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처럼; 불꽃들의 기도 'Like the sun; The prayer of flowers of flame'

손유선展 / SONYOUSEON / 孙侑先 / painting   2018_0328 ▶︎ 2018_0402 / 월요일 휴관

손유선_태양처럼_캔버스에 유채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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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유선 페이스북_www.facebook.com/thsdntjs407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가나인사아트센터 GANA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1-1(관훈동 188번지) 2층 Tel. +82.(0)2.736.1020 www.insaartcenter.com

꽃을 위한 제의(祭儀) ● 손유선은 오랫동안 외부와 단절한 상태에 있었다. 그에게 세상은 거기에 속하지 않은 채 무의식으로 응시하는 창밖의 대상이었다. 어느 날 손유선은 창 너머의 세상을 향해 손짓을 한다. 아니, 손짓하는 건 창밖으로 보이는 꽃이었는지 모른다. 꽃을 매개로 소원했던 세상과 다시 만나는 순간이었다. 어느 찰나, 웅크렸던 잎을 슬며시 여는 꽃망울처럼 그렇게 그는 세상을 향해 자신을 열었다. ● 손유선은 창에 비친 꽃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것은 자기 내면이었다. 속절없이 흘러간 젊은 시절의 억압에 대한 회한이 섞인 분출이었으며, 자유를 향한 풀어헤침이었다(작가노트). 이러한 풀어헤침은 그의 드로잉과 유화에서 수없이 반복하는 실타래 같은 선과 색의 중첩에서 확연하다. 거기에는 묶인 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천연한 몸부림이 있을지언정 통찰이나 구도와 같은 의도는 보이지 않는다. 손유선의 그림은 인간 내면의 갈등을 원초적으로 표출한 엥포르멜의 저항의 행위에 가깝다. ● 그는 2015년 이후 자신이 그린 꽃에 빠짐없이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그것은 언어체계가 아닌 기호로서 하나의 꽃에 각기 다른 표지를 적용한다. 결과적으로 같은 이름의 꽃이 하나도 없다. 꽃이 그의 내면의 표출이 맞는다면 그만큼 그의 내면은 중층적이고 다면적이다. 억압이나 자유로 뭉뚱그려 표현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 언어체계로는 그가 가진 내면의 감정을 다 표현할 수 없다. 각기 다른 형태의 기호만이 다층적인 손유선의 감정을 감별할 수 있다. 언어 대신 기호로 꽃을 구분하듯 그의 그림에서 꽃은 형태 대신 색으로 추상화한다. 그가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꽃이 아니라 자신이 창 너머로 본, 자신에게 꽃을 통해 말을 걸어온 세상이다. 그리고 그 세상은 한동안 묶여있던 자기내면의 환영으로 일정한 형태로는 설명할 수 없는 비정형적인 감정의 세계이다. 안정 대신 불안정, 고정 대신 비고정, 정박 대신 항해하는 손유선의 감정은 무계획한 붓질, 요동치는 꽃의 이미지, 현란한 색, 혼란의 두려움을 가두려는 기호의 표지 등으로 캔버스에 밀착한다.

손유선_불꽃_캔버스에 유채_2018
손유선_구름_캔버스에 유채_72×72cm_2017

언젠가부터(내 기억으로는 2017년 가을이다) 손유선은 사각 평면 안에서 혼합된 이미지와 기호이미지를 입체로 독립시켜 밖으로 분리해낸다. 꽃 이미지를 기호모양으로 재단해서 입체적으로 제작하고 평면 이미지와 병치하여 상호간 관계 맺기를 실행한다. 이는 자기내면에 엉켜있는 꽃들의 이미지가 분리하기 시작했음을 지시하는 동시에, 억압으로 떠오르는 지난날의 기억이 점점 침전하고 기쁨과 경배의 기억들이 새로운 층을 이루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자기 내면에서 과거와 현재가 균형을 이루면서 손유선의 그림은 분화한다. 캔버스의 분화는 정돈과 혼돈, 화와 불화 등 갈등의 요소 사이에서 양자택일하려했던 단선적 사고에서 양자의 충돌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사유하고 수용하려는 긍정적인 태도로 전환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이로 인해 손유선의 꽃과 표지의 수는 양적으로 늘어나고, 『RED TRIANGLE』전(2017)에 이르러서는 생성과 소멸과 같은 삶의 양면성과 자연의 이치 같은 보편성에 접근한다(작가노트). ● 이번 『태양처럼: 불꽃들의 기도』전에서 손유선은 타인을 돌아본다. 칩거에 가까운 생활 속에서 빠져나온 지 5년만의 일이다. 억압에서 빠져나와 자유를 획득하려했던 뜨거운 자신의 갈망이 내용과 형식만 다를 뿐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욕망이라는 사실을 불상 앞에서 흔들리는 수많은 촛불을 보고 깨달았다. ● 각자의 다양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 촛불을 켜고, 또 그 불꽃이 마치 염원하는 대상인 양 정성으로 모시는 것을 보고 그 행위나 염원이나 촛불이 다 내가 본 꽃과 같다고 느꼈다. 소원을 대리하는 불꽃이 타오르다 소멸하는 것이 꽃이 피어나고 지는 모습과 흡사했다. (작가노트) ● 다른 사람의 염원과 욕망을 담아보려는 손유선은 검은 집에 갇힌 형상화한 갈망, 12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진 꽃과 표지들과 이 세상의 모든 열망을 위한 기도문 하나를 관객에게 선보인다. 이로써 한동안 열지 못했던 창을 열고 새 세상으로 나아가 직접 꽃과 대면하려는 그의 실험은 진지한 제의로 다가온다. 심현섭 ■ 심현섭

손유선_시리소니_종이에 연필 드로잉_90×40cm 손유선_시리소니_캔버스에 유채_90×90cm

나는 늘 안에서 창을 통해 바깥세상의 꽃을 바라보았다. 창을 통해 한번 걸러진 세상은 내게 나만의 눈으로 평가한, 단순한 대상들을 보여준다. 그렇게 내게 다가온 꽃은 젊은 날에는 경멸, 늙은 날에는 경배였던 가버린 시간들이다. 꽃은 흘러간 시간 속에 담겨있던 억압의 분출이며 폭발이자 흘러내림이며 자유를 향한 풀어헤침이다. ● 꽃을 소재로 나의 욕망을 한 가지 형태가 아닌 여러 이미지로 재단하여 보았다. 그리고 발화된 순간을 부유하듯 사각 틀 중심부 안에 가두고 검정색 선으로 묶어서 독립된 표식으로 이름 지어 고정시키는 작업을 했다. 이러한 표식은 멸종위기 동물에게 고유한 identity를 부여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했었다. 이후의 작품에서는 이미지를 사각평면 틀이 아닌 아예 잘려진 입체에 가두는 작업으로 발전시켜 피그말리온의 조각처럼 생명력을 불어넣고자 했다, ● 이번 전시에서는 나 개인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염원과 욕망을 담아보고자 했다. 나는 절에서 촛불을 지키며 며칠을 기도하는 사람들을 본 경험이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향해 기도하는 염원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각자의 다양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 촛불을 켜고, 또 그 불꽃이 마치 염원하는 대상인 양 정성으로 모시는 것을 보고 그 행위나 염원이나 촛불이 다 내가 본 꽃과 같다고 느꼈다. 소원을 대리하는 불꽃이 타오르다 소멸하는 것이 꽃이 피어나고 지는 모습과 흡사했다. ● 이번 전시의 제목 『태양처럼; 불꽃들의 기도』은 이렇게 지어졌다. 촛불과 염원의 느낌을 시로 써서 벽면에 올린다. '잘 피어나게 해 주세요/ 빨리 피어버리지 않게 해 주세요/ 피다가 말고 시퍼런 몸뚱이만 남기고 꺼져버리지 않게 지켜주세요/ 다음 날 다시 지필 수 있게 /벽을 쳐 주십시오, 철조망을 감아주세요' ● 각자의 염원을 각각의 표식으로 표현한 아홉 개의 꽃 그림 조각들을 한 벽면에 걸고 또 다른 벽면에는 염원을 바라보는 네 조각의 그림을 건다. 그리고 전시장 중앙에는 염원의 맘을 상징하는 작은 입체조각을 검은색 집안에 모시는 설치 작업을 하려한다. 이 모든 작업에는 나의 창에 비친 꽃과 시간들, 나와 사람들이 피운 불꽃과 염원을 향한 제의의 심정이 담겨있다. ■ 손유선

Vol.20180328b | 손유선展 / SONYOUSEON / 孙侑先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