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오브제

이승수展 / LEESEUNGSOO / 李承洙 / installation   2017_1021 ▶︎ 2018_0127 / 일,월요일 휴관

이승수_서있는 여덟 개의 침목_침목_가변설치_20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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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1021_토요일_04:00pm

작가와의 대화 / 2017_1021_토요일_02:00pm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제주특별자치도_제주문화예술재단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일,월요일 휴관

문화공간 양 CULTURE SPACE YANG 제주 제주시 거로남6길 13 Tel. +82.(0)64.755.2018 culturespaceyang.com

침목, 침전된 기록을 읽다 ● 침목은 조선소에서 낡은 선박을 수리하거나 새로 만든 선박을 진수하기 위해 설치한 레일 밑에 받치는 용도로 쓴다. 철도에서는 레일을 붙잡아 궤간을 유지하고 충격을 노반으로 흡수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처음에는 나무를 사용해서 침목이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나무 외에 금속, 콘크리트, 플라스틱 심지어는 유리섬유로도 제작한다. 대구에 있는 연암공원에서는 폐선 시킨 철로의 침목을 가지고 공원 계단으로 재활용했다.

이승수_침목_단채널 영상(2017년 5월 25일 기록)_00:03:50, 반복재생_2017 이승수_파편들_혼합재료(2015년 11월~2017년 8월 발굴)_가변설치_2015~7

제주 화북에서 1945년부터 2014년까지 69년 동안 선박과 보트를 건조하고 수리했던 삼우조선소는 지금은 운영되고 있지 않다. 이곳에서 사용되었던 몇몇 침목들은 공원의 계단으로 활용되지 않고 이번 전시의 주인공이 되었다. 삼우조선소의 전신인 화북조선소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운영되었다. 이번 전시에 사용된 어떤 침목은 화북조선소 때 쓰였던 것들도 있을 수 있다. 만약 남아 있다면, 족히 100년 이상 된 것이다. 국어사전을 보면 유물은 조상들이 후대에 남긴 물건으로 유적에 비해서는 작고 위치를 변경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남겨진 침목을 유물로 보자는 주장은 아니다. 하지만 이처럼 남겨진 침목이 어떤 사람에게는 마치 유물처럼 과거의 시간을 담아낸 것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현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의미를 지닌 것일 수도 있다.

이승수_변형된 침목_침목, 기타(2016년 5월 발굴)_20×135×13cm_2016 이승수_변형된 침목_침목, 바이올린(2016년 5월 발굴)_77.5×15×12cm_2016
이승수_도구들_혼합재료(2017년 7월 발굴)_2017

작가는 더는 사용하지 않는 침목을 삼우조선소 자리에서 마치 유물을 발굴하듯이 작업을 시작했다. 2014년부터 제주도에서 시행한 '화북 해안도로 조성 사업'으로 인해 삼우조선소 자리는 사라지고 그 흔적만 남았다. 건물을 짓다가도 오래된 유물이 나오면 그것에 대한 역사적 가치를 판단한다. 그런 후에 보존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명되면 유물이 나온 장소는 유적지로 보존된다. 현재 해안도로 공사는 바로 그곳에서 멈춰있다. 마치 공사가 멈춰진 이유가 삼우조선소의 흔적이 가치 있는 유적지로 판정을 받았기 때문일 거라는 실현되기 어려운 상상을 해본다. ● 화북 포구는 조선 시대에 가장 큰 포구 중 하나였다. 육지와 뱃길을 이어주는 포구에서 새로운 배가 태어나고 낡은 배가 쉬어 가는 조선소는 당시 제주 화북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장소였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 조선소는 치열한 삶의 흔적이자 실존의 증거이다. 조선소가 화북 사람들의 삶 속 깊숙이 들어와서 서로 얽힌 것이다. 이러한 얽힘이 반복되면 불투명한 무엇인가가 침전된다. 그래서 작가가 발굴한 침목에는 여러 삶의 방식들이 침전된 것이다. 이때 침전은 중력이나 파도, 바람 등에 의해 운반된 자갈, 모래 등이 가라앉는 자연 현상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철학에서 말하듯이 침전은 인간의 종합하는 정신으로 인해 하나는 기억 가능한 과거 체험으로, 또 하나는 새로운 행동이 쌓여 습관이 된 것을 의미한다.

이승수_네 개의 삽 그리고 버려진 의자_혼합재료_115×55×55cm_2017
이승수_경고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7

우리는 단지 땅, 공기, 물 등 이런 물리적 환경 속에서만 사는 것은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도로, 마을, 집, 의자 심지어 플라스틱 쓰레기까지도 가지고 있다. 사물들은 침묵하고 있지만 사물들과 우리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가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에 들어갔을 때 그 집에서 나오는 서늘하고 묘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사물들은 어떤 관계 속에서 우리가 좀처럼 알아챌 수 없는 분위기를 방출한다. 서 있는 그리고 누워 있는 침목을 마주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와 그것을 만지려 하거나 만졌을 때가 있다. 그 순간에 마치 아주 차가운 철 기둥을 만지는 것처럼 몸 속의 서늘함이 느꼈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침목의 침전된 기록을 읽는 또 하나의 방식일 수 있다. ● 작가는 침목을 그저 작품의 재료로만 여길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이 완성해야 할 작품을 위해 침목은 독특한 물성을 가진 재료이고 그것은 작품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이런 관점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는 점이 흥미롭다. 그 이유는 작가가 침목과 자신 그리고 그것들을 둘러싼 장소를 같이 바라보는 직관적인 태도로 탐구했기 때문이다.

이승수_안전제일_펜스_가변설치_2017
이승수_뿌리 뽑힘_나무_가변설치_2017

작가는 땅속에서 침목을 발견할 때 침목의 강한 질감을 느꼈다고 한다. 마치 아이가 태어날 때 주변의 모든 사물의 의미가 변화하는 것처럼 오랜 시간 동안 흙 속에서 있다가 그 모습을 드러낸 침목은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모습일 수도 있고 제주의 모습일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에 드러난 침목은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린다. 침목과 공간, 시간 그리고 우리가 공존한다. 흙을 뚫고 나와 우뚝 솟은 침목을 통해 제주의 과거와 현재를 뚜렷하게 혹은 어렴풋이 느낄 수도 있다. 이런 지각은 늘 현재적이며 망각할 수 없는 과거의 전통과 마주하게 된다. 누군가가 무엇인가가 거기에 있고 아주 짧은 순간에 새롭지만 흘러가 버린 작은 역사가 세워진다. ●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주위를 둘러볼 때 우리는 공간을 기하학적으로만 보거나 원근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우리가 보는 공간은 개발해야 하는 제주와 보존해야 하는 제주, 새로운 제주와 낡은 제주, 변화하는 제주와 변화하지 않는 제주라는 여러 공간을 가진다. 대척점에서 서로에게 절대 다가갈 수 없는 공간, 이런 공간들이 우리가 애착을 갖는 장소이다. 이런 애착이 있는 장소는 주름진 과거와 현재의 순간, 미래의 지평을 가진다. 이런 시간과 장소 속에는 책임과 존경이 존재한다. 그래서 장소가 존재하는 방식 그대로를 놔두는 것을 하이데거는 '아낌'이라 불렀다. 즉 장소가 제대로 있으려면 아낌과 배려의 방식이 공존해야 한다.

이승수_풍경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7
이승수_침목_피그먼트 프린트(2017년 10월 5일 기록)_50×90cm_2017

'문화공간 양'은 애착을 갖는 장소 혹은 새로운 장소를 가지게 되었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인접해 있는 집을 전시 장소로 확장한 것이다. 이 새로운 장소에 대한 '문화공간 양'의 고민과 제주에 대한 이승수 작가의 고민이 서로 닿아 있다. '문화공간 양'은 감나무의 가지를 잘라 내고 돌담의 일부를 덜어내 또 다른 길을 열었고, 이승수 작가는 두 개의 침목(작품명:'경계로')으로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 안거리 전시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새로 낸 침목의 길을 들어서자마자 오른편에서 '경계에 서다'라는 작품이 붉은빛을 번뜩이며 부르고 있다. 조선소에서 나온 측량용 삼각대와 현무암, 방독면, 경고등의 결합으로 만든 이 작품은 붉은 경고등을 돌리며 마치 우리에게 현재를 되돌아보라고 외치는 듯하다. 전시장으로 들어가자마자 정면에 보이는 것은 안전휀스의 안전제일이라는 글자이다. 마치 당신의 있는 장소가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처럼 울린다.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 더미들과 그 속에서 길을 잃은 보트 그리고 반복해서 나오는 뉴스들, 이 풍경이 우리가 사는 지금의 리얼한 풍경이다. 전시장 다른 방에는 죽은 나무뿌리가 무너지려는 천정을 받치고 있다. 과거의 과거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무엇인가를 현재의 우리를 위해 침묵의 목소리로 간절히 전해주고 있다. 네 개의 삽과 버려진 의자를 결합한 '경계에 앉다'가 경계의 공간에 서 있다. 작가는 자신의 장점인 오브제와 오브제들을 서로 섞거나 결합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장소와 함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의도와 즉흥이 뒤섞여 있는 오브제의 결합 방식으로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게 장소와 함께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 김범진

Vol.20171022i | 이승수展 / LEESEUNGSOO / 李承洙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