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거나 낮지 않은 것

권성운展 / KWONSUNGWOON / 權星雲 / painting   2017_1122 ▶︎ 2017_1128 / 일요일 휴관

권성운_무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30×162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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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1122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최정아 갤러리 CHOIJUNGAH GALLERY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94(상수동 72-1번지) 홍익대학교 홍문관 로비 Tel. +82.(0)2.540.5584 www.jagallery.co.kr

의미 없음과 의미 있음의 경계에서 ● "저마다의 일생에는, 특히 그 일생이 동터 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다시 찾아내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다른 수많은 순간들의 퇴적 속에 깊이 묻혀 있다. 다른 순간들은 그 위로 헤아릴 수 없이 지나갔지만 섬뜩할 만큼 자취도 없다. 결정적 순간이 반드시 섬광처럼 지나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유년기나 청년기 전체에 걸쳐 계속되면서 겉보기에는 더할 수 없이 평범할 뿐인 여러 해의 세월을 유별난 광채로 물들이기도 한다." (장 그르니에, 『섬』 중에서)

권성운_눈길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30×162cm_2017

누군가의 삶에서 반짝이는 순간을 발견하는 일은 행복한 일이다. 그 반짝이는 순간은 하나의 대단한 사건일 수 도 있지만 아주 일상적인 순간에서 경험되는 경우가 많다. 나와 아무런 관련 없이 우연히 지나가는 타자의 표정에서 마주할 수 도 있다. 공공의 장소에서 모르는 사람의 웃음에 덩달아 웃음 지어지는 순간처럼……. 메를로 퐁티는 이런 반짝이는 순간의 마주함을 모든 예술가들이 느끼고, 어느 때는 자연(타자)이 먼저 화가들을 보는 순간이 모든 예술가들에게 있다고 했다. 현대미술이 지금보다 더 진보의 이름으로 우리와 멀어진다 할지라도 본인 또한 화가(예술가)들의 행복은 이런 반짝이는 순간을 경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권성운_엄마무릎 별자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90×117cm_2017

진정한 반짝임은 물질의 소멸과는 거리가 멀며 자연과 사람에서 발생된다. 반짝이는 햇살을 발견한 사람들은 행복해하고 햇살을 자신의 체온에 담으려 한다. 사람들이 반짝이는 것은 찰나의 순간일 수도 긴 삶의 여정에 물들어 있을 수도 있다. 그 반짝임의 지점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 인간에게 의미란 무엇인가? 의미가 있는 일과 의미가 없는 일의 기준은 나로부터, 타자로부터 형성되며, 또 마주친 적조차 없는 익명의 타자로부터 획득되기도 한다. 인간에게 의미는 의식주의 생존가치로부터 시작되어 명예와 물질로 현대에는 복합적으로 변하였지만 의미의 문제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존재의 가치, 스스로 존재하는 가라는 물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불변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실존주의 이전에도 끝없이 자신에 대한 질문과 고뇌를 담은 예술가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처럼 말이다.

권성운_인체의 신비展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30×162cm_2017

본인이 행한 지난 작업들은 우리가 스스로 획득하기 어려운 개인의 의미를 들여다보는 일에서부터 시작됐다. 작은 버려진 사물들로부터 이야기를 만들고 재구성하여 그 버려진 사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를 통해 개인에 다가서기 시작했다. 차츰 인간의 감정과 관계에서 놓쳐버린 언어들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해서 드러내 보이는 과정적인 작업들로 발전해 왔다. 그 속에 구체적 대상으로 인간을 그리기 시작했다. ● 처음 작업은 2011년 얼굴로부터 시작된다. 얼굴을 그리며 사회 속에서의 개인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개인의 가치가 사회를 벗어나서도 성립되는 가라는 의문 속에서 교회를 그리게 되었다. 사회적 구성원으로 성립되지 않는 개인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길은 본인에게 그리스도이며 그 구원의 연결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있었다. 2015년 개인전 "연결지어져 살아간다." 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개인가치의 회복과 사회적 연결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2016년 전시 "작은나라 작은백성 : 시선의 주체" 에서 얼굴작품을 70여점 선보였다. 이 얼굴들은 그리스도라면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가? 라는 물음에서부터 시작됐다. 클로즈업된 가까운 거리의 얼굴들을 쓰다듬 듯 그렸다.

권성운_독립문광장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7

그 얼굴들을 통해 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작가로서의 나의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어쩌면 본인이 작업에서 한계점으로 느껴온 인식의 문제와 소재, 표현의 문제들에 보다 명확하게 다가 설 수 있었고 한계점을 인정하고 눌러앉는 방식을 취하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 사람들로 그들의 삶에 더 가까이 들어가게 된다. ● "2017년 보이저1호가 지구를 떠난 지 40년이 되었고 2년 전에는 이미 태양계를 넘어가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현대미술도 앞선 시각으로 지구를 넘어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고쳐야 할 시계와 라디오가 있고 우리는 전파사가 필요하다. 난 그런 전파사와 같은 존재이고 싶다." (작가노트에서)

권성운_출산축하금_캔버스에 유채_30×40cm_2017

2017년 처음 그린 작품은 영화 '눈길'을 보고 그렸다. 사람 없는 영화관에서 마주한 붉은 의자들과 스크린에 나오는 소녀들의 역사적인 슬픔을 담았다. 화면 안에는 세 개의 시선이 공존한다. 처음 의자를 본 본인의 시선과 스크린을 보는 시선, 스크린 속에서 우리를 보는 시선이 있다. 그 세 개의 시선은 스크린 속 시선에 마주치게 되는 우리의 시선으로 일치된다. 그 시선을 통해 위안부소녀들의 아픔과 지금의 우리가 공존하는 아픔을 드러냈다. '결혼축하금'은 본인이 자녀를 출산하고 교회에서 찍은 사진을, '엄마무릎 별자리'는 얼마 전 장애우 학교 설립에 대한 공청회에서 무릎 꿇은 엄마의 사진을 토대로 작업했다. 이렇게 본인의 삶에서 마주하는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다.

권성운_졸업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7

그 순간은 본인에게 반짝이며 다가오는 순간들이다. 그 반짝이는 순간들이 우리를 회복시키는 사회의 별이 된다고 믿는다. 우리의 빛나는 순간들을 담고 당신이 아름다운 이유를 알려주며 우리의 가치를 회복시켜주는 것이 본인의 일이다. ● "긴 하루를 채우는 일들, 우리와 동류(同類)인 인간들과의 관계를 위해 고독에서 우리를 떼어 내는 집착들의 총체를 사람들은 추락이니, 일상적 삶이니, 또는 동물성이니, 타락이니, 추잡한 물질주의니, 이렇게 쓸데없이 부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결코 하찮은 일일 수 없다." (엠마누엘 레비나스, 『시간과 타자』중에서) ■ 권성운

Vol.20171122g | 권성운展 / KWONSUNGWOON / 權星雲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