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의 균제 Balance and Symmetry of Landscape

노광展 / NOHKWANG / 盧桄 / painting   2018_0124 ▶ 2018_0204

노광_계룡산 그 겨울속으로_캔버스에 유채_72.7×90.9cm_2017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 스페이스 INSA ART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6(관훈동 119번지) Tel. +82.(0)2.734.1333 www.insaartspace.com

인사아트스페이스에서는 2018년 1월 24일부터 2월 4일까지 2018년 무술년 첫 전시로 노광 개인전 『풍경의 균제』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인사아트스페이스 전관에서 『풍경의 균제』라는 주제로 풍경화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집념으로 작업한 노광작가의 작품 50여점을 선보인다. ● 이번 전시에서 노광은 사실주의 화풍을 재현하기 위해 전국을 다니며 자연의 풍광을 관조하고 자연과 내면의 균형을 이루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물을 보여준다. 그는 자연의 속삭임 속에서 우리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상기하고 자연의 이치에 거스르지 않고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야 할 인간의 모습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 사실주의화가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천사를 본 적이 없다. 나에게 천사를 보여준다면 그려보겠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평범한 풍경이지만 섬세하고 아름다운 표현을 하는 사실주의 화가와 같이 노광작가 역시 고집스러울 만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묘사하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펼쳐가고 있다. 그는 유행이나 유파에 휩쓸리지 않고 예리한 직관력과 관찰력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고, 자연의 원형을 진실하게 재현하였다. 특히 자연 속 현장에서 작업하며 느낀 자연의 시각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오감으로 체험한 순수한 감정들까지도 놓치지 않고 철저하게 캔버스에 담아내고자 하였다.

노광_수촌리 시냇가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17
노광_獨也靑靑_캔버스에 유채_53×72.7cm_2017

김이순 평론가는 "노광은 원래 자연의 모습에 어떠한 것을 첨가하거나 가공해서 그리기를 거부하는 작가다. 그는 그저 자연이 원래 가지고 있는 순수한 모습을 진실하게 표현하고자 한다. 결코 인위적이지 않은 무위(無爲)의 풍경, 즉 인간과 조화를 이루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야말로 지고(至高)의 풍경이라고 여기며, 인간의 정신을 정화하는 장소로서의 자연, 바쁜 현실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로서의 풍경. 노광의 풍경은 우리의 고향이자 안식처로서의 풍경이다"라고 평했다. 작가의 작품은 복잡한 현대인의 정서를 환기시키는 장치이며, 그의 작품 속에서 풍경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대등함과 대상과의 일체감을 자연스럽게 보여주어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였다. ● 이번 전시를 통해 현대사회에서 잊혀져 가는 태초의 자연을 예술적 가치로 재현 및 보존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더 나아가 인간과 자연이 균제와 균형을 잘 이뤄가야 한다는 점을 재조명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작가는 대한민국 미술 대전에서 세 차례 특선을 수상하였으며, 21번의 개인전을 통해 역량을 인정받은 바 있다. 현재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다수의 기획 초대전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 인사아트 스페이스

노광_낙동강 경천대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7
노광_가을의 공산성_캔버스에 유채_72.7×100cm_2017

넉넉하고 소담한 무위(無爲)의 세계: 노광(盧桄)의 풍경화 ● 풍경화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인식이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미술장르다. 동양에는 산수화의 오랜 전통이 있기 때문에 그 전통 가운데서 풍경화를 논할 수 있지만, 한국의 근현대 풍경화는 자연의 직접 관찰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서양 풍경화의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서양에서 실제 자연관찰을 토대로 한 순수 풍경화가 등장한 것은 19세기 이후다. 그 이전까지 풍경은 종교화나 역사화의 배경에 지나지 않았으며 실재하는 자연이라기보다는 관념적으로 이상화된 자연이었다. 19세기 말에 구로다 세이키(黒田清輝, 1866-1924) 같은 일본 화가들이 유럽에서 자연 사생을 토대로 한 풍경화를 배워온 이래, 일본의 미술학교에서 인물화, 정물화와 함께 풍경화를 미술장르로 가르침으로써 동아시아에서도 풍경화가 급속히 확산되었다. 따라서 전통 산수화와는 달리, 근대기에 형성된 풍경화는 현장 사생에 기반을 둔 그림이다. ● 평범한 자연을 즐겨 그리는 노광(1949~)의 풍경화 역시 이러한 맥락에 놓여 있다. 노광은 서울 근교, 화가의 고향 마을, 인간의 발길이 뜸한 낙도 등 전국 구석구석의 풍경을 그리는데, 그가 선택하는 대상은 명승고적이 아니라 평범한 자연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연을 그린 화가들은 많다. 일찍이 동양의 산수화가들은 자연의 이치를 산수(山水)의 형상으로 담아내고자 했으며,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6~1840) 같은 낭만주의 화가는 원초적인 자연, 즉 인간의 힘이 미치지 않은 대자연을 즐겨 그렸다. 그러나 노광이 즐겨 그리는 자연은 동양적 산수도 낭만주의의 숭고한 풍경도 아닌, 인간이 머무는 평범한 자연이다. 물론 그의 그림 속에 인물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풍경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원초적 야생의 자연도 아니다. 기암절벽의 소나무나 독야청청하게 서 있는 소나무를 그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험준하지 않은 구릉과 그곳을 경작하며 살고 있는 농부의 나지막한 집, 자연 지형에 따라 개간된 밭, 그 사이로 구불구불하게 난 밭두렁, 때로는 유유히 흐르는 강, 잔잔한 호수와 바다, 그리고 지나치게 높지 않은 산, 푸른 하늘이 어우러진 것이 그의 풍경화다. 요컨대, 노광이 그리는 자연은 인간의 힘에 지배당한 자연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인간적인 요소가 일체 배제된,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자연도 아니다. 자연을 경작하되 결코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사는 인간을 그리는 것이 그의 삶의 태도이자 자연관이라고 할 수 있다.

노광_우포인상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4
노광_노도의 전설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07

평범한 자연을 화폭에 담았던 한국의 대표적인 풍경화가로는 오지호(1905~1982)와 김주경(1902~1981)을 들 수 있다. 이들의 풍경화는 흔히 인상주의풍이라고 언급되지만, 사실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 같은 서양의 인상주의 화가들은 자연 자체를 즐겨 그리기보다는 근대화된 도시이미지, 즉 파리 시가지나 파리를 활보하는 인물들을 즐겨 그렸으며, 그들이 그린 교외 풍경도 자연보다는 교외에서 여가를 즐기는 도시인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오지호나 김주경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에 몰입했다는 점에서 서양의 인상주의자들과는 결을 달리 하는 '자연주의적 풍경화가'라고 명명할 수 있다. 노광은 이러한 우리나라 근대기 풍경화의 흐름선상에 있는 작가로, 보다 직접적인 선배로는 한국 화단에서 아카데믹한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인 박득순(1910~1990)을 꼽을 수 있다. ● 노광의 풍경화를 잠시 박득순의 풍경화와 비교할 필요가 있다. 노광은 박득순에게 30여 년간 사사했다. 일제강점기에 태평양미술학교를 졸업한 박득순은 화풍의 변화를 시도하지 않고 평생 아카데믹한 사실주의를 고수했다. 그는 인물, 정물, 풍경 모두에서 탁월한 묘사력을 발휘하였는데, 특히 "예술은 누드화로부터 시작하고 누드화로 끝난다"고 생각할 정도로 "털끝만큼의 꾸밈이 없는 진실과 至高한 미는 누드화에 있다"고 믿었던 화가다. 이러한 미의식은 노광에게도 그대로 전수되었다. 노광 역시 누드화에 심혈을 기울였고, 사실주의 화풍을 흔들림 없이 고수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노광의 자연관 역시 스승의 영향 하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박득순은 한 인터뷰에서 "자연은 얼마나 아름답게 보느냐, 우리가 꾸며서 그리는 것보다는 아름다운 자연을 어떻게 잘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다. 문제는 이 자연을 자기 생각과 회화적인 입장을 잘 조화시켜 화면으로 여하히 표출하느냐에 있다. 자연이 지니고 있는 본태적인 아름다움을 그대로 표현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 그러나 풍경화만 놓고 보면, 두 화가의 지향점에서 차이가 간취된다. 박득순은 비원을 비롯하여 전국 곳곳의 풍경을 그렸는데, 그의 풍경 속에는 거의 항상 인물이 등장한다. 비록 인물의 크기는 크지 않지만 인물이 등장함으로써 풍경은 인물의 배경이 된다. 반면 노광의 풍경화에는 인물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고궁을 그린다 하더라도 호젓한 곳을 선택했고, 자연 풍경 속에 인물이 간혹 등장하더라도 그 크기가 매우 작아 인간의 존재를 거의 인식하기 어렵다. 노광은 표현 대상이 고궁의 건물이든, 산, 바위, 계곡과 같은 자연 소재이든 어느 누구로부터도 방해를 받지 않고 대상물과 대화하듯이 창작에 몰두하기를 원했다.

노광_후포해변_캔버스에 유채_112.1×145.5cm_2010
노광_Beyond the Sea I_캔버스에 유채_43×123cm_2017

노광은 항상 현장에서 그림을 그린다. 이는 인상파 화가들처럼 시시각각 변화하는 광선의 느낌을 포착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연을 가능한 한 철저하게 캔버스에 담아내기 위해서이다. 그는 자연의 시각적인 모습만이 아니라 자연의 소리와 냄새까지도 담아내기 위해, 자연 속에 머물면서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그리고 소나무나 숲의 냄새 등을 오감으로 체험한다. 그리고 그 느낌을 화면에 녹아낸 결과, 그의 그림은 생동감과 생명력으로 충만하게 된다. 기계의 힘을 빌린 사진과 달리, 화가가 현장에서 직접 그린 그림에서 생명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노광은 자연에 특별한 관념을 투사하지 않고, 자연 속에 머물면서 느낀 순수한 감정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자 하였다. ● 노광은 원래 자연의 모습에 어떠한 것을 첨가하거나 가공해서 그리기를 거부하는 작가다. 그는 그저 자연이 원래 가지고 있는 순수한 모습을 진실하게 표현하고자 한다. 인간의 손길이 닿았지만 원래 자연의 모습을 크게 변경하지 않은 상태, 자연에 순응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인간의 모습, 인위성이 배제된 자연스런 상태에 있는 풍광 등, 그가 선택한 소재에는 그러한 자연관이 녹아 들어 있다. 원초적인 야생의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흔적을 담은, 하지만 결코 인위적이지는 않은 무위(無爲)의 풍경, 즉 인간과 조화를 이루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야말로 지고(至高)의 풍경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가 그린 풍경은 자연에 머물고자 하는 인간의 심정에 부합한다. 인간의 정신을 정화하는 장소로서의 자연, 도시민들이 바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로서의 풍경. 노광의 풍경은 우리의 고향이자 안식처로서의 풍경이다.

노광_산촌의 가을_캔버스에 유채_53×72.7cm_2017

노광의 자연 풍경화는 흔히 먼 산과 가까이에 있는 나무가 화가의 시선에 의해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구도는 자연스럽기 때문에 우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의 나무는 멀리 있는 산이나 바다를 돋보이게 하도록 선택된 것이다. 근경의 나무를 가로질러 멀리 보이는 산, 반짝거리는 물은 우연히 결합된 듯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고 이 선택이 화가의 작위적 상황 설정에 따른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자연스러움 속에 내재된 특질을 포착하는 것이 화가의 심미안이며, 이를 능숙한 필치로 담아내는 것이 사실주의 화가의 창작행위인 것이다. 자연 속에는 수많은 시점이 존재한다. 어떠한 위치, 즉 어떠한 시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대상물의 배열과 구도가 달라진다. 화가는 시점을 선택하고 시야를 조절함으로써 자연 가운데서 '풍경'을 골라낸다. 같은 곳에서 그림을 그리더라도 화가마다 다른 풍경화를 그리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자연 풍경화에서는 '본다'는 행위야말로 창작의 시작인 것이다. ● 노광은 놀라운 묘사력과 자신만의 시선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캔버스에 이미지화한다. 그가 즐겨 그리는 봄의 꽃들, 여름의 녹색 들판, 가을의 단풍, 겨울의 하얗게 쌓인 눈은 자연의 삼라만상과 무궁한 변화를 표상하는 소재다. 계절에 따른 변화와 함께 맑은 공기와 푸른 하늘은 자연의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그 한없이 평범하고도 경이로운 풍경이 기계문명 속에 살고 있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안식을 준다. 마티스가 그랬듯이, 노광은 '고달픈 하루가 끝난 후에 쉴 수 있는 안락의자와 같은 그림'을 우리에게 선물한다. ■ 김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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