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denlos

박호상展 / PARKHOSANG / 朴鎬相 / photography   2018_0307 ▶︎ 2018_0403 / 일요일 휴관

박호상_'터미널' 시리즈 중 「Haepyeong」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40×50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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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0308_목요일_07: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수요일_02:00pm~06:00pm / 일요일 휴관

비컷 갤러리 B.CUT casual gallery & hairdresser's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11라길 37-7 Tel. +82.(0)2.6431.9334 blog.naver.com/bcutgallery

작업의 이해를 위한 흐름 - 매우 재미없고 흔한 글 ● 풍경은 풍선과 같아서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른다. 지금까지 내 작업의 방향은 부풀어 오른 곳에서 시작해서 움푹 들어간 곳으로 향해 왔다. 처음에 「A Square」로 철저하게 구획되고 자본화된 도시 공간을 탐색했고 이후 그 속에서 빠져나가는 인간 군집을 추적하였으며 마침내 도시로부터 떠밀려온 잔해를 남긴 채 덩그러니 남은 군소 도시의 면면을 기록하게 된다. 얼핏 작업이 올드패션한 인상을 줄 수 있다는 부담감을 무릅쓰면서도 팽창해가 는 대도시의 반대편에 서서 이른바 '오래된 미래'를 그들 앞에 현전하는 것이 작가로서 소기의 작업적 성과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같은 믿음으로 작업을 시작한 이후 이제 거의 8년이 지났다.

박호상_'터미널' 시리즈 중 「Sintaein」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40×50cm_2012

비교적 초창기에 진행했던 「Common Place」 작업은 그간 해왔던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을 외부로 확장하고자 했던 작업이다. 이전의 「A Square」가 도시의 구획된 공간 그 자체를 마이크로적 관점으로 바라본 것이었다면 이것은 도시 외곽 공간 속에서 인간 군상이 그려내는 상황 자체에 방점을 두고 진행된 작업이다. 이른바 일상을 벗어 난 유사 자연에서 유일무이한 대안인 캠핑, 여가, 휴가와 같은 상황에 일체의 개입 없이,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서 우연의 순간이 포착될 기회를 기다렸고 연출 없이 우리가 마주하는 일상의 비근한 공기감(stimmung)을 섬세하게 사진으로 그려보고 싶었다. 이후 「Local Report」 작업은 기존의 방식에서 더욱 바깥으로 빠져나와 쇠락해가는 읍면 단위의 지방 도시와 결국 사라지거나 아니면 다른 형태로 변화될 운명에 처한 로컬 풍경을 기록하는데 집중하게 된다. 현재까지 작업의 대부분은 난파선처럼 덩그러니 서있는 대상을 위주로 하였다. 이 같은 대상은 '관촌수필'에서 이문구가 드러내고자 했던 유년시절의 농촌 공동체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이 응축된 근대적 사유가 떠밀려 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작업은 위태롭게 버티고 서있는 구조물을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묘 ● 사하고 나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얼핏 보면 차갑고 딱딱한 작업의 형식은 아카이브적 태도로 읽힐 수 있으나 이것은 마치 부서진 배에서 떨어져 나온 잔해들을 긁어 모아 조합하는 활동과도 엇비슷하다. 단순 나열이 아닌 방향성을 가진 조합으로 벤야민이 지적했던 일종의 '성좌적 좌표' 의 배치 행위와도 같다. 인적이 드문 텅 빈 시내 풍경과 농촌 커뮤니티. - 물론 읍면 단위의 중소도시가 이렇다는 사실은 새삼 놀라울 게 없어 보였지만 노인만 남은 도시에서 지역민 조차도 희망을 기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작가로서 안타까운 지점이었다. 지역 공동체의 붕괴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도시를 관찰하고 또 관찰하였다. 떠밀려온 잔해 하나하나의 그려짐이 한 시대와 국가가 그려내는 성좌적 좌표가 되리라.

박호상_'터미널' 시리즈 중 「Jinbu」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40×50cm_2012

지방 도시의 빈 구조물과 한때는 삶의 터전이었던 폐가, 지역 공동체이자 동시에 관문의 역할을 하는 터미널, 화목 한 가정의 지표이자 국가 근대화의 대표적 산물이었던 비둘기집에 이르기까지 농촌 지역의 붕괴와 도시의 쇠락, 그리고 집단 기억의 지표를 묵묵히 기록하였다. 그리고 그것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삶의 은유를 내장한 풍경일 거라 생각했다. 이른바 상실감이나 어떤 밑바닥이 없는 'bodenlos(bottomless)'의 감정적 측면이 아닐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으로 벗겨낸 무표정한 껍데기가 그 주변의 공기감을 담아내며 역설적으로 속도와 효율성의 슬로건을 내걸었던 한 국가의 발전 신화가 정작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었는지 이야기해 줄 수 있으리라 보았다. ● 나는 지방 소도시의 쇠락과 농촌 공동체의 붕괴 원인이 무엇인지 밝히는 것 보다 그것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민낯이므로 눈 앞에 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지점에서 이 작업이 과거와 현재의 삶의 표정일 뿐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변화에 대한 해학으로 읽혔으면 좋겠다. ● 이 사진 작업의 최종 목표와 계획은 현대 사회에서 점점 더 그 가치를 잃어가는 무의미해 보이는 것들을 통째로 가져와서 일련의 흐름으로 섞어 전시장과 미술관에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생각을 들게 만드는 것이다. 작업하는 내내 지역의 공간에서 조우한 미묘한 느낌과 공기감들을 미술관으로 그대로 가져와 유물처럼 박제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극명한 디테일과 중간톤의 색감, 매우 큰 스케일의 사진이 요구되었고 8x10 대형 카메라와 네거티브 컬러 필름으로 작업했다.

박호상_'로컬 리포트' 시리즈 중 「Buan」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40×50cm_2013

이번 『Bodenlos bottomless』 전시에 부쳐서 - 솔직하게 다시 쓴 글 ● 삼천포에서 올라온 나는 아직도 서울이 적응이 안된다. 상경한지 벌써 20여 년이 지났는데 공중에 붕 떠서 다니는 기분은 참 거지같다. 바닥이 없는 이 기분. 서울 같은 대도시 사람들은 대부분 뜨내기다. 그게 아니면 진작에 서울 사람처럼 태세전환을 했거나 자신을 철저히 숨기고 사는 경우다. 이 도시의 풍경은 터미널에서 차표 끊은 사람들 표정처럼 붕 떠있다. 이주민의 도시다. 사는 곳(live)이 사는 곳(buy)인 그런 곳이다. 이런 데 살면서 나 같은 인간이 한 곳에 정 붙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 작업들은 정 못 붙이고 붕 떠다니는 것들에 대한 작업이라 볼 수 있겠다.

박호상_'로컬 리포트' 시리즈 중 「Baeksan」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40×50cm_2013

2009년에 시작했던 이 작업들은 2014년 즈음에 완전히 멈췄다. 내가 지친 까닭이다. 전시할 장소를 찾지 못했고 누가 불러주지도 않았으며 특히 돈이 없었다. 우리 딸 재인이가 2012년에 태어나면서 나는 좋은 아빠가 되기로 결심했다. 2013년부터는 개인적으로 힘들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나 같은 잡놈들에게는 좋은 작가와 좋은 아빠는 함께 할 수 없는 명제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간헐적으로 작업을 근근이 이어가던 중에 전시장을 좀 돌아본 경험이 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사진은 재미가 없어졌고 글은 더 재미가 없어졌다. 작업 안에서 어떤 밀도나 태도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생각도 했었다. 하긴 사진 작업 하나로 어떻게 사회를 바꾸고 사람들에게 다른 생각을 환기시키겠는가? 그저 전작과 따라올 작업에 대한 자기 위안이겠지. 나는 결혼식 주례 같은 작업 노트는 이제 쓰지 않기 로 마음 먹곤 했다.

박호상_'비둘기집' 시리즈 중 「Gunsan」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50×40cm_2013

첫 개인전 이후 운 좋게 여러 곳에서 전시도 하고, 작품도 제법 팔았지만 이제 내가 볼 때 나는 사진으로는 글렀다. 그 이후로 소위 재미없는 사진 작업을 진행해서이다. 그리고 나 자신이 국내 사진계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래고 작업에 대한 생각도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져서다. 예술판 자체가 관계 지향적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믿음이 생겼 기 때문인데, 의미와 텍스트 위주의 기존 작가주의적 사진판에 큰 감흥이 없어진 까닭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내가 이번 전시를 하는 것은 그동안 해왔던 것을 다 털어버리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이런 소리를 왜 하는지 아 직도 궁금한 분들이 있겠지만 이 전시가 유한성을 극복하기 위한 초월에의 충동이라고 봐주시면 좋겠다.

박호상_비둘기집' 시리즈 중 「Samcheonpo」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00×127cm_2013

작업 초기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 떠오르는 것이 있다. 약 10여 년 전 즈음이었나? 내가 사진으로 공기감을 보여주 고 싶다고 이 작업들을 보여줬을 때, 공기감이 어떻게 사진으로 나오냐며 코웃음을 치면서 왜 그렇게 우둔하게 작업하냐고 나에게 말을 해주던 어떤 사진 비평가가 있었다.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그 사람 생각은 바뀌었을까? 나는 좀 바뀐 거 같다. ● 그간 해왔던 8x10 작업을 지금 갈무리 하면서 느끼는 지점은 이렇다. 어떤 상황은 그 상황 그대로 전대미문의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작가의 개입으로 놀랄만한 상황으로 교차된다던가 특정 방향을 지시하는 것이 대놓고 드러난다면 재미가 없다. 이것은 현대 예술의 간단한 문법이라 생각한다. 특수한 것이 혼자 진동해서 보편성을 획득하도록 나둬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 밑바닥이 없는 곳에 위치 짓기를 해봐야 누구도 바로 서있을 수가 없다. 땅 위에 붕 떠서 바닥 없이(bodenlos)살 수밖에 없음을 이제 나는 다시 돌이켜본다. 그렇기에 좀 더 다른 방향으로 나은 발검음을 옮기는 게 어떨까 한다. ■ 박호상

Vol.20180307c | 박호상展 / PARKHOSANG / 朴鎬相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