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사 5 - 버려지고 잊혀지는 국민들

송용민展 / SONGYONGMIN / 宋容旻 / painting   2017_1116 ▶︎ 2017_1130

송용민_버려지고 잊혀지는 국민들_ 캔버스에 유채_각 45.5×37.5cm(전체 153×730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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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1116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01:00pm~06:00pm

대안공간 무국적 MUGOOKJUK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27길 74(서교동 347-19번지) Tel. +82.(0)10.2332.1291 www.mugookjuk.com facebook.com/mugookjuk www.instagram.com/blurismine

국가폭력에 의하여 자행된 수 많은 만행들,,,, 국민바위군사건, 거창양민학살,노근리학살사건, 보도연맹사건, 4.3 제주 항쟁 등,,,,

송용민_버려지고 잊혀지는 국민들_ 캔버스에 유채_각 45.5×37.5cm(전체 153×730cm)_2017

국민방위군 사건 ● 국민방위군사건 1·4후퇴 시기 방위군 예산을 국민방위군 간부들이 약 25억 원의 국고금과 물자를 부정 착복함으로써 야기된 것이었다. 식량 및 피복 등 보급품을 지급하지 못하였고 방위군 수 만여 명의 아사자와 병자를 발생시켰다. 이 사건으로 신성모 국방장관이 물러나고 이기붕이 그 후임으로 임명되었으며, 사건의 직접 책임자인 김윤근, 윤익헌 등 국민방위군 주요 간부 5명이 사형 선고되었다. 대한청년단은 1953년 9월 10일 이승만의 명령에 의해 공식 해산되었다.

송용민_버려지고 잊혀지는 국민들_ 캔버스에 유채_각 45.5×37.5cm(전체 153×730cm)_2017
송용민_버려지고 잊혀지는 국민들_ 캔버스에 유채_각 45.5×37.5cm(전체 153×730cm)_2017

거창 양민학살사건 ● 1951년 육군 제11사단 9연대가 '견벽청야(말썽의 소지가 있는 곳은 초토화시킨다) 작전'에 따라 공비와 내통했다는 이유로 경남 거창군 신원면 지역 양민 700여 명을 모두 모아 마을 뒤 산골짜기에서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이 국회에서 거론되자 이승만 정권은 1951년 파견된 국회조사단을 거창 신원면 입구에서 당시 계엄 민사부장이던 김종원을 시켜 기총소사를 퍼부으면서 조사 자체를 무산시키려 하였다. 이후 들끓는 여론에 밀려 관계자 3명을 사형 등 사법처리하는 선에서 마무리했으나, 몇 개월 후 이들은 모두 사면받고 복권됐되었다. 유족들은 다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주민들이 나서서 유골을 모아 위령비를 세우고 묻었으나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한 언급 금기를 명하고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을 탄압했으며 묘지도 개장령에 따라 다시 파헤쳐졌다. 또 박정희 군사정부는 거창 양민학살 사건의 유족들과 유족회 간부 18명을 반국가단체 조직 혐의로 구속하기도 하였다. 유족들은 1988년이 되어서야 희생자 위령 궐기대회를 갖고 위령비를 다시 세울 수 있었고, 1996년 국회는 명예회복에 대한 특별조치법을 통과시켰다.

송용민_버려지고 잊혀지는 국민들_ 캔버스에 유채_각 45.5×37.5cm(전체 153×730cm)_2017
송용민_버려지고 잊혀지는 국민들_ 캔버스에 유채_각 45.5×37.5cm(전체 153×730cm)_2017

노근리 학살사건 ●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26일 미군이 노근리 경부선 철로 위에 영동읍 주곡, 임계리 주민 500여 명을 '피난시켜 주겠다.'며 모아놓고 무스탕 전투기로 기총 소사한 사건이다.당시 미군 전투기의 폭격을 당한 피난민들은 철교에서 뛰어내려 굴다리(노근 쌍굴)로 숨었으나 미군은 굴다리 앞 야산에 기관총을 걸어놓고 29일까지 굴다리를 빠져 나오는 양민을 차례로 쏘아 죽였다. 이 사건으로 영동군청에 신고된 피해자 수는 사망 177명, 부상 51명, 행방불명 20명 등 248명이다. ■ 송용민

Vol.20171116m | 송용민展 / SONGYONGMIN / 宋容旻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