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문리 548-1 Nomun-Ri 548-1

박초현展 / PARKCHOHYUN / 朴礎顯 / painting   2018_0323 ▶︎ 2018_0406 / 월요일 휴관

박초현_No1: PNEUMA-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_ 삼베, 검은천에 유채, 먹_73.5×92cm_2018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박초현 화집 출판기념 초대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정수화랑 JEONGSU GALLERY 서울 종로구 삼청로 22-31 cafe.daum.net/artfocus blog.naver.com/ilyangpark/221227112610

바라보는 것과 이해하는 것_박초현의 관조(觀照) 미학 ● 사물을 보는 입장에 대한 보통의 입장과 바라보는 다름의 시각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술가는 자신의 독창성에 주목하는데 자신과 자신을 에워싼 사회적 상황보다는 지금 생각하고 있는 의미와 정신적 가치에 대한 심리적 특성을 찾아갑니다. 삶에 대한 일회성과 영속성, 존재와 비존재와 같은 광범위하지만 생각할 수 있는 영역을 이미지로 구현합니다. 어떤 의미를 담았는가 하는 내용보다는 형식자체가 의미입니다. 형식의 전화(轉化)에서 구조적 특성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 캔버스가 지닌 영역과 유화물감을 사용한 이미지 구현이 회화 장르의 전부는 아닙니다. 시각예술로서 회화작품이 개인의 이념이나 사회적 관점을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서 새로운 사유(思惟)적 요건이 형성될 개연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물화에 집중하던 시기의 박초현은 사물의 재현이 아니라 인물의 사상과 표현에 대한 기법연구가 중심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경제활동에서 예술가의 활동으로 접어들면서 혼자만이 시간과 사회와의 갈등, 정신적 치유를 위한 예술탐닉의 시기를 겪습니다. 시간과 흐름, 과거와 미래에 대한 요소를 숫자의 이미지를 통해 구체화합니다.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프네우마(Pneuma)시리즈 또한 정신 치유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박초현_PNEUMA-검은새 날다 Black bidr flies._삼베, 검은천에 유채, 먹_65×99.5cm_2017
박초현_PNEUMA-바다, 꽃과 나비 Sea, Folwer and Butterfly_ 삼베, 검은천에 유채, 먹_117.5×91.5cm_2018
박초현_PNEUMA-일곱개의 피아노 선율 Seven piano melodies_ 삼베, 검은천에 유채, 먹_53.5×45.5cm_2017
박초현_PNEUMA-내가 가야할 곳은 The plaec I belong_삼베, 검은천에 유채, 먹_61×61cm_2018

삼베가 지닌 자연물성에 삼베를 사용하던 사람들의 정신성을 가미합니다. 삼베는 예로부터 의례(儀禮)용으로 많이 사용하였는데 특히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편한 옷을 입으면 안 된다고 하여 풀 먹여 까슬한 삼베옷을 입었습니다. 여기에 죽음과 환생과 순환이라는 예술적 코드를 입혀냅니다. 환생과 순환은 현재와 미래 혹은, 지금의 찰라와 무궁한 과거의 정신적 요소를 형상화하는 일입니다. 예술가의 의도에 따라 재료들은 서로간의 관계성을 회복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 두 번째로는 삶의 가치를 담아내는 형식적 측면을 강조합니다. 빛이 반사되지 않는 검은색 천위에 겹 씌워 '있음'과 '없음' 등과 같은 대별적 구조를 구현합니다. 자신을 포함한 의식에 대한 외적형식과 예술작품의 근원을 이해하는 모양체입니다. 씨줄과 날줄을 분해(?)하면서 남겨진 상태에 대한 철학적 해석입니다. 뜯으면서 튿어집니다. 의도와 우연이 공존합니다. 자르고 끊어내면서 남겨지는 삼베의 올들은 파괴와 훼손에 대한 반의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대체를 허용할 수 없는 결과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조건이며, 삼베의 구조물은 예술적 조형의미가 지닌 모양의 완결성을 찾아갑니다/. 세 번째로는 현실을 모양체로 구현하면서 정리되는 색의 가치성입니다. 잘라지거나 뜯겨진 후 남겨진 삼베위에 색을 칠합니다. 유화물감을 사용하다 근래에 들어 동양회화의 전통 재료인 분채를 사용합니다. 가루를 내어 물과 아교를 혼합하여 여러번 덧그리면서 정교하고 세밀한 그림이 되는 재료입니다. 분채를 사용하는 것은 서양화에서 칠한다는 개념보다는 동양회화에서 사용되는 '색을 올리는'일에 가깝습니다. 전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색의 의미를 가미시킵니다. 방향과 의미, 전통정신을 함유하고 있는 오방색을 작품에 들이면서 의미에 대한 형식 접근에 한 겹을 덧붙입니다. ● 무형의 예술성에 검은색 천과 삼베, 분채(일련의 모든 재료를 포함한)를 사용하여 정신의 가치를 그림으로 구체화 하는 과정에서 통합됩니다. 삼베를 찢거나 뜯거나 잘라내는 과정에서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과 같은 대별의 관계가 통합됩니다.

박초현_PNEUMA-붉은 새 날아가다. Red bird flies._삼베, 검은천에 유채_92×73.5cm_2018
박초현_PNEUMA-두개의 자아 Two egos_캔버스에 유채_52.5×45cm_2017
박초현_PNEUMA-지상에서 영원으로 From here to eternity_캔버스에 유채_90.5×72.5cm_2017

작품 「일곱개의 피아노 선율」이 있습니다. 터지고 뜯어지고 잘려진 공간에 씨줄 몇 가닥이 남아있습니다. 먹이 먹여진 검은색은 무한의 공간을 형성합니다. 배경이라기보다는 씨줄의 생명을 지탱하는 삶의 공간입니다. 황색(여기에서는 유화물감)은 정신의 가치를 변형시키거나 의미를 증폭시키는 보충제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러한 작업의 근간에는 프네우마(Pneuma)시리즈 작업이 자리합니다. 숨. 호흡 등의 어원을 가진 고대 그리스어인 프네우마가 박초현의 작업에서는 마음을 다스리는 영성체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여왔습니다. 자신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발견된 철학적 사상적 용어로 사용해 왔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하자면 박초현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실재하는 것과 생각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이중구조를 실현화 시켜내고 있습니다. 현실세계에 기초를 두면서 의식적으로 형성되는 감각구조를 이야기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시각예술에 있어서 예술가가 지향하는 예술작품의 완성은 스스로에 대한 상상력과 환상에 대한 이미지 구현에 있습니다. 박초현의 작품이 현실의 반영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현존하지 않는 이미지를 구현한다는 것 자체는 허구임에 분명합니다. 사회활동을 하면서 행해졌던 이상과 현실사이의 간극은 곧 예술과 예술작품이라는 것으로의 전이로 이어집니다. 예술과 관련된 상상력은 현실과는 다른 허구의 것이기 때문에 창의적 개념에서의 프네우마(Pneuma)시리즈는 창의적 의지가 분명한 예술에 대한 적절한 접근이라 할 것입니다. ● 얇은 씨줄하나가 건너편 세상과 연결하는 고리가 됩니다. 빨강색과 파랑색, 노랑색으로 입혀진 씨줄은 울림이 있는 영혼과 같습니다. 얇지만 진동의 폭은 넓어 무엇과 무엇을 연결하는 중심축이 됩니다. 여타의 작품들은 비슷한 형식이지만 관조적 입장으로 보자면 각기의 독특한 세계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박초현의 즉흥적 상상력과 기억에 의해 다양한 세계의 조건들이 구성됩니다. 이들은 이성에 의해 조작된 환상의 영역입니다.

박초현_PNEUMA-눈물#3 Tears#3_캔버스에 유채_90.5×72.5cm_2017
박초현_PNEUMA-거룩한 진실 Sacerd truth_캔버스, 삼베에 유채_131×163cm_2018

캔버스를 검은색 천으로 마감합니다. 검은색 위에 삼베를 한번 더 감쌉니다. 거친 삼베에 색을 먹인 후 예리한 칼끝으로 한 땀 한 땀 뜯어내면서 상상의 영역은 멈춰지고 뜯긴 자리에는 검은색 천이 자립합니다. 검은색은 배경 혹은 아무것도 없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무궁의 공간으로 형성됩니다. 삼베에 동양의 전통재료인 분채를 더합니다. 색을 칠하면서 빛에 반사되지 않는 무광의 상태를 지향합니다. 뜯겨나간 공간과 남겨진 삼베 한 올이 만들어내는 영역은 안정과 불안함이 공존합니다. 때로는 세상의 의심을 만들어냅니다. 검은색위에서 활동하는 삼베는 생존의 조건이면서 예술가 스스로에 대한 삶의 의지를 이야기합니다. 때로는 허무적이면서도 긍정적 삶을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오늘입니다. 검은색 천과 삼베의 이중구조는 화가 스스로가 밝히고 있듯이 "삶과 죽음이나 운명, 숙명 등에 관한 얘기일 것 같아요. 나무가 위로 향해 뻗어 오를수록 뿌리는 그만큼 더 힘차게 땅속으로 내려가듯 새로움에 대한 갈망과 자유를 스스로에게서 느끼고 싶은" 혼돈과 정리의 내면세계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 무광택을 지향하는 것은 빛이 지닌 수려함 때문입니다. 빛을 이해하려한 인상주의자들은 태양을 바라보지만 이내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밝은 빛이 시야를 가리면서 눈을 멀게 합니다. 밝은 빛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이해하고 기다리지만 다른 무엇과 비교되거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박초현의 작품은 이해의 영역이 아니라 바라보는 대상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느껴지고 이해되는 다양한 사건들과 함께 형성되는 생각의 가치를 찾아갑니다. 풍경이나 상황 자체를 이미지로 그리기보다는 상황 자체에 대한 관조(觀照)의 성격이 강합니다. 조용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 생각의 영역에서 작품 행위에 대한 기준이 만들어집니다. 작품을 제작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그린다기 보다는 만든다는 말이 더 어울립니다. 알지 못하지만 그 순간 이미 우리는 연결되거나 헤어진 상대로 남습니다. 작품에 대한 이해는 생활과 관련되지만 관조(觀照)는 생각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작품들이 관조의 대상이라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재능과 숙련의 현재입니다. ■ 박정수

Vol.20180323a | 박초현展 / PARKCHOHYUN / 朴礎顯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