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tting Edge Painting Olympiad

2018 World Street Culture Festival展   2018_0204 ▶︎ 2018_0228 / 주말 휴관

초대일시 / 2018_0204_일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병관_박이원_선무_양경렬_네도 윤상윤_윤주일_이상원_정석우_정재철 조현선_최은숙_하지훈_허미자

주최 / (사)대한스트릿컬쳐연맹 기획 / 아터테인

관람시간 / 02:00pm~06:00pm / 주말 휴관

감자창고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종지목길 4-6 Tel. +82.(0)2.6160.8445 www.artertain.com

회화는 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하는 인류 정신세계의 클래식한 발현이다. ● 비엔날레를 비롯하여 세계적인 미술행사 혹은 시장들이 다양한 미술 장르의 확장을 양질 의 행사와 시장의 마케팅 전략화 하고 있다. 그에 따라 회화는 오히려 미술 시장과 행사의 들러리 역할로 전락하게 되는 현상도 목격 하게 되었다. 아예 세계적인 행사에서 단 한 점의 회화 작품도 전시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본 행사는 세계 시각예술계에 복고풍 열기를 극대화 시키고 단일 장르의 집중력을 토대로 행사 참가자들에게 보다 고품질의 감동과 현실 밀착적인 행사로 자리매김 하고자 한다. ● 회화 중심의 대규모 행사는 자칫 단일 장르의 편협 된 발전에 대한 우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장르간의 융합의 노력으로 장르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시각예술을 바라보는 시점 역시 광대해진 현 시대의 흐름에서 오히려 회화, 단일 장르에 집중해 봄 으로써 미술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전 세계인들이 집중하는 국제 행사의 인증 사업으로서 회화 올림피아드는 세계인들에게 대한민국의 미술 본질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순차적으로 해외 회화 작품도 선보일 수 있는, 말 그대로 회화 중심의 국제 행사로 자리매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평창이 세계적인 회화의 메카로서 성장할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다.

김병관_Ruined Mickey_01_캔버스에 유채_72.7×53cm

김병관 ● 익숙한 이미지들이 갑자기 낯설어질 때가 있다. 즉, 익숙함에서 도출되는 낯설음. 많은 예술가들이 추구하고 이용하는 방식들이다. 그렇지만 수많은 작가를 분류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은 각 작가들이 표현하는 그 형식에 있다. 미키마우스, 마를린 먼로와 같은 대중적 아이콘들을 가져와서 다르게 보여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작가가 할 수 있는 일들 중 하나지만, 이러한 시도는 작가가 해야 할 의무나 책임은 아닌 것이다. 그저 수많은 대중문화 아이콘들이 무의미하게 생산, 반복되는 현상을 회화라는 형식을 빌려 흉내 내고 있을 뿐이다. 대중문화와 마찬가지로 회화의 무의미한 반복이 오히려 그 자체의 내용을 가지고 소통될 때 그 자체의 스타일과 형식이 생산될 수 밖에 없다.

박이원_all that memorie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1×73cm_2017

박이원 작가는 삶의 경계에서 경험하게 되는 불안정한 감정이 드러내는 이미지와 내러티브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한다. 호주에서 오랜 이민 생활을 하며 작업해 왔던 작가는, 작가로서, 이주민으로서 끊임없이 마주 해야 하는 경계로서의 삶에 대한 일종의 의식(ritual)과도 같다. 작가에게 물의 이미지는 일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중층의 메타포 즉,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 그리고 한국과 호주의 경계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의미들을 담고 있는 것이 작가에게 있어서 물의 이미지다. 한국과 호주의 경계에 태평양이 있듯이. 작가에게 물은 그의 작업과 사고를 이끄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선무_어때1_캔버스에 유채_72×60cm_2013

선무 작가는 북한에서 탈북 하여 주체사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작가가 소망하는 유토피아를 그린다. 분단은 단순히 현재 혹은 과거에 머무는 현실적 상황보다는 극복되어야 할 미래를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작가는 분단의 원인인 모순된 체제야말로 그의 작품을 통해 극복되어야 할 고 그 극복된 상황의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양경렬_discovery_리넨에 유채_26×35cm_2017

양경렬 작가는 일상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수히 많은 사건, 사고들을 은유적 상상력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한 사건, 사고들을 그의 화면 속에 약간은 불안정하고 어색하게 배치한다. 일종의 상황극처럼. 우리는 그의 작품이 연출하고 있는 다양한 상황극을 상상하면서 우리의 일상에서 겪는 여러 가지 사건, 사고들을 상상하게 된다. 그렇게 작가는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을 그의 화면 속에 담는다.

네도_고기와 조미료가 있는 정물화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72.7cm_2017

작가 네도(유용선)의 작품들은 유년시절에 즐겨 봤던 애니매이션 캐릭터들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되었다. 그들은 대부분 선과 악, 이분법적인 구도로 나뉘어있었다. 작가는 그 캐릭터들과 작가 자신을 투영하기 시작하면서 자기 스스로도 이분법적인 사고의 틀 안에 갇혀있지 않았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악당으로 규정되어버린 캐릭터들의 행동이 어쩌면 작가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욕망을 대신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작가는 오히려 악으로 규정된 캐릭터들에 더 많은 애착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캐릭터들의 역할이 뒤바뀐다. 작가는 이렇게 캐릭터들의 역할을 새롭게 바꾸고 자신의 일상들을 투영하면서 일종의 캐릭터화된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윤상윤_smoke rings_캔버스에 유채_30×30cm_2016

'Drawing'이란 '무언가를 끄집어내다'란 뜻이다. 드로잉은 긴 통화를 끝낸 후 발견되는 낙서처럼 무심하지만 심오한 무엇이다. 윤상윤 작가에게 드로잉은 감정의 배설물이다. 그에게 있어 드로잉은 지독한 짜증을 억누르는 절제에서 오는 붉고 뜨거운 핏덩어리다. 눈물을 참는 긴 숨소리에서 읽히는 인생의 무엇이다. 드로잉은 직설적으로 뱉어낸 욕설일 때도 있다. 그래서 드로잉은 텔레비전을 끄는 과감한 결단력처럼 경험의 지혜가 필요하다. 친한 친구에게 편지를 쓰듯이 솔직하면서도 과도한 감성 젖음을 피해야 하는 여유가 필요하다.

윤주일_흐르고 쌓이고 차이고_혼합재료_40×30cm_2017

윤주일 작가는 흐르고 쌓이고 채우고, 억지스러운 의도와 잡스러운 생각을 최대한 거두고 재료를 가지고 논다. 작가는 그 노는 행위를 통해 무위적으로 나타나는 이미지에 집착한다. 그 무위적인 행위의 반복을 통해 작가는 일종의 정신적 여행을 떠난다. 겨울바다의 석양처럼 정해지지 않은 것들의 정렬. 그의 작업에서는 늘 석양처럼 이미지들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드로잉이 된다.

이상원 the Crowd_캔버스에 유채_21×33cm_2017

이상원은 현대인들이 지역, 문화권, 인종을 넘어 비슷비슷한 라이프스타일로 살아간다고 말한다. 그는 사람들의 공통된 움직임과 모습에서 일정한 패턴을 찾아 회화,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시각화한다. 전통적이면서도 강렬한 색채와 붓질은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공동의 추억들을 익숙한 듯 하면서도 낯선 이미지로 만든다.

정석우_해안_캔버스에 유채_53×41cm_2016

정석우 작가는 사람들의 '기원하는 마음이 어떻게 일상에 발현 되는가'에 대해 관심이 많다. 어떠한 존재가 무엇인가를 향하고 간절함을 가지고 있을 때 발산되는 에너지. 그것이 지니는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정재철_unfamiliar face_캔버스에 유채_53×41cm_2014

정재철 작가는 그에게 긴밀한 관계가 있는 인물을 선택한 후 그 인물이 지닌 가장 솔직한 감정만을 추상한다. 그들의 솔직한 감정이었을 것들을 표현했지만 결국 비슷비슷한 얼굴이 보인다. 작가는 반문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획일화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다는 것 아닐까.

조현선_B_캔버스에 유채_22×27cm_2015

조현선 작가에게 회화는 시간의 축적이고, 선택의 집약이며, 언어화의 과정이다. 그러한 시간들을 추상화 하는 것. 그것이 그에게 회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다. 작가가 경험한 시간과 그 시간 속에서 발췌한 기억의 부스러기들을 모아 작가는 어쩌면 새로운 기억, 혹은 새로운 경험들을 만들고 싶어하는지도 모를일이다. 추상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나는 무엇으로 살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과 생각들이 더 어려운지도 모른다. 그에 비한다면 조현선 작가의 추상은 우리의 일상을 보다 더 가깝고 편하게 보여주고 있다.

최은숙_Flowers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35×27.5cm_2017

최은숙 작가는 체제유지와 구성원간의 요구충족을 위한 개인과 집단의 합의된 상태를 작품에 담고 있다. 맹목적으로 집단과 개인의 욕구들을 동일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집단을 대표하는 '우리'라고 하는 상위 개념 속에 그 구성요소인 '나'는 하위개념으로 나는 우리에게 복종하고 집단화 되어지는 것을 암묵적으로 요청 당한다. 어쩌면 작가는 그 집단화의 과정에서 벗어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수용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최은숙 작가의 회화는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하지훈_classical landscape#29_캔버스에 유채_46×53cm_2017

하지훈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자연이 개인적 경험을 통해 변형되어지는 이미지들을 영구적으로 전화하는 작업을 한다. 과거 사건들의 무대이자 배경이었던 풍경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개인적인 감적 속에 모호하게 남아 있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이질적인 잔영 혹은 낯설음을 구체화 시킨다. 자연이라는 모티브를 대상이 보여주는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아닌 그 대상의 뒤에 감춰진 이야기들. 어쩌면 우리들의 일그러진 기억들이 그 이면에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작가는 그 연관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작품 속 풍경은 관객들의 경험만큼 보여 질 것이고, 그 낯설음들은 작가의 경험과 감정이 가시화된 이미지일 수도 있으며 그만큼의 공유일 수도 있다.

허미자 Untitled_혼합재료_60×60cm_2017

허미자 작가에게 있어 회화는 자연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회화 그 자체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에게 회화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막연하게 담는 것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다. 작가에게 회화는 그 자체 자연이라는 것. 그것의 확인 작업이다. ■ 아터테인

Vol.20180204g | Cutting Edge Painting Olympiad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