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담다

최순민展 / CHOISOONMIN / 崔淳珉 / painting   2017_1206 ▶︎ 2017_1219 / 월요일 휴관

최순민_My Father's House- You call it love_혼합재료_72.7×90.9cm_201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51114b | 최순민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7_1206_수요일_05:3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41 GALLERY 41 서울 종로구 삼청로 22-31 1층 Tel. +82.(0)2.744.0341 www.gallery41.co.kr

최순민-아버지의 집 ● 장난감같이 생긴 아기자기한 모양들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다. 그안에는 빨갛고 파랗고 노란 색깔들과 온갖 화려한 무늬들이 장식되어 있다. 금속조각이나 인조보석들로 치장한 최순민의 그림을 볼때면 십중팔구 두손에 과자를 가득히 움켜쥔 어린아이가 느끼는 그런 행복감에 젖는다. ● 최순민이 작업의 레퍼토리로 삼아온 것은 다름 아닌 집이다. 힘찬 필선이 넘실거리는 수묵화풍의 회화작품을 해오다 2005년 이후에는 집의 이미지만을 집중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집만큼 든든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하루 종일 세파에 시달리다가도 집에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피곤이 싹 가시고 안도감을 갖는다. 이런 집에 대한 인식은 그의 작품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편안함을 주며 언제든지 돌아가고 싶은 예쁘고 아담한 집이 그의 작품에서 풍기는 이미지들이다.

최순민_My Father's House I ll remember you_혼합재료_55.5×49cm_2017

이전에도 집을 그려온 사람들이 있었다. 일제때 활동한 김종찬의 「토담집」(1939)은 쓰러져가는 흙으로 된 집을 보여준다. 말이 집이지 실상은 초라한 움막에 가깝다. 장욱진의 「마을」(1956)에도 집이 등장한다. 두 채의 집이 그려져 있는데 창문을 통해 한 사람씩 얼굴을 내밀고 있다. 한 사람 살기에도 버겁게 느껴지는 자그마한 집을 표현하였다. 향토적인 화풍을 선보인 박수근도 집을 자주 그린 편이다. 시골의 기와집과 초가집을 가리지 않고 그렸는데 논밭이 딸려 있거나 마당에 장독대가 있고 닭이 있는 전형적인 농촌 분위기를 잘 나타냈다. 이렇게 작가마다 집을 대하는 시각이 다르며 화풍에 따라 특색있게 조형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최순민의 집은 어떤 모양일까? 서두에서 말했듯이 언뜻 보기에는 장난감같은 모양이다. 외양상 밝고 화려한 편이며, 종래의 화가들에 비해 서술이 배제되어 있고, 선과 면으로 간략히 요약되어 있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이미지가 집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모양이 집과 유사한 오각형이며 제목으로도 그것이 '집'이란 사실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은 집의 단면만 크게 확대하거나 실선으로 볼록하게 처리한 것, 심지어는 철선을 용접한 경우도 있다. 다양한 변형을 꾀하지만 대체로 그의 집모양은 일정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최순민_My Father's House-Dream of geese_혼합재료_72.5×53cm_2017

많은 집 가운데서도 작가가 형용한 이미지는 다름 아닌 「아버지의 집」이다. 작가는 스트라이프, 별, 도트와 같은 여러 장식과 칼라플한 색지 및 인쇄물을 이용해 집을 꾸민다. 영롱한 인조보석은 그림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 흥겨운 노랫가락이 흘러나오는 잔칫집 분위기를 연출한다. 작가는 애당초 집의 구조와 세부를 재현하는데 신경을 쓰기보다 집의 이미지, 즉 집이란 어떤 곳인가를 더 강조하려고 애쓴 모습이다. 어떤 것은 궁궐같은 곳도 있다. 세모의 지붕과 듬직한 돌기둥, 그리고 본채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별이 빛나는 하늘에 세워진 으리으리한 도성(都城)같은 곳도 있다. ● 작가는 왜 이처럼 '아버지의 집'을 화려하게 꾸몄을까? '아버지의 집'이 대궐같거나 화려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새삼 이런 작업을 한 것같지는 않다. 그가 생각하는 '아버지의 집'이란 돌이나 목재나 대리석으로 만든 가시적인 집이 아니라 우리 영혼이 거주하는 곳이란 상징성을 띤다. 그곳에서는 하나님과 대화하고 교감하며 일체감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 맥스 루케이도(Max Lucado)의 말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진지하게 연구해야할 신적 대상으로만 생각했지 우리가 머무를 곳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적을 일으키는 신비스러운 분으로 인식할 뿐 그분과 함께 산다고 생각지 않는다. 다윗은 이런 우리의 인식에 일침을 가하였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 27:4)

최순민_My father's house-Treasure box_혼합재료_116.7×91cm_2017

각종 위험이 도사리는 세상에서 우리가 숨을 수 있는 곳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 세상에서는 영원한 안식도 위로도 없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부와 향락에 올인하는 경향이 있다. 거기서 무언가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것은 '바람에 나부키는 겨'처럼 부질없는 짓이다. 행여 누군가의 말 때문에 상처를 받거나 사업의 실패로 낙심할 때 아무도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방치된다면 어떨까? 성경은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고 말한다. 우리 존재의 심연에 하나님의 사랑이 흐르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참된 내면의 준비가 담보되지 않는 한 진전은 더딜 수밖에 없다. 그 사랑이 심겨진 것을 깨달을 때 그것은 자신과 남들에게 끝없는 기쁨과 새 힘의 출처가 된다. ● 오늘도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최순민의 작품은 이런 사람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그의 집은 광채로 번뜩이고 기쁨이 넘쳐나는 곳이다.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요 4:14)을 보고도 무관심하거나 태연한 척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려면 아버지의 집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같다. 우리 영혼이 새 기운을 얻고 싶을때 '하나님의 집'만큼 좋은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 품안에 있을 때에만 맘 편히 안식할 수 있다.

최순민_My father's house-It's a Wonderful Life_혼합재료_72.7×53cm_2017

그의 그림은 마치 시대를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는 시편 23편에 펼쳐진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여호와는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만족을 주시고 고요에 잠기게 하신다. 단순히 집을 제시하였을 뿐이지만 작가는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에 서 있을 때처럼 만족감과 행복감을 전달한다. 그 분의 집에 들어가 내내 살기를 바라는 마음, 세상에서 가장 평안하고 안전한 곳에 있을 때의 정조(情操)를 실어냈음을 뒷받침해준다. ● 사실 우리가 창조주의 영화로움을 사실적으로 전달하기는 어렵다. 색과 리듬감 만으로 그 상태를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실제적 상태를 시각언어로 바꾸는 제약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그럴수록 조형언어에 귀 기울여야 할 이유가 있을 것이다. 화면을 들여다보면, 흰 바탕은 단아하면서도 포근하다. 질료감을 주려고 바탕에 하드보드를 깔고 다시 한지를 서너 번 입히고 그 위에 다시 페인트를 칠하거나 돌가루를 뿌려서 견고한 바탕의 느낌을 살려냈다. 말하자면 재료의 고유한 맛을 살려내면서 평면을 잘 가다듬어 내밀성을 잘 간직하도록 한 셈이다. 그리하여 배경의 충실함을 통해 주제의식이 분명해지도록 했다.

최순민_My father's house-Story_혼합재료_30×36cm×9_2017

작가는 마음의 은밀한 집을 보여준다. 그안에서 영원한 기쁨의 모형을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창조주의 집에 들어간다는 것은 이전에는 한번도 경험할 수 없었던 것을 경험하는 순간이자 모든 피조물이 고대하는 '영원한 행복'과 '끝없는 안식'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달라스 윌라드(Dallas Willard)의 표현을 빌면, 하나님은 "우주에서 가장 즐거운 분이시다. 그 분의 풍성한 사랑과 관대함은 그 분의 무한한 기쁨과 깊이 이어져 있다." 우리가 가끔 경험하는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하나님은 자아내시고 바깥으로 유출시키시기에 우리는 기쁨과 사랑을 제공받는다. 최순민이 아버지의 집을 지극히 사랑스럽고 정성스럽게 꾸민 것은 실제로는 집 주인의 풍성한 사랑과 관대함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최순민_My father's house-Wait_혼합재료_116.8×91cm_2016

근래에 작가는 집 시리즈에서 정물로 소재를 약간 넓혀가고 있다. 작은 종이조각으로 된 모자이크식으로 바꿔 종전보다 훨씬 장식적인 느낌을 더하였는데 화분에 꽃과 식물이 자라는 것이라든지 물고기와 빵을 수북이 담은 광주리를 표현한 것 등 조밀한 짜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작품들의 제목은 「선물」이다. 이미지는 살짝 다르지만 사실 작품상의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아버지의 집」이 창조주의 영화스러움을 나타냈다면, 「선물」은 은혜 충만한 세상을 나타냈다. ● 우리가 사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란 사실을 상기하면 모든 게 '선물'로 다가온다. 하나님이 이처럼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해 베푸신 것은 그 분의 자비와 사랑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작가는 아마도 감사의 마음을 그림에 담지 않았나 싶다. 최순민의 그림에는 빵이든 열매이든 식물이든 풍족하다. 음식으로 치면 '성찬'이요 꽃으로 치면 '백화난만한 동산'이다. ● 그것을 단순히 꽉 찬 이미지로 파악한다면 작품이해로는 부족할 것이다. 그것은 마음에 그득한 충만한 은혜의 표시로 감사의 표시가 아닐까 싶다. 굶주린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오병이어를 베푸셨던 것처럼 오늘도 가슴에 멍울이 든 우리에게 '영혼의 만나'를 제공하고 계심을 알게 해준다. 이것은 바로 「아버지의 집」에서 받은 「선물」임에 틀림없다. ■ 서성록

최순민_My father's house-Party_혼합재료_116.8×91cm_2016

최순민의 회화는 몽당연필 모양새로 보이는 집 형태의 틀 안에 아기자기한 추억의 스토리텔링을 가득 품고 있어서 감상자의 호기심을 발동시킨다. 작가는 어릴 적 동심과 추억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집 내부에 그려 넣는 반복적 구성으로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친근하고 사랑스럽다. ● 작품은 회화, 공예, 디자인의 여러 영역을 두루 섭렵한 듯 총체적 작업으로 관찰 된다. 화면은 작업하기 용의한 캔버스 아사천의 매끄러운 면을 거절하고 돌가루로 밑 작업을 하여 굳이 거친 표면 위에 고된 작업을 시작한다. 작가는 2005년 그래피티 아트(벽이나 화면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를 이용한 그림) 작가인 스페인의 안토니오 타피에 작품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안토니오 타피의 거친 표면 작품은 건축자재 재료이기 때문에 대중적인 미술재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생동감과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에 충분 하다고 보였다.

최순민_father's house-Dear my friend_혼합재료_72.7×60.6cm_2016

그때부터 고정 관념의 페러다임을 뛰어 넘는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고 페인팅 표면 재료로 돌가루, 폐잡지, 폐철 등을 부분적으로 사용하고, 레진(수지)을 활용하여 광택 피막을 재현하는 등 다양한 재료를 다루는 실험정신이 대단한 작가가 된 동기이다. 순수회화에 건축 재료까지 포함시켜 총체적 예술 영역을 보여주는 현대회화 작품으로 결국 감상자에게 폭 넓은 시각적 체험의 기회를 부여하고 다양성의 안목을 제공해 주는 작품으로 보여 진다. ● 또한 1995년 동판화를 하면서 경험하게 된 부분 그림의 나열이 지금의 집들의 반복 나열로 이여지고 있다. 작가는 불편한 환경 때문에 동판을 작게 부식 시킨 것들을 조합하여 큰 이미지를 만들었다는데 그 과정 중에 조각그림에 매료 되어 지금의 집들이 탄생 되었다고 하니 작고 협소 했던 아파트 골방이 가져다준 선물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작가의 불편한 환경적 요소가 도리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어 작가만의 특별한 작업 모티브의 장치가 되었으니 놀라운 은혜이다.

최순민_My father's house-Good News_혼합재료_72.7×91cm_2016

집으로 묘사 된 추억의 조각들은 눈 오는 날, 춤추며 소통하는 남녀, 큰 나무와 교회, 비오는 날의 노란우산 속 사랑의 기억, 피에로와 사다리, 식탁에 차려진 케잌과 커피향 그윽한 두 개의 머그잔, 그리고 정중앙의 풋풋한 사랑을 나누는 젊은 남녀의 애정 어린 눈길과 마주 잡은 손에 함께 잡고 있는 풍선 줄과 줄 위에 매달린 들뜬 마음을 암시하는 많은 풍선들, 모두 어우러져 추억의 앨범 같은 형태로 영화 스틸 컷을 보는 듯 재미가 쏠쏠 하다. ● 특히 하늘공간에 묘사 된 스크래치의 끼적거림의 흔적들로 인해 추억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한층 더 고조 시킨다. 특별히 젊은 남녀가 잡고 있는 풍선 줄의 설정은 초자연적 화면을 현실 세계로 끌어 들이는 장치로 보인다. 젊은 남녀는 가슴 가득 벅찬 꿈을 꾸고 있는데 현실 속에서 잡으려는 의지는 끈을 잡은 남녀의 마주 잡은 두 손으로 암시하고 있다. ● 젊은 두 남녀는 함께 꾸는 꿈은 형형색색의 풍선으로 의미심장하게 은유 하지만 그중 대표적으로 가운데 시선을 집중시키는 노란 풍선이 주는 의미는 두 젊은 남녀가 꾸려 갈 가정은 생육하고 번성하는 풍요로움으로 보여 진다. 어쩌면 젊은 날에 남녀가 만나 한평생을 지나오며 경험한 많은 사연과 이야기를 집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관조적 시각으로 편집한 작업으로 관찰되기도 한다. ● 현대인들의 소통과 비즈니스 심지여 추억까지도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하는 작금의 세태에서 작가는 기억 속에 부유하는 모든 추억의 조각들을 집이라는 앨범 속에 고스라니 저장하여 표출해냄으로써 예술이 가지는 감성과 인식의 교감을 이루고 또, 현대인의 가슴 속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작품을 감상 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다. 삶의 여유와 나른함으로 한번쯤은 자신을 돌아보며 추억의 메모리를 끼적거리면서 작품을 감상해도 좋을 것이다. ■ 유미형

Vol.20171206b | 최순민展 / CHOISOONMIN / 崔淳珉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