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pedance

김범중展 / KIMBEOMJOONG / 金凡中 / drawing   2017_1216 ▶︎ 2018_0107 / 월요일 휴관

김범중_Impedance_장지에 연필_100×20cm_201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60127g | 김범중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아트팩토리 ART FACTORY 서울 종로구 효자로7길 5(통의동 7-13번지) Tel. +82.(0)2.736.1054 www.artfactory4u.com

김범중의 작품에서 소리들은 미묘한 경계면을 오고가며 끊어질 듯 이어진다. 소리들, 그리고 그 소리가 통과하는 시간성은 가늘게 깍은 연필로 힘 있게 그은 소리들이 무한히 축적된 결과물이기 때문은 아닐까. 관객은 레코드판에 침을 올려놓고 작가가 평평한 판에 새겨놓은 음을 재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들은 마치 이퀼라이저처럼 공간에 퍼져나가는 시간의 이미지를 기록한다. 음향기기의 지표는 코드에 불과하지만 손의 흔적은 코드를 벗어난다. 들뢰즈가 베이컨의 회화론에서 말했듯이, 자판을 두들기는 손가락은 코드와 관련되지만 붓(김범중의 경우엔 필기구)을 잡은 손은 탈코드화 되어 있다.

김범중_Cogito_장지에 연필_100×20cm_2017

인간을 포함한 살아있는 것들이 내는 소리들은 다양한 파장을 만든다. 김범중의 작품은 그러한 파장들을 지진계처럼 기록한다. 있음/없음, 옳음/그름 사이의 수많은 계열들을 양단간의 두 가지 항으로 줄어들어 들고 있는 사회에서. 예술은 실재에 내재한 무한한 차이의 계열을 복구시키려 한다. 그의 작품은 흑과 백이 아니라 그 사이 펼쳐져 있는 수많은 단계들이 음미할 만 하다. 시점도 종점도 중요치 않으며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차이가 중요할 뿐이다. 차이에의 지향이 있는 예술은 아무리 차분해 보여도 사회와 대립된다. 물론 예술을 지배적 사회와 대립시키는 것도 그러한 거친 이항대립의 소산일 것이다. 현실정치를 보면 그러한 이항대립이 얼마나 체제 유지적인지 체감할 수 있다. 요컨대 이항대립은 안정적으로 체제를 재생산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장치다. 합(合)을 예상하고 있는 정(正)에 대한 반(反), 정해진 수순에 따른 야합, 정치가들이 늘 되뇌이는'국민'이 접하는 뉴스에 매일 나오는 메시지인 것이다. 이러한 서사를 반복할 때, 예술 또한 진부한 현실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교육적 편의를 위해 단순한 논리로 환원된 예술에 관한 담론들은 예술에 대한 영원한 오해를 낳게 한다. 그러나 예술은 현실과 반대되는 것도 아니고, 현실과 화해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예술은 현실과 차이가 있는, 현실과 평행한 우주를 이룬다. 예술을 소비하는 자가 아니라, 예술을 행하는 이만이 예술을 이해할 수 있다. 예술은 과학과도 다른 차원에서 이해받기 힘들다. 이항대립에 근거하는 형식적인 민주주의에 비한다면, 차라리 독재 체제는 취약하다. 현실을 유지하는 것은 하나의 중심이 아니라 서로 반대되어 보이는 듯한 두 개의 항이며, 그러한 점에서 두 항은 연속적이다. 중요한 것은 불연속, 단층의 지점을 가늠하는 것이다. 김범중의 작품에서 불연속의 지점들은 수많은 선의 교차로 더욱 어둡게 형상화된 부분이다. 한 오라기의 빛도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강항 중력을 가지는 블랙홀처럼 어둡고, 종이와 연필의 앙금이 많이 남아있는 부분이다. 거기에서 나오고 사라지는 선들은 연속적이다.

김범중_Discreet Music_장지에 연필_100×20cm_2017

김범중의 작품에는 불연속과 연속이 교차하는 지점들이 있다. 불연속의 지점에서는 비약과 도약이 가능하다. 오늘날 새로운 개념의 역사와 과학, 철학은 이러한 불연속의 지점을 강조한다. 그래서 오늘날 인문학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예술과 가까이 있다. 표면에서 들려있는 실오라기 같은 것은 이미 차원의 변주를 암시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거기에는 들려있는 것보다 더 많이 눌려있는 물질의 궤적이 있다. 양적으로는 그 깊이를 측정할 수 없는 어두운 경계면들로부터 질적인 변화가 야기된다. 화면을 일정한 간격으로 분절화 시키는 그리드 구조는 체계라기보다는 합류점이나 상호접면이다. 빛마저도 빠져 나올 수 없을 만큼 진한 그 거칠거칠한 영역은 가장 밀도가 있으면서도 무(無)이자 공(空)의 영역처럼 다가온다. 무와 공은 죽음만큼이나 무한을 떠올린다. 선들로 채워진 그 어두운 영역은 무한을 테두리 지으려는 불가능한 몸짓들의 축적이다. 그러나 그 영역은 특히 기호를 다루는 예술가들의 깊은 관심사였다. 기호의 현전은 지시대상의 부재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 아트팩토리

Vol.20171217d | 김범중展 / KIMBEOMJOONG / 金凡中 / dra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