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혈이 지나는 통로 Passage, anemia going through

이원호展 / LEEWONHO / 李杬浩 / installation   2017_1208 ▶ 2018_0107 / 12월24~6일,1월1~2일 휴관

이원호_자유롭지 못한 것들을 위한_ 단채널 영상, 프린트, 스티커, 매매 구입한 토지_00:39:55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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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호 홈페이지_www.wonholee.net

초대일시 / 2017_1208_금요일_06:00pm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_서울시_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6:00pm / 12월24~6일,1월1~2일 휴관

낙원 417 NAGWON 417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428, 낙원상가 4F 417호

두 해에 걸쳐 이원호 작가를 만나 그의 작품을 보고 설명을 듣고 또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그가 세계에 대해 매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질문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가치'다. 그는 부동산 광고, 노숙자의 박스 집, 골동 명품, 추억의 사진, 걸인의 동냥그릇, 축구경기장라인의 횟가루 등 오늘 우리 삶 부근에 있는 이런저런 것들을 가져와 질문한다. 가치란 무엇인가, 가치란 과연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어디에 존재하는가. 작가 자신의 질문이자 관객에 대한 질문이며 관객과 함께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원호_차액의 깊이_단채널 영상, 미얀마와 인도에서 구입한 한국 동전, 나무, 펠트_00:03:08_2017

질문은 자본주의 탐구가 된다. 그와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고 있기 때문인 건 물론, 자본주의라는 체제가 본디 '가치의 재구성'으로 형성되었고 지속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모든 가치는 교환 가치로 일원화한다. 교환가치는 가격으로 표현되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역전이 일어난다. 애초엔 가치가 가격으로 표현되었지만 이내 가격이 가치를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본질적 가치, 진정한 가치 등 가치에 대한 사유는 흔적 없이 사라진다. 가격만이 본질적이고 진정한 가치다. 그런 매커니즘을 통해 최종적으로 인간에게 가격이 매겨짐으로써 미와 추, 선과 악이 재구성된다. 즉 많은 가치를 소유한 부자는 선인이며 그 삶은 아름답다. 적은 가치 혹은 아무 가치도 소유하지 못한 빈자는 악인이며 그의 삶은 추하다.

이원호_자유롭지 못한 것들을 위한_단채널 영상, 프린트, 스티커, 매매 구입한 토지_00:39:55_2017
이원호_공(空)-공(共)에 대한 인터뷰_잉크젯 프린트, 사운드, 스피커_가변설치_2017

이원호의 작업이 한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건 적절해 보인다. 자본주의는 그 역사를 통해 '보이지 않는 손'을 내세우는 본연의 기조를 수정하고 보완해왔다. 현실 사회주의 패망과 세계화 이후 지구는 거의 다 자본주의 사회가 되었지만 다 같은 자본주의는 아니다. 그런 역사와 흐름 속에서 현재 한국은 자본주의의 모순과 문제가 사회성원의 정신 세계 속에서 가장 폭발하는 공간이다. 오늘 한국인은 지구상에서 제일 많이 자살한다. 가장 가난한 나라도 빈부격차가 가장 심각한 나라도 아니지만,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과격한 방식으로 사회성원의 가치관이 재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이원호는 바로 그 현장에서 현장의 일원으로서 가치를 질문한다.

이원호_Looking for_부동산 홍보물에 금박, 핀_2016_부분

이원호의 자본주의 탐구는 다시 반자본주의 탐색이 된다. 이원호의 작업은 물론 60년대 이래 개념미술 전통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개념미술이 다른 건, 관객의 논리 언어적 사유를 촉구하는 것은 물론 망막과 감성에 다가가는 미적 추구 또한 매우 중하다는 것일 게다. 결국 그에겐 일반적 의미에서 아티스트의 숙제와 사회 사상가의 숙제가 동시에 부여된 셈이다. 그래야만 그의 작업이 '작품 해설'을 훑고 넘어가는 상투적 관람 방식으로 소비되지 않을 수 있을 테니. ■ 김규항

"낙원 417"은 낙원상가 4 층 야외공원 옆에 자리하고 있으며, 2018년부터 예술공간으로 운영됩니다.

Vol.20171208j | 이원호展 / LEEWONHO / 李杬浩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