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위장(胃腸) A stomach of the Night

노경민展 / ROGYEONGMIN / 盧京珉 / painting   2017_1031 ▶︎ 2017_1111 / 일,월요일 휴관

노경민_사생활_장지에 수묵채색_53×79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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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충북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신미술관 SHIN MUSEUM OF ART 충북 청주시 서원구 호국로97번길 30 Tel. +82.(0)43.264.5545 www.shinmuseum.org

상처와 욕망의 붉은 방에서 찾아가는 자기의식 ● 노경민의 강렬한 붉은 그림들은 인간의 성적 욕망과 관음증을 떠올린다. 붉은 그림들 속에는 낡고 쾌쾌한 여관방에 섹스 전 후의 젊은 남성이 보인다. 젊은 남자의 몸은 붉은 여관방 바닥에 누워있거나 화면 가득 등을 보이고 앉아 있다. 작가는 장지에 먹과 주색의 층을 셀 수 없을 정도로 얹고 물기 먹은 장지를 문질러 마치 껍질이 벗겨진 것 같은 표면의 느낌을 낸다. 붉은 색을 겹겹이 겹치고 밀어서 긁고 으깬 장지는 마치 인간의 살갗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장지와 동양화 물감이 내는 이러한 독특한 물성의 맛은 쾌쾌한 여관방에 쌓인 시간과 수많은 사람들의 방문의 흔적, 그리고 그 사람들의 진부한 연애 이야기와 인간으로서 작가 자신의 성장과 욕망의 이야기를 함께 담고 있다.

노경민_그림자놀이_장지에 수묵채색_63.5×62.5cm_2017
노경민_몸 _장지에 수묵채색_57.5×87cm_2017

노경민의 붉은 단색조 그림들에서 붉은 색은 욕망을, 검은 먹은 상처를 은유한다.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유난히 강하게 인식하는 여성이 있다. 어떤 여성들은 남녀에 대한 사회의 통념과 그 무조건적 주입에 대해 강한 의문을 가진다. 이는 주로 가족의 테두리에서 시작한다. 엄마는 아들이 여자 친구와 섹스를 하는 것은 암묵적으로 허용하고 딸에게 섹스는 자신을 파괴하는 일이라고 가르친다. 여성의 성에 대한 관습적 금기는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피지배자의 위치로 살아온 여성의 욕망에 대한 억압이었다. 이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 않고 살아온 엄마는 딸에게 종교적 교리와도 같은 비논리적 금기를 가르친다. 딸은 성인이 되어 금기된 남성과의 섹스를 죄의식 속에 감행한다. 그것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여성과 남성이 강함에 있어서나 약함에 있어서 모두 같은 인간이고 그 성적 욕망도 대등하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한 딸은 금기를 깬 자신의 용기와는 모순적으로 갑작스런 이별을 말하는 남성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었다는 피해의식에 시달린다. 이 땅의 많은 딸들이 관습과 현실의 괴리로 인해 섹스는 여성의 몸과 인생에 남성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몸과 마음의 깊은 상처를 통해 깨닫게 된다.

노경민_거울방 _장지에 수묵채색_150.5×99cm_2017
노경민_죄의식 _장지에 수묵채색_74×50cm_2017

그러나 금기를 깨는 의례는 여성이 자신의 성적 욕망에 대해 눈을 뜨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여성의 욕망은 억누르고 감춰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표현하고 즐기면 싸고 쉬운 여자가 된다고 교육받은 노경민에게, 남성의 성적 욕망은 사회에서 공공연히 용인하고 오히려 조장하는 것이었다. 금기를 깨고 남녀 관계의 정체와 성의 진실을 알게 된 그녀에게 대학가 길거리에서 주은 키스 방 광고 이미지는 남다르게 다가왔다. 그녀는 남성의 성욕을 자극하기 위해 조장된 여성 이미지를 그리기 시작했다. ● 상처받은 마음으로 우리 사회에 흔하게 널려있는 광고와 포르노에 나오는 여성들의 표정과 몸짓을 그림으로써 간접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노경민의 키스 방 광고 그림들은 여성의 몸을 욕망의 대상으로 소비하는 남성중심적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이 전형적이고 인위적인 소비 이미지들은 노경민의 그림 속으로 들어오면서 묘한 회화적 생동감을 얻는다. 노경민의 그림에서 여성의 몸짓은 더 관능적이 되고 마치 살아 있는 듯 꿈틀 거린다. 특유의 재능으로 그 여성들의 표정과 몸짓을 살려낸 이 그림들에서 여성의 성적 욕망 또한 꾸물거리며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노경민_모충다실 _장지에 수묵채색 43×65.5cm_2017
노경민_방백_장지에 수묵채색_149×103cm_2016

노경민은 이후 포르노에 나오는 여성들의 표정을 그렸다. 쾌감을 느끼는지 고통을 느끼는지, 자연인지 인위인지 모를 여성들의 성 행위 시 표정은 화폭을 채우고, 격자 식의 설치로 수십 개의 표정이 갤러리 벽 가득 관객을 맞이한다. 포르노 연기를 하는 여성의 표정은 고통과 쾌감, 자연과 작위, 욕망과 슬픔, 자기만족과 도취 등 다양하다. 장지에 수묵으로 회화적 생동감을 얻고 나란히 배열된 이 여성들의 표정은 그녀들의 몸이 느끼는 예민한 감각을 표현하는 음표가 되어 심금을 건드리는 묘한 변주곡 같다. 우리 사회는 남성의 욕망을 채우는 자본주의의 도구인 여성들의 몸은 값싸고 더러운 것으로 가르쳐 왔다. 이러한 인식에서 자유로워진 노경민이 이 작업을 '시(詩)'라 이름 붙인 것은 주목할 만하다. ● 키스 방과 포르노에 나오는 여성 이미지는 노경민의 그림으로 들어오면서 남성의 시선을 갈구하기 보다는 자기도취적으로 변한다. 여성이 취한 섹시한 포즈도 흥분된 표정도 남성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이후 작가는 '시(詩)' 시리즈에 남성과 여성의 섹스 장면을 담는다. 이 시리즈에서 현재 먹과 주색으로 이루어진 노경민만의 스타일이 발아한다. 남성과의 섹스 장면을 다양하게 그렸으나 여성의 쾌감이 더 강조된 이 그림들은 죄의식과 상처가 강하게 남아있는 듯 검은 먹빛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부분부분 붉은 물감을 흘려 거부할 수 없는 여성의 욕망과 여성이 느끼는 진득한 섹스의 묘미를 강조했다. ● 한동안 노경민은 여성의 성에 의문을 가지고 실제 늪의 풍경을 여성의 성에 은유해 탐구했는데, 먹으로만 표현한 이 어두운 풍경 시리즈에서 "늪과 같은 끝을 알 수 없는 욕망하기에 따른 공허한 감정"은 그 구체적인 모습과 깊이를 알 수 없는 암연과 같은 세계로 표현되었다. 키스 방, 포르노, 섹스 장면, 늪 등의 작업 과정은 작가가 본인의 과거와 상처를 되돌아보고 여성의 욕망을 깨닫게 된 노정처럼 보인다. 이제 노경민은 자신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혼자만을 위한 공간을 그리기 시작한다. 붉은 방 시리즈의 시작이다.

노경민_현우_장지에 수묵채색_125×189cm_2016
노경민_성훈_장지에 수묵채색_145×99cm_2016

노경민의 붉은 방 그림에서 붉은 커튼이 쳐진 음침하고 쾌쾌한 여관방 침대위에 섹스를 마치고 잠이 든 남성이 누워있다. 남자는 온 몸을 늘어뜨리고 침대에 기대어 있거나, 창가에 정면으로 서 있기도 하고, 발기한 페니스를 만지고 있거나, 방바닥에 누워 몸의 선을 드러내며 누워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남성의 몸은 수동적이고 대상화 되어 있다. 이 모든 장면들을 조종하고 있는 것은 여성의 시선이다. 보이지 않는 여성의 시선이 천장에 달린 조명과 붉은 커튼이 쳐진 창, 구석의 환풍구, 화장실로 향하는 남자를 침대에 누워 올려다보고 있다. 혼자 잠이 깨어 깊이 잠든 남성의 몸을 내려다는 여성의 시선이, 자신이 선택하고 즐긴 남자의 몸이 "전리품 같다"고 느끼며 그 승리감을 즐긴다. ● 스무 살부터 노경민은 여성으로서 자신의 신체에 대한 예민한 인식을 드러내는 자화상 같은 누드화, 남성의 시선이 보는 여성의 몸, 남성의 손이 만지는 여성의 몸을 그렸다. 관습적 교육 때문에 섹스는 죄를 짓는 것으로 알았다. 섹스 때문에 남성으로부터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성적인 쾌락을 욕망하는 감정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붉은 방 그림의 초기에 "분출되는 욕망과 숨겨야하는 상처"는 혼재되어 나타난다. 이는 비록 남성의 몸이긴 하지만 여성으로도 보이는 중성적인 몸의 표현에서 나타난다. 여관방 벽에 힘없이 기대있는 마르고 수동적인 남성의 몸이나 긴 머리의 남성은 상처와 욕망사이에서 갈등하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 그러나 노경민이 혼자만의 방이라고 표현한 그 붉은 방에서 중성적 몸은 시간이 흐를수록 남성으로 변해간다. 최근 그녀의 그림에서 죄의식과 상처를 압도하는 욕망의 시선이 지배적이다. 붉은 방을 지배하는 욕망으로 가득 찬 여성의 시선이 명확해 지고 남성의 몸은 여성이 욕망하는 대상으로 확연히 변했다. 이러한 변화는 여성의 성에 대한 관습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경험에 의거해 욕망의 실체를 직면하는 변화를 보여준다. 욕망은 남성의 몸을 대상화 한다. 남성의 몸은 갖고 싶은 대상, 즐기고 싶은 대상이 된다. 그리고 작품의 대상이 된다.

노경민_호텔 리츠_장지에 수묵채색_61.5×93cm_2016

혼자만의 붉은 방에서 "정물이 된 남자는 갖고 싶었던 사물이 되고 곧 텅 빈 자신이 되어 나를 비춰보게 한다. 말할 수 없었던 말들은 나만의 공간속에서 허락되어 자유로운 노래가 된다." 노경민의 붉은 방에는 여성으로서의 상처도 고통도 묻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기억도 아련한 출발일 뿐이다. 텅 빈 방의 고독 속에서 자신은 명료해지고 자유로워진다. 이제 그 텅 빈 방을 채우는 것은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욕망 그리고 여성 작가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강한 욕망이다. ● 최근 노경민의 붉은 방 그림에는 작가로서의 욕망이 덧입혀지기 시작했다. 남성의 몸은 더 이상 나약하고 흔들리지 않는다. 동양화의 재료로도 단단한 덩어리감을 내고 있는 남성의 몸의 표현에서 남성의 몸에 대한 주제로서 대상화와 작가로서 거리두기가 느껴진다. 수년간 진득하게 연마한 주색과 장지의 질감과 물을 다루는 테크닉의 성숙도는 한층 깊어졌다. 초창기 붉은 단색조 그림에서 노란기와 탁함이 줄었고 먹의 흑색마저도 흡수하는 것 같은 투명도와 채도 높은 주색이 나오고 있다. ● 물기를 머금은 주색의 수많은 층이 만들어내는 붉은 색감은 유화나 아크릴 모노톤 그림에서는 볼 수 없는 노경민만의 독보적인 붉은 색이다. 여성의 성적 욕망을 솔직하게 직면한 노경민의 그림에는 이제 주색(朱色)의 대가가 되고 싶다는 작가의 욕망이 지배한다. 쾌쾌한 붉은 여관방을 박차고 나오더라도 그녀만의 방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주어진 욕망에서 나의 욕망으로 나아가는 노경민의 방을 기대한다. ■ 이필

Vol.20171031c | 노경민展 / ROGYEONGMIN / 盧京珉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