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부터 발끝까지 From head to toe

유승호展 / YOOSEUNGHO / 劉承鎬 / painting   2017_1026 ▶︎ 2017_1125

유승호_떡 ♨_종이에 잉크_210×150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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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화~금요일_11:00am~06:00pm / 토~일요일_12:00pm~06:00pm

피투원 P21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 74 Tel. +82.(0)2.790.5503 www.p21.kr

현대사회는 서구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먼이 초감각적으로 포착해서 묘사했듯 그 성질이 액체처럼 유동적이다. 견고한 사회규범과 이념들이 녹아 흐르듯 무너졌고 절대적인 기준은 권위를 잃었다. 기반과 경계가 녹아 없어지고 다양한 영역과 가치들은 서로를 넘나들면서 영향을 주고받는다. 실로 모든 것이 자유로워졌다. 반면, 액체의 유연한 자율성을 얻은 만큼 사회의 불안정성은 가중되었고 저항할 힘 또한 액체화되어 다수의 개인은 불안정한 상태를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원래 유동적이고 비정제성을 추구하는 현대의 많은 예술가들은 자신이 처한 액체시대의 불안정성과 이에 따른 새로운 권력들에 제각기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하는 중이다. ● 유승호 작가의 작업을 보면 현대사회의 액체성이 짙게 느껴진다. 문자나 이미지처럼 견고하고 구체적인 형식을 다루지만 서로 상반되는 두 성질의 것이 서로를 넘나들면서 서로로 변화되고, 화면의 구성은 액체처럼 유동적이다. '뇌출혈'이 'natural'이 되고, 'natural'은 산이 되어 지고한 풍경을 이루다 어떤 부분은 이내 새가 되어 화폭 저 멀리 날아가기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아래로 흘러내려 민초들이 웅성거리는 주변풍경이 된다. 그 운동성은 반대로도 작동한다. 대부분의 비평은 그의 작업에서 문자와 이미지의 관계에 주목한다. 그러나 실은 그보다 더 많은 상충된 관계들이 넘나든다. 언어와 언어, 전통과 현대, 시와 회화, 의미와 형상, 추상과 구상, 표면과 깊이, 표현과 고백 등, 결핍된 존재들이 화폭을 구성하는 요소로 포진해 있다. 이들은 다소 언어유희나 장난어린 낙서, 유머의 방식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그려진 문자나 이미지가 변형되면서 서로가 되는 과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작가의 작위나 의도라기보다 필연적인 현상인 양 자연스럽다. 애벌레가 나방이 되고 나방이 알을 낳듯이 애당초 서로를 자기 안에 담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나와 너, 아님 연인, 궁극에는 삶과 죽음처럼 근원적인 결핍을 갖고서 서로를 향해 움직이는 중인 듯도 하다. 그리 보니 작가는 화폭에서 서로가 되려고 치열하게 꿈틀거리는 문자나 이미지들을 그저 멍하니 보다가 적절한 때에 붓을 들이대서 그들의 요구와 결핍을 채워주는 것처럼 보인다.

유승호_공 the ball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5.5×112cm_2017
유승호_문 moon_종이에 아크릴채색_145.5×112.1cm_2017
유승호_점순이 jeomsoon-i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57cm_2017

이번 전시 『머리부터 발끝까지』에서는 서예의 서체 중 초서를 활용한 붓글씨 형상이 화면의 주를 이룬다. 지난 이십여 년간 줄곧 해왔던 펜 작업에서 붓글씨 작업으로의 전환은 분명 주목할 만하다. 물론 지난 번 개인전 『머리채를 뒤흔들어』(페리지갤러리, 2015)전의 뇌출혈 연작에서 붓글씨를 사용했었고, 한참 전의 작품 「I go」(2005)에서도 그 형식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붓글씨 연작의 시작점은 『전통이 미래다』(일주&선화갤러리-현, 세화미술관, 2016)전에서 "석봉행초첩"의 석봉 글씨를 차용하여 제작한 작품 「떡♨(2015)」으로 볼 수 있다. 작가는 이 전시를 계기로 붓글씨를 화폭의 주요 요소로서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사실 대부분의 이전 작품에서 초서와의 유사성이 발견되는 만큼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인다. 게다가 북송시대 곽희나 범관의 그림을 모사한 작품들도 여럿 있었는데, 초서가 동시대에 시작된 서체라는 사실도 연관되니 말이다. 작가는 글씨에 담긴 기운을 잘 표현하기 위해 어떤 획은 크게 확대하고 어떤 획은 위치를 변경하는 등, 전체적으로 형태와 구성을 변형해서 초안을 만든 다음 큰 화선지에 옮겨 그렸다. 가냘픈 선들의 율동은 정적이면서도 활기차서 흡사 기생의 몸짓을 닮은 것이 석봉의 초서에 담긴 그 기운이 유화백을 만나 제대로 완성된 듯하다. 작가는 이 작품을 완성하고 한 달 정도 잘 보이는 벽에 놓아두었는데, 뭔가 기분이 이상한 게 흥분되고 매혹되는 느낌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듣고 보면 그 고백이 그리 이상하지가 않다. 그 묘한 기분이 동기가 되어 붓글씨 연작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유승호_초 fool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30×140cm_2017_부분
유승호_초 fool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30×140cm_2017

초서는 사실 문자라기보다 이미지에 가깝다. 풀의 모습을 닮아서 붙은 서체이니 당연지사이다. 자유분방함도 있고 역동적이기도 하다. 한자의 구성 원리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원리는 알다시피 사물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상형문자이다. '象'은 코끼리의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이고, '草'의 부수인 '艹'는 풀을 본떴다. 따라서 구상을 추상화한 문자이니 더 흘려 쓴들 그 글자가 본래 이미지에 가까우면 그 음이 무엇이든 의미를 전달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다만 그 형을 흩트리지 말아야 한다. 북송의 휘종이든 조선의 추사나 석봉이든 초서를 즐겨 쓴 이들은 휘갈겨 씀으로써 역설적으로 글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자들이었다. 그만큼 자신감이 넘치는 예술가라 할 수 있다. 유승호 작가에게도 그러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진즉부터 화폭에 써놓은 글이나 일그러진 형상들, 간혹 춘화에서나 볼 만한 야한 농을 거침없이 그려 놓는다든지, 정적인 풍경화에다 자기 말투처럼 툭 던지듯 붙인 제목 등을 보면서 알 수 있었지만, 이번 초서를 활용한 연작에서는 더 그렇다. 하루의 농사를 마치고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농부의 뒷모습이나 논두렁에 새겨진 흔적에서 느낄 수 있는 흙냄새처럼, 고요하지만 대범하고 가냘프지만 묵직한 기운이 있다. 그 기운이 자신감 있는 자가 여유를 부리듯 멋스럽게 화폭에 옮겨져 있다. 예전에 시인이자 국문학자인 조지훈은 한국적 미의식을 '멋'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율동성이 있는 곡선이나, 형태를 왜곡하기도 하고, 일관되게 해학을 유지하는 낙천성 등이 그가 찾아낸 멋의 내용이다. 나아가 멋의 진정한 의미는 초격미(超格美)로 "격에 들어가서 다시 격에서 나오는 격"이라 말한다. 그렇게 보면, 초서는 초격미에 가장 적합한 양식이다. 앞 글자 '초' 가 같은 것도 그렇지만, 모양을 모사해서 글자가 되었다가 그 틀을 벗어나서 급기야 움직임을 담은 형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 "길은, 가면 뒤에 있다." 황지우의 시 '503.'의 한 구절이다. 어느 미학자가 연설 중에 인용하였는데, 인상 깊어 기록해 놓은 시구이다. 그리고 유승호의 '초fool'(2017)을 보면서 떠오른 글이기도 하다. 3미터가 넘는 기다란 형광 주홍빛의 화폭에서 유독 눈에 띠는 글자는 '屮'이다. 추사가 쓴 다산초당의 현판에서 따온 '초'자다. 풀은 곧아서 삼지창 같고, 우람해야 할 산은 절편처럼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 당시 군주와 유배에 처한 자신을 빗대어 놓은 의미일 수 있으나, 민초의 상징이자 초의 잠재된 힘을 명확하게 표현한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초'와 '풀'은 동의어인데, 붙여서 쓰니 '촛불'과 음이 유사하다. 초와 더불어, 화폭을 이루는 가늘기도 하고 굵기도 하여 힘의 강약이 느껴지는 유려한 획들을 보면 획이 지나간 자리에 얇은 선들이 삐죽이듯 그려져 있어서 마치 붓이 지나간 길에 자리를 내준 풀들을 보는 듯하다. 정자(正字)의 틀을 벗어난 선들이 화가의 붓질로 인해 길이 되었다. 공(空)에 잠재된 선을 찾아 드러내는 일은 형상에서 찾는 것보다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제는 붓글씨를 쓸 때가 되었다." 왜 펜 대신 붓인지 물어보니 작가가 한 말이다. 길이 앞에 있으면 걸어가면 될 일이다. 전통을 따르는 일, 그리고 사회에 길들여지는 일, 그러나 본래 길은 없다. 물길처럼 화가가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고서 걸어가면 길은 생기는 법이다. 농부가 그랬고, 소와 낙타가 그러했듯이 유승호 작가는 예술가에게 주어지는 막중한 중압감을 극복하고 구도자의 길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그래서 '초fool'을 비롯한 이번 작품들을 보면서 액체성을 강하게 느꼈나 보다. 액체시대에 탄생한 새로운 권력들과 이에 저항하는 민초들의 질박하고 순수한 운동성이 화면전체를 유동적으로 만들고 있다. ■ 박순영

유승호_흥이 난다 Flyin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5.5×112cm_2017

As Zygmunt Bauman depicts in an extrasensory manner, the contemporary society is liquid in its characteristics. The rigid social standards and ideologies have been collapsed as if they were melted down, and the absolute standard has lost its authority. The foundation and boundary disappear as they become liquid, and diverse fields and values cross and influence each other. Everything truly has become liberated. On the other hand, the flexible autonomy of liquidity has increased the instability of the society. The power to resist has also become liquid, causing a number of individuals to bear such an unstable state. However, many contemporary artists have been staying in a liquid state and pursuing unrefined circumstances. They are resisting the instability of the era of liquidity and the new authorities of this time in different ways. In YOO Seungho's work, the liquidity of the contemporary society is strongly present. Although the artist deals with firm and concrete forms such as letters and images, two contrasting elements cross and change into each other while the composition of the canvas is as liquid as fluid. The word '뇌출혈'(cerebral hemorrhage) becomes 'natural,' and 'natural' becomes a figure of a mountain to form a sublime landscape where a part of the canvas becomes a bird before anyone recognizes and flies away towards the other end of the canvas. Most of the images flow down toward the bottom of the canvas, becoming a surrounding landscape where the common people stand. The movement also operates in the opposite direction. Most of the previous criticism on YOO's work focused on the relationship between letters and images in his work. However, there are many more contrasting relations lurking in his work. There are an array of deficient substances, such as different languages, tradition and modernity, poem and painting, meaning and figure, abstraction and figurativeness, surface and depth, and expression and confession, which are elements that construct YOO Seungho's canvas. Although these elements are often read as a wordplay, playful scribbles, or a way of presenting humor, one can observe how painted letters or images change and are transformed into the other, which leads to a realization that such a process seems natural as if it was done as an inevitable phenomenon than an unnatural attempt intended by the artist. Such a process seems to be contained within different elements as if a larva becomes a moth which then lays eggs. Different elements seem to be moving toward each other while bearing the fundamental deficiency inside them as in the relationship between oneself and the others, lovers, or ultimately life and death. In this sense, the artist seems to satisfy the demand and deficiency of letters and images that struggle to become the other on the canvas while he blankly gazes them and uses his brush at a proper timing. ● In the current exhibition From Head to Toe, most of the works are paintings have letters in a cursive style. The transition from the style of pen writing to that of brush writing deserves a notable attention. It is true that the artist used the same style in his previous solo exhibition Shaking Your Hair Loose (Perigee Gallery, 2015). His 2005 work I go also showed a glimpse of the style. However, a series of works that employ brush writing started in a work titled 떡♨ (2015), a work exhibited in The Tradition is the Future (Ilju & Seonhwa Gallery (now Sehwa Museum of Art), 2016). The work appropriates the writing style called Haengcho(行草) from HAN Seok Bong, a calligrapher from the mid-Joseon period. After the exhibition, YOO started employing brush writing as a major component of his work. In fact, this change seems to be a natural progression of his artistic style since most of his previous works share similarities with the style of cursive writing. Moreover, YOO produced many works that copied paintings by Guo Xi (郭熙) or Fan Kuan (范寬) from the Northern Song Dynasty period. The cursive writing style also appeared in the same period of these artists. With an intention to better express the energy embedded in letters, the artist made a primary sketch where the overall shape and composition were modified from the original writing by enlarging and moving certain strokes. He then painted the sketch on a large rice paper. The dance of thin lines was static yet vigorous to resemble a movement made by a dancer, leading to an impression that the energy contained in the cursive writing of HAN Seok Bong was completed in full by YOO Seungho. The artist confessed that he himself felt strangely excited and captivated while he hung 떡♨ for about a month on a wall in a good light after completing the work. After listening to the story, what the artist confessed does not seem to be that strange. Rather, it is possible to see that such a strange feeling became a motive to start the series of works that employ brush writing. ● In fact, letters written in the style of cursive writing are closer to images than letters. As the name of the style (草書, which literally means grass and letter) came from its similarity with the shape of grass, it is a matter of course. Letters written in the cursive style are both liberated and dynamic. As well known, one of the basic principles of Chinese character is hieroglyphic composition. For example, '象' (elephant) takes the shape of the animal. '草' (grass)as a radical '艹' that indicates grass or plant when it is combined with other characters. Thus, since Chinese characters are an abstraction of figurative shapes, there is no difficulty in conveying any meaning if a letter is close to the image of its original reference, regardless of how cursive the letter is written. What should stay intact is the shape of the letter itself, though. Whether it was Huizong (徽宗) of the Northern Song Dynasty, Chusa (秋史) and Seok Bong (石峯) of Joseon period, those that favored the cursive writing style understood that they could come close to the essence of writing ironically by scribbling the letters down. One can also say that they were artists that were confident enough to do so. And YOO Seungho also gives that sense of confidence. The confidence has been shown in what he wrote on his canvases, distorted figures in his works, daring depictions of erotic jokes that one might observe in obscene pictures (春畵, a particular term for erotic paintings produced during Joseon period), and rather indifferent titles he made for static landscape paintings, which reminded of his way of speaking. The current series with the cursive writing style shows more of that confidence. In the works in the series lie energies that are tranquil yet bold and feeble yet massive that one can feel from the back of a farmer who finished his job during the day and riding an oxcart or a smell of earth from the traces of moving on a ridge between rice paddies. Such energies are beautifully conveyed on the canvas as if it was done by a person full of confidence in a relaxed manner. A poet and a scholar of Korean literature CHO Ji Hun once mentioned that the Korean aesthetic consciousness can be found in the notion of '멋' (Meot), which means sapidity, taste, or a general appreciation of beautiful things and actions. CHO finds Meot in lines that are curved rhythmically, distorted shapes, and optimism that consistently sustains humor. Further, CHO tells that the authentic meaning of the term is seen in the 'beauty of transcending formality' (超格美), which is "a formality that enters and escapes from a formality." In this sense, the cursive writing is the most appropriate form to express the beauty of transcending formality since it is to mimic shapes to create letters that transcend the given frame and even become figures that contain movement. ● "Lies behind the mask, the path." The line is from HWANG Ji Woo's poem "503." I wrote it down while I was listening to a statement made by an aesthetician where he quoted the poem. I was reminded of the line when I was observing YOO Seungho's 초fool (2017). What catches one's eyes in this long neon-colored canvas that stretches more than three meters is a letter '屮' (grass). It is the same letter that Chusa wrote for a signboard hung at the entrance of Dasan Chodang (茶山草堂, a residence building used by JEONG Yakyong (1762-1836) during his exile (1800-1818)). On the signboard, the letter for grass is written straightly to remind of a trident while the letter signifying a mountain is tilted like a piece of rice cake while it is supposed to be grandiose. This can be an allusion of the ruler and the exile, but what is also evident is that the letters are a clear expression of the people and their potential power. In addition to grass, YOO Seungho's canvas is composed elegant lines that are both thin and thick, conveying the the strength and weakness of force. Strokes of thin lines follow the elegant lines, forging an imagery of grass that provides a space to the path that has been followed by a brush. Lines that deviate from the standard shape of letters become paths by the artist's brush strokes. To find zen hidden in emptiness shall be more difficult than finding it from visible forms. When I asked the artist about why he started using brushes instead of pens, he gave this response. "Now is the time to use brush writing." If a path is laid in front of oneself, one should follow the path. The path might be of following the tradition or being adapted to the society. However, there is no fixed path from the start. If a painter has faith in himself and follows his way, a path shall be paved. YOO Seungho overcame an immense pressure he felt as an artist and is now paving his path toward becoming a seeker of truth. And this might be a reason I strongly sensed liquidity as I observed works in the exhibition including 초fool. In YOO Seungho's work, the new authority born in the age of liquidity and the simple and pure movement of the common people that resist that authority turn the canvas into a state of liquidity. ■ Park Soon Young

Vol.20171217e | 유승호展 / YOOSEUNGHO / 劉承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