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도하 風竟渡河: 바람이 마침내 물을 건너네

최은경展 / CHOIEUNKYUNG / 崔殷京 / painting   2017_1115 ▶︎ 2017_1128

최은경_여름_캔버스에 유채_146×112cm_201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51217h | 최은경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_서울특별시_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6:3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물신화되지 않은 본래의 그림, 그림의 '원형'은 어떤 형태일까? 혹여, 어른이 되면서(주체로 불리면서) 잃어버려야 했지만, 온전한 내가 되기 위해서 다시 찾아 조우해야만 하는 '잊혀진' 나의 (원)얼굴은 아닐까. 종이 모서리 같은, 종이 한 장의 앞, 뒤 두 면을 가르면서도 한데 붙들고 있는 종잇장 모서리의 구조 같은 형태의 얼굴. ● 무릇, 생김이 없으면서도, 이를 데 없이 마땅히 그러한 것을 일러 '바람'이라 한다.

최은경_실개천의 밤_캔버스에 유채_112×162cm_2017

비망록 1 ● 다 키워놓은 장정 아들 가슴에 묻은 아비 꿈을 꾸네. 한낮에 아이가 된 아들 주렁주렁 콩 넝쿨 한 아름 안고 찾아와 생시 좋아했던 국수 말아 달라 하더니, 멀거니 아린 눈 손 뻗어 안을 겨를도 없이 콩 넝쿨째 문바람 앞에 놓고는 그만 가버리네. 그 아비 맨발로 달려 나가 먼 산 끝없는 하늘 쳐다보며 온데 간데 기척도 없는 이 무정한 아들아 꺼이꺼이.

최은경_공터의 어스름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7

비망록 2 ● 아이(eye/I)가 집 앞 골목에서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다. 지나가던 나는 뭘 찾느냐고 묻는다. 아이는 집 열쇠를 찾는다고 말한다. 나도 아이와 함께 열쇠를 찾아본다. 주변을 아무리 뒤져도 열쇠는 나오지 않는다. 한참 후 아이에게 묻는다. "열쇠를 잃어버린 곳이 여기가 맞는 거니?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는구나." 아이는 대답한다. "그렇죠. 열쇠는 집안에서 잃어버렸으니까요."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그럼 안에서 찾아야지 왜 여기서 찾는 거지?" 아이는 무심한 듯 공(空)한 눈으로 말한다. "어떻게 아득한 꿈의 기억 속에서 찾을 수 있겠어요."

최은경_폭설 후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16
최은경_한낮에 여수_캔버스에 유채_112×146cm_2017
최은경_서해_캔버스에 유채_112×146cm_2017

비망록 3 ● 그림이 글을 쓴다. 보이기 시작한다, 라고. 의미는 잘 모르겠는데 의미라면 언제나 고질적인데, 치고 빠지는 노련함은 몰라도 그러니까, 사이사이의 쉼과 머뭇거림, 또 그 어딘가로 나아가려는 설레는 떨림 같은 게 나를 건든다, 라고 적는다. 그림이 글로 말을 적는다. 그러자 글과 글 사이로 행간이 빠져 나온다. 말 없던 표면인 행간은 써진 글속에서 그것은 그것으로 거기에 있는, 그저 그런 표면이었을 텐데. 그러나 그런 행간, 그것까지는 끝내 받아 적지는 못했다, 라고. 지금에서야 그림은 앞으로 남은 나날들에게 그렇게 소회한다.

최은경_진도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17

비망록 4 ● 현상학적 기억이란, 신神 몰래 따로 떼어 놓은 것. 신에 대한 무위無爲. 봄seeing은 우리의 몸보다 훨씬 가벼워 시간보다도 더 잽싸게 형상의 덜미를 잡는다. 그러나 어쩌면 몸은,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시간에 튕겨져 저만치 나가떨어지고 생채기가 난다. 미련도 그런 미련은 없어 화를 불러 덧난다. 덧나고 덧난 자리가 흥건하게 번져 나간다. 돌발적인 방향. 역류한다. 마음까지 가 닿는다. 시리고 멍든 마음, 일렁이다 요동친다. 이내, 무쇠 같다가도 물 같고, 물 같다가도 공기 같아, 숨을 쉰다. 이젠 몸도 안다. 저절로 안다. 마음까지 알아 버린 몸. 여하간, 아무리 아니라 해도 그냥 다 알아 버린 몸, 그런 몸의 기억.

최은경_장항 1_캔버스에 유채_90×130cm_2017 최은경_장항 2_캔버스에 유채_61×73cm_2016

비망록 5 ● 이후, 그가 말했다. "한낮에, 하나는 둘로 변했다" 고. 그는 나에게 화두를 던져 주었다. 종이 한 장의 앞뒤 두 면을 가르면서도 한데 붙들고 있는 종잇장의 모서리. 오직 그 모서리로만 존재하는 그것을 언어로 설명하거나 묘사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나의 몸을 감싸고 흐르다 안으로 들어와 스몄다가 일렁이고 꼬물거리며 밖으로 나오는 농밀한 그것을, 어떻게? ■ 최은경

Vol.20171115k | 최은경展 / CHOIEUNKYUNG / 崔殷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