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 Same bed, different dream

권승연展 / KWOUNSEUNGYOUN / 權承淵 / painting   2017_1129 ▶︎ 2017_1205

권승연_동상이몽_캔버스에 유채_80×80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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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1129_수요일_05:30pm

후원 / 강원도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H GALLERY H 서울 종로구 인사동9길 10 Tel. +82.(0)2.735.3367 blog.naver.com/gallh

빛과 색으로 아우르는 자연의 꿈과 사람의 꿈 화가 권승연의 그림에 부쳐-1. 먼저 다른 그림 이야기 하나 ● 세조 때 어떤 떠돌이 중이 재상 권람의 집에 이르러 한 번 보기를 청했다. 권람은 중을 서재에서 기다리게 하고 오래도록 나오지 않았다. 중은 벽에 걸려 있는 '위천조어도' (강태공이 위수에서 낚시질하는 그림)를 보고 시 한 수를 써 붙이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 비바람이 소소히 낚시터에 부는데/ 위천의 새와 고기는 기심을 잊었구나./ 어찌하여 늘그막에 매 같은 장수가 되어/ 백이숙제로 하여 고사리 뜯다 굶어죽게 하였는가. ●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고 사육신을 죽인 세조와 그의 무리를 비꼰 시지만 품격이 맑아 절로 비감한 기분이 든다. 권람이 나와서 보고는 "아뿔사, 매월당이 왔는데 몰랐구나." 하고는 뒤를 쫓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위천조어도'의 그림과 매월당이 남긴 시 속의 위천이 바로 위수인데, 우리나라에도 위천, 위수라고 부르는 강이 있다. 아니, 아주 작은 냇물이 있다. 중국의 위천은 옛 역사의 많은 사연을 안고 황하로 흘러들고, 우리나라의 위천은 대관령의 한 자락에서 발원해 지금도 옛 법도 그대로 촌장님을 모시고 사는 전통 유가마을 위촌리와 신사임당과 율곡이 태어난 오죽헌 앞을 지나 경포호수로 흘러든다.

권승연_동상이몽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17
권승연_동상이몽_캔버스에 유채_50×50cm_2017

2. 경포호수의 연 이야기 ● 위수가 흘러드는 경포호수는 지금도 넓지만 예전에는 훨씬 더 넓었다. 호수 가장자리가 깊지 않아 흙을 메워 논을 만들었다. 늪이었던 시절 그곳엔 가득했던 연꽃 씨앗들은 땅속 깊숙이 묻혀 싹을 틔울 수 없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 호수 주변의 논들을 다시 파내어 늪을 만들자 그곳에 족히 100년, 200년 전에 묻혀 있던 연꽃씨앗들이 다시 싹을 틔워 물 위를 가득 메웠다. 오랜 시간 잠속에 스스로 깨어난 잎과 꽃들이다.

권승연_동상이몽_종이에 유채_100×100cm_2016

3. 동상이몽- 화가 권승연의 이야기 ● 그런 오랜 시간의 사연을 안고 있는 경포호수 주변 늪지의 연잎 풍경을 즐겨 그리는 화가가 있다. 내가 강릉에서 아주 특별한 인연으로 만나 그의 그림 세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권승연 화가는 어릴 때엔 물론 중고등학교 때에도,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전혀 그림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가 어느 날 문득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한 건 마흔이 훌쩍 넘어서였다. ● 오랜 세월 내 안에 숨어 있는 재능과 열망을 남의 것인 양 깊이 묻어두고 외면하다가 불혹이 넘은 어느 날 경포호수 늪지의 연처럼 새로운 시간 속에 내 안에서 나를 부르는 새로운 부름으로 잠에서 깨어나 붓을 잡았다. 그 붓으로 오랜 시간 가슴 밑바닥에 감춰두었던 연꽃씨앗의 싹을 틔우고 줄기를 늘이고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운다. 연은 그렇다. 100년이고 200년 땅속 깊이 묻혀 있다가 꽃을 피운다고 해서 결코 꽃과 잎이 작아지거나 달라지는 법이 없다. 단 하나의 씨앗으로도 호수를 가득 메운다. ● 그가 한결같은 모습으로 경포호수 주변 습지의 연잎들만 화폭에 담는 뜻도 어쩌면 그가 화가로서 새로운 삶을 꿈꾸던 시절, 자신의 삶이 저 습지에 새롭게 탄생한 연들의 일생을 닮아서가 아닐까. 그는 그 습지의 연꽃씨앗들이 오랜 세월 깊은 땅속에서 새로운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음을 잘 알고, 또 그 잠속에 저마다 자기 생에 피어 올릴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었음을 잘 알고 있다. 그걸 알기에 늪을 가득 메운 연잎마다 가지고 있는 서로 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그들의 꿈을 그려내고 있다. 그가 일관되게 그리는 그림이 연잎이며 그 그림들의 제목 또한 일관되게 '동상이몽'인 것도 저 경포호수 늪지를 가득 메우고 있는 수많은 연잎들의 내력을 그가 자신의 꿈처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권승연_동상이몽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16

4. 동상이몽- 바라보는 자의 꿈 이야기 ● 권승연의 그림을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글과 그림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글에서의 사실과 상징은 그림에서의 사실과 상징과 어떤 부분이 통하고 어떤 부분이 절연될까. 한국문단에서 가장 다양한 소재를 작품화한다는 뜻에서 '전방위작가'라고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내 별호에 비하면 근래 권승연의 그림 소재는 오직 한 가지 연잎뿐이며, 그림 제목 또한 '동상이몽' 하나로 모아진다. ● 그런데 그의 그림 앞에 서면 이제까지 내가 숱한 습지에서 똑 같은 풍경으로 봐온 연잎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잠시 멈칫하고 놀란다. 그것은 마치 사진을 찍어 확대해놓은 듯한, 아니, 사진을 인화하기 전 사물의 명암이 정반대로 재생되어 있는 커다란 컬러필름의 원판을 보는 듯한 낯설음과 놀라움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아무 의심 없이 익숙하게 봐온 사물로서의 연잎 하나하나의 모습이 저토록 표정이 다 다르고, 거기에 또 하나의 이야기처럼 부여된 색이 다른 것에 놀라는 것이다. ● 외람된 감상과 표현일지 모르나 처음 권승연의 그림을 대하며 느끼는 놀라움 중심이 빛과 색이 있다. 화가 권승연이 그림 속에 쓰는 빛과 색은 그러면 이제까지 내가 수십 년 동안 봐왔던 연잎들의 이미지는 다 어디로 갔지? 하고 짧은 순간 관람자 스스로에게 묻게 한다.

권승연_동상이몽_캔버스에 연밥, 철망_130.3×162cm_2017

같은 연잎의 그림이어도 연잎의 싱싱함과 시들음이 사물의 느낌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를 빛과 색이 가른다. 제목 그대로 같은 자리의 다른 꿈일지라도 연잎의 싱싱함과 시들음을 떠나 분홍과 보라가 주조를 이루면 지난여름 그 연잎의 꿈도 사랑도 시간에 대한 기억도 왠지 처연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래, 100년 200년 깊은 땅속에서 피어올린 꿈도 어느 날 황혼의 빛 앞에 선 사람의 모습처럼 허무하며 무상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 그러다 이보다 더 밝을 수 없는 적황색과 그 적황색을 우리 뇌리에 한 순간의 환각처럼 각인시키듯 더욱 도올하고 인상적이게 하는 초록색의 선명한 대비 앞에 서면 잠시 전에 느꼈던 허무와 무상은 마치 지난 꿈속의 이미지처럼 지나가고 나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찰나의 현기증과도 같은 생의 환희와 기쁨을 단 몇 걸음 사이에 맞이하게 된다. 보는 순간 보는 이의 눈과 이마를 부시게 하는 저 빛과 색의 찬연함이 지난여름 연잎의 꿈이었던 동시에 그걸 바라보는 지금 이 순간 내 생이 저렇게나 환했으면 바라는 우리의 꿈인지도 모른다. ● 동상이몽- 같은 자리에서도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것. 어쩌면 그것은 똑 같은 그림 앞에 서로 다른 느낌을 나누는 우리 마음의 꿈들이 아닐까. 지난여름과 가을 경포습지를 달구며 거대한 수레바퀴처럼 굴러간 태양의 시간과 그것을 받아들인 연꽃과 연잎들의 시간과 또 그걸 화폭으로 옮긴 화가 권승연의 시간,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아우르며 저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적 꿈까지, 그 모든 것이 동상이몽일 수 있다. 그림으로 사물의 마음과 다른 관람자의 마음까지 살피게 한다. ● 그의 그림엔 태양이 끌고 간 긴 시간의 수레자국이 있다. 그 수레자국 위에 한 줄의 글로 아름다운 동행을 한다. 내일이면 또 새로운 꿈이 시작될 것이다. (2017. 12. 잎 지고 스러져도 환희) ■ 이순원

Vol.20171129a | 권승연展 / KWOUNSEUNGYOUN / 權承淵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