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태 形態 Gestalt

양소정展 / YANGSOJEONG / 梁小汀 / painting   2017_1219 ▶︎ 2017_1224

양소정_식물원_캔버스에 유채_111.2×162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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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7:00pm

사이아트 스페이스 CYART SPACE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28(안국동 63-1번지) Tel. +82.(0)2.3141.8842 www.cyartspace.org

내면 세계의 형태를 본다는 것 혹은 알아간다는 것 ● 어떤 사물을 본다는 것은 그 사물의 형태를 식별함으로써 그 사물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이때 시각적 감각은 이전에 경험된 감각 정보나 동시에 감각되는 다른 감각 정보와 비교하고 그 차이를 알게 되는 과정을 통해 그것이 무엇인가를 지각하고 인지하게 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므로 어떤 사물의 형태를 보는 행위는 세계를 알아가고 사유하는 기초가 된다. 그러나 마음이나 생각과 같은 비형상적 세계는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타인의 마음이나 생각을 보거나 보는 것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것 역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주 이 보이지 않는 내면 세계에 대해 알고 싶어 하고 이 내면으로부터 떠오르는 것들을 가시적인 것들과 연결 짓곤 한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주로 상징이나 비유와 같은 방식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마음이나 생각이 형체가 없는 것이기에 이와 유사하다고 느껴지는 것을 연결 짓는 방식을 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양소정_매달린것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7
양소정_엉긴것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7

양소정 작가는 이미지를 통해 자아를 탐구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가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에 집중하게 된 것은 인간이 언어적 학습이 이루어지기 이전의 원초적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사유 방식은 시각적 경험으로부터 온 이미지가 그 기초일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내부에서 떠오르는 심상이 언어로 번안되는 과정에는 의미의 왜곡이나 손실이 클 수 밖에 없다는 판단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작업노트에서 '언어를 믿지 않는다'고 언급하기도 하였으며 '언어로 설명할 수 없지만 내 안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그 무엇을 알고 싶다'고도 하였다. 이는 작가 자신이 그의 내면 세계를 이미지를 통해 드러낼 때 언어를 기반으로 한 의식에서도 파악하지 못했던 것까지 알아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가운데 작업을 시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이처럼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세계에 대해 그의 내면에서 떠오는 세계를 형상화 함으로써 다시 그가 표현해 낸 작업을 통해 이를 관조적으로 바라보는가운데 더 깊이 알게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양소정_엉긴것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72.7cm_2017
양소정_틈새로부터 삐져나오는 것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6.8cm_2017

그가 그려낸 이미지들은 인간의 신체의 일부분으로 보이는 것들도 있고, 나뭇가지나 신경세포 같은 동식물의 일부분 혹은 생체 기관으로 보이는 것들도 있으며, 낚시 바늘이나 꼬챙이처럼 상징성이 강한 물체들도 보인다. 그러나 그의 화면에 보이는 것들은 통일된 어떤 실체가 보이는 것은 아니다. 대신 어떤 사물의 일부분처럼 보이는 여러 개체들이 서로 연결되고 조합된 것처럼 보인다. 또한 그가 작업한 화면들은 대부분 배경이 소거되어 있다. 어떤 사물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사물의 형태를 파악할 수 있는 컨텍스트와 텍스트의 관계를 보기 마련이다. 그런데 양소정 작가 작업에서는 어떤 사물의 일부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 사물 전체를 그리지 않았고 또한 배경이 되는 공간을 최대로 소거하거나 억제하여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맥락이 잘 파악되지 않도록 하였다. 부분부분 파편화된 요소들을 발견해가며 그 연결 방식으로부터 이미지 읽기를 해야 할 수 밖에 없게 만든 것이다. 다만 화면 전체에서는 매우 부드럽고 아름다운 형태와 색채 속에 동시에 아주 날카로운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섞여 있다는 점은 강하게 드러나 있기도 하다.

양소정_틈새로부터 삐져나오는 것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6.8cm_2017
양소정_틈새로부터 삐져나오는 것_캔버스에 유채_33.4×46cm_2017

이때 양소정 작가가 이처럼 최대한 사물이나 형태의 맥락을 배제하고 그 사물에 포함된 일부 요소들과 그 관계만이 드러나도록 한 것은 기존의 사물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 오히려 자신의 내면 세계를 표현하고 이해하는데 있어서 방해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 사물이 갖고 있는 일부 속성들에서는 자신의 내면과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러한 요소들이 관계하는 방식을 무의식적으로 그려내게 되는 회화적 작업 방식과 그 행위 속에서 작가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길을 찾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양소정_분노의 형태(saint.ange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72.7cm_2016

그런데 이러한 작업 태도는 작가가 포착하고자 한 것이 인간의 내면을 구성하는 일부 요소들이 모인 합(合)으로서의 전체가 아니라 그 내면 세계를 구성하는 구조로서의 전체를 읽어가기 위한 것임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작업 태도를 보이는 것은 작가 자신이 경험한 사건들이나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만 자기 자신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양소정 작가는 작업에서 마음과 생각의 편린들을 단순히 나열하거나 자세히 묘사하기 보다는 그것들의 관계망을 그려내거나 재맥락화 된 상황을 그려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복잡 다단한 그의 내면 세계를 구성한 타자들의 총합을 넘어선 그 어떤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작업에서 이와 같은 방식으로 비가시적인 자신의 내면 형태를 대상으로 하여 그것을 그려가기를 시도하고 다시 그것을 더 깊이 읽어낼 수 있기를 갈망하고 있다. ■ 이승훈

Vol.20171219e | 양소정展 / YANGSOJEONG / 梁小汀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