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송墨松, 소나무의 웅숭깊은 맛

백범영展 / BAEKBEOMYOUNG / 白凡瑛 / painting   2017_1103 ▶ 2017_1113

백범영_초설初雪_한지에 수묵담채_148×210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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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1103_금요일_05:00pm

2017 월전미술문화재단 지원작가 초대展

후원 / 이천시_월전미술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월전미술문화재단 한벽원 갤러리 WOLJEON MUSEUM OF ART HANBYEKWON GALLERY 서울 종로구 삼청로 83(팔판동 35-1번지) Tel. +82.(0)2.732.3777 www.iwoljeon.org

머무는 곳이 어디든 우리는 소나무가 자라는 강산에 살고 있다. 웬만한 산중에 들어가기만 해도 곧잘 우람하고 키 큰 소나무가 숲을 이룬 광경을 보게 되고, 바닷가 곳곳에는 해송(海松) 군락지의 송도성(松濤聲)을 듣게 된다. 그 풍경 그 소리는 속되고 번잡한 세상에서 지친 사람을 영혼의 밑바닥까지 시원하게 만든다. 고도(古都)의 유적이나 산중의 크고 작은 사찰, 그리고 연원이 오래된 서원(書院)을 찾을 때, 아직 건물이 보이지 않아도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쯤인지 낌새로 알 수 있다. 으레 쭉쭉 잘 빠진 소나무가 고고하게 늘어서서 신성한 세계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왔음을 멀리서 안내하기 때문이다. 명가의 고택 뒤편에는 대개 늠름한 소나무 몇 그루가 집을 지키고, 위인의 옛 무덤 주위에는 흔히 굽은 소나무가 숲을 이뤄 잡인의 접근을 막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백범영_기송奇松_숙선지에 수묵담채_46×70cm_2017
백범영_강서降瑞_숙선지에 수묵_137×70cm_2017

소나무는 경건하고 신비한 세계의 표지(標識)로 서 있지만 그렇다고 평범한 삶과 동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산촌에서 늦봄이 되면 소나무 숲에서 날아오는 송홧가루에 골골이 안개가 피고, 겨울이 되면 폭설이 내려 눈에 덮인 소나무가 가지째 찢어져 골짜기를 울린다. 사람들이 그런 산촌을 벗어나 도시에서 살게 된지 오래다. 그런데 십 수 년 전부터 도시에서도 소나무가 아파트 정원의 좋은 자리를 버젓이 차지하고, 거리에는 가로수로, 건물 앞뒤에는 조경수로 기세 좋게 서있다. 강산을 뒤덮은 소나무가 도시화된 세상 곳곳에 홀연히 등장한 것은 핏속에 서린 솔향기를 끝끝내 잊지 못한 본성의 발산일지도 모르겠다.

백범영_오송五松_숙선지에 수묵담채_110×70cm_2017
백범영_굴철屈鐵_숙선지에 수묵담채_70×69cm_2017

우리들 나무의 목록 맨 앞은 언제나 소나무 차지였었다. 소나무로 빽빽이 수놓인 강산에서 태어나 소나무 목재로 만든 집에서 소나무로 만든 온갖 물건을 쓰면서 살다가 소나무로 짠 관에 실려 소나무로 둘러싸인 무덤으로 갔었다. 양생송사(養生送死)에 요긴한 물건 중 소나무를 제일로 쳐서 조선 사람은 소나무 없이 살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산천의 주인으로 다른 나무를 꼽을 수 없다.

백범영_울창鬱蒼_숙선지에 수묵담채_70×69cm_2017
백범영_송림松林_숙선지에 수묵담채_70×46cm_2017

백범영 화백이 묵송(墨松)을 주제로 전시회를 연다. 전시회를 채우는 수묵화는 온통 웅숭깊은 맛의 소나무다. 오래 전부터 소나무는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했다. 그런데 배경에 세워놓고 그리곤 하던 소나무를 지금은 오로지 당당한 화폭의 주인으로 세워놓았다. 그림의 주객이 바뀌어 인물이나 산천이 이제는 소나무의 배경으로 밀려났다. 그림 속 소나무는 무리지어 서 있지 않고 한 그루나 기껏해야 서너 그루 서 있을 뿐이다. 소나무 하나하나의 자태와 생김새는 범상치 않은 야성을 지니고 있다. 강과 산의 터줏대감이자 자연의 본성 자체와도 같은 소나무의 품격이 생생하다.

백범영_신송Ⅱ神松2_한지에 수묵담채_46×37cm_2015

소나무 인물화를 그리는 화가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백 화백은 한 그루 한 그루의 소나무가 지닌 표정과 소리, 차림새와 몸짓을 읽어내어 각각의 오롯한 개성을 화면에 옮겨놓았다. 우리 강산 어디에선가 숨어서 저 생긴 대로, 되어먹은 대로 자리를 지키고 선 특별한 소나무를 불러내어 후조백(後凋伯)이나 하한후(夏寒侯), 또는 숙랭후(肅冷侯)와 같은 이름을 하나하나 붙여 관람자에게 소개하려는 듯하다. 이 소나무는 저 소나무와 다르고, 저 소나무는 또 다른 소나무와 달라서 그냥 뭉뚱그려 소나무라고 부르고 싶지 않을 심사다.

백범영_송풍松風_한지에 수묵담채_112×70cm_2015

백 화백은 수년째 소나무에 깊이 빠져 있다. 배낭을 메고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소나무를 만나고, 거기서 만난 소나무를 그림에 옮기고 있다. 왜냐고 굳이 묻지 않았으나 소나무 없이 살지 못하던 오래고 오랜 이 땅 사람의 습성이 백 화백의 발품과 손끝을 빌려 살아나오는 것이리라. 그렇게 소나무를 찾아다닌 지 몇 년 사이에 "송뢰(松籟, 소나무숲 사이를 스쳐 부는 바람)," "송운(松韻, 소나무의 그윽한 운치)"을 주제로 전시회를 가졌고, 해를 거듭할수록 그의 가슴에는 소나무의 성색취미(聲色臭味)가 생동한다. 최근에는 유독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소나무와 만나고 있다. 깊은 산중 어느 낯선 능선에 지금껏 아무도 보지 못한 기이하고 희한한 소나무가 서 있을지도 모르거니와, 낯설고 기괴한 노송을 만나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그 나무에 어떤 이름을 붙일지 생각하면서 서둘러 화폭을 꺼낼 백 화백이 떠오른다. 야생의 생명과 조우하는 백 화백의 표정도 낯빛도 갈수록 소나무와 닮아가고 있다.

백범영_묵송墨松_한지에 수묵담채_138×70cm_2017

몇 년 전 대학원 수업에서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을 강의할 때 백 화백이 수강한 적이 있었다. 그때 시와 그림의 다양한 품격을 함께 토론하면서 세상의 많은 사물에 스물네 개의 품격을 적용해 평가해보기도 하였다. 이제 나무에게도 그 품격을 적용하여 분류해본다면, 소나무는 그 꿋꿋하고도 고고한 기상으로 보아 '경건(勁健)' 쯤에 해당할 듯하다. 경건이란 품격의 특징을 『이십사시품』에서는 "천지와 더불어 경지를 나란히 하고, 대자연과 변화의 호흡을 함께 한다. 작품이 진실을 충분하게 지니도록 끝까지 넘치는 힘으로 통제한다.(天地與立, 神化攸同. 期之以實, 御之以終)" 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천지나 대자연과 생명의 호흡을 함께 하는 정신의 높이라면 백두대간 어느 능선에서 드물게 발견해낸 기이한 소나무에게 허용할 만한 품격이고, 넘치는 힘으로 통제하여 진실을 충분하게 지니도록 표현하는 점은 백 화백의 소나무 그림이 도달하고자 하는 경계이리라. 그때의 강의시간을 추억하면서, 소나무의 야성을 화폭에 펼쳐보려는 높고 원대한 정신의 높이와 예술적 단련의 심도가 날로 더해지리라 기대하며, 백두대간을 순례하는 백 화백의 거친 발걸음이 이와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2017년 10월) ■ 안대회

Vol.20171105g | 백범영展 / BAEKBEOMYOUNG / 白凡瑛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