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 남도 · 돌

박종갑展 / PARKJONGGAB / 朴鐘甲 / painting   2017_1222 ▶︎ 2017_1230

박종갑_바람_나무에 수묵_244×1098cm_2017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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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1222_금요일_05:00pm

후원 / 조병돈(이천시장)_(재)월전미술문화재단 한벽원미술관

관람시간 / 10:00am~06:00pm

한벽원미술관 HANBYEOKWON ART MUSEUM 서울 종로구 삼청로 83(팔판동 35-1번지) Tel. +82.(0)2.732.3777

근원이자 생물(生物)인 먹(墨) ● 가득하다. 화면을 위한 인위적 수사(修辭)는 없다. 「변성變成_움직여서 이룸」 무겁고 깊은 그것. 먹이 물을 만나 저절로 부풀고 풍부하게 화면을 덮는다. 박종갑의 신작 중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검은 화면의 그것이다. 먹물(水)과 먹(墨)의 조화로 표현되는 수묵은 분명 회화재료다. 그러나 단순한 재료의 명칭만으로 국한되진 않는다. 수묵이란 단어 안에는 작가의 사유와 개념을 담아내는 적절한 방식과 과정의 필연이 내포되어 있다. 검다, 어둡다, 밤 등의 의미인 검을 흑(黑)과 땅과 흙을 뜻하는 흙 토(土)가 만난 단어로 풀이한 『설문(說文)』에서 묵은 먹(畵墨)이라고 말한다. 밤은 아침을, 어두움은 밝음을 그 다음 수순으로 삼고 흙과 땅은 생명의 잉태와 생성을 내재한다. 바람과 돌과 남도와 화가가 각각의 다른 개체와 대상이 아닌 서로 얽히고 이어진 유기적 관계의 태생적 의미와 환원이며, 조형적 순환 운동을 회화적 발생이다. 순환하고 윤회하는 유기적 관계의 사람과 자연 그리고 예술인 셈이다. 물과 먹, 그것으로 충분하다. 태양아래 사물을 식별하기 위한 일차적 색채 보다 더 내밀하고 근원적이며 자유롭고 풍부하다. 박종갑이 드러낸 수묵은 멈춘 것이 아닌 살아있는 생물인 수묵이다.

박종갑_바람_나무에 수묵_244×1098cm_2017
박종갑_바람_나무에 수묵_244×1098cm_2017_부분
박종갑_바람_나무에 수묵_244×1098cm_2017_부분
박종갑_바람_나무에 수묵_244×1098cm_2017_부분

숨 같은 바람, 바람 같은 몸 ● 「바람_나무 위에 수묵」에서 바람을 본다. 거센 남도의 바람을 본다. 『월전문화재단 선정작가 초대전 남도 · 바람 · 돌 박종갑 전시』에서 바람을 다루는 작가의 몸이 보였다. 거친 붓을 휘두르고, 멈추고, 다시 채워 넣고, 힘을 주고, 숨을 뱉어내는 휘몰아치는 행위 말이다. 일련의 '바람'시리즈라고도 불릴 법한 작품들은 작가의 손이 아닌 작가의 몸을 본다. 축적된 묵선과 멈춰진 흔적들이 손을 넘어 팔, 그리고 어깨와 허리 즉 몸을 사용해야 나올 수 있는 범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12미터가 족히 넘는 대작들은 자연과 사람을 분리시키는 건축물 안에서가 아닌 자연 가운데서 벌어졌다. 해남의 겨울 숲에서 칼바람을 그대로 받으며 세워 놓은 대형 화면에서 박종갑은 자연 그대로를 몸으로 받고 숨으로 내뱉으며 화폭에 바람을 담았다. ● 전라남도 해남에 있는 작은 섬, 임하도에서 상주하며(레지던시프로그램) 목격한 바다, 바람, 돌, 파도 가운데 예술적 직감과 선택적 주의를 통해 포착된 자연을 소재로 제작되었다. 여기서 직감과 선택에 주목해야 한다. 해남에는 겨울 숲에 불어오는 폭풍 같은 바람을 막아선 수많은 소나무숲(방풍림)이 있다. 박종갑은 그 겨울 숲과 겨울 바람을 눈으로 보이는 그대로, 알고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손쉬운 행위를 택하지 않았다. 혹자가 보기엔 비슷비슷한 모양새의 숲길을 발로, 눈으로 헤매고 찾아다녔다. 칼바람은 당연한 수순으로 작가의 몸에 꽂혔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어느 곳이자 바로 그곳을 선택해 화판을 펼친다. 본 것 중 선택했고, 그 선택은 학습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예술적 영감과 직감이 작용된 결과다. 박종갑은 "그것은 마치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생의 첫날' 그 날의 움트림처럼 대지는 온힘을 다해 숨을 끌어내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박종갑_바람_나무에 수묵_196×366cm_2017

오래되어야 얻어지는 가치, 남도의 돌 ● 작가가 몸으로 익힌 남도의 섬엔 지금의, 순간의 바람만이 아니다. 하루에 두 번씩 반복되는 밀물과 썰물에 밀려다니며 쓸리고 부딪히며 깎인 남도의 돌은 오래되어야만 얻을 수 있는 형태를 갖는다. 오래되어 낡아버린 것이 아닌 오래되어야 아름다운 가치를 오늘의 시각예술가 박종갑은 아름다운 가치로 발견하고 그것을 오늘의 시선으로 직접 보고 그린 사생으로 화면에 담았다. 「해남임하바다돌」은 지금의 사실이며, 과거의 시간을 품고 있는 기록이며, 낡지 않는 눈으로 오랜 가치를 목격한 시각예술가의 발탁이다.

박종갑_바람_나무에 수묵_244×1220cm_2017

몸의 그림, 생물의 수묵 ● 박종갑의 이번 전시 작품들에서 몸은 중요한 요소다. 그것은 대상으로서의 중요성뿐 아니라 체득(體得)이란 단어처럼 덕(德=得)을 깨닫는 것은 머리가 아닌 몸(體)으로 조어(造語)된 것에서 그 연유를 유추할 수 있다. 몸으로 얻은 진리는 머리로 학습한 지식과는 분명 다르다. 작가는 아름다운 풍경의 범주에서 벗어난 자연 그대로의 바깥에서 얻은 유기적 관계를 몸으로 화폭에 담았다. 결국 박종갑의 이번 『남도 · 바람 · 돌』전시는 비미(非美)적인 것에서 아름다움을, 예기치 못한 조합에서 평범한 이치를, 보이지 않는 것에서 생명의 순환을 추구하려 했다. 겉은 담박하지만 내용은 풍만하고, 쉽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짙으며(外枯而中膏, 似淡而實濃), 현란함이 극에 도달하면 평담함으로 돌아간다(绚爛之極, 歸于平淡)는 소식(蘇軾, 소동파)의 이야기와 닮아 있다. 수많은 선들이 중첩되고, 형태는 삭제됨을 반복하며 작가는 화면을 닦듯 마음을 닦았을 것이다. 그렇게 고스란히 담겨진 이야기는 울림이 된다. ● 박종갑의 그림과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이러한 풀이를 충분히 가능케 한다. 남도의 바람과 돌은 스스로(自) 그러한(然) 자연처럼 작가의 신체와 정신에 체득되어 몸의 언어이자 기운의 형태로 화폭에 담겼다. 체득(體得)이자 기운이 생동(生動)한 생물적, 즉 살아있는 회화다. 작가는 심미안이라 불리는 마음의 눈으로 보이는 것을 넘어, 아는 것을 초월한 남도의 바람과 돌을 담았다. 그렇게 담긴 바람·남도·돌은 대상이 아닌 유기적 자연으로 근원적 힘을 가진다. ■ 김최은영

Vol.20171222e | 박종갑展 / PARKJONGGAB / 朴鐘甲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