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남_重生

이산호展 / LEESHANHU / 李山虎 / painting   2018_0317 ▶︎ 2018_0331

이산호_거꾸로_캔버스에 유채_162×112cm_2013

초대일시 / 2018_0317_토요일_11:00am

주최 / 용성국제예술관

상상미술관 上上美术馆_SUNSHINE INTEMOTIONAL MUSEUM 中国北京市通州区宋庄文化创意产业集聚区 艺术大道中心环岛西 Tel. +86.15311899808

누군가가 나에게 당신은 중국과 한국에서 어디에 속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쥐도 아니고 새도 아닌 박쥐입니다."고 답했다…. ● 나에게 있어서 20세기 시대의 조류를 끌어가던 현대미술의 흥행은, 서방국가의 퇴페적인 미술, 미친 짓거리... 등 으로 배제되었고, "밑그림도 없이 물감을 마구 뿌려댄 결과는 아주 성공적인 작품으로 되고, 침팬지가 물감을 마구 뿌려대며 그린 그림을 보고 그 작품성을 칭찬했다."등 표현들은 더더욱 전반 회화사에 대한 부정과, 사실주의라는 커다란 전통에 대한 부정으로 장시기동안 줄곳 거부감을 가졌다.

이산호_거듭남_캔버스에 유채_162×112cm_2007
이산호_달수야_캔버스에 유채_162×100cm_2006
이산호_마시자_캔버스에 유채_150×120cm_2009
이산호_입세(入世)_명함, 나무, 가습기_200×150×150cm_2018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편에서 혜자(惠子)가 장자에게 말했다. "내게 큰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가죽나무라 하더군요. 줄기는 울퉁불퉁하여 먹줄을 칠 수가 없고 가지는 꼬여서 자(尺)를 댈수가 없어서 길에 서 있지만 목수가 거들떠보지 않는 거요. 선생의 말도 크기만 했지 쓸모가 없어 모두들 외면해 버립니다." 장자는 말했다… "지금 先生에게는 큰 나무가 있는데 쓸모가 없어 걱정인 것 같소만, 어째서 아무것도 없는 드넓은 들판에 심고 그 그늘에서 마음 내키는 대로 한가로이 쉬고 유유히 자보지는 못하오…" ● 나 역시 현대미술을 접함에 있어서도 "목수가 가죽나무를 보는 시각"으로 늘 생각해왔었다. 현시대에서 미술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똑똑히 보여지는 의도(意圖)혹은 사용성, 또는 즉물적으로만 기준할 것이 아니라, 전반 사회발전의 큰 흐름을 잡아가는 데 존재하는 역할의 가능성과 광범위한 포용성을 보아야 한다고 장자는 머나먼 과거 역사의 지평선 위에서 거룩히 말해주는 주는 것 같다.

이산호_거듭남展_상상미술관_2018
이산호_거듭남展_상상미술관_2018
이산호_거듭남展_상상미술관_2018
이산호_38선-반쪽의 아픔_벽지 & 단색탁인_20×29cm_2005

우리는 항상 어떤 종속을 통하여 질서를 찾지만 우리가 오늘날 역사에서의 국가가 가진 이해조정기능의 중요성에 대한 주장, 민족의 정체성이라는 단일역사를 중심적인 입장으로 취하는 이런 사회는 결과적으로 지난날의 문을 닫아걸고 민중을 통치계급의 의지에 종속시키는 국가의 수단을 교묘하게 민족성이라는 단어로 위장시킨 것에 불과하고 문화의 쇄국정책이며 전반 우주적인 사고에 어긋나지 않는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질서는 나의 세계로 좀더 넓게 다가가고픈 심층구조의 조명에 만족을 주지 못하기에 나는 작품을 구상하면서 있어서 그것들이 해체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어떤 힘에 의하여 움직여 진다. 고로 나의 회화작품 속에서 원시미술로부터 현대미디어영상에까지 이르는 다양한 이미지 그리고 앵글을 이용한다. 이와 같은 각종의 형상들은 나 자신의 심층구조 속에서 한정된 역사와 지역특성을 무모하게 해버린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런 무한정한 감각을 나의 작품에 은유적으로 사용함으로서 나의 고유한 형태에 가까이 하고자 하는 사상을 절대주의적이 아닌 무위자연적 방식으로 접근하고 설명하고자 한다. ● 그림를 그리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 행동이다. 과거의 우수한 전통과 현대 문화의 발전을 결합시키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행위지만, 문화의 본질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고 시각예술로서의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함에 의미를 두고 있다. ■ 이산호

Vol.20180317d | 이산호展 / LEESHANHU / 李山虎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