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이지대 Transition Zone

이창훈_이원호_이윤진_송민철_은숙展   2017_1124 ▶︎ 2018_0118 / 주말 휴관

초대일시 / 2017_1124_금요일_05:00pm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_주인도한국문화원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 휴관

주인도한국문화원 백남준 갤러리 Korean Cultural Centre India(KCCI) Nam June paik Hall 25A, Ring Road, Lajpat Nagar IV, New Delhi 110024, India Tel. +91.(0)11.4334.5000 india.korean-culture.org

도시화 Urbanization ● 사람들이 일생과 일상을 위한 배경으로써 도시를 정주공간으로 선택하는 이유에는 개인이 저마다 품고 있는 희망사항과 선택의 가능성, 다양성에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교육, 의료, 직장, 문화생활의 이점 등이 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점 – 범죄, 환경오염, 과밀, 불친절 등 – 을 넘어 사람들을 도시로 집적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도시화는 공간 안에서 유동하고 있는 삶을 받쳐주는 물리적 공간유형의 변화이자, 인간의 다양한 요구와 수요에 반응하며 환경, 경제, 사회 등 다방면의 차원에서 발생하는 인과적 현상(consequential phenomenon)이다. 점의 변이지대 Transition Zone as Point ● 욕구의 발로에 이어 그 충족을 향해 치닫는 목적의식이 목적을 달성하는 순간 또 다른 욕망과 달성의 다음 지점으로 끊임없이(iteratively) 이어진다. 여기에는 공간적 차원이건 시간적 차원이건, 생활 철학적 관점 등에서건 다양한 변위로 기점과 종점을 오가는 행태가 발생한다. 이 이 행태적 맥락(Context)은 다층위의 현상으로 동시다발적인 경위를 응축하며 인과관계의 끝단인 기점과 종점의 양가적 가치로 귀결된다 ; 촌과 도시, 외곽과 도심부,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 과거와 현재, 여기와 저기, 자아와 타자 등 선택과 정의를 위한 명쾌한 이분법적 기준이 되어준다. 도시 안에 사는 우리들에게 욕구와 욕망은 개별적 차이를 보이며 매우 파편화된 형태로 도시공간과 사회적 시스템에 투영되어 있다. 필요에 순응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다양한 선택지로 -무수한 기점과 종점의- 현실이 구성되어 있어야만 각자가 추상하고 있는 '도시'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 선의 변이지대 Transition Zone as Line ● 도시라는 밀집된 공간, 그 안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나'와 '타자'로 명료하게 양분되어 대척을 이루어 정의된다. 그러다가 '그(그녀)' 또는 '그들'로 주변인을 가리키게 되면서 관계가 발생하고, 공간적 거리 또는 시간경과와 계기에 따라 '너'로 친밀도의 정도가 깊어지다가도 다시 얕아지기도 또는 단절되기도 한다. 이렇게 사회적 동기와 목적으로 관계의 파생이 거듭된다. 관계의 파생에는 욕구와 욕망, 희망이 작용하고 적정한 장소와 시간의 선택에 따른 이동과 체류가 발생하고, 공간의 기능과 사물들에 제자리를 부여하는 실천적 점유가 필요하게 된다. 여기서 어떠한 기능과 역할을 부여받은 공간과 사물의 존재는 동시에 다른 기능과 역할을 부여받은 공간과 사물과의 경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창훈_찬란하게 흩어져 다시 우주로(지구로)_팔찌를 잘라 모은 비즈_가변크기_2017

공간의 변이지대 Transition Zone as spatial Gap ● 도시공간은 인간이 계산하고 예측 가능한 범주에서 최대한의 효율성과 경제성, 미래 가능성을 바탕으로 계획되어지고 디자인 된다. 필요로 하는 집약된 기능과 용도에 따라 공간에 역할이 부여되고 나면 공간 내에서 일어나는 행태의 성향이 상호 충돌하는 경우가 있다. 주거지역과 공업지역 또는 상업지역 등과 면하게 되면서 발생하게 되는 생활 불편과 인지적·신체적 위험 등이 그것이다. 이를 완충하기 위한 도시 계획적 차원의 해결방안이 공간적 완충지대를 배치하는 것이다. 충돌하고 있는 양측 사이에 면함으로써 또 다른 경계를 이루는 듯 하지만 사실은 양측의 충돌을 얼마간 떼어놓는 간극이 되어 전혀 다른 행태로 점유되며 도시 내에서 나름의 정체성을 갖는 면적 공간으로 인지된다. 시간의 변이지대 Transition Zone in Time Dimension ● 생활패턴은 '나'를 구성하는 내·외적 환경이 시간의 순서대로 배열되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내게 주어진 시간은 그러한 인자로 인해 이미지, 사건, 사고, 기억들로 구성되게 된다. 공간차원을 넘어 시간과 함께 움직이는 일상은 도시 내에서 더 숨 가쁜 리듬으로 동어 반복적인 하루를 만들기도 하고 전혀 색다른 하루를 선사하기도 한다. 이러한 삶의 일상적인 패턴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 개인의 보편적 사고를 구축하고, 다시 많은 개인들의 상호 주관적 교집합으로(intersubjectivity) 그 시간을 지배하는 세대의 사고방식을 구축한다. 당시에는 이해되고 수용되기에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삶과 사고의 기틀로 과거의 이 공간은 지금과는 다른 구성원과 사물들로 다른 관습과 의례를 통해 통제되며 시간을 채워 왔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과거와 현재의 차이는 시간적 미분을 통해 단계적이거나 드라마적인 변화로 얻게 된 것이다. ● 이처럼 변이지대는 변화를 예고하는 즉물이자 현상과 은유이다. 동시에 다양한 선택지이자 경계이며 완충의 공간이고 과정으로 과밀의 도시가 갖는 밀도만큼 비일비재한 일상성을 갖는다. 가시성과 비가시성을 넘나들며, 그러면서 분명하지도 희귀하지도 않은 쟁점 밖의 주제로 점, 선, 공간, 시간의 다차원성 – 어쩜 탈차원성 일지도 모른다 – 으로 읽힌다. 한국과 인도 간에 시공의 이동이 변이지대를 주제 안 쟁점으로 가져올 수 있는 기회인자로 작용하고 있다. 당장은 우리 안에 앞으로 어떤 발전적 변화와 현상, 영향이 우리를 재정의하며 일상의 시간 속에 전개될지 사뭇 기대하게 한다. 어쨌든 변화의 예고가 시작됐다. 어쩜 벌써 지각의 범주 밖에서 시작되었다. ■ 이주연

이창훈_찬란하게 흩어져 다시 우주로(지구로)_단채널 영상_00:06:31_2017

이창훈은 재현이 아닌 재현의 외피 이면의 실재에 관심이 있는 개념적 미술가다. 그는 정치 사회 경제적 문제들이 아닌 그것을 포괄한 추상적 차원의 언어, 인식, 개념적 현실에 관심이 있다. 그는 영상, 사진, 등의 매체를 활용하고 매체성을 참조해도 근본적으로 언어철학과 관념철학 측면에서 이들을 활용하며, 그의 조형은 주로 이미지와 텍스트를 근간으로 한 설치, 영상, 사진 등으로 구현된다. 현재는 시간의 표상을 통해 '삶'을 드러내는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 비즈(Beads)의 어원은 앵글로 색슨어의 "Biddan(빌다)" 또는 "Bade(비는 사람)"이라는 말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의미로 비즈는 단순히 우리 외형의 치장을 넘어 지금 보다 나은 이상을 꿈꾸는 일상의 기복적 사물로도 인식 가능하다. 그러나 한편 화려한 비즈 이면의 생산과정 등에서 있었을 화려하지 않았을 수고들은, 비즈의 이상적 어원과는 역설적으로, 비루한 현실을 우리에게 자각시킨다. 결국 이 화려한 원형의 장식은 고단한 일상을 가리지만, 결국 벗어날 수 없는 굴레처럼 우리를 가두고 있는 듯도 하다. 작업은 인도에서 가공되어 생산된 비즈로 엮은 팔찌, 그 팔찌들을 다시 잘라 모은 각양각색의 비즈를 전시장 바닥 삼각형 프레임 속에 모아 두는 것이다. 관객들은 전시 기간 중 비즈 하나씩을 가져가 소유할 수 있는데, 이 행위를 통해 형태는 흩어지고 사라진다. 그리고 우리는 작은 이상(Ideal) 하나씩을 품게 된다.

이원호_부浮부동산 Floating real estate (Bu.Bu.Dong.San): home of homeless_ 2채널 영상_00:33:49, 00:32:35_2015

이원호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물이나 공간에 대한 사유를 바탕으로 이들을 둘러싼 개념을 해체하여 전혀 다른 차원의 상황으로 제시하는 작업을 해왔다. 예컨대 스포츠 경기장의 흰색 라인을 모두 제거한 후 그 라인만으로 이루어진 '화이트필드'를 만들거나, 애초에 수신자가 없는 편지를 발송하여,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되는 과정을 편지 봉투 속 녹음기를 통해 기록하는 것이 그의 작업 방식이다. 사회적 규칙이나 통념, 상식을 전복시키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주변 사물을 대하는 색다른 태도, 세상의 이면을 이해하는 대안적 관점을 제안한다. ● 작가는 서울역이나 남대문 지하보도, 영등포 등 노숙자가 주로 거주하는 장소를 찾아다니며 종이박스로 집을 짓는 노숙자에게 가격을 물어보고 흥정해서 구입하여 전시장에 설치한다. 이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노숙자가 스스로의 집이 세워진 땅의 면적을 계산하고, 가치를 부여하여 돈으로 환산하는 과정이다. 통념적으로 집의 소유와 가치는 중산층의 몫이지만 집이 부재한 홈리스에게도 집은 여전히 열망의 대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합법적인 집의 소유를 부정당한 형태의 삶의 방식을 영위하는 홈리스들이 제작하여 가공한 박스 집을 소유하고, 경제적인 가치를 다시 부여하는 과정은 부동산 재테크의 방식을 답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박스 집에 가치를 매기는 과정은 최소한의 프라이버시, 안전, 보온 등과 같은 집의 본래적 가치와 맞닿아있기 때문에 통상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집의 가치와는 차별된다. 이들이 자신의 공간에 부여하는 가치는 본능적이고 본래적이다. 이들의 가치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집이라는 재화에 부여하는 '잉여'의 가치가 삭제되어 있다. 이원호는 집이 내포하는 욕망을 드러내는 프로세스 속에서 집의 정직한 본색을 드러내고, 그것의 사회적 좌표를 지시하고 있는 셈이다. (이수연 큐레이터, 아티스트파일 2015:NEXT DOOR에서)

이윤진_scene#10_C 프린트_168.5×266cm_2017

이윤진의 작업은 대상에 대한 중립적인 접근방식과 같은 종류, 유사한 형태의 대상을 찍는다는 유형학적 방법론과 외형적인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독일 현대사진과는 다분히 거리를 두고 있다. 이윤진은 독일이라는 공간과 정물이라는 소재를 즉물주의의 형식을 빌어 작가와 공간 그리고 사물 사이의 일정한 거리감을 담아내면서 일상에 대한 이국적인 거리감을 전달하고 있다. 이는 대상에 대한 객관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즉물주의 사진에 대한 작가의 경험이 반영된 것으로, 독일 즉물주의 사진 특유의 냉정함과 직관에 대한 작가의 낯설었던 경험이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다. 탄탄한 화면구성과 정확한 세부 묘사가 돋보이는 이윤진의 사진은 주변의 일상 공간과 사물을 소재로 한다. 객관적인 다큐멘터리 형식에서 출발한 이윤진은 소재의 재구성과 섬세한 빛을 통한 절제된 연출을 동시에 활용하여 눈으로 인지하는 일상과 카메라렌즈가 담아낸 일상의 이면에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이윤진의 작업은 우리가 친숙하다고 여기는 일상을 애매하게 또는 낯설게 경험하게 하지만 공간과 사물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을 통한 정밀한 표현은 친숙함과 낯섦이 공존하는 '일상의 진실'을 엿보게 함으로써 일상의 전복을 꾀하기 보다 삶에 대한 또 하나의 전형을 제시하고 있다.

송민철_Half mirror-Words of water 물의 말_자작나무, 거울, 물_79×105×112.5cm_2017

송민철은 존재하지만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매체를 다루며 양립되는 것, 전체를 이루는 방식, 명제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가설과 같은 것들을 시각적으로 환기시키는 작업을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원형의 과녘을 이용하여 각기 다른 원의 면적을 계산하여 재배열시키는 「같은 다른 원」과 거울과 바둑판을 이용한 「half mirror- 물의 말」을 선보인다.

은숙_1.051π㎡_강황가루, 합판, 디지털 프린트_지름 205cm, 가변크기_2017

은숙은 함축된 삶의 경험을 통해 형식적 요소들을 조직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현실에 대한 관점을 표현한다. 일련의 작업이 유희적 장치를 통해 극단적으로 거리감을 이용한 전복성을 취하고 있다면, 또 한편의 작업들은 언어의 시각화, 사물들의 관계성을 다룸으로써 시스템 내부에서의 불균형, 어긋남을 유발해 내고 있다. 인식에 대한 경계를 새로운 맥락에 위치시켜 그 의미를 재구성하여 온건한 방식으로 경험하게 한다.

은숙_문이 없는 집을 찾는 유용한 방식_축광 아크릴에 시트지, 혼합재료_가변크기_2017

이번 전시를 통해 공간에 내재된 마술적 사고(Magical thinking)의 재인식을 유도하고 사고의 전환점을 제시한다. 우리가 직면한 어떤 상황 속에서 알 수 없는 힘을 달래기 위해 동원하는 내제된 사고, 인간은 정확한 방식이 아닌 유용한 방식을 택한다. 우리는 현실과 직접적으로 교류할 수 없으며 현실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의식이라는 필터를 통해서만 현실을 경험한다. 즉 감각기관의 정보를 통해 뇌가 주관적으로 구성하는 것일 뿐이다. 현실의 궁극적인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어떻게 현실을 만들어내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 변이지대

Vol.20171127h | 변이지대 Transition Zon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