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t, cut 파이고, 자름

김동기展 / KIMDONGI / 金東岐 / painting.printing.sculpture   2017_1117 ▶︎ 2017_1201 / 일요일 휴관

김동기_Gotjawal Project 1-72_한지에 우트컷_40×40cm×72_20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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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기 홈페이지_www.dongikim.com

초대일시 2017_1120_월요일_06:0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구 GALLERY KOO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461 (청담동 118-17번지) 네이처포엠빌딩 211호 Tel. +82.(0)2.514.1132 www.gallerykoo.com

김동기의 두 세계 ● 편안함과 강함. 김동기의 작업은 공존하기 어려울 것 같은 이 두 가지 감상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편안함이 지나치면 주제에 대한 힘을 잃어버리기 쉽 고, 반대로 강함이 지나치면 부담스럽거나 공격적인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김동기의 작업에서는 이 둘을 유지하는 뛰어난 균형감각을 발견할 수 있다. 평범한 듯 일순 비범한 면을 드러내고 이미지를 집중적으로 표현하지만 결과적으로 고요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그의 작업은, 요행을 바라지 않는 작가를 닮아 우직하리만치 성실하고 솔직하다. 김동기의 이번 개인전 『파이고, 자름』은 이전에 그가 보여주던 방식과 달리 두 개의 분할된 공간이 서로 다른 분위기를 지니며 보는 이를 교란하고 있다. 두 세계는 어떤 이유에서 우리 앞에 놓이게 된 것일까?

김동기_cut, cut 파이고, 자름展_갤러리 구_2017
김동기_Gotjawal Forest No.8-9_한지에 우트컷_60×160cm_2017

전시장에서 우리가 처음으로 만나는 세계는 판화의 세계이다. 언뜻 보면 흑백사진처럼 보이는 검은 숲의 한 장면은 작가가 경험한 제주도 곶자왈을 목판화로 재현한 것이다. 김동기는 오랫동안 목판화를 자신의 중심 매체로 다루며 나무 판이라는 재료의 속성과 그것을 반복해서 파고 찍어내는 수행의 성질을 중첩시켜 도시나 사물 등을 바라보는 작업을 이어왔으며, 이러한 그의 곶자왈 숲은 자신이 생경하게 느꼈던 숲의 바람과 하얀 빛점들을 갤러리 벽에 데려다 놓았다. 작가가 눈앞에 압도적으로 펼쳐진 천연 원시림에 둘러싸였던 숭고의 순간을 '판화로 해야겠다'고 결정한 이유 또한 판화라는 매체가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실패하지 않는 습관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 그런데 두 번째 세계는 판화의 세계가 아니다. 전시장의 다른 한편에는 김동기가 붓이나 스퀴지를 이용해 제작한 회화들, 벽에서 튀어나와 있거나 기대어진 나무 조각, 빈 프레임 등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판화에서 회화, 조각, 설치로 작업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데, 이 두 번째 공간은 근래 만들어지기 시작한 그의 '판화가 아닌 작업'의 연장선장으로 보인다. 특히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은 테이블에 가지런히 줄지어 있는 작은 나무 도구들과 작가가 직관적으로 가져다 놓은 손바닥만 한 나무 덩어리, 핀으로 고정된 프레임의 어떤 조각들인데, 이에 대해 그는 알차게 사용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아버린 것들에 이상하게도 마음이 쓰였고 지금과 같은 형식으로 전시장에 끌어들이게 되었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김동기_Organized byproduct_나무(호두나무, 재)_설치_2017
김동기_Organized byproduct-Unstable House_호두나무_설치_2017
김동기_Organized byproduct-Thin House_체리나무_설치_2017

작가로서 자신이 만들어낸 것들에 책임을 지고, 남김없이 작업에 소진하려 한다는 점에서 이 부산물들을 작가적 증거물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부산물들에 이름을 붙이고 싶다는 생각에 한참이나 마땅한 말을 찾고 있었는데, 문득 작가가 자신을 작업에 있어서 '로스(loss)가 없는 사람'이라고 불렀던 일이 떠올랐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테이블의 나무 도구들은 목판화를 하면서 지친 손과 도구를 풀어주며 제작한 것이고, 빈 나무 프레임도 엄밀히 보면 자신이 무엇인가를 제작함으로써 생겨난, 그리고 전시장에 소환함으로써 의미를 얻게 되는 또 다른 형식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 부산물/증거물들은 무계획적으로 탄생했다는 점에서 작가에게 어떤 해방감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김동기_Architectural painting#03_캔버스에 수채, 아크릴채색, 젤 미디엄_116.8×91cm_2016~7
김동기_Plastering #02_캔버스에 수채, 아크릴채색, 젤 미디엄_91×65cm_2017

그렇다면 왜 그는 보는 이에게 자신의 세계를 양분하여 제시하고 있는 것일까? 혹은 왜 한가지만 보여주면 안되었던 것일까? 판화의 세계는 규칙과 질서가 지배하지만 판화가 아닌 세계는 작가의 감각에 의지하는 서로 다른 세계다. 그리고 이처럼 무대의 정면과 뒷면을 함께 보여주는 일은 추측해보건대 작가의 강한 의지가 작용한 것일 테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 두 세계가 작가에게는 서로 간의 위계가 없이 동등한 것이며, 앞서 밝힌 것처럼 상호보완적이고 귀납적인 관계에 있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두 세계는 김동기가 작가로서 겪은 내적 성찰의 단면을 공개하며, 그가 작업의 당위성을 찾아내고 이어가는 동력으로 자리한다고 볼 수 있다.

김동기_Organized byproduct_호두나무, 재_설치_2017
김동기_cut, cut 파이고, 자름展_갤러리 구_2017

다시 전시의 제목으로 돌아가 보자. 영어로는 같은 단어인 'cut'으로 반복되는 '파이고, 자름' 이 지닌 의미는 결과적으로 작업을 위한 같은 행위를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는 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판화이든, 회화이든, 설치나 조각이든 혹은 물질이 아니더라도 그것이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결론적으로는 같은 성질을 지닌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두 세계를 횡단하며 자신의 방법론을 넓혀가고 있으며, 그중 한 지점을 우리에게 드러냄으로써 본인의 지향점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는 김동기가 보여주는 파인 것과 잘라낸 것들이 무엇이며 어떻게 같고, 또 다른지 깊이 확인하는 일이 남아있다. ■ 최희승

Vol.20171123h | 김동기展 / KIMDONGI / 金東岐 / painting.printing.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