab_인공지능 미러 A.I Mirror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7 아트센터 나비 E.I.Lab_인공지능 에어하키 A.I. Air Hockey_혼합재료_91×179×99cm_2016 아트센터 나비 E.I.Lab_걷는 의자 Chair Walker_혼합재료_80×55×45cm_2015 아트센터 나비 E.I.Lab_비트 봇 밴드 Beat Bots Band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5 아트센터 나비 소장 ⓒ Art Center Nabi Estate

세 번째 미디어아트 ●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과 보급은 소위 디지털아트, 뉴미디어아트의 시대를 가져왔다. 이 시기 컴퓨터를 이용하여 영상을 조작하고 예술작품을 만든 이들이 세 번째 미디어아트의 주역들이다. 물론 칼로 무 자르듯이 그 시기와 작가들이 구분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편의상 구분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거대한 흐름이 있었다. 처음 시작은 작은 물결이어서 발목만 적실 정도였지만 시간이 흐르고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단순히 텔레비전에 나오는 지지직거리는 영상, 난해한 영상을 뛰어넘는 기술과 예술성의 진화가 있었다. 서양에서는 빌 비올라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백남준이 비디오로 장르를 개척했다면 빌 비올라는 더 진화된 기술력, 서양인이 가지는 감성과 제도적 이점으로 백남준 이후 세대에서는 손꼽는 미디어아티스트가 되었다. 그런 빌 비올라도 백남준의 어시스턴트 일을 한 적이 있다. 백남준을 보고 빌 비올라도 미디어아티스트의 꿈을 키웠고, 빌 비올라는 백남준 이후의 미디어아트를 대표하는 서양 작가가 되었다. 뒷 물결은 앞 물결을 밀어내고 새로운 물결이 된다. 빌 비올라는 백남준 덕분에 "비디오가 자아 정체성을 발견하는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하도록 도와줄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서도 자신을 고양시킬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백남준의 연혁이 비디오 아트 개척의 연혁으로 볼 수 있듯이 빌 비올라의 연혁은 비디오아트에서 시작하여 요즈음 말하는 미디어아트로 정착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시기의 구분은 보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비올라의 음향 담당 디렉터로 일해 온 리스 데이비스(Rhys Davies)는 빌 비올라의 작품들은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비디오아트라는 장르의 다양한 기술적 실험들을 한 단계이고, 1990년대 이후에는 2차원에서 3차원으로 작품이 진화되었다고 설명한다. 반면에 『빌 비올라』라는 책을 쓴 존 한하르트(John Hanhart)는 1970년대에는 비디오 매체의 시간성, 1980년대에는 확장된 시야와 기억의 문제들, 1990년대에는 숭고한 신성과 감성의 구현, 2000년대에는 새로운 휴머니즘으로 세분화한다. 여러 견해들을 요약하자면, 비디오아트라는 장르가 태어나던 시기 그는 백남준, 피터 캠퍼스 등에게 영향을 받고, 이것을 자신만의 독자적 미디어아트로 정착시킨 것이다. 백남준에게서는 비디오아트가 세계인을 연결시킬 수 있다는 점을, 피터 캠퍼스에게서는 비디오아트가 실존적 주제들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을 강하게 느꼈고, 이후 그는 기술의 발전과 그만의 사색, 연구를 통해 탄생, 고통, 죽음 등 인간 구원의 문제들 다루고 미디어아트의 명장으로 자리 잡게 된다.

김기철_우산 Bumbershoot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7~17

미디어아트의 개념 ● 미디어의 개념과 미디어아트의 개념은 변화되어 왔다. 오늘날은 빛이 들어가고 영상이 비춰지면 미디어아트라고 하지만 초창기의 개념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미래의 미디어아트 개념도 변화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 기준으로서 미디어아트의 개념은 대중들이 인정하는 개념이어야 하므로 유네스코에서 인정하는 미디어아트의 개념을 존중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본다. 유네스코에서는 전 세계 8개국 9개 도시를 유네스코미디어아트창의도시로 지정하였으며, 이들 도시가 미디어아트에 관한 문화예술 사업을 진행하는 것을 장려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유네스코에서는 미디어아트에 관한 개념을 정의내리고 있지 않다. 유네스코미디어아트창의도시로 알려진 9개 도시의 홈페이지를 들어가 봤지만 그 정의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한국에서 미디어아트를 다룬다는 미술관이나 기관도 마찬가지이다. 미술사나 미술용어 사전은 미디어아트의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날 보면 매우 부족한 정의도 많다. 가장 최근의 정의는 위키피디아이다. ● 미디어 아트는 사진, 전화, 영화 등의 발명 이후 이런 신기술들을 활용하는 예술들을 가리킨다. 뉴미디어 아트라고도 불리며 매체예술로 번역된다. 새로운 화학, 기계 등의 기술을 사용한 새로운 매체 기술을 사용하는 예술로 정의되고 있다. 1960년대 텔레비전과 방송의 등장으로 대중매체가 도래한 이후에는 위성방송, 인터넷, 웹사이트, 컴퓨터를 이용한 멀티미디어, CD-ROM, DVD, 가상현실 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었다.

변지훈_금 Gold_컴퓨터, 깊이 감지기, 프로젝터, 커스텀 소프트웨어_가변크기_2017

이 중에서 컴퓨터나 인터넷 등의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고 탐구하는 예술을 뉴미디어 아트라는 용어로 지칭하기도 한다. 뉴미디어 아트라는 용어는 새로운 매체를 사용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을 뿐, 미디어 아트라는 용어와 뚜렷이 구분되어 사용되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뉴미디어'라는 용어 자체가 시대에 따라 가변적이기 때문에 부적합하다는 지적도 있다. 가령 과거에는 비디오가 새로운 매체였지만, 오늘날에는 CD나 USB조차 기성매체가 되었다. 사실 뉴미디어 아트라는 용어뿐 아니라 미디어 아트라는 용어 자체도 매우 광의적이고 모호한 용어이다. 넓게는 퍼포먼스나 바디 아트 역시 미디어 아트에 포함될 수 있다. 이는 넷아트, 웹아트, 상호작용 예술 등의 용어 역시 마찬가지이며, 이러한 용어 정의의 모호성은 아직 이러한 예술이 진행되는 단계에 있어 관련자(작가, 관객, 대중, 평론가, 예술시장 등)들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이는 다양성과 혼종성이 강조되는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문화의 일면이기도 하다.

이이남_자승자박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7

미디어 아트가 기존의 예술과 다른 점은 작가와 관객의 상호작용에 있다. 전통적인 예술, 즉 회화나 조각은 정적인 제작물로서 심리적 상호소통이 우선적인데 비해서 미디어아트는 대중매체를 이용함으로써 심리적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인터페이스를 통한 물질적인 상호작용도 일어난다. 대중과의 소통이 은유적인 것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바뀐 것이다. 대중매체가 발달된 오늘날 미디어아트는 단순한 예술을 넘어서 일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 익명의 저자가 쓴 위의 정의는 필자가 본 바로 가장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비교적 최신이고 정직하면서 용감하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개념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잘못된 정의는 비판받기 쉬울 수도 있는데 용감하게 썼기 때문이다. 시도가 변화를 이끈다. 필자는 위의 개념이 현재 미디어아트의 개념에 가장 가깝다는 데에 동의한다.

이이남_S.W.R.W(Sow the wind and reap the whirl wind)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7

4차 미디어아트 ● 2017광주비엔날레특별전으로 준비한 『The 4th Media Art : Post Human』展에서 필자는 4차 미디어아트라는 용어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4차 산업의 주요 키워드들인 인공지능, 로봇, 인터랙티브에 초점을 맞춘 미디어아트 작품들이 초청되어서 4차 미디어아트라는 신조어를 사용한 측면도 있고,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미디어아트는 4번째 단계의 미디어아트라는 생각에 따른 것이다. 플럭서스 유파는 대중과의 자유롭고 편한 소통을 목적으로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하는 첫 번째 미디어아트를 하였고, 백남준은 비디오나 위성방송을 통해 전 세계인의 소통을 꿈꾸는 두 번째 미디어아트를 하였고, 빌 비올라는 향상된 기술을 통해 본격적으로 인간구원의 문제를 다루어 예술성을 높였다. 그리고 이제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을 이용한 미디어아트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아직은 포스트 휴먼이 아니고 트랜스 휴먼 정도의 단계이지만 어떤 작가들은 완벽한 인공지능 미디어아트 작품을 구현할 수도 있다. 앞으로 아이가 미술작가가 되려면 미대가 아니라 공대를 가야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사실은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4차 미디어아트의 많은 작가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즐기는 공대 교수 출신이기도 하다. 한국의 미디어아트를 선도적으로 이끌어 온 아트센터나비의 신규 채용공고를 우연히 본 적이 있다. 미대 출신이 아니라 공대 출신의 엔지니어를 뽑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많은 미술관들은 아직도 4차 미디어아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이번 전시의 의의는 그 인식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4차 미디어아트의 출발점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공상과학영화가 과학의 변화를 이끌 듯이, 미술현장의 변화가 미술관의 변화를 이끌 것이라고 믿는다.

왕리엔청_커지는 소리 프로젝트 Growing Sound Project_ 단채널 영상 프로젝션, 마이크, 실시간 컴퓨팅 비주얼_가변크기_2015~7

4차 미디어아트와 포스트 휴먼의 관계는 우리가 20세기 후반에 포스트모더니즘을 배우고 논했던 것처럼 수많은 담론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의 의의는 결론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함에 있다. 수천 년 이상의 동서양의 미술사를 살펴보더라도 예술의 귀착점은 결국 인간이었다. 4차 미디어아트가 컴퓨터 프로그램이 만드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예술이라면 그것의 귀결점은 인간이 될 것이다. ● 포스트휴먼이라는 단어의 두려움이나 난해함이 있는데 아마 수만 년 전 까지 갈 것도 없이, 불과 100여 년 전의 사람들이 보면 우리를 포스트휴먼이라 보고 두려움과 난해함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서두에서 제기한 포스트휴먼의 딱딱한 사전적 정의는 의미가 없다고 본다. 인간신체보다 더 예쁜 의족, 장기 이식, 머리 이식, 뇌 이식용 칩 등 포스트휴먼시대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일이다. 휴머니즘의 시대는 포스트휴머니즘의 시대까지 포괄한다. 포스트 휴먼은 공상과학영화에서 있는 일이었지만, 이미 우리는 우리의 의식과 실제 생활에 있어서 포스트 휴먼의 시대에 도달해 있다. 4차 미디어아트는 포스트 휴먼 시대의 새로운 종합예술이 되고 있다.

신승백+김용훈_꽃 Flower_인터넷, 구글 클라우드 비전 API, 커스텀 소프트웨어_가변크기_2016

전시를 개최하며 ● 광주는 유네스코 미디어아트창의도시이다. 프랑스의 리옹, 오스트리아의 린츠 등 전 세계의 유명 8개 도시와 함께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로 지정될 만큼 미디어아트를 향한 광주의 의지는 뜨겁다. 백남준으로 인해 한국에 알려진 미디어아트가 광주의 대표이미지가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 초기에 비디오아트로 알려졌고 이후 디지털 아트, 미디어아트 그리고 뉴미디어아트로 이름과 개념과 내용이 기술의 변화에 맞춰 변해온 미디어아트는 이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아 또다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미술사를 살펴보면 과거를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예술만이 살아남았다. 과거의 것을 계승하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 그것이 인간의 가슴에 무언가를 남길 때 예술이 되는 것이다. ● 광주시립미술관은 2017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맞아 특별전인 『The 4th Media Art : Post Human』展을 개최한다. 이 전시가 광주시민 뿐 아니라 디자인비엔날레를 보러 광주를 찾는 많은 내외국인들에게 디자인비엔날레 본전시와 함께 다양한 볼거리, 생각거리를 제공하게 되길 원한다. 미술에 기술과학이 접목되는 혁명적 시대는 4차산업 혁명으로 본격적으로 대두되었지만 그 시초는 미래를 내다 본 천재예술가 백남준이었다. 그리고 이번 전시의 출품작가인 에브리웨어, 아트센터 나비 E.I.Lab, 김기철, 변지훈, 이이남, 왕리엔청, 신승백 김용훈은 4차산업 혁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시작했던 선구자들이다. 이들의 출품작품들은 인공지능, 로봇, 게임, 인터랙티브 기술, 디지털 영상, 사운드 효과 등이 가미된 4차 미디어아트 작품으로 캔버스에 그리지 않은 소위 포스트 휴먼 시대의 예술이지만, 포스트 휴먼이라는 신조어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생명의 행위이며 인공지능 등 과학기술로 만들어진 미디어아트 작품들도 결국 인간 안의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 변길현

Vol.20170925a | 4차 미디어아트: 포스트 휴먼-2017광주디자인비엔날레 특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