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령 / Watershed

정재철展 / JEONGJAECHOUL / 丁宰澈 / installation.sculpture   2017_1108 ▶︎ 2017_1201 / 일요일 휴관

정재철_관악청계분수령도 Map of Watershed-Gwanak Cheounggye_장지에 수묵채색_150×210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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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1108_수요일_06:0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7:00pm / 토요일_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금산갤러리 KEUMSAN GALLERY 서울 중구 소공로 46(회현동 2가 87번지) 쌍용남산플래티넘 B-103호 Tel. +82.(0)2.3789.6317 www.keumsan.org

Living like a Local ● 1. 정재철의 작업은 인간 삶의 온기와 열정을 머금은 살아 있는 삶의 풍경이자 결정체다. 주어진 생을 살아내는 풍경 속 생활 주체들의 세세한 삶의 표정이 보인다. 어디선가 그들이 웃고 울며 다투며 살아가는 생활 소리도 들린다. 특정 시공의 어제와 오늘을 길항하며 그들의 삶을 삼투해나가는 정재철 특유의 현재 진행형 프로젝트가 지닌 몇몇 주요 특징이라 하겠다. 정재철의 작업은 다분히 공감각적이며 각각의 삶의 풍경이 내포하고 있는 생생한 기운을 오롯이 품어 안고 있다. 조사, 연구, 답사, 발굴, 보고서 형식으로 시작, 진행, 마무리되는 현재완료형의 지적 생산물이기도한 그의 작업은 조형적, 인문학적 방식 등 직간접적으로 가능한 모든 방식의 접근과 해석이 종합적으로 적용, 개입된 살아 있는 생활풍경이다. 특히 문화인류학적인 관점과 시점(視點)으로 담아내거나, 재현, 복원한 특유의 예술적 호흡이 두드러진 지적(知的) 결과물이라 하겠다. ● 지난 수년 동안 이어온 정재철의 이런저런 작은, 진지한 여정은 열린, 커다란 세상을 향한 과거와 미래의 총체적, 통섭적 기록이자 지향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지속적, 단속적으로 점철해온 수많은 만남은 현재적 삶을 살아내는 현지인들의 보통의 삶 속에 내장되어 있는 가치와 의지를 허구와 실록의 형식으로 풀어낸 역사드라마, 혹은 다큐멘터리적 예술형식으로 표출, 분출되었다. 정재철의 작업은 보통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특별한 삶의 기록과 표정을 우회적/직접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가설구조, 혹은 실화인 것이다. ● 예술의 어원이 그러하듯 정재철은 경작을 하듯 삶의 터를 갈아낸다. 쟁기가 아닌 몸과 마음으로, 그만의 예술로 삶의 텃밭을 갈고 일군다. 철저하게 물리적, 정신적 터에 기초한 그의 작업은 일종의 인문학적 농사이자, 그 결과물이다. 그것은, 물론, 일반 농사와는 다른 예술적 과정이자 결과물이지만, 터를 중시하고 그들의 호흡을 존중하며,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자신을 녹여낸 경작 행위의 기록이자 추수의 결과물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렇듯 정재철의 작업은 경작인으로서의 농경의지가 투영된 예술적 수확이자 생활용품이다. 앞서 말했듯 그의 작업에서 이런저런 삶의 소리와 생활의 냄새가 묻어나는 이유다. ● 정재철은 탐사를 통해 만난 사소한 사물로부터 거주민들의 주거공간에 스민 풍상과 생명의 기운, 결, 호흡, 그들의 몸짓을 따르며 그곳의 정신적 시원을 향해 힘 있게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적 삶의 탯줄과 연원을 현지에서 주운 사물들을 통해 풀어내고 새로운 예술적 의미와 비전을 부여한다. 유목민처럼, 이주와 정주를 반복하며 그 과정에서 원주민들이 오랜 시간 경험하고 목도했을 삶의 질곡을 두드리고 파헤치며 탐색하는 것이다.

정재철_분수령 / Watershed展_금산갤러리_2017
정재철_분수령 / Watershed展_금산갤러리_2017
정재철_분수령 / Watershed展_금산갤러리_2017

2. 정재철은 공간의 조형적 해석보다는 문화인류학적, 고고학적 해석과 분석에 보다 관심을 둔다. 특히 삶의 공간, 즉 '터'에 대한 관심을 풀어냄에 있어 그러해 보인다. 터가 지닌 물리적 지형보다는 공간에 내장된 내재율과 역사적, 심리적 표정 등을 즐겨 살핀다. 이러한 접근방식, 또는 태도는 본디 전공이었던 조각의 고유어법에 대한 발전적 확장의지로부터 비롯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가 작업을 비조각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든, 전통적인 조각술로 깎아내든, 빚어내든 결과적으로 그러하다. 작업이 진화하면서 자연스레 시간이라는 개념이 더해졌다. 차츰 주변의 다른 지역과 시공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갔다. 정재철은 그곳으로 가서 거기에 자신을 직접 세우고 개입시켰다. 표피적으로 몸을 입히거나 더하지 않고 살(肉)과 맘(靈)으로 그곳 거주민들의 삶을 직접 만나는 답사, 실사, 현장 탐사 등의 방식과 태도로 그들의 시공을 따라 들어갔다. 생활주변을 살피면서 시작한 그의 관심이 세계의 오지 구석구석을 탐하게 된 것도 이러한 집요한 관심으로부터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 정재철은 오랜 시간, 그러나 꾸준하게 다양한 방식의 경로를 통해 오지의 주민들과 접촉했다. 마치 우주의 특별 사신이라도 된 듯 말이다. 그가 세계 이곳저곳을 방문할 때의 예술가로서의 태도와 복장은 언제나 단출했으며 그의 지적 호기심과 편안한 미소는 그들의 일상과 삶에 부드럽게 스미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지난 작업여정의 대부분을 수많은 나라와 민족, 소수민족 등을 만나고 기록했다. 일정 기간 머무르며 그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마음으로, 눈으로 맞닥뜨리고 가슴 깊숙한 곳에 그들의 온정을 고이 담았다. 현지에서 주운 오브제와 버려진 것들을 활용해서 일종의 현지 베이스 캠프와도 같은 공간을 만들고 머무르기도 했다. 심지어 그중 일부를 재활용해서 옷을 만들어 입기도 했다. 그들을 이해하고 진정으로 동화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이었다. ● 기발하고 진정어린 그의 발상과 생각은 삶의 풍경에 대한 관성적인 접근과 선입견으로부터 벗어나 현지인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삶의 풍경을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비롯하는 것이었다. 정재철의 작업이 단순 관광객의 시선이 아니라, 그들과 일정기간 삶을 함께 하며 받아들이고 풀어낸 체취와 연출되지 않은, 생방송에 가까운 생생함이 두드러지는 이유인 셈이다. 정재철은 진정 현지인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며 그들과 그곳의 생활상을 채취, 삼투했다. 때론 이방인, 관찰자로서 피할 수 없는 작가의 경험과 솔직한 고백도 더해졌다. 현지인들의 삶의 표정과 체취, 진솔한 풍경이 배어 있는 그의 대부분의 작업이 논픽션에 가깝거나 르포르타주적인 특징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의 작업은 실제 경험과 삶에 근거한 그럴 듯한 조형적 이야기, 개연성을 가득 담은 일종의 팩션(faction)이다. 이러한 형식틀을 작업의 툴(tool)로 해서 지금까지의 예술적 결과보고서와 보고전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정재철_시간의 씨앗_백자_가변설치_2017
정재철_시간의 씨앗 2 Seeds of Time 2_백자, 박스 등_38×47×17cm_2017

3. 그가 이번에 선보인 『분수령』전도 그러한 맥락으로 이해된다. 다만 이번 분수령은 작가 자신의 지난 생활터와 현재의 시공을 모티프로 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철저하게 자신의 체험과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와 실재를 현재적 시점으로 길어 올린 지난 작업과 특별히 다를 바 없다. 일찍이 자신을 둘러싼 주변 시공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작가 정재철. 이번 전시는 특히 자신이 거주했던 시공과 그곳 지역의 형성과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이런저런 변화에 대한 관심을 작업공간을 중심으로 풀어내었다. 개인의 지난 작업여정을 작업실과 그것이 위치한 지역에서 채집한 물리적 오브제와 심리지형을 모티프로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 전시장 초입에 걸린 '분수령도(分水嶺圖)'에는 과천을 시작으로 현재의 작업실에 이르기까지 이어온, 작업에 대한 이런저런 지향을 나누고 공유했던, 같은 지역 내 동료작가들의 작업공간이 비교적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정재철의 분수령은 멀리 그리고 높은 곳에서 부감으로 내려다보며 자신의 과거, 현재를 담아낸 분수령도를 시작으로 그곳에서 직접 채집한 실제 돌멩이와 드로잉, 백자성형의 날카로운 오브제 그리고 지역민을 인터뷰한 영상작업 등으로 이어졌다. 정재철은 자신이 거주하며 작업했던 동네를 거닐며 이런저런 돌멩이들을 수집했다. 오래전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삶과 삶의 터전을 일궈낸 선인들의 체취와 흔적을 돌아보고 추체험하기 위함이었다. 잘생긴 돌멩이를 골라내거나, 무작정, 무작위로 수집했다기보다는 실제 농경활동과 목축활동 등에 있어 특정 목적을 가지고 사용되었다고 추정될 만한 것들을 골라내고 분류하고 추적했다. ● 정재철이 선별한 상당량의 돌멩이 대부분은 표면 여기저기 다양한 날카로운 타격흔(打擊痕)을 보이지만, 대체로 공격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가 이들을 만나는 과정이나 실물을 기록하는 과정도 그러했지만, 각각의 돌멩이들은 도구로서의 본래 기능만이 강조되어 있지 않았음이다. 본디 가지고 있었거나 자연스레 형성된 표정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생이 그러하던, 아님 타율에 의해 지금의 표정을 간직하고 있던, 정재철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연스런 표정, 덩어리감을 존중했다. 돌멩이를 실물 그대로 제시하든, 드로잉의 형식으로 기록하든 그러했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속살을 드러낸 돌멩이들이다. 어쩌면 도처에서 그저 쉽게 만날 수 있는 그저 그런 돌멩이일 수 있다. 그러나 정재철에겐 달랐다. 아무도 특별히 관심을 주지 않았던 그들에게 눈길을 주었고 이내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그저 아무렇지 않게 나뒹구는 그런 그들의 속내가 궁금했다. 아니 그들이 작가에게 먼저 말을 걸어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힘들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고 있는 이들 상호간에게서 동병상련의 기운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 정재철은 자신이 채집한 돌멩이들에게 일일이 이름을 붙여 주었다. 명명했다. 박물관학에서 볼 수 있는 발굴 후 채집의 기록이다. 사실 새로울 것도 없다. 정재철의 기존 작업방식이 가지는 공식적이고도 별난 특징일 뿐이다. 수집병, 아니 의사고고학자로서의 발굴의 기록이자, 발품의 역사(役事)를 기록하는 당연한 수순일 뿐이다. 삶과 삶의 터전 그리고 수많은 풍상을 목도하고 견뎌낸 이들 돌멩이가 가지는 삶의 기억에 대한 애지적 관심일 것이다. 정재철의 지난 작업에서 만날 수 있었던 타지에서 만난, 타인의 삶의 기록, 조형적으로 풀어낸 삶의 풍경이 또다른 시선과 관심으로 수평 이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음이다.

정재철_드로잉 KGG 701-1,2,3 Drawing_장지에 수묵채색_75×70cm_2017
정재철_시간의 씨앗 1 Seeds of Time 1_가변설치_2017_부분

4. 작업실 이전에 따른 시공의 변화는 작업의 태도에 있어, 자신의 삶을 이해함에 있어 하나의 전환이었다. 또다른 전환의 모티프는 국토의 중심이라 불리는 강원도 양구, 방산 지역 도자박물관에서의 경험이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이곳에서의 경험은 정재철이 그동안 관심을 가져온 지난 작업이 한단계 성숙하고 성장하는 계기가 된 직접적인 동인이자, 성취동기가 되었다. 평소 유목 과정과 이방인의 시각을 견지해온 작가의 입장에서, 본인이 반(半) 현지인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낯선 시선으로 객관화하여 보고자한 것이다. ● 방산에서의 레지던스는 기존 타제/마제석기로서의 돌멩이 수집으로부터 이들 도구를 얻기 위해 직접 손으로 빚고 유약을 발라서 굽고 만들어내는 백자성형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도입을 가능하게 했다. 본인이 직접 도구를 사용하는 석기시대의 사용자 입장이 되어 형식과 기능을 강조한 도구를 제작하는 경험을 한 것이다, 특정 기능을 강조, 왜곡하다보니 결과물은 전반적으로 과다한 공격적 형태를 보인다. 평소 수집했던 돌멩이의 표정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작가 자신이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서 그들의 입장에서 연장을 쥐어보고 뭔가를 자르거나 발라내는 등의 의사시연한 결과다. 두가지 경우 모두, 같은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타격흔이나 특정 기능을 부여했다고 가정할 때 자연을 존중하며 최소의 기능을 더한 결과와 지나치게 과도한 기능을 인공적으로 부여한 결과의 차이가 극명해 보임을 알 수 있다. ● 관악산, 청계산에서의 현실작업공동체와 그 속에서 빚어낸 생활사 그리고 방산에서 만난 역사와 과거, 민족의 상처와 비극 등 우리 모두가 알고 있고 잊고 있는 타율에 의한 한민족의 비극과 인위적 분단의 역사가 대비되기 시작했다. 전장(戰場)과도 같은 자신의 작업공간과 동족상잔이라는 민족의 비극 터, 전쟁의 현장을 함께 유비적으로 풀어보고자 했다. 사라지는 현장, 기억이 대비를 이루며 빛을 보는 순간이다. 그의 작업이 하찮은 사물이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새로운 역사적 의미를 부여받는 의사고고학적 특징을 보이는 이유다. 허구와 실제가 적절하게 결합한 일종의 의사실록으로 읽히는 이유도 이러한 맥락에서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 정재철은 결과물이라는 창작물에 방점을 찍기 보다는 자신의 예술지향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토대와 정신적 지평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방랑했다. 그의 손에 항상 지도가 들려 있는 것도 그러한 긴장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로 보인다. 그가 직접 그려낸 지도는 더욱 매력적이다. 발로 밟으며 확인한 살아 있는 호흡이 느껴진다. 인공적이고 차가운 디지털 지도가 아니라, 자신의 땀과 숨이 배어 있는 따스한 인간적인 종이지도다. 그만의 지도를 읽어내는 데 있어 정해진 독도술은 필요 없다. 오늘도 정재철은 수년간 세태에 물들지 않은, 혹은 세태를 반영한 사물들을 채집, 얹어 놓은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삶의 터전, 삶의 언저리, 삶의 가장자리를 돌고 돌아, 때론 우회하며, 때론 관통하며 세상으로 나아간다. ● 정재철은 세상이라는 커다란 지도 위에 종종 물리적/심리적 입체 구조를 만든다. 그것은 집의 모양이기도 하고 일시적인 삶의 공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특유의 형식틀이라 할 수 있으며 그것은 일종의 의사고고학적 틀이다. 이러한 정재철의 작업은 현장 중심의 행동주의적 미술형식에 대한 연장선상에 있어 보인다. 일부 오브제에는 현장에서 채집한 씨앗을 설치하여 미래에 부활할 것을 염원하거나 결코 사라지지 않을 그 무엇을 강조하기도 한다. 의식이자 제사, 제례로 보인다. 이러한 퍼포먼스는 작가의 인문학적, 고고학적, 문화인류학적 태도와 시선의 결합체로 생각된다. 작가의 통시적, 공시적 시점과 태도, 이해가 결합된 지적, 예술적 결과물에 다름 아니다. 실로 오랜 시간 오지와 벽지를 떠돌며 밟고 만나며 새긴 일종의 심문(心紋)일 수 있다.

정재철_박수근 자르개 외 9장의 드로잉 Drawings_종이에 연필_30×40cm×10_2017

5. 정재철은 방대한 자신의 물리적/심리적 수집품을 전시라는 틀 속에서 더욱 유의미한 형식으로 발전시켰다. 이번 분수령 전시 역시 돌멩이를 메인으로, 드로잉과 사진, 영상, 몇몇 새로운 설치물 등을 함께 전시했다. 고고학적 유물 발굴 보고전 형식을 취했다. 기존 르포르타주 형식의 작업과는 유사점과 차이점도 있으나, 크게 보아 연장선상에 있어 보인다. 정재철은 자신의 실제 경험과 체험적 관점을 중심으로 이번 생과 세상사를 풀어내지만, 이를 개인적인 관점에서 독점하지는 않는다. 독점적 세계에 가두지 않고 타인과 공유하고자 노력한다. 다원적인 삶의 표정과 그들이 추구했던 가치를 추체험할 수 있는 열린 기회를 제공한다. 그가 담아낸 삶의 풍경은 함께하고 함께 나누는 다원적 삶의 풍경인 셈이다. 이번 분수령 전시는 정재철의 그러한 의지의 일단을 확인하는 또다른 기회가 될 것이다. ● 작업실 주변에서 만난, 주운 돌멩이는 정재철 자신의 삶과 작업의 여정을 살피고 돌아보는 또다른 계기가 되었다. 저마다 다른 표정과 속사정을 간직한 돌멩이와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정재철은 자신이 경험한 인생의 타격흔, 심리적 상흔을 반추하고 지켜보았다. 지금까지 그러했듯 정재철은 자신의 생각과 의도, 결과를 선언적 개념으로 존치시키지 않았다. 끊임없이 몸을 들어 육화시키고 그것을 작업과 전시라는 형식으로, 마치 보고서와도 같은 형식의 생생한 실천적 담론으로 치환하여 이어왔다. 오늘날 정재철 작업의 의의와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 후반생에 접어든 정재철, 여전히 애정하는 삶의 터전과 풍경, 낯선 곳에서의 생활과 그들의 삶을 힘껏 삼투하고 있다. 흔들림이 없다. 다양한 변주를 보이지만, 지난 작업의 지속적이고도 연속적인 연장선상에 우뚝 자리하고 있다. 부드럽고 힘 있게 슬쩍, 훌쩍 이런저런 분수령을 넘은, 지나온, 건너온 정재철의 유연한 호흡이 오래토록 이어지길 바란다. ■ 박천남

정재철_시간의 씨앗 3 Seeds of Time 3_표본병, 씨앗 등_가변설치_2017

"공간과 장소 그리고 시간과 기억"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진행되어온 작업의 일환으로, 한 공간이 우리의 삶과 관계 맺으면서 추억과 기억으로 재생산되고 장소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살피고 드러내고 있다. 나의 작업은 "과천 관악산 자락의 갈현동 가루개 마을"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이 마을은 원래 농촌이었으나 정부종합청사가 들어서면서 작은 논밭들은 비닐하우스들로 바뀌고, 집들은 80년대에 새롭게 지었으나 이제는 도시외곽의 낡고 오래된 마을이 되어 재개발지역이 되었다. 이 마을에서 오랫동안 작업하면서 마을의 역사에 관해 관심을 가졌고, 대대로 이어져온 주민들의 삶이 이 마을의 장소적 특성에 어떻게 녹아 관계 맺고 있는지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마을을 자주 산책하면서 논두렁과 밭두렁 주변에 나뒹구는 많은 돌들과 씨앗들을 수집했다. 이 돌들에는 수많은 타격흔적이 있었다. 아마도 유사이래부터 해를 거듭하면서 계속되어온 경작에서 땅과 사람이 만들었으리라 생각된다. 이러한 마을 주변에서 수집된 사물들을 통해 유구한 시간의 궤적과 인간의 흔적을 상상해보고, 그 상상을 바탕으로 형태적 재해석을 시도해 보았다. 또한 주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장소(마을)에 서려있는 기억을 발굴하고 드러내는 작업을 하였다. 이 마을 뒷산은 분수령이다. 고개는 낮고 작지만 한 쪽으로 흐르면 안양천에 이르고, 다른 쪽으로 흐르면 양재천을 지난다. 지금 맞고 있는 마을의 또 다른 전환점의 상징처럼 드러나 있다. 강원도 양구에 방산이라는 마을이 있다. 그 마을 앞으로는 금강산에서 발원한 수입천이 흐른다. 뒷산은 누구도 오고 갈 수 없는 휴전선이다. 그 마을은 조선시대엔 백자로 유명했고, 지금은 백자박물관이 있다. 같은 방법으로 이 마을을 살피고, 박물관에서두 장소를 관련하여 백자로 작업했다. 나는 금번 개인전을 통해서 이 마을들을 중심으로 시간과 공간, 때와 장소, 삶과 역사, 흔적과 기억을 의사고고학적 방법으로 발굴하듯이 드러내어 공간이 삶과 만나 장소로 성장해가는 과정과 그 상태를 답사, 기록, 수집, 인터뷰 등의 방법으로 현장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드로잉, 영상, 설치의 방법 등으로 작업하였다. ■ 정재철

Vol.20171108c | 정재철展 / JEONGJAECHOUL / 丁宰澈 / installation.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