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그림자

채효진展 / CHAEHYOJIN / 蔡孝眞 / painting   2017_1211 ▶︎ 2017_1220

채효진_오리배_장지에 채색_43.7×54.5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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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_12:00pm~05:00pm

갤러리 담 GALLERY DAM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72(안국동 7-1번지) Tel. +82.(0)2.738.2745 www.gallerydam.com cafe.daum.net/gallerydam

시선의 풍경 - 채효진의 근작들 ● 언젠가 시인 발레리(Paul Valéry)는 드가(Edgar Degas)의 회화를 논하는 가운데 근대적 회화장르로서 풍경화가 '인간 없는 세계의 영상'으로서 바다, 숲, 인적 없는 들판을 그저 그것만으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방식으로 다루게 됐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 결과 회화에서 제멋대로 독단을 발휘하는 일이 당연하게 됐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 확실히 "말이 없는" 사물들의 세계로서 '풍경'을 그린 '풍경화'는 화가의 주관을 펼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회화장르에 해당한다. 그래서 다수의 미술사가들은 풍경화를 주관적 서정성(lyricism)이 가장 두드러진 회화장르로 생각한다. ● 주관적 서정의 승리를 나타내는 풍경화에서는 하우저(Arnold Hauser)가 컨스터블(John Constable)의 풍경화를 두고 말했듯 '인간'은 다만 여러 사물들 가운데 하나처럼 묘사될 것이다. 하지만 풍경을 그리지만 자기 주관을 마음껏 펼칠 수 없는 화가가 또한 존재한다. 풍경에 개입한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는 화가가 그렇다. 당연히 그 화가의 풍경화는 여느 풍경화와 다를 수밖에 없다.

채효진_붉은 바다_장지에 채색_67×99cm_2017

채효진의 「오리배」(2017)는 산책에 나선 화가의 눈에 들어온 선유도 공원의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오리배가 있는 저 한강공원의 풍경은 얼마나 따뜻하고 평화로운가! 하지만 그 풍경을 느긋하게 관조하는 가운데 화가가 문득 감지한 시선(regard), 그러니까 저 오리배 안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는 순간 상황이 돌변했다. ● 그 때 이 화가는 어떤 섬뜩함을 느꼈다. 채효진은 갑자기 자기의 시선을 던지며 출현한 그 섬뜩한 낯선 존재를 사물처럼 관조하며 그릴 수 없었다.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해변에서 석양의 붉은 바다를 만끽할 때 문득 화가를 찔러온 어부의 시선이 촉발한 「붉은 바다」(2017) 역시 같은 계열의 작품이다. 아름다운 풍경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타자의 낯선 시선이 이 화가를 늘 불편하게 만든다.

채효진_낯선 눈_장지에 먹,채색_75×61cm_2017

그것을 타자의 시선에 포박된 상태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렇게 타자의 시선에 포박된 상태에서 화가의 "보는" 행위는 더 이상 자유롭고 원활할 수 없다. 화가는 저편에 있는 상대방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화가는 보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보여지는 대상이 된다. 채효진은 이러한 상황이 촉발한 능동/수동, 주체/타자의 미묘한 긴장을 자기 회화에 아울렀다. 「오리배」와 「붉은 바다」에서 이쪽의 시선(➜)과 저쪽의 시선(󰀴)이 겹치고 충돌하는 장(field)으로서 회화의 표면은 강도 높은 자극들, 에너지들로 포화된 상태다. ●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면 채효진의 회화에서 타자는 화가-주체의 지각장 위에 나타나는 개연적 대상이나 구경꺼리로 볼 수 없다. 사르트르(Jean Paul Sartre)의 말대로 타자가 그 타자성을 상실하지 않은 채 나타나는 일은 나의 시선이 타자를 향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타자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을 때, 곧 "내가 타자를 보고 있을 때"가 아니라 "타자에 의해서 내가 보여지고 있을 때"이다. 그런데 이 경우 타자는 실제로 회화면에 어떻게 출현할까? 채효진의 회화에서 타자의 얼굴이 현현하는 방식에 주목할 수 있다. 특히 이 화가의 회화에 등장한 '낯선 사람들'의 "눈"은 각별한 주목을 요한다.

채효진_바다_장지에 채색_45.5×53cm_2017

거기서 타자의 눈은 광원을 갖는 '광선(빛)'으로 나타날 때가 많다. 그 타자는 채효진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푸른 마음을 가진 노란 눈을 가진 사람"이거나 "검은 마음을 가진 하얀 눈을 가진 사람"이다. 물론 이 때의 '노란 눈'과 '하얀 눈'은 지각의 대상으로서의 눈-이를테면 검은 눈동자, 갈색 눈, 푸른 눈, 아름다운 눈 등-일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대상화되지 않은 타자를 나타낸다고 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 다시금 사르트르를 인용하면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는 일은 타자의 눈에 대한 지각불능의 상태를 촉발한다. "내가 타자의 시선에 나의 주의를 돌리면 그와 동시에 나의 지각은 해체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채효진의 회화에서 '눈부신 눈', '노란(빛나는) 광선' 으로 나타난 눈들은 대상으로 환원되지 않은 타자, 타자성을 간직한 타자를 지시한다. 채효진은 그것을 「낯선 눈」(2017)이라고 부른다.

채효진_그 날_장지에 채색_장지에 채색_45×45cm_2017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타자성을 간직한 타자의 출현이 화가-주체를 일종의 위기 상태로 내몬다는 점이다. 즉 그렇게 출현한 타자의 시선이 자꾸만 화가-주체를 대상화하려 든다. 그러니 어쩌면 타자와의 만남이란 내가 대상이 되거나 그가 대상이 되는 시선들의 싸움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른다. 화가는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구토』(사르트르, 1938)의 주인공 로캉탱처럼 그 싸움에 당당히 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 즉 나를 대상화하는 타자의 시선에 맞서 싸워 이김으로써 타자를 대상화하는 것이다. 그러면 타자의 '광채를 띤 시선'은 "장님처럼 먼 눈"(대상)으로 될 것이다. 「낯선 사람들」(2016~2017), 「두 사람」(2017) 또는 「깊은 잠」(2017) 등에 등장하는 뻥 뚫린 구멍 같은 눈, 얼룩처럼 시커먼 눈, 검은 얼굴은 이런 문맥에서 헤아려야 할 게다.

채효진_두사람_장지에 먹_88×74cm_2017

물론 그 싸움은 간단히 해결될 수 없는 문제를 내포한다. 그 싸움에서 화가 주체가 승리하여 상대방(타자)을 대상화하는데 성공하더라도 그 대상-타자는 대상으로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거듭된 투쟁을 통해 나를 대상으로 만들 수 있다. 어떤 역전의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대상으로서의 타자는 내가 두려워하며 다루는 폭발물"(사르트르)과도 같은 존재다. 채효진의 표현을 빌자면 '사과하기'와 '사과받기'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러니 싸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타자성을 상실하고 대상화한 타자에 대한 두려움 또는 연민이 존재한다. ● 시선들의 싸움이 한쪽의 승리로 굳어지면 거기에는 타자는 없고 다만 대상(사물)이 존재할 따름이다. 그 대상화한 타자와 마주 대하는 일은 이 화가에게 -기쁨을 주기는커녕-차라리 특별한 고통을 선사한다. 그 시커먼 눈, 얼룩-그림자-과 마주대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 한 때 이기적이고 강인했던 존재가 세월이 흘러 기력을 잃고 한 없이 무력해져 버린 상태, 또는 한 때 생생히 살아 숨 쉬던 존재가 다만 물화된 흔적(사진)으로만 자신의 존재를 공표하는 상태를 이 화가는 연민한다. 그러니 시선들의 싸움은 중단 없이 계속되어야 한다. 그 싸움을 두고 "반드시 이겨야한다"고 응원하는 것은 무의미하거나 무례한 행동이 될 것이다. 차라리 싸움 자체를 응원하며 그 싸움이 부디 계속 이어지기를, 이 화가가 "나와는 다른 존재", 이타성(異他性)을 지닌 존재들과 관계의 시간을 좀 더 오래 누릴 수 있기를 기원하는 것이 훨씬 옳은 일이 아닌가! ■ 홍지석

채효진_깊은 잠 장지에 먹_45×45cm_2017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공존한다. ● 두 세계가 공존하는 삶은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틈 타 변화한다. 전이하는 삶은 불명확하고 흐트러진 경계 위에 놓여 있다. 이러한 경계 위에 살고 있는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것은 주어진 삶의 경험 가운데 개인이 직면하게 되는 상황들을 말한다. 이러한 상황들은 보편적인 삶 속에서 겪게 되는 기억, 감정이다. 그 중에서도 지나간 추억의 앨범 속 가족들과 나의 곁에 머물렀던 사람들 그리고 지나간 풍경들의 잔상들은 삶을 반추하게 한다. 이 시간들의 경험이 나의 내면에 기억되어 다시 그림으로 완성된다. ■ 채효진

Vol.20171211c | 채효진展 / CHAEHYOJIN / 蔡孝眞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