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의 새는 어떻게 예술을 하는가

How the Birds out of the Window do Art展   2018_0324 ▶︎ 2018_0627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8_0330_금요일_04:00pm

1부 / 현대의 예술가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2부 / 타자(무한)의 얼굴 대면하기

참여작가 김설아_김창세_박미화_박세희_이지현_이태호_최인호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입장마감_05:00pm / 월요일 휴관

무안군오승우미술관 MUAN SEUNGWOO OH MUSEUM OF ART 전남 무안군 삼양읍 초의길 7 2,3 전시실 Tel. +82.(0)61.450.5481~3 museum.muan.go.kr

타자의 미학-다름에 대한 진정한 존중을 향하여 ● 현재 우리나라 사회 전반에 커다란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문화예술계도 예외는 아니다. 국제적인 지명도를 자랑하던 시인과 영화감독, 국내 연극계를 호령하던 연출가와 배우들 모두 주홍글씨의 낙인이 찍히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기행', '탈속' 등의 전근대적이고 낭만적인 예술가상으로 이들을 변호하려 하지만, 마침내 그러한 논리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 '천재', '창조자', '자기 이외의 모든 것을 대상화하는 명확한 주체'라는 예술가상의 종말은 이미 19세기 후반에 예견되었다. 이성중심주의적 사유를 비판한 니체는 야성과 허무 등 근대적 이성의 바깥을 사유했다. 무의식이라는 내 안의 타자를 발견한 프로이트는 데카르트적 주체와 합리성의 개념을 완전히 뒤집었다. 이들에 의해 제기된 문제의식은 이후 포스트모던적 사유의 근간을 이룬다. '일관적이고 고유한 내적 자아', '타자를 설정하고 배척함으로써 자기만의 영역을 설정하는 정체성'이란 개념에 대한 의심이 포스트모던적 사유의 시작이다. 포스트모던적 사유는 주체, 이성, 동일성 개념에 따라 형성된 단일한 자아를 부정한다. 이제 자아는 자아와 타자, 의식과 무의식의 균열로 존재한다. 이처럼 '탈중심화된 주체'를 전제하는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우리 모두는 '타자들'이다. ● 미술가들 역시 이러한 사상가들의 사유와 보조를 맞추었다. 타자에 대한 관심은 일찍이 낭만주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국적인 것, 상상력을 향한 낭만주의 미술가들의 모토는 이후 인상주의 작가들의 자포니즘, 고갱의 원시문명을 향한 열망, 야수파와 큐비즘의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원시조각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물론 이들의 비서구적인 것에 대한 흥분은 미적인 목표와 함께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적 관심이 뒤섞여 있었다. 이들로부터 한 발자국 더 나아간 미술가는 마르셀 뒤샹이었다. 그는 서양문명의 뿌리로 여겨지는 이성과 합리성을 거부하였다. 특히 전통과 권위를 부정함으로써, 그는 '창조자' 라는 기존의 예술가 개념을 '발견과 선택'을 하는 사람으로 대체하였다. 이후 롤랑 바르트는 '저자의 죽음'을 통해 뒤샹의 예술가 개념에 또 다른 획을 그었다. 즉 창조자로서 예술가는 작품의 의미에 대해 더 이상 궁극적인 권위자가 아니고, 각각의 수용자가 그 작품에 대해 자신만의 해석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미술가들은 서서히 자신이 '타자'의 자리에 있음을 깨닫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 스스로 '타자'라고 생각하는 미술가들은 지배 구조를 폭로하고, '타자'에게 권력을 부여하고자 했다. 그 대표적인 작업은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들은 전시와 작품 판매에서 성공한 작가 대부분이 백인 남성이라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이들은 소외된 여성작가들을 위해 미술계의 가부장적 권력 구조를 공격했다. 초기의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에 근거한 타자 개념(남자/여자, 백인/흑인, 이성애자/동성애자)은 서구 중심적 사유의 결과였다. 이후 정체성이란 인종, 계급, 젠더, 성적인 선호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에 의해 만들어지며, 우리가 자유로운 행위주체이듯이 타자들도 자유로운 행위주체라는 신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신념을 공유하는 현대미술가들은 다양한 정체성을 재현함으로써 성과 인종 차별을 비롯한 여러 형태의 편견에 대항하였다. ● 니체와 프로이트에서 시작해서 뒤샹과 바르트, 페미니스트와 정체성 정치학을 거치며 우리가 터득한 것은 '확고하게 명증했던 근대적 주체는 더 이상 없으며, 주체는 곧 타자이다'라는 명제이다. 요즘의 언어로 치환하자면, 영원한 갑은 없으며 갑과 을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갑과 을의 만남은 인격적 만남일 수밖에 없고, 상호존중과 공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현재 우리 사회의 지각을 흔드는 사건들의 연속은 바로 이러한 원칙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위배한 사례의 폭로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런 현실에 비추어 보건대, 우리 사회가 현대미술가들에게 기대하는 중요한 임무 중의 하나는 '다름'에 대한 진정한 존중이라는 '타자의 미학'을 제시하고 구현하는 것은 아닐까? ■ 김승환

박세희_Space in between_디지털 프그먼트_80×120cm_2016
박세희_Space in between_디지털 프그먼트_80×120cm_2016
박세희_Space in between_Living room_디지털 프그먼트 프린트_80×120cm_2016

박세희의 「중간지대」는 블라인드나 커튼, 울타리 혹은 담장으로 가려진 얼핏 닫힌 공간처럼 보인다. 가림막 너머의 세계가 비추어 보이기도 하고, 가려서 바깥이 보이지 않기도 한다. 나만의 공간을 규정하고 그 안에서 안주하려던 근대적 주체(작가)는 경계가 모호해진 중간지대를 통해 끊임없이 외부와 접촉하고 소통해야 하는 유목민이 되어야 한다. 「중간지대」는 낯선 장소와 낯선 이들에 대한 경계를 고집하지 않는 유연한 태도가 유목민의 덕목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 박세희

이지현_017SE1402 dreaming book-기록하다..나를_배모양 인문학 책 뜯다_300×430×940cm_2017_부분
이지현_018FE2102 dreaming book-나는 지금 만나러간다_성경책 뜯다_180×60×50cm_2018

이지현의 「dreaming book」은 성경, 셰익스피어의 햄릿 등의 고전과 다양한 인문학 서적을 읽고 난 후, 책의 한 장 한 장을 찢어내서 오래된 필사본의 두루마리처럼 연결하여 배를 만들고 있다. 이지현호(號)라는 예술가의 방주가 만들어져 간다. 책 속에서 만난 다양한 타자를 작가는 자신의 배에 태운다. 이제 우리가 그 배에 오를 차례이다. ■ 이지현

최인호_인간단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재_291×218cm_2017
최인호_잠_캔버스에 유채, 재_181×227cm_2016
최인호_청사포에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재_218×291cm_2017

최인호의 작품에는 굳은 표정의 군상들과 앙상한 가지의 나목이 보인다. 「이태원 게이」, 「인간단지」, 「섬」, 「잠」이란 작품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소외된 이웃과 소통하지 못하는 타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자신의 섬에 갇혀서 웅크린 채 멍한 눈으로 서로를 외면하거나, 쪽잠을 자거나, 욕망을 억압하고 있다. 그들의 실존은 황량한 공간과 생경한 색채에 의해 더욱 불편하고 황폐해 보인다.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처지는 아닐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 최인호

이태호_우리시대의 초상-바라보며_캔버스에 유채_112×145.5cm_1998
이태호_우리시대의 초상-신부_캔버스에 유채_130.3×162cm_1997
이태호_우리시대의 초상-조각가_캔버스에 유채_112×145.5cm_1998

이태호의 「우리 시대의 초상」 시리즈는 이상하게도 얼굴 없는 초상화이지만, 우리는 큰 어려움 없이 그들이 각각 군인 아들을 면회 간 부모, 웨딩드레스의 신부, 링 위의 복서들, 뒷모습의 촌로, 작전에 투입된 군인 등임을 알아볼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의 복장과 태도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이웃의 정형화된 모습이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지나 20년이 되어가는 지금 20세기 말의 옷과 액세서리를 하고 길에 나선다면 어떤 시선을 받게 될까? 마찬가지로 그 때의 사고방식을 고집한다면 어떨까? 그 경우, 내 안의 타자는 다름을 존중하지 못하는 괴물이 되어버릴 것이다. ■ 이태호

김창세_타인의 얼굴_사물_2018
김창세_타인의 얼굴_사물_2018

김창세의 설치 작품에 등장하고 있는 익숙한 일상의 오브제들은 시간과 공간 혹은 의식과 무의식 등 그 모든 것들의 경계에서 마치 보르헤스 언어처럼 낯설고 모호한 존재로 변모되고 있다. 그의 오브제들은 바로 자아의 내부에 존재하는 또 다른 타자의 얼굴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가 제시하고 있는 수많은 대상들은 단순한 사물로부터 벗어나 작가가 사유했던 타자성을 부여받게 된다. ■ 김창세

김설아_The Tease of Water_실크에 먹_50×50cm_2017
김설아_The Tease of Water_실크에 먹_65×85cm_2017

김설아의 타자성에 관한 탐색은 독특하다. 그녀는 사라져버린 과거의 시간과 기억의 역사들을 소환하는 도구로 먼지나 곰팡이, 혹은 벌레처럼 미세한 촉수를 등장시킨다. 이처럼 연약하고 섬세한 촉각을 가진 기묘하고 환상적인 모습의 미생물들은 의외로 보이지 않은 것들의 타자적 존재를 '지금 여기'에 불러 모아 유기적 존재로 재생시키는 샤머니즘 역할을 하고 있다. ■ 김설아

박미화_배(강호가도)_조합토_20×120×30cm_2011
박미화_어머니_잣나무_높이 157cm_2016
박미화_이름_나무판에 커터칼 조각_182×206cm_2016

박미화는 한 때 타자(아이)를 자신의 몸에 품음으로써 인간의 죽음과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는 어머니 혹은 자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타인'에 대한 사랑을 이미 체화하고 있으며 이를 실천하는 신이 아닌 인간의 이름,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에서 모두가 부르고 있는 우리의 근원인 '어머니', 그 모성성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 박미화

Vol.20180324f | 창밖의 새는 어떻게 예술을 하는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