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Zone

구영웅展 / KOOHERO / 具永雄 / painting   2017_1122 ▶︎ 2017_1126 / 월요일 휴관

구영웅_The Highest Zone - Jesus Chris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44×122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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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영웅 홈페이지_koohero.com

초대일시 / 2017_1122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가고시포 갤러리 GAGOSIPO GALLERY 서울 종로구 북촌로5가길 16(화동 99번지) Tel. +82.(0)2.722.9669 gagosipogallery.com

[구영웅론] 포스트 모던 시대의 엠블럼 : 현실과 이상의 변증법 (엠블럼: 16세기에 유럽에서 융성한 장르인 엠블럼은 제목, 그림, 간단한 경구로 구성되며 풍자와 해학을 담은 교육적 기능을 갖기도 했다. 가령 다니엘 해인시우스의 한 엠블럼에서는 큐피트가 배 위에서 항해 중인데 밤하늘에는 별 대신 사람의 눈이 떠있다. 그리고 '어둠 속의 빛'이라는 제목과 함께 '사랑에서는 하늘의 별이 아니라 눈이 길잡이'라는 내용의 글이 적혀있다.) ● <도 1>은 구영웅 작가가 자신의 작업 1기를 표현한 도안이다. 현실과 이상이 서로를 교차하는데, 분리되지 않은 채 공존한다. 이 시기 그의 회화는 슈퍼맨으로 대변될 수 있다. 슈퍼맨 복장을 입은, 작가와 많이 닮은 이 영웅은 원작 『슈퍼맨』, 혹은 『스파이더맨』, 『아이언맨』과 같은 히어로물에서의 영웅이라기보다 희화화되고 세속적인 영웅을 그린 패러디물 『킥애스』(2010)의 영웅에 가깝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 '영웅'인 구영웅 작가는 그렇게 자신의 영웅을 빌어 현실과 이상이라는 세계의 범주로 세상에 대하여 발언하기 시작하였다.

구영웅_도표

<도 2>는 작가의 작업 2기를 표상한다. 여기서 현실과 이상은 어느 정도 분리되었으나 현실은 '이상적 현실'이고 이상은 '현실적 이상'이다. 현실과 이상이 서로를 내포함에도 괴리되어 비판적인 시선을 던지거나 서로를 희구하는 것으로 제시되는 듯하다. 종종 화면은 위의 도안과 같이 분리되어 있거나 사물과 자연물의 관계가 전복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이 시기 작가는 개와 강아지를 다양하게 등장시키고 인간을 빗대어 표현하였다. 이렇게 재현된 인간 군상, 인간의 삶의 모습(개의 군상, 개로 대변된 삶의 모습)은 풍자적이기도 공격적이기도 하였다. ● 이제 지금, 작가의 작업 3기를 이미지화 한 <도 3>에서 이상은 분할된 화면의 상단에 위치하고 현실은 화면의 하단에 재현되어 있다. 이상을 표상하는 이미지들은 고대 그리스의 신상과 예수 조각상의 이미지이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그 신들은 석화된 신상의 형태로 위용을 드러낸다. 분할된 화면, 아래 부분에는 각각의 신과 대응하는 현실의 이미지가 그려져 있으며 음각된 미로가 그 이미지 위를 덮는다. 이렇게 작가가 일관되게 형상화해 온 것은 바로 현실과 이상이라는 삶의 두 축이며 현실과 이상의 혼재, 현실과 이상의 불편한 공존을 거쳐 지금은 '현실과 이상, 그리고 미로'라는 작가가 정의한 범주와 특성 속에서 일종의 평형상태를 이룬 듯 보인다.

구영웅_The Running Zone - Achille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130.3cm_2017
구영웅_The Hunter-Gather Zone - Poseid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130.3cm_2017

유희 - 카드놀이 ● 이 연작은 일종의 낱말카드로도 볼 수 있다. 아테나-전쟁 이미지, 아킬레우스-달리는 사람들, 포세이돈-바다 풍경, 디오니소스-음주를 즐기는 사람들과 같이, 낱말 카드가 그러하듯, 신의 이미지가 있고 그에 상응하는 도해가 달려있다. 또한 이 연작은 아이들의 캐릭터 카드처럼 보이기도 한다. 캐릭터 카드로서 이 이미지들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상황도 가정할 수 있다. 내가 아테나를 선택한다면 당신은 아킬레우스를 선택해 한판 결투를 벌일 수도 있고 디오니소스를 선택하며 나의 전략 자체를 무화시킬 수도 있다. 이렇게 작가가 씨름하던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의 줄다리기는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놀이의 장으로 변하였다. ● 나아가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이 현실-이상 도식에 대한 일종의 사용설명서를 제시한다. 설치작업에서 작가가 임의대로 구성한 그리스 신들의 소우주(여기서 중앙을 차지하는 건 술의 신이기도 한 디오니소스다.)를 마주한 우리는 미로 위에 서게 된다. 본래 신들의 위계는 인간의 세계가 규정해 온 가치 판단을 반영한다. 지혜의 여신으로서의 아테나가 누구에게나 추앙받았다면 디오니소스는 술, 유희, 무질서 등을 표상하며 이단과도 같이 여겨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작가는 이 디오니소스를 중심에 두는데, 이러한 재규정은 무엇보다 사회가 강제하는 위계에 대한 도전으로도 보인다. 또한 이 도식의 시뮬레이션에는 미로로서의 현실을 점유하는 우리가 그대로 포함되며 이 해체와 재규정의 공간을 함께 유희할 수 있다.

구영웅_The Destruction Zone - Athena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91cm_2017
구영웅_The Destruction Zone - Are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91cm_2017

패를 보여주기 ● 한편, 단색을 켜켜이 두텁게 겹쳐 바른 캔버스의 물감덩어리는 물성이 극대화된 회화의 한 방향을 보여준다. 회화의 전통 속에서, 대상을 제거한 과정이자 모더니즘의 정점에 서있는 물성의 문제는 역설적이게도 작가가 자신의 화두를 위해 끝내 포기하지 않는 현실의 이미지, 즉 대상을 위한 배경으로 사용되었다. 반면 주제를 이루는 석고상은 매우 대중적인, 미술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예술에 문외한이고 관심이 없다 한들 중고등학교 시절 석고상 한번쯤은 그려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엘리트적 회화의 정점과 미술 클리셰로서의 석고상이라는 이미지는 삶의 이상과 현실이라는 내용의 대립에 더하여 시각 예술에 있어서 현실과 이상의 단면이라는 또 하나의 층위를 구성하며 제시된다. ● 그리고 물성 가득한 배경 위의 석고상 이미지는 신의 모습으로서 또한 미술의 도구로서 시각 예술을 대표하는 상징으로서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생동하는 신이 아니라 이미 돌로 굳어진 신의 모습을 그림에 등장시키는 것은(이때 물성으로 가득한 배경의 이미지는 모더니즘의 맥락을 떠나 오랫동안 가물었던 마른 대지의 이미지로도 느껴지는데) 절대 존재로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는 신이 아닌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그래서 신을 만들어야 했던 인간의 단면으로도 읽힌다. 현실이라는 미로 속에서 꿈이자 인도자로서의 이상은 갈라진 마띠에르 위에서 툭 치면 부서져 나갈 것 같은 형상으로도 보이는 것이다. 의미는 고정되지 않고, 계속 미끄러진다. 이렇게 작가는 작업 초기부터 일관되게 유지해온 특유의 태도, 풍자적이며 블랙코미디와 닯아 있는 시선의 유희 또한 보여주고 있다. ● 이 이상-현실-미로의 도식은 세상에 대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그만큼이나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 듯 보인다. 삶에 대해서나 예술에 대해서나, 다의적이거나 미끄러질지언정 작가는 이번에 자신이 가진 패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미궁을 정복한 테세우스에게는 아리아드네의 실이 있었다. 미궁의 한 가운데의 작가에게 아리아드네의 실은 어떻게 주어질까? 이미 가지고 있는지도, 아직 찾는 중일 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는 이제 꼭 실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미로를, 삶의 모순을, 그 속에서 반목하기도 하는 우리와 함께 헤메는 것이 괜찮다고 이야기 하는 듯 하다. ■ 배혜정

Vol.20171123g | 구영웅展 / KOOHERO / 具永雄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