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옷–화이트 캔버스 The Costume of Painter–White Canvas

배준성展 / BAEJOONSUNG / 裵准晟 / painting   2017_1101 ▶ 2017_1130 / 일,월요일 휴관

배준성_The Costume of Painter-doodling, window 2_ 캔버스에 유채, 렌티큘러_162.2×130.3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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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성 홈페이지_www.baejoonsung.com

초대일시 / 2017_1109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더트리니티 갤러리 THE TRINITY GALLERY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7길 18(옥인동 19-53번지) 1층 Tel. +82.(0)2.721.9870 www.trinityseoul.com

렌티큘러–가상과 현실 사이 ● 어릴 적 책받침 렌티큘러 이미지에 매료되고 신기하게 느끼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뿐일 뿐, 우리 대부분은 거기서 더 나가지 않고, 그 현상은 추억으로 묻힌다. 반면, 그런 현상을 대하면서 그 현상 자체가 어떤 객관적 원리로 일어나는지 설명해 보려는 사람은 과학자가 될 것이고, 그 이미지들이 지각적 환영이고 우리의 지각이 그다지 믿을 게 못 된다고 생각하며 영원한 보편적 진리를 찾는 사람은 철학자가 될 것이며, 그 감각 지각적 현상 자체에 강하게 매료되며 그것이 우리의 경험과 세계의 진실을 알려주는 것으로 직관하고, 이로부터 모종의 해석적 경험으로 이끌린다면 그는 예술가가 될 것이다. 예술가 배준성은 렌티큘러 현상이 알려주는 지각과 경험의 진실을 쫓아 이 지각 경험 자체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데 천착해 왔다. 그 결과 신기한 현상은 이제 높은 의미 밀도를 갖게 되었고, 특수한 사례는 지각 일반의 원리로 승인되었다.

배준성_화가의 옷–화이트 캔버스展_더트리니티 갤러리_2017
배준성_화가의 옷–화이트 캔버스展_더트리니티 갤러리_2017
배준성_화가의 옷–화이트 캔버스展_더트리니티 갤러리_2017
배준성_화가의 옷–화이트 캔버스展_더트리니티 갤러리_2017

예술가로서 배준성의 특별한 점은 하나의 특수한 경험의 본성을 감각적으로 선명하게 하는 데 탁월하다는 것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일반 원리로 확장해 갈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데 있다. 책받침 안에서 시작된 최초의 경험이 동일 시공간에 공존하는 한 이미지와 다른 이미지 사이에서 시작됐다면, 해석적 경험을 통해 확장된 렌티큘러 이미지의 두 극은 서로 다른 시공간의 이미지로 확장되어 왔다. 그래서 그에게 렌티큘러 이미지는 이미 지각과 경험의 시공간적 제약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예술적 장치가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바니타스 정물화 이미지는 이런 시공간적 확장을 매우 명료하게 보여준다. 현재의 시공간 속에 나타나는 화병과 꽃의 이미지는 언제는 17세기 네덜란드의 바니타스 정물화 이미지가 될 수 있다. 실은 이것이 우리가 사물을 지각하는 본래의 방식이다. 쇼윈도에 전시된 예쁜 옷은 한 대상으로만 지각되는 것이 아니라, 그 옷을 입고 있는 자신으로 겹쳐 보인다.

배준성_The Costume of Painter- 3 women on the balcony_ 렌티큘러_113.3×80cm_2017

렌티큘러 이미지의 매력은 그것이 우리를 가상 virtuality의 세계와 사물의 진실로 인도한다는 데 있다. 렌티큘러 현상에서 이미지의 점진적 변화 가운데 두 이미지 중 하나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고정되기 전까지는 다른 이미지가 공존한다. 하나의 이미지가 고정되면 다른 이미지는 거기서 완전히 사라지는가? 렌티큘러 이미지를 경험한 사람들은 사라졌다기보다 잠재적으로 거기에 있다고 느낀다. 현실화된 한 이미지에 다른 이미지가 잠재적으로 공존하며, 아직 나타나지 않은 잠재적 이미지는 우리가 관점을 조금만 바꿔도 현실화되려고 한다. 한 이미지에 다른 이미지가 잠재적으로 공존한다는 것은, 한 사건에 다른 사건이 공존한다는 것이고, 한 의미에 다른 의미가 공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잠재적 이미지, 사건, 의미는 단지 아직 나타나지 않을 뿐 가상의 세계, 그리고 그것과 나 사이에 있다. 잠재적으로 거기에 있는 것, 우리가 지각의 관점을 바꿀 때 관찰자인 우리 자신의 위치에 따라 다시 나타나는 이미지, 그런 현상은 정확히 오늘날 말하는 양자론적 가상과 홀로그램의 세계를 상기시킨다. 사물의 이미지는 지금 우리가 보는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더 근원적인 실재로부터 어떤 조건이 갖춰질 때 우리의 지각 사건에서 현실화될 뿐이다.

배준성_The Costume of Painter- self portrait in atelier_ 렌티큘러_106.6×80cm_2017

배준성의 렌티큘러 이미지는 현상(환영)과 실재라는 전통적 실재관을 잠재성과 현실성의 놀이로 전환할 수 있게 해준다. 소박한 실재론적 가정 속에 사는 우리는 감각적으로 선명하게 드러나는 현상이 실재 그 자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실은 렌티큘러 현상이 지각 사건의 본성이자 진실이다. 반대로 선명한 감각적 이미지 현상은 사물의 달리 될 수 있는 가능성, 사물의 유혹, 잠재적 가상의 세계가 우리의 관점, 위치, 필요에 의해 고정된 이미지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배준성의 렌티큘러 이미지는 이런 지각의 진실을 잘 알게 해준다. ● 감각적 현상에 매몰되어 있건, 아니면 이면의 형이상학적 가정 때문이건 우리에겐 고정된 이미지의 세계가 먼저이고 렌티큘러 이미지는 하나의 특수한 현상에 불과하겠지만, 배준성에게는 되려 렌티큘러 현상이 지각의 진실이고, 사물과 세계가 그에게 나타나는 방식이며, 그가 세계를 보는 방식이다. 그는 아마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우리의 경험 자체가 렌티큘러 현상이다.'이것이 그가 자신의 작품에 "화가의 옷costume of painter"라는 표제를 다는 이유이다. '화가의 옷'은 그가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이자 태도이고, 나아가 '가상'의 옷이다.

배준성_The Costume of Painter-Still Life with peaches, grapes on white tablecloth 3D_렌티큘러_70×70cm_2017

렌티큘러 현상을 통해 시공간적 제약을 벗어나면서 이제 그는 점점 더 형이상학적인 차원을 넘나들며 이미지를 다루고 있다. 그에게 이미 렌티큘러 이미지의 한 극을 이루는 것은 하나의 이미지가 아니라 가상의 세계이다. 예컨대, 이번 전시의 「The Costume of Painter – doodling, window1, 2」에서 웅크리고 앉은 아이가 보고 있는 세계는 아이를 유혹함으로써 현실화되기를 바라는 가상이다. 현실의 가시 세계가 충실히 반영되는 창의 역할을 했던, 전통적 의미의 캔버스는 배준성에게는 가상을 들여다보는 창, 가상을 현실로 옮겨오는 창이 되었다. 그것은 마치 가상과 현실을 오가는 차원의 문 같은 것이다. 전통 회화 캔버스에 렌티큘러 기법을 결합한 방식은 그 자체로 캔버스의 옛 미학적 의미를 대체해 버린다. 들뢰즈는 『감각의 논리』에서 이제 막 그림을 그리려는 화가가 마주한 텅 빈 '화이트 캔버스'가 전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소녀에게도, 또 화가 배준성에게도 캔버스는 끄적거림만으로도 언제든 출현하기를 바라는 가상의 세계가 홀로그램처럼 충만하게 투영되는 공간이다. 렌티큘러 현상의 의미를 가상의 세계로까지 확장한 후 이제 그의 예술은 예술 일반의 행보를 따라 감각과 지각의 형이상학이 되어 갈 것으로 보인다. ■ 조경진

배준성_The Costume of Painter-Still Life with peonies 3D_ 렌티큘러_70×70cm_2017

화가의 옷Ⅰ ● 나의 그림에 달린 제목은 "the Costume of Painter" 으로 시작된다. 이는 화가가 그리는 옷이란 뜻이기도 하며 동시에, 화가의 눈에 의해 파생된 어떠한 특정한 레이어라는 의미를 공유하기도 한다. 예전부터 화가가 모델을 눈으로 더듬거리며 그릴 적에 화가의 눈에 의해 그려진 그림이 또다른 모델을 탄생시킨다고 믿었다. 하지만 화가의 자의성 언저리에서 그려진(만들어진) 모델은 화가에게 역으로 다시금 새로운 그림그리기를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는 화가가 그리는 그림의 물리적, 심리적 시간에 의해 발생한다. 결국 나의 "화가의 옷"은 화가가 그리는 옷이 아니라 옷을 그리다가 발생하게 되는 화가의 별안간의 사건을 의미한다.

배준성_The Costume of Painter-Still Life with camelias, blue vase 3D_ 렌티큘러_70×70cm_2017

렌티큘러 ● 어릴 적 책받침은 나에게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초등학교 6년을 거의 서기부장으로 지낸 나로서는, 글쓰기를 주무기로 삼았던 나로서는, 당시 나에게 책받침이란 것은 다른 친구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존재감을 주는 그 무엇이었던 것이다. 그러하기에 나는 적어도 3, 4가지 정도의 책받침을 항상 보유하고 있었다. 승부에 예민했던 내가 당시 그렇게도 유행했던 책받침 깨기를 단 한번도 참여해 본적이 없을 정도로 책받침은 나의 보물이었으며, 나의 자존심이었다. 이렇게 내가 소중히 여기는 책받침들 중 그중 최고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스마일마크가 정 가운데 보란 듯이 노란빛깔을 띄며 웃고, 또 우는 이른바 "변신 책받침"이었다. 이것이 어릴 적 렌티큘러(lenticular)와의 첫 만남이었다. ■ 배준성

Vol.20171105i | 배준성展 / BAEJOONSUNG / 裵准晟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