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에서 노닐다

박병일展 / PARKBYUNGIL / 朴炳一 / painting   2017_1030 ▶ 2017_1111 / 일요일 휴관

박병일_Landscape-Skull rock_화선지에 수묵_90×145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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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1030_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필 갤러리 FILL GALLERY 서울 용산구 유엔빌리지길 24(한남동 271-5번지) Tel. +82.(0)2.795.0046 www.fillgallery.com

인왕산과 그 주변은 조선시대 내내 서울 도성 안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 가운데 하나였다. 초기에는 왕족들의 터전으로, 중기부터는 사대부들의 주거지이자 서인(西人)학문과 예술의 발상지로, 후기에는 중인들의 문예운동이 꽃핀 곳으로 각각 그 특성을 분명히 했다. 지금은 아름다운 산세와 어우러진 고급 빌라들과 저택, 낡고 허름한 집들부터 오래된 한옥, 그리고 인왕산 주변에서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곳이다. ● 내가 인왕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14년 12월 종로구 옥인동 부근으로 이사를 오면서 부터였다. 집이 인왕산 중턱 즈음에 자릴 잡고 있어 항상 산을 보며 집을 오가다보면, 겸재 정선(謙齋 鄭敾)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를 마주 하는 듯하다. 특히 한여름 장마가 오면 실제로 인왕산 치마바위가 물을 흠뻑 머금은 모습과 뿌연 안개가 낀 장면은 겸재가 그림 속에서 운용한 필과 묵이 그대로 느껴지기도 한다. ● 이곳의 풍경들을 담고자 화첩 한 권을 사게 된 것도 아마 이런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새 화첩을 들고 스케치를 나간다고 길을 나섰을 때 처음부터 인왕산의 산수를 그리겠다는 다짐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화첩 한권 들고 끌리듯 산책하게 됐고 집 앞의 매화 향기가 좋아 매화나무를 그리고 때론 주차되어있는 차에 비치는 나무들의 표현이 신기해서 하나 둘씩 담기 시작한 것이 점점 그려보고 싶은 장소로, 또는 동네의 유명한 명소 위주로 담게 된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조용히 그림을 그리다가 '겸재도 이러 했을까'란 생각을 문득문득 떠올리며 벗 삼아 수다를 떨게 되기도 했다.

박병일_Landscape-Inwang_화선지에 수묵_145×115cm_2017
박병일_Landscape-Inwang_화선지에 수묵_145×115cm_2017

겸재의 《인왕제색도》를 통해 보면 주봉이라 할 수 있는 치마바위의 왼쪽부터 범바위, 매바위, 석굴암의 바위와 기차바위, 부침바위 등이 있다. 또 산주변의 3개의 폭포와도 같은 물줄기도 발견되는데 이것은 걸어보지 않고는 그 곳곳의 감흥을 필치로 그림에 담을 수 없음을 알기에 겸재의 그림이 나에겐 더 큰 감동을 준다. ● 중국 명대(明代)의 화가 이일화(李日華)는 저서《자도헌잡철(紫桃軒雜綴)》에서 그림을 그릴 때는 세 가지 순서가 있는데 첫 번째로는 몸이 수용할 만한 곳을 그리고 두 번째는 눈으로 볼만한 곳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유람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곳을 그린다고 하였다. 이는 물가나 숲가나 경치가 많은 곳을 말하며, 두 번째로는 경치가 빼어나거나 아늑하여 폭포가 떨어지는 곳 또는 구름이 생기거나 새가 날아가는 것이라 하고 마지막으로는 눈으로 볼 수 있으나 감정의 맥이 끊어지지 않는 곳이라 말하고 있다. 나에게 인왕산과 주변 풍경의 모습은 이런 요소에 부합하다고 여겨지는 곳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박병일_Landscape-Inwang_화선지에 수묵_150×345cm_2017
박병일_인왕산화첩 부분_종이에 수묵_21×52.5cm×4_2017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화첩 속 작품 30점과 수묵작업 15여점으로 구성된다. 풍경화첩은 매일 아침 붓과 화첩을 가지고 곳곳을 누비며 인왕산 일대의 장소인 청풍계, 청휘각, 자하동, 필운대, 백운동, 창의문, 수성동을 포함하여 석파정, 인왕사 주변의 선바위, 해골바위 그리고 인왕산의 둘레길 등 총 30점을 담았다. 그리고 수묵작업은 화첩 속 작업들을 바탕으로 인왕산의 풍경을 재구성하거나 특정장소에 대한 기억을 부각시키는 작품으로 표현하였다. ● 인왕산의 능선을 따라 자연스레 보이는 풍경을 위주로 천천히 걸으면서 보이는 서울의 풍경 그리고 관념의 확대와 같은 모습으로 옛 전통산수화에서 보여 지던 한정된 시각이 아닌 보다 넓은 범위의 풍경을 그려 보았다. 보는 위치에 따라 고원(高遠), 심원(深遠), 또는 평원(平遠)의 느낌을 준다거나 걸어 다니면서 장소의 곳곳을 하나씩 채워가는 형식은 일상적 체험이기 보다는 자연을 환기하는 행위로도 대변하려고 하였다. 이것은 인왕산 주변에 살며 오고 가며 보아온 자연스러움이 풍경에 대해 작용하였을 듯하다. 그리고 작업을 하면서 몰랐던 지역의 역사와 전해내려 오는 여러 이야기들에 의해 그곳을 그리고 있을 때 마치 내가 그 시대로 타임 슬립을 하게 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였다. ● 겸재 정선이 남긴 두 첩의 《장동팔경첩》뿐만 아니라 여러 화가가 그린 인왕산 일대의 명소와 풍경들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있다. 그래도 희미하게 남아있는 곳곳의 흔적들은 옛 화가들이 인왕산을 걷고, 살면서 보아왔던 감흥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한편으로는 잘 보존만 되었더라면 그때의 아름다움을 지금도 누릴 수 있는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에 한탄이 새어나오기도 한다.

박병일_Landscape-Cheong un_화선지에 수묵_162×100cm_2016
박병일_Landscape-Ogin_화선지에 수묵_115×115cm_2016

사라지는 것과 변하는 것, 새로이 생성되는 것들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교차하는 이 공간은 어쩌면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지금 그리고 있는 인왕산 이외도 살면서 경험하였던 도시 곳곳의 풍경과 스쳐가는 대상을 보고 관찰하면서 내가 만들어낸 상상적인 공간들과 도시 공간속 그들이 들려주는 여러 이야기를 다원적 시점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앞으로 또 1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풍경의 절반 이상은 고스란히 남기고 있을지 모른다. 그때 내가 그러했듯 내 그림과 걷고 있을 또 다른 나의 벗을 즐겁게 상상해 보기에 더욱 이시대의 모습 우리가 사는 이곳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싶다. ■ 박병일

Vol.20171030c | 박병일展 / PARKBYUNGIL / 朴炳一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