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시간, 공간

황선태展 / HWANGSEONTAE / 黃善台 / installation   2017_1124 ▶︎ 2017_1227 / 월,공휴일 휴관

황선태_빛이 드는 공간_강화유리에 샌딩, 유리전사, LED_87×202×4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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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1124_금요일_05:00pm

협찬 / LG 디스플레이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공휴일 휴관

갤러리 아트사이드 GALLERY ARTSIDE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6길 15(통의동 33번지) Tel. +82.(0)2.725.1020 www.artside.org

황선태 - 허구와 실제의 틈 ● 사물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일과 물건'이자 '물질계에 존재하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대상'이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은 특정한 물리적 법칙 아래 놓여있으며 동시에 특정한 도구적 관점, 실용적 차원에 저당 잡혀있다. 그것들은 또한 이름을 갖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사물들은 우리 세계의 어떤 개념이나 척도나 말을 통해서 가시화되지 않는다. 우리가 명명한 이름은 그 사물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그러니 '어떤 정체성도 가지지 않는 것이 사물'이다. 다만 인간이 그 사물을 주관적 관점으로 해석하고 여러 의미를 부여할 뿐이다. ● 이렇게 인간은 항상 나를 중심으로 사물, 세계를 본다. 그러나 사물은 나와 무관하게 이미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사물이라 부르는 것들은 우리의 선입견에 의해 지배되고 있고 이른바 보편적이라 불리는 수리물리학적 법칙 아래 놓여있으며 다소 '폭력을 수반하는 종교와 도덕법칙'에 의해 지배받고 있는 사물에 다름 아니다. 세계 또한 동일하다. 이런 사물을 지워내고 원초적인 사물의 모습을 홀연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예술의 영역에서 만나는 사물이다. 그것은 길들여지고 훈육된 시선이나 인간이 규정한 법칙과 관념에 의해 물든 세계에서 겨우 빠져나왔을 때 문득 접하게 되는 사물의 민낯이자 상기된 얼굴이다. 예술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황선태_빛이 드는 공간(the sunshine room)_강화유리에 샌딩, 유리전사, LED (Tempered Glass, Sandblast & LED Backlit)_72×108×4cm_2017

황선태는 햇살이 날카롭고 부분적으로 파고드는, 그로인해 길고 거대한 그림자가 만들어진 어느 시간대의 실내풍경을 산뜻하게 재현했다. 그러나 이 그림은 실재하는 풍경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연출된 만들어진 허구의 장면이다. 그 경계는 모호하다. 익숙하고 비근한, 그래서 어디서나 흔히 접할 수 있는 장면이지만 동시에 상상 속에서, 그림 안에서만 가능한 가상의 이미지가 영속성을 지니며 차분하고 적조하게 응고되었다. 적멸감이 짙게 풍기는, 인간이 사라진 자리에 오직 사물과 빛만이, 아니 빛과 그림자가 얽혀서 스스로 자족적이고 자존적인 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묘한 충일감을 선사하는 그런 장소다. ● 한정된 실내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은 벽과 바닥, 천장과 창문, 책상과 소파, 화분과 조명기구뿐이다. 그것들은 색채나 명암, 깊이가 사라지고 부피와 질량이 무화된 체 그저 얇고 균질한 선으로만 자리하고 있다. 사물을 순수하게 사물로 인식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선, 추상적이자 개념적인 선이다. 이 선은 컴퓨터로 이루어진 선이고 작가의 감정, 몸의 상태, 신체의 기복과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자아와 주관이 없는 중성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선이다. 작가는 선을 그린다기 보다는 설계도면처럼 건조하게 기입했다. 그래서 그래픽디자인에 유사하다. 세부적인 성격이 모두 지워진 상황에서 선은 오로지 그 사물의 존재감만을 지시할 뿐이다. 이 기계적이고 차가운 묘사는 사실적인 재현인 것 같으면서도 실은 추상적인 차원으로 사물을 인식시킨다.

황선태_빛이 드는 공간_강화유리에 샌딩, 유리전사, LED_124×246×4cm_2017
황선태_빛이드는 공간_강화유리에 샌딩, 유리전사, LED_152×112×4cm_2017

묘사의 허구성을 의도적으로 인식시키는 이 선으로 인해 관자들은 사물을 편견 없이 바라보게 된다. 투명하고 밝은 녹색의 선으로, 개략적으로 그려진 사물들은 각기 평등하게 제 자리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고 따라서 실내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무생물인 그 존재들이 무엇인지 다시 인식하게 해준다. 새롭게 보게 해준다. 사물들로 채워진 이 세계의 풍경을 관조하게 하고 사물들이 발화하는 소리를 침묵 속에서 음미하게 하며 실용적이고 도구적 차원에서 잠시 물러난 사물들이 그 자체로 완벽한 하나의 세계임을, 독립된 육체임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 건축은 그 안에 거주하는 인간의 존재 방식, 인간의 몸 크기를 절대적 척도로 삼을 수밖에 없는데 이는 사물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인간을 비워낸 공간과 사물은 그것 자체로 지극히 평화로운 순간을 보여준다. 인간이 만들어놓고 인간이 사용해야 할, 사용하고 있는 실내공간이지만 정작 인간이 사라진 자리에 사물들만이 주인공처럼 존재하는, 사물들로만 채워진 공간이란 과연 무엇인가? 기억이 없는 공간, 인간의 손길이 사라진 자리에 사물들만이 있는, 사물이 주인이 된 그런 낯설고 기이한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황선태_빛이 드는 공간(the sunshine room)_강화유리에 샌딩, 유리전사, LED (Tempered Glass, Sandblast & LED Backlit)_102×80×4cm_2017

작가는 유리판에 햇살이 비치는 데 착안해서 캔버스나 종이를 대신해 경질의 재료이면서도 투명한 강화유리를 화면으로 사용한다. 잉크젯 프린팅을 통해 전사 작업을 했고 샌딩가루를 고압의 공기로 분사하여 유리표면을 깎아내어 문양을 만드는 기법(유리 샌딩)을 활용해 그림/선을 노출시킨 것이다. 그 내부에는 LED조명과 사진을 개입시켰다. 유리공예와 회화, 조각, 사진, 영상 등이 복합적으로 연루된 작업이다. 조명의 개입에 따라 그림은 '온/오프' 된다. 조명과 빛, 모두가 화면에서 결정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 유리가 화면이 되었기에 그것은 일반적인 캔버스와는 무척 다른 질감을 안긴다. 매끄럽고 단호한 평면성과 반짝임, 빛의 산란을 더 극적으로 고양시키는 표면이자 예민하고 날카로우며 긴장감 있는 피부를 안긴다. 유리는 견고하지만 더없이 연약한 재료이기도 해서 불변하는 것 같으면서도 이내 깨지기 쉬운 성질을 한 몸에 탑재하고 있다. 이는 지극히 평화롭고 안정적으로, 영속적으로 비춰지는 실내풍경과 사물 또한 일시적이고 유동적이며 사라질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슬쩍 은유한다.

황선태_빛이 드는 공간(the sunshine room)_강화유리에 샌딩, 유리전사, LED (Tempered Glass, Sandblast & LED Backlit)_80×102×4cm_2017
황선태_빛이 드는 공간(the sunshine room)_강화유리에 샌딩, 유리전사, LED (Tempered Glass, Sandblast & LED Backlit)_80×102×4cm_2017

또한 유리의 표면은 일종의 베일링 효과를 주어 저 너머의 공간을 투명하게 비춘다. 보는 이의 시선을 내부로 유인하는 것이 유리의 역할이자 속성이다. 그러니까 본래 유리의 존재감은 자신의 뒷면, 그 너머를 보여주는 것이 본질이다. 유리표면의 선과 그 안에 조명과 사진이 있고 그것들이 서로 포개져서 빛이 파고드는 실내 공간/그림을 형성한다. 구멍 뚫린 부분으로 들어온 LED빛, 화면 내부에서 발광하는 허구의 빛으로 인해 실제 빛이 특정 공간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받는다. 안쪽에 자리한 사진이미지 역시 단색의 화면에 부분적인 색채를 개입시키면서 모종의 현실감을 강화하고 공간감과 환영을 제공한다.

황선태_빛이 드는 공간_강화유리에 샌딩, 유리전사, LED_62×220×4cm_2017
황선태_빛이드는 공간_강화유리에 샌딩, 유리전사, LED_51×68×4cm_2017

특정 공간 안에 일상의 평범한 공간이 영원히 정지된 상태로 응고되어 들어와 박혀있고 한 순간의 빛, 시간이 고정되어 있다. 빛과 시간을 고정시킨 것이 고전적인 회화였고 사진이라면 이 작업 또한 그런 맥락에서 동일하지만 다만 여기서 고정시킨 순간은 '허구의 시간이고 빛'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렇게 해서 어디선가 한 조각 빛이 환하게, 날카롭게 들어오는 실내공간이 불현듯 펼쳐졌다. 부분적으로만 비춰주는 환한 빛은 공간의 일부만 부각시키고 나머지는 적당히 감춘다. 전체적으로 모노톤으로 잠긴 화면에 단지 빛/조명 하나가 퍽이나 감각적이고 예민한 시각 장을 만든다. 빛이 없다면 시각은 불가능하고 모든 회화도 가능하지 않다. 그러니 이 작업은 철저하게 빛으로 인해 가능한 것을 실현한다. 자연광이 아니라 화면 내부에서 빛이 발광해야 이런 장면이 점등되어 실현된 것이다. ● 조명이 꺼지면 돌연 방금 보았던 장면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저 어두운 표면에 선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순간 그것을 실제로 인식하고 있었던 우리의 불안한 감각, 유혹당하기 쉬운 시각이 망연해진다. 매혹적인 장면이 돌연 무의미해지고 가시성이 한 순간 지워진 자리에서 우리는 감각의 덧없음과 허구와 실제의 간발의 차이 속에서 바라보는 사물의 진실이 과연 무엇인지 질문하게 된다. ■ 박영택

Vol.20171124k | 황선태展 / HWANGSEONTAE / 黃善台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