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움으로부터 Out of Unfilled Fullness

구명선_노승표_박성경_황지윤展   2017_1222 ▶︎ 2018_0103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7_1222_금요일_06:00pm

기획자 / 채영

주최 / 갤러리175_한국예술종합학교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175 Gallery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87번지 안국빌딩 B1 Tel. +82.(0)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모더니즘이 회화를 '평면성'이라는 매체의 특정에 한정하여 보았을 때, 회화의 비밀은 모두 풀린 듯 보였다. 이 미적 매체가 인정한 2차원의 한계는 그 표면을 채워나간 행위의 결과에서 환영과 재현 대신 물성과 형식을 선택했다. 이후 재현적 요소와 서사적 요소들은 회화에서보다 새롭게 등장한 미디어들에게서 더욱 효과적인 언어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회화에서 이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동시에 회화는 여전히/아직도 구상과 추상, 재현과 비재현,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물질성과 비물질성 등과 같은 경계를 통해 설명된다. 회화는 그 경계의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는지 혹은 어떻게 넘어 다니며 경계를 허무는지를 통해 이야기된다. 그것은 새로운 시대, 인터넷 환경과 스마트 기기 그리고 소셜 미디어가 주도하는 이미지의 세계에서 회화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것으로 이어진다.

구명선_모호한 대화_종이에 연필_51×74cm_2016
구명선_오후가 흐르는 숲_종이에 연필_51×74cm_2016
구명선_12월의 마지막 밤_종이에 연필_60×44cm_2016

그런데 이렇게 동시대적 의미들을 찾는 사이 종종 평면 위의 조형 언어들은 뒤로 밀려나는 듯 보인다. 평면의 중심부 내용들이 해석되는 동안 그 주변을 채워나간 작가의 흔적들은 마치 오래전에 풀린 비밀처럼 취급된다. 특히 조형 요소들이 기호적 특성을 강하게 드러낼 때나 표현주의적 형태들이 시선을 끌어당길 때, 보는 이의 해석과 감상은 종종 회화의 구도와 내용상의 중심이 되는 부분에 머문다. 따라서 회화의 주변부는 구도를 위해 희생된 무엇이 되거나 설명되지 않는 어떤 감각들을 가시화한 흔적들로 남는다.

노승표_용과 봉황이 있는 풍경_장지에 연필_135×165cm_2017
노승표_찌라시_장지에 아크릴채색, 연필_135×165cm_2017

이번 전시는 『채움으로부터』라는 다소 직접적인 제목처럼 공간에 전시된 평면들을 채워진 대상으로 설정한다. 전시는 참여작가 네 명(구명선, 노승표, 박성경, 황지윤)의 회화 혹은 드로잉을 평면이라는 물리적 지지체의 2차원적 특성이 아니라 그것의 표면을 덮는 행위의 결과물로 본다. 전시는 회화의 주제가 무엇인가보다는 화면이 무엇으로 채워졌는가에 집중한다. 이때 회화는 내용과 구도의 중심에서 화면 구성의 가장자리로 그 중심의 이동이 가능해진다. 그럼에도 중심은 그곳에 계속 머물지는 않는다. 배경이자 바탕 혹은 여백은 채워진 공간으로서 중심과 잠시 동등해졌을 뿐이다.

박성경_튀어나온 곳_장지에 연필_104×75cm_2017
박성경_조금 기울어진 채 튀어나온 곳_장지에 연필_104×75cm_2017

해석과 감상이라는 관객의 고전적인 시선은 화면 위에서 여전히 중심 대상을 찾는다. 때로는 너무나 확고하게 드러나는 대상이 회화의 모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구명선의 캐릭터적인 여성 이미지와 노승표의 사회적 메시지, 박성경의 프로타쥬 기법과 황지윤의 풍경에 숨겨진 도상들이 각자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 든다. 그러나 연필과 붓의 흔적들이 채워나가는 흔적들을 따라갈 때 표면은 더욱 많은 것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 구명선의 집요하게 그어나간 선들이 화면에 채우는 것은 만화적인 여성 이미지의 과장된 신체와 몸짓, 눈빛에 대한 표현보다는 빛과 어둠의 감각적 구현이다. 선들로 채워진 배경은 흔히 반복적인 노동행위의 집적과 흔적으로 강조된다. 그 흔적들로 채워나간 회화는 배경의 구체적 대상들을 지우고 공간의 깊이감을 드러냄으로써 공간 전체를 수용하게 만든다. 박성경은 프로타쥬 기법으로 주변 공간의 벽이나 바닥의 표면들을 연필로 화면에 마찰시킨다. 작가는 개인의 존재를 둘러싼 공간들을 화면 안으로 끌고 들어와 탐구한다. 전시장에서 이미지들이 가볍게 흔들리는 사이 공간의 감각들은 기법과 과정의 특수성이 아니라 수집되어 채워진 표면에서 발견되는 우연한 흔적들과 그 형태를 강조하는 표현으로부터 나온다. ● 노승표의 회화는 사회 풍자적인 요소를 분명 드러낸다. 그러나 화면을 채우는 것은 관습적인 구도를 깨는 구성과 과감한 선들의 조합이다. 입시 미술의 구도를 뒤섞고 박정희 시대의 구호를 비틀면서 혼란하게 제시한 화면은 사회현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작가의 비판적 태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전시장에서 만나는 그의 회화는 사회의 어두운 이면들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유보한다. 이때 유보된 판단 아래 남은 감정의 잉여가 대담하고 힘 있는 선들로 화면에 채워진다.

황지윤_절벽1 cliff_캔버스에 유채_193.9×65cm_2017
황지윤_절벽2 bluff_캔버스에 유채_193.9×65cm_2017
황지윤_바람 부는 곳 where the wind blows_캔버스에 유채_112.1×193.9cm_2014

황지윤의 회화는 전형적인 풍경화의 구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속에는 숨겨진 도상들이 자연풍경과 교묘하게 뒤섞여 있다. 도상들이 드러날 때 고전적인 화면의 구성은 순식간에 유쾌한 눈속임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들이 발견되어 기호로 해석되는 과정이 아니다. 이 전시를 통해 보이는 것은 풍경을 채워나간 개별 조형 요소들이 현대회화에서 추상화의 각 터치들처럼 갖게 되는 자율성이다. ● 채우는 행위에 집중하면 회화의 중심 위치는 불분명해진다. 회화의 중심과 주변의 위계를 섞어 보려는 시도의 끝에는 또다시 모더니즘 회화의 평면성으로 돌아가는 길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시는 채워진 평면이 아닌 평면의 채움에 집중한다. 재현과 서사는 또다시 화면의 위계를 고정시킬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태도는 언제든 주변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 화면의 중심이 반짝거리고 있을 때에도. ■ 채영

Vol.20171222d | 채움으로부터 Out of Unfilled Fullness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