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BLACK

정진서展 / JUNGJINSUH / 鄭鎭瑞 / painting   2018_0306 ▶︎ 2018_0317 / 일요일 휴관

정진서_In Black_01_나무패널에 밀랍_30×30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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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0306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01:00pm~07:00pm / 일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플라스크 ARTSPACE PLASQUE 서울 성북구 정릉로6길 47 www.plasque.co.kr

다가오는 색체와 마주하기 : 정진서 개인전 - 색채(色彩)에서 색체(色體)로 ● 정진서의 전시에서 우리는 낯선 색채의 드러남을 목격한다. 사각 프레임 속에 기묘하게 떠오르고 가라앉는 그 색채는 얼핏 봤을 때 익숙한 추상화의 이미지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발걸음을 옮겨 그것 앞에 섰을 때, 우리는 회화의 환영과는 사뭇 다른 무엇을 느끼게 된다. 이질적인 감촉으로 관객의 지각에 스며드는 그 색채는 감상이 끝날 때까지 물질로서 실재하는 느낌을 놓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벽에 걸린 프레임에 담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3차원에 놓여있는 물체처럼 지각된다. 이때 돋아나는 실재하는 느낌은 생명 없는 사물을 접할 때 갖게 되는 무미건조함이 아니라, 생명을 지닌 유기체와 마주칠 때 찾아오는 아찔한 긴장감이다. 정면으로 엄습하는 그 색채는 객체로서 우리에게 감각되는 동시에 우리와 대등한 주체로서 우리의 몸을 감각한다. 이 전시를 진부한 추상화의 나열에게 벗어나게 만드는 미묘한 낯설음은 한갓 환영으로 간주되던 색채(色彩)가 뜻밖의 실재하는 느낌을 동반하는 색체(色體), 즉 육체를 지닌 색으로서 우리를 마주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정진서_In Black_07_나무패널에 밀랍_30×30cm_2017

동심원의 중심 ● 그 색체는 눈동자를 닮았다. 그것은 물속에서 유영하던 생명체가 수면으로 떠오르듯 프레임 한 가운데에서 나타난다. 동심원의 외곽에서 느슨하게 번져있는 색의 자취는 중심에 이르러 단단하게 응결된다. 실재하는 물질의 느낌이 가장 두드러지는 지점도, 유기체와 마주하는 긴장감이 가장 고조되는 지점도 그 중심부이다. 응결된 색채는 홍채 가운데에 자리 잡은 동공(瞳孔)과 같이 반드레한 검정색을 띠게 된다. 이 때 검정은 하나의 색채라기보다는 다른 모든 색채를 흡인하는 암점(暗點)으로 불가사의하게 놓여 있다. 결국 동심원의 외곽에서 환영처럼 떠돌던 색채는 중심에 이르러 우리를 마주하는 물체로 이행하고, 우리의 지각에 생경한 충격을 가한다. 그래서 검정으로 드러난 중심부는 우리를 응시하는 어떤 생명체의 눈동자인 동시에 마주하는 우리 몸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기능한다. 특히 동심원의 형태가 아래위로 길게 늘어진 타원으로 좁혀질 때, 그 색체(色體)는 생명체의 질(膣)이나 입을 연상시키는 원초적인 관문으로 드러난다. 신비하고 음험하게 다가오는 그 입구는 마주하는 우리의 육체를 감추어져 있는 색체의 이면으로 끌어들인다.

정진서_In Black_16_나무패널에 밀랍_91×91cm_2018
정진서_In Black_18_나무패널에 밀랍_91×91cm_2018

밀랍이 하는 일 ● 이처럼 몽환과 실재가 미묘하게 공존하는 색체의 다가옴은 유화의 질감으로는 결코 자아낼 수 없는 육체의 느낌을 동반한다. 아마도 이 전시를 진부함에서 구출해내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도 그 느낌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 여기서 우리는 '밀랍'이라는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듣게 된다. 밀랍은 고대로부터 육체(肉體)를 빚는데 사용된 질료이다. 부드럽게 유동하다가 연약하게 굳어지는 밀랍의 속성은 청동, 돌, 나무와 같은 경성(硬性)의 조각재료가 간과해 왔던 육체의 한 측면을 섬세하게 포착해 낸다. 그것은 색(色)으로서 드러나는 인체이다. 부피나 무게와 마찬가지로 색은 인체의 드러남에 근원적인 요소이다. 특히 인체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물질적/비물질적 변화를 은밀한 징후로서 나타내는 것이 바로 색이다. 밀랍은 인간의 살갗과 교감하는 특유의 속성 때문에 표면에 덧입혀진 환영이 아니라, 심층에서 솟아나는 실재로서 색을 나타낼 수 있다.

정진서_In Black_20_나무패널에 밀랍_100×50cm_2018
정진서_In Black_22_나무패널에 밀랍_100×50cm_2018

공통의 정동(情動) ● 이 전시에서 우리는 2차원에 수렴되어있는 것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융기하여 3차원의 실재로서 다가오는 색을 마주한다. 그리고 이러한 낯선 지각을 가능하게 만드는 질료로서 밀랍을 경험한다. 색(色)을 품은 밀랍은 동심원을 그리며 하나의 색체(色體)로서 응결된다. 이 때 우리가 감지하는 것은 이제껏 간과해 왔던 색(色)의 육성(肉性)만이 아니다. 우리는 생경하게 다가오는 색체(色體)를 마주하며 이러한 사건을 끊임없이 촉발시키는 누군가의 육체를 어렴풋이 감지하게 된다. 그것은 처음에는 쉽게 호명할 수 있는 한 사람의 육체처럼 느껴지지만, 결국 이름을 표기할 수 없는 익명의 몸뚱이로 남는다. 다가오는 색체는 너무나 구체적인 실재로서 우리 앞에 생생하게 나타나지만, 그럴수록 그것을 촉발한 누군가의 육체는 우리가 감지할 수 없는 곳으로 더욱 깊이 침잠한다. ● 색체가 한 사람의 몸에서 이루어지는 정신적 물질적 변화를 일방적으로 표출하는데 그치지 않고 마주하는 우리의 몸의 잠재된 색(色)을 일깨우는 계기로서 작용하며 낯설게 다가올 때, 그 색체는 특정한 개인의 감정에 국한될 수 없는 공통의 정동(情動, affection)이 된다. 그런 까닭에 이 전시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색체는 분명 누군가의 육체에 촉발되어 다가오지만, 우리는 그것을 누군가의 색체라고 손쉽게 규정할 수 없다. ● 정진서는 자신의 작업을 통해 촉발하는 색체가 '이론이나 이성적인 판단을 요하지 않는' 것이며, 그것과 관객의 만남은 '사이에 아무런 것도 없이 날것'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작업하는 목표가 '감정의 감염'에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때의 감정은 일상적인 희로애락에 국한된 정서가 아니라, 낯설게 다가와서 우리의 정신과 육체를 진동하게 만드는 힘이자 정동(情動)이다. ■ 강정호

Vol.20180306e | 정진서展 / JUNGJINSUH / 鄭鎭瑞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