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의 다른방법 : 우리를 바라보는 태도

정주희展 / JEONGJOOHEE / 鄭朱稀 / painting.video   2018_0319 ▶︎ 2018_0326

정주희_Perspective Mirror and Glass_거울에 잉크_67.4×38.4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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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희 블로그_jeongjoohee.blogspot.kr/

초대일시 / 2018_0323_수요일_06:00pm

기획 / 현오아

관람시간 / 01:00pm~07:00pm

17717 서울 성북구 성북로8길 11 www.17717.co.kr www.facebook.com/project17717

두 명의 굴뚝청소부가 청소를 끝내고 밖으로나온다. 한 명은 그을음이 묻어 얼굴이 더러운데, 나머지 한 명은 이상하게도 깨끗했다. 누가 얼굴을 씻었을까? 모두 얼굴이 까매진 사람이 세수를 할 것이라고예상했지만, 정작 얼굴을 씻은 사람은 얼굴이 깨끗한 청소부였다. 상대방의얼굴을 보고 자신의 얼굴도 더러워졌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탈무드의'굴뚝청소부 일화'는 우리는 결코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직접적으로볼 수 없고 거울이나 타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볼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 정주희의 「Perspective Mirror and Glass」(2016)는 탈무드의 이유명한 이야기를 시각화하여 보여주는 듯하다. 이 작품은 직사각형의 거울과 유리가 한 쌍을 이루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울과 유리 표면에 흰색 점이 0.5센티미터의간격으로 그리드를 이루며 빽빽하게 찍혀 있다. 작가에 따르면 유리는 외부(사회)를 바라보는 창을, 거울은내부(자신)를 바라보는 창을 의미한다. 실제로 거울에 비친 내 모습과 유리 너머 혹은 반사되어 보이는 타인의 모습을 매개로, 작품 앞에 선 나는 외부와 내부를 끊임없이 번갈아 보게 된다. 그러나더 자세히 보기 위해 점점 가까이 다가갈수록 빼곡히 들어선 점으로 인해 거울에 비친 상은 온전한 형태로 포착되지 못하고 작은 그리드로 픽셀화 되어부유한다. 우리는 절대 혼자서는 전체의 나를 파악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된다. ● 이번전시에서 선보이는 정주희의 'Perspective' 시리즈 신작은 앞서 언급한 「Perspective Mirror and Glass」(2016)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발전된 결과물이라할 수 있다. 정주희는 사회와 개인의 관계, 특히 구조화된사회시스템 하에 살아가는 개인의 삶과 태도에 관하여 회화와 영상으로 작업해 오고 있는데, 2015년본인 사진 위에 '그리드' 형태의 점을 찍는 작업을 계기로 'Perspective' 시리즈에 집중해왔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9점의 신작은 모두 흑백 모노크롬 회화로 구성되어 있다. ● 정주희가 모노크롬 회화를 제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로 구상 회화를 작업했던 작가가 양식을 전면적으로 바꾸는것은 괄목할만한 일이다. 작가는 지금까지 대부분 자전적 경험을 녹여내어 일상적이고,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물들을 화폭에 담아왔다. 예를 들어, 말린 꽃, 과일 껍질 등을 넣어 만든 방향제 '포푸리'를 크게 확대하여 그린 「포푸리(Potppuri)」(2012) 시리즈의 경우, 특정 공정을 거치면서인위적인 향과 색이 덧입혀진 내용물은 사회시스템에 길들여져 규격화되고 개성을 잃어가는 개인과 그것을 수용하는 태도를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정주희_Potppuri-잡다한혼합물3_캔버스에 유채_125×125cm_2009

여행가방에 뒤엉켜 있는 소지품을 그려낸 「PackedAge」(2015)에서는 개인의 소유물을 통해 취향과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정주희_Packed Age 3_캔버스에 유채_60×60cm_2013

유일한 영상작업인 「읽기 연습」(2015~) 시리즈 또한 작가가 직접 출연하여 텍스트를 읽어 나간다. 텍스트의내용은 여성, 작가, 아내,딸로서 겪었던 본인의 경험, 하고 싶었지만 내뱉지 못했던 속마음, 뉴스에서 나온 흥미로운 사건들로, 한 인간이 사회에서 검열을 거치지않고 공적인 발화가 얼마나 힘든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주희_읽기연습 1_단채널 영상_00:04:28_2015

그리드 역시 작가의 경험에서 출발했다. 작가에 따르면 뉴스를 스크랩한 콜라주를 그린 「LonelyCrowd」(2013)가 그리드를 처음 시도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넓은판에 콜라주 되어 있는, 사각형으로 잘린 신문의 가로 세로 모서리가 겹쳐져 있는 모습을 보다 보니 그리드형태가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신문 속 항상 등장하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가 선과 선이 만나 겹쳐지고또다시 이어지고 확장되는 그리드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정주희의 작업 양식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져왔긴하지만 항상 그의 작업 중심에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라는주제가 놓여 있으며 이런 맥락에서 그리드 작업 또한 이 주제를 천착해 오며 발전시켜 만들어낸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정주희_Lonely Crowd 1_캔버스에 유채_193×130cm_2013

'Perspective' 신작은 언뜻 보면 여느 모노크롬회화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작품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빽빽하게 찍힌 작은 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붓으로찍힌 점이라기보다 짤 주머니로 극소량의 물감을 캔버스 위에 살포시 짜 놓은 덩어리에 가깝다. 가로 세로 1센티미터 혹은 그보다 더 촘촘하게 정사각형 그리드를 이루며 줄지어 있는 점들은 강박적이기까지 하다. 재료에 따라 점의 모양과 형태 또한 조금씩 다르다. 유화 물감보다묽은 아크릴 물감의 경우, 중력에 의해 물감이 흘러내려 점의 크기가 들쭉날쭉하며 간격과 수평도 흐트러져있다. 작품에 흥미를 더해주는 것은 조명이다. 유광 물감을사용했기 때문에 관람자가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볼록한 점들은 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며, 보는 관점에따라 그 모양도 달리 보인다.

정주희_Perspective B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30cm_2018
정주희_Perspective W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30cm_2018

이쯤 되면 작업 과정이 궁금하지 않을 수없다. 작가는 주사기에 흰색 물감을 주입한 후, 밀대로 밀어내어 조심스레 한 점 한 점 찍는다. 밑그림 없이 진행하는 탓에 최대한 긴장한 상태에서 호흡을 고르고, 평균치에서벗어나지 않도록 간격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점을 다 찍고 나면 큰 붓으로 캔버스 표면을 휩쓸듯이검은색으로 흰색을 모두 덮는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 과정이 "획일화된사회시스템을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그 체제 내에서 안주하고 싶은 양가적인 개인의 마음이다. 동시에 검은색이흰색이 뒤덮듯이 시스템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점을 반복해서 찍는 행위 또한 이 양가적인 욕망을 해소하기 위함이자 세상 속에서 점처럼 존재하는 나 자신의중심을 잡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정주희_Perspective W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30cm_2018_부분 정주희_Perspective B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30cm_2018_부분

종횡으로 줄 세워진 점들은 이미 구획된 사회구조 속에서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게임의 법칙을 따라야만하는 개인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개인은 왜 이 상품을 선택하고 소비하게 되는가? (나는 왜 아이폰과 갤럭시 사이에서만 고민하는가?) 소비할 수밖에없는 사회 구조(숨만 쉬는데도 돈이 든다), 그 안에서 벗어날수 없는 우리의 모습.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종당하는 것 같은 우리의 삶. 정주희는 주사기가 만들어내는 점에 개인의 경험과 감정을 이입하여 개인적인 이야기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사람들의 이야기로 확장하고자 한다.

정주희_말하기의 다른방법 : 우리를 바라보는 태도展_17717_2018
정주희_perspective making film_https://vimeo.com/260894405

"주사기로 점을 찍다 보면 예상치 못하게 물감이 터져나오거나, 컨트롤이 안 될 때가 있다. 좁은 입구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참다가 터지는물감을 볼 때면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미 정해져 있는 판을 깰 수 있는 순간이 한 번이라도 있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점들이 반짝거리는 찰나가 있듯이." (작가와의 인터뷰 중) ● 우리는 모두 굴뚝청소부이다. 거울이나 타인을 통해 간접적으로나 자신을 파악할 수 있듯이, 주어진 환경과 내가 속한 사회를 경유하지 않고서는 나를 온전히 바라볼수 없다. 정주희는 자신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이 세계를 매개로, 오히려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려 노력한다. 시스템 속에서 획일화되고 규격화 되어가는 자신을 반추하면서 개인이놓인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강박적으로 점을 반복해서 찍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작가의말을 듣자니 문득 2차원의 평면이 아닌 시공간에 펼쳐져 있는 종횡의 선들을 오가며 자유롭게 유영하는우리 존재들을 상상하게 된다. 찰나에 반짝거리는 캔버스의 점처럼, 우리에게도각자의 방식으로 빛나는 순간이 찾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 현오아

Vol.20180319f | 정주희展 / JEONGJOOHEE / 鄭朱稀 / painting.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