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이젠 우리의 역사 Jeju 4·3 is Now Our History

제주4·3 70주년 기념 특별展 Commemorating the 70th Anniversary of Jeju 4·3   2018_0330 ▶ 2018_0703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강정효_김홍모_노승복+신판섭_박경훈 박영균_양미경_오석훈_이명복_이세현 이윤엽_인송자_장지아_정용성_제인 진 카이젠

주최 / 대한민국역사박물관_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_제주특별자치도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수,토요일_10:00am~09:00pm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 입장가능

대한민국역사박물관 National Museum of Korean Contemporary History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198 3층 기획전시실 Tel. +82.(0)2.3703.9200 www.much.go.kr

100년의 대한민국을 깨우는 제주4·3 70주년 ● 지난 해 초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는 제주4·3 70주년을 맞아 서울에서 전시회 개최를 제안했다. 한국전쟁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4·3 발생 이후 '제주'라는 지역 안에서 조명하다 전국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알리고자 하는 제주민의 염원에서 비롯하였다. 이러한 4·3 전국화를 위해 관련 다수의 민관 단체들이 협의에 나섰다. 그 가운데 가슴 아픈 역사를 불완전한 기억 속에서 공동의 삶으로 호출하는 데 예술가들이 앞장을 섰다. 최초 제출된 기획은 4·3을 주제로 작업해온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들로 구성되는 대규모 아카이브 전이었다. 보다 입체적이고 압축적인 전시를 위해 전시 공간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논의 끝에 대한민국 역사박물관과 협력하여 전시를 진행하기로 했다. 박물관이라는 장소의 특성을 안고 풀어가는 전시는 전시 자체로 예술적인 자유로움은 덜어내지만 4·3의 역사적 해결과 더불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라는 장소를 정한 것은 다른 더 큰 의미가 있다. ● 광화문과 미국 대사관 옆, 대한민국 근현대 역사를 아카이브하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제주4·3 이젠 우리의 역사"전은 전시 의도를 실현하고 결론을 이끌어 내며 예술을 뛰어 넘는 제주4·3의 상징을 갖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참여하는 작가들 또한 흔쾌히 동의를 했다. 국가가 민간에게 행한 폭력의 역사라는 관, 민의 접점을 지엽적인 문제 혹은 불온한 이념의 문제로 폄훼해온 보수적 관점에서 항쟁의 관점에 이르는 함의의 평균을 찾아내고자 하는 전시라 할 것이다. ● 1948년에 일어난 4·3을 10년 주기로 볼 때 직접 경험한 세대들이 마지막으로 기억할 수도 있는 70주년이다. 4·3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전국화를 논의하지만 제주4·3은 여전히 과정이다. 1948년에서 70년동안 흐르다 머물기를 반복하다 이제, 다시 거대한 물줄기로 흐르기 시작한 '과정'이다. 그래서 '분명히' 짚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단순한 사건이 아닌 4·3에 대해 우 정확한 이름(정명正名)을 찾아 진상규명을 하고 평화와 인권에 관한 교육을 통해 남겨야 할 것이다. ● '제주4·3 이젠 우리의 역사'라는 전시 제목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문구 속 '이젠'은 결정의 마지막 순간까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젠'은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시간적 의미와 '이곳에서 부터'라는 공간적 의미를 관과 민이 공동주최하여 풀어가고자 하는 시발점을 의미한다. 속섬허라. ● 제주를 오가며 집약한 키워드는 제주어 '속솜허라'였다. 처음 그 단어를 듣고 의미를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을 듣고 말이 품고 있는 억압적 구조가 살을 에는듯 했다. 4·3을 따라가다 보면 희생자 수에 비해 회자되는 사람의 이야기가 적다. 그만큼 입 밖으로 꺼내 이야기가 돌 수 없는 속솜한 상황, 조용히 해야만 하는 제주의 뼈 아픈 역사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단어였다. 속솜허라의 '속솜'은 원래 속으로 쉬는 숨으로 줄여서 '속숨'이다. 죽을 수도 있으니 속으로 들숨을 참듯이 말하지 말라는 자타의 경고에 대해 찾은 생존방식이다. ● 1993년에 이르러 제주도의회에 '4·3 특별위원회'가 설치됐고 2000년 1월 여야의원 공동 발의로 '제주 4·3사건 특별법'이 비로소 국회를 통과했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등장하는 인물들 이외에도 3만의 희생자가 있었다. 속솜히 사라져간 이야기가 최소한 3만개인 것이다. 민중을 드러내는 작업에 집중을 해야하는 이유였다. ● 학술적이고 실증적인 유물을 중심으로 검증적 사고를 하는 박물관의 특성과 창조해야 하는 현대미술이 지녀야하는 기본적인 진보적 습성의 다름이 있으나 전시 장소의 특수성을 공유하며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기본으로 제주의 역사에서 속솜했던 민중을 상상하며 작품 창작 방향과 배치에 무게를 실었다. 들어가며 ● 동시대 제주문화예술사는 4·3미술사라 할만큼 1994년부터 25년간 끊임없이 제주4·3을 담아왔다. 4·3 미술이라는 하나의 영역을 만들어낼 만큼 4·3을 알리고자 노력한 예술인들도 함께 조명했다. ● 전시의 구성은 총 4부로 되어있다. 프롤로그 애기동백꽃의 노래 / 1부 불안한 희망 / 2부 흔들리는 섬 / 3부 행여 우리 여기 영영 머물지 몰라 / 4부 땅에 남은 흔적, 가슴에 남은 상처 / 에필로그 너도 누군가의 꽃이었을 테니 ● 1부 '불안한 희망'은 일제강점기 당시 해녀들의 항일 운동과 일본군의 제주 요새화, 해방직후 우익의 강화, 경제난, 군정 당국과의 마찰의 내용을 소개한다. 2부 '흔들리는 섬'은 3.1절 발포 사건으로부터 3.10 총파업 이후 경찰의 과잉진압과 고문치사사건, 서북청년단의 테러에 대해 무장봉기로 항거하여 평화협상이 결렬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3부 '행여 우리 여기 영영 머물지 몰라'는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 이후 제주에 내려진 계엄령과 초토화작전에 대한 무장대 봉기와 의인들의 행적을 포함하고 있다. 4부 '땅에 남은 흔적, 가슴에 남은 상처'는 한국전쟁 발발이후 예비검속자 및 재소자들에 대한 재판없는 처형, 연좌제피해와 소설과 종교의식으로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았던 과정을 그렸다. 마지막 에필로그 '너도 누군가의 꽃이었을테니'는 다음세대를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하는 평화와 인권 통일을 향한 움직임을 담았다.

박경훈_통곡_목판화_59×94cm_1988 박경훈_죽창_목판화_67×74cm_1989 박경훈_철 가시꽃_목판화_86×98.5cm_1989
정용성_1948년 3월 14일, 모슬포 지서에서 유치 중이던 청년 양은하(27세)는 경찰의 고문으로 목숨을 잃었다_종이에 목탄_180×85cm_2018 정용성_무명_종이에 목탄_78×54cm_2001_제주도립미술관
양미경_큰 넓은 궤-긴 손_캔버스에 유채_130×163cm_2015 양미경_아이들의 싸우는 방법_캔버스에 유채_130×163cm_2015

2부. 흔들리는 섬 : 폭풍속으로 정용성 ● 정용성은 4·3 인물사 작업에 천착해 왔다. 4·3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들어보았을 김달삼, 김익렬, 이덕구 등의 초상 작업을 해온 바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기획의도에 맞게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1948년 3월14일 모슬포 지서에서 유치 중 고문으로 희생된 청년들 중 사진이 남아 있는 양은하 생과 사진으로만 남아 이름을 알지 못하는 역사적 인물을 목탄이 갖는 퍽퍽함으로 완성하였다. 박경훈 ●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 현실과 발언, 두렁, 임술련 등은 1980년이라는 고개를 넘으며 사회적 문제의식을 실천하고자 창립한 민중미술단체들이다. 그 흐름을 이어 박경훈은 1984년 문행섭, 김재경과 함께한 '상황과 표현'전을 시작으로 1985년 현실참여적인 판화동인 기초 조직을 만들고 1988년 그림패 코치를 결성하는 등 중추적인 활동을 했다. 전시 참여작인 「통곡」, 「죽창」, 「철가시꽃」 목판화3점은 강경 진압으로 희생된 이들을 정면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제주4·3 50주년을 기념하여 열렸던 전시에서 보이기도 했다. 1947년 3.1절 기념행사에서 경찰의 발포를 도화 으로 1년 뒤 제주4·3이 벌어지기까지 대립과 저항, 학살을 배경으로 한다. 자식의 죽음과 어머니의 죽창 그리고 불타는 듯한 봉화와 꽃으로 승화하는 희생자의 모습은 당시 제주여성의 보편적 삶을 상징화하여 묵직하고 날카로운 칼질로 나무 위에 새겼다.

박영균_그 총알들 어디로 갔을까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25cm_2015

3부. 행여 우리 여기 영영 머물지 몰라 3-1부. 국민 아닌 국민이 되어 박영균 ● 2013년부터 제주라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 숨어있는 4·3의 흔적을 찾아 답사를 했다. 사려니 숲길을 지나야 나오는 깊은 산속, 4·3 무장대의 상징적인 인물인 이덕구의 부대가 움막을 짓고 생활 했던 이덕구 산전에서 보았던 나무들이 기억에 남아 4년째 오가며 그 숲의 '령' 작업을 하고 있다. 1948년 사려니 숲길에서, 이덕구 산전에서, 곳자왈 숲에서 날아갔을 수많은 총알들을 떠오르게 하는 작품 「그 총알들 어디로 갔을까」 는 이 숲길을 가본 이라면 누구라도 작품 앞에 오래 머물지 못할 것이라 생각케 한다. 오석훈 ● 가족이 행방불명 된 유족들은 제삿날을 대부분 생일에 치른다. 우리 헌법에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재판은 없었다. 그러니 재판 기록도 있을 리 없다. 법이란 합법적 절차에 의해 제정되고 공포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초법적인 '계엄령'에 근거하여 내란죄, 이적죄, 간첩죄라는 명목 하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다. 미군정과 그들을 추종하는 집단이데올로기와 눈먼 충성이 많은 희생을 낳은 것이다. 국가공권력에 의한 정치적 집단학살인 것이다. 목포, 마포, 대구, 인천, 전주 등 육지형무소로 분산 수용되어 있던 제주 수형자들은 한국전쟁이 벌어지자 재판없이 처형되었다. 「살(殺)의 정치사 이슬로 지다」 작품은 작가가 당시 수형 기록을 찾아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되살리고 그 위에 수형 번호를 적어 넣었다. 수형인의 넋을 신원하고 명예를 되찾기를 바라듯이 제주4·3의 정명에 대한 간절함이 담긴 구도적 작업이다. 양미경 ● 한국전쟁 다음으로 희생자가 많은 제주4·3은 3만 명. 자그마치 당시 인구의 10분의 1에 이르는 사람이 희생되었다. 희생자들은 4·3 당시 토벌대를 피해 중산간지역의 동굴로 피신하였다. 지금도 사람들이 이 동굴 답사를 통해 희생자들이 느꼈을 고립감과 공포에 공감한다. 양미경 작가는 동굴 입구에서 올라오는 동료의 순간적인 모습에서 당시의 비극이 떠올랐으며, 이를 「큰 넒은 궤_긴 손」,「아이들의 싸우는 방법」작품으로 그려냈다. '큰 넓궤는 어둠의 길이가 180m가 된다고 하죠, 그 안에서 한 두 달간의 길고 긴 삶.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두려움의 시간입니다. 정말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연명의 시간들이죠. 갑자기 소리가 느껴지더군요. 그 소리는 저에게 환청 일수 있고 이명 일수 있습니다. 순간 환청이 환시로 다가왔습니다. 70년 전 그 숨소리가 지금의 나에게 쑥 내밀었습니다. 180m 어둠 속 긴 손으로...' 사람 한명이 엎드려 가까스로 지나갈 수 있는 동굴입구에서 어슴프레 보이는 손과 눈만 빼꼼이 내밀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목탄으로 그려낸 작품은 가늠할 수 없는 어둠일지라도 역설적으로 살수 있게 하는 유일한 희망이었음을 알려준다. 인송자 ● '현재 진행형인 레드 콤플렉스에 대한 단상을 그려본다.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라는 이율배반적 논리가 아닌 힘의 논리에 의해 이념적 지배대상에 대한 탄압의 수단으로 점철되었던 레드 콤플렉스는 무엇에 대한 누구의 공포인가를 고민해보게 한다.'라는 작가의 생각은 권력을 지키려는 자의 레드에 대한 두려움, 피지배자로서의 레드에 대한 공포는 양자가 동일하게 가지고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콤플렉스가 상징하는 붉은 색이 깨지고 세어 나오는 빛을 형상화하여 발전적인 바램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 '사라지지도 않고 깨지지도 않는 레드에 대한 컴플렉스, 레드의 에너지를 REDCIDE2018라는 작품으로 쉽게 깨지지 않는 에너지, 빛을 발하는 레드를 형상화했다. 그럼에도 REDCIDE , 붉은 학살이라는 제목은 사라지지 않는 레드에 대한 콤플렉스로 인해 모든 것을 재단하는 현재적 모습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희생자가 발생한 시기를 의미하는 3부 공간에 펼쳐 있는 자료들과 텍스트 유물들을 인송자의 조명설치작업을 통해 빛으로 밝힌다. 붉은색 조명은 레드에 대한 컴플렉스로 모든 것이 판단되어 희생당한 사람들을 비추지만, 겹겹이 둘려 싸여 있는 껍질의 층을 깨고 뿜어 나오는 밝은 빛은 희망을 향한 염원으로 3부를 전체를 밝힌다.

이윤엽_문형순 경찰서장_목판화_76×30cm_2018 이윤엽_성산포 송기숙씨_목판화_76×30cm_2018 이윤엽_신흥리 김성홍 구장_목판화_76×30cm_2018 이윤엽_세화리 김은정씨_목판화_76×30cm_2018

3-2부. 부당하므로 불이행 이윤엽 ● 「문형순 경찰서장」, 「신흥리 김성홍 구장」, 「성산포 송기숙씨」, 「세화리 김은정씨」 그리고 같은 크기의 거울이 동 을 따라 연달아 설치되어 있다. 현재 평화박물관에는 8인의 의인이 전시되어 있으며, 보는 이에 따라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는 1인 문형순 경찰서장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4·3 속에서도 더 많은 상식적 행위자가 있었을 것이고 드러난 의인이 많지 않다는 것은 속섬한 침묵의 역사를 반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작가는 문형순 경찰서장, 몰라구장이라 불리운 김성홍 구장 이외에 작가가 창조한 성산포 송기숙 해녀, 세화리 김은정 애기엄마, 그리고 거울 속에 비춰진 '나'를 포함하여 속섬의 반증을 제안하였다. 4·3이후 처절한 학살의 광풍에도 소신을 지키고자 했을 보편적인 사람, 나와 같은 사람을 표현하고자 했다.

인송자_REDCIDE2018_한지, 아연도철선, 조명_180×130×130cm, 가변설치_2018
강정효_질곡의 세월-침묵_사진_97×149cm_1996

4부. 땅에 남은 흔적, 가슴에 남은 상처 4-1부. 살암시민 살아진다.(살다 보면 살아진다) 강정효 ● '어린 시절 우리가족은 같은 날 식구를 둘로 나누어 큰형님 댁과 외가에 제사를 지내러 갔었다. 우리 집안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집이 제삿집이었다. 그 숫자는 명절날 제사를 지내는 집의 숫자보다도 많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았다. 나중에 대학에 입학한 1980년대 초반이 되어야 그 원인을 알게 되었다. 1948년 12월 5일(음력) 고향마을 사람 80여 명이 하루에 몰살을 당한 날이었다. 그것도 소위 말하는 '함정토벌'에 이은 대량 학살이었다. 무장대로 변장한 군인들이 마을사람들을 모아놓고, 자신들은 산에서 내려왔는데 먹을 음식 등을 내놓으라고 강요했지만 마을사람들이 속지 않았음에도 그 다음날 또다시 집결시켜 무조건 총살해버린 참극이었다.' 작가만의 일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남은 사람들은 입을 닫아버렸다. 50년동안. 4·3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금기였을 것이다. 부득이 그 시절을 이야기할 때면 '이 시국'이라는 표현으로 꼭 필요한 말만을 했을 것이다. 이후 남겨진 사람들이 경험에서 체득한 삶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 「질곡의 세월-침묵」은 1995년 열린 4·3위령제에 참석한 유족들의 표정으로 그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4·3을 다시 이야기하는 시기의 유족들 모습과 험난함을 상징하는 덩굴 이미지를 합성한 작품이다. 당시의 사진 자료로 남아 있는 비극적 상황과 50여 년이 지난 이후 유족들의 참담한 심정이 거칠게 한 화면에 담겨 드러내지 못했던 분노로 다가온다. 이세현 ● '제주 풍경 위로 펼쳐진 광활하고 끝없는 하늘과 구름을 통해 자연으로써 제주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인해 삶의 비극성을 망각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비극성을 대면하기도 한다.' 아름답지만 슬퍼 보이는 구름과 붉은색, 광활하지만 허망한 구름, 언제나 일상과 함께 늘 보던 구름이지만 그 구름이 모든 것을 삼켜 버릴 것 같은 공포가 느껴지는 순간, 아무것도 없이 한순간 사라질 것 같은 존재의 허망함까지 품고 있는 구름을 표현하고자 했다. 극단의 상태를 의도한 풍경 이미지로 표현하는 붉은 산수를 사회적, 역사적인 형상을 차용해 작업해온 작가는 4·3을 주제로 작업을 했던 경험이 있다. 「Between Red_018APR01」은 붉은 산수로 유명한 그가 레드 컴플렉스로 더욱 큰 비극을 겪게 된 4·3을 이야기하기 위해 새로 제작을 했다. 붉은 색으로 그린 제주 풍경 위로 펼쳐진 광활하고 끝없는 하늘과 구름은 아름답지만은 않은 과거 제주의 비극적 사건을 시적으로 표현하였다. 이명복 ● 제주4·3은 1948년 한해로 그치지 않았다.. 한국전쟁 발발을 빌미로 예비 검속이라는 명분을 만들어 다시 집단학살을 벌였다. 이명복은 그 현장 중 한 곳인 알뜨르 비행장 옆 시신을 옮긴 학살처를 그렸다. 작품「침묵」에는 사계리 공동묘지인 백조일손지묘에서 바라본 산방산, 멀리 한라산도 있다. 제주도의 전체 지반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유골이다. 국가로부터 학살당한 유골들은 켜켜이 세워져 제주의 바닥을 메우고 있다. 유골이 들어 올렸다기 보다 유골 위에 얹혀져 있는 형상이다. 마을 주민들이 순식간에 게다가 한꺼번에 몰살당한 그 땅은 붉은 색일 수 밖에 없다. + 사건 및 현장 : 이곳은 인근 대정과 한림의 주민 200여 명을 끌어다 학살을 벌인 장소이며, 전쟁이 끝나고도 유족들이 유골을 수습하지 못하다 7년이 지난 1957년에야 현장을 찾아 서로 엉킨 유골을 구분할 수 없어서 함께 모아 묘를 만들었다. 그 억울한 죽음을 추모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백조일손지묘이다.

노승복+신판섭_백비-기억하는 풍경Ⅰ_ 플로팅 홀로그램, 영상_가변설치, 00:16:15, 00:00:23_2018
오석훈_살(殺)의 정치사-이슬로 지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1×16cm_2007

4-2부. 잠들지 않는 남도 노승복+신판섭 ● 제주4·3이 지금에서 갖는 역사적인 메타포는 단연 백비라 할 수 있다. 봉기, 폭동, 항쟁, 사건, 사태 등 이념이나 신념에 따라 각기 불리웠을 뿐 정명 되지 않은 역사의 다른 말이기 때문이다. 백비란 어떤 까닭이 있어 글을 새기지 못하는 비석을 일컫는다 백비_기억하는 풍경1 프로젝트는 그간 무연고 무덤을 찾아 사진작업을 진행하던 끝에 제주 백비까지 다다른 작가는 '지워진 과거와 사라져 가는 기억'을 찾아가는 작업 4·3사건에 관한 것이다.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많은 사건임에도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 죽음은 사라졌지만 죽음에 대한 기억은 집단적 기억과 개인의 기억, 그리고 단절로 남아 있다. 「백비_기억하는 풍경I」의 백비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신이며 역사의 연고를 잃은 비석이다.' 라고 개념하고 기억하는 풍경 즉 죽음의 흔적이 없는 장소를 찾아 촬영하여 백비를 기억하는 장소, 풍경에 사라지는 비물질적인 홀로그램으로 만들어 세움으로 인간의 삶에서 공동체 의식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죽음'과 '기억(메시지)'임을 전달하고자 하였다. 양미경 ● 매우 날씨가 좋은 제주공항 정뜨르의 유해발굴 현장에서 4·3 희생자인 여성 유해가 드러나는 것을 목격한다. 발굴과정에서 흙이 한 겹씩 덜어지며 드러나는 유해를 재현한 작가는 '눈이 부신 날' 이라는 상반된 제목으로 그날의 아픔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제인 진 카이젠 ● 작품의 사회적 참여, 사회적 예술이라는 말을 가끔 들으면 불편하다. 아픈 사람이 아픈 작업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그 사회가 이상한 것일테다. 제주에서 태어나 덴마크로 입양 보내졌던 작가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입양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떠나 보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와 자신의 개인사를 개인만의 경험으로 한정하지 않고 역사로 확장, 연구하여 텍스트와 이미지, 서사 간의 관계에 있어 새로운 시도를 한다. '거듭되는 항거(Reiterations of Dissent)'는 한국전쟁 발발 전 작가의 출생지 제주에서 있었던 제주4·3의 억압된 역사와 조각난 추억을 조명한다. 각기 다른 여러 비디오 서사로 구성된 이 영화는 제주4·3의 저변에 깔린 여러 정치적 동기를 드러내며, 제주의 현재 모습, 4·3 당시를 회상케 하는 문학적 표현, 생존자 및 유족에게 되풀이되는 기억, 산 자와 죽은 자를 달래는 굿,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시위처럼 다양한 형태를 제시함으로써 아직까지 화해에 이르지 못한 제주4·3의 트라우마가 어떤 울림을 주는지를 그려낸다. 주로 제주4·3의 진실 규명과 화해를 위해 노력해 온 현지 유족 및 생존자의 2세(현기영, 허영 , 김경훈, 김성례, 정공철, 김동만, 송승문, 고난향, 김종민, 조미영, 김은희, 김동철)를 통해 전달하는 각 비디오의 서사는 다층적인 경험, 사건,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제주 4·3을 현대사의 불안정한 사건으로 다루는 것과는 다른 양상 및 시도를 보여준다. 장지아 ● 장지아는 가죽드로잉과 피로 쓴 시의 연작들로 전시 4부에 참여한다. 학살만 남게 하는 전시가 되지 않고 싶은 기획의도에 남은 우리가 해야할 것이 무엇인가를 작가는 말한다. '약한 것의 힘'은 소가죽이라는 질기고 강한 재료의 힘을 6개월간 손 사포로 긁어내어 스크레치를 낸 작업이다. 작가가 처한 상황이나 육체적으로 소멸해가는 에너지를 작업의 동력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연약한, 비루한 힘들을 모아야만 했던 시기에 현실을 직면하고 변해버린 상황과 상태들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이렇듯 작가와 재료가 물리적 겨루는 시간을 갖는다. 국가 폭력과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4·3은 숨겨야 할 대상이나 박제된 과거가 아니다. 약하지만 살아있는, 연대하는 힘으로 사회악에 저항하고 아물지 못한 역사의 상처가 치유되길 바란다. ● 가죽 위에 드로잉을 한 유서 '스위치'는 유서의 내용을 다시 피로 쓰고 병치한 작업이다. 죽음은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어디서 재회 해야하는지를 몰라 작품 속에 남겨놓은 약속의 시이다. 작가가 수년 전 제주의 바다와 숲 절벽 바위를 상상하고 쓴 이 시는 4·3의 배경이 되는 공간들과 시간으로 우리를 소환한다.

이세현_Between Red_018APR01_리넨에 유채_200×200cm_2018
이명복_침묵_장지에 아크릴채색_192×256cm_2014

에필로그. 너도 누군가의 꽃이 었을테니 김홍모 ● 「터진목」의 주요 내용은 '평화와 인권을 향한 움직임'을 담고 있다. 전시의 여운이 널리 확산되는 것 또한 의도이므로 작품 제작의 형식도 중요하다. 작가 김홍모는 사회 부조리에 관심이 많으며 제주로 이주하면서, 제주의 역사를 모티브로 만화 작업을 하고 있다. 「터진목」은 4·3을 겪은 엄마가 딸에게 당시를 회고하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구성의 만화 리플릿으로 워크시트를 겸하여 제작하였다. 박물관의 벽 글처럼 리플릿을 활용하지만 하나의 관점을 요구하거나 작품으로서 갖는 권위적인 태도를 내려 놓고 전시를 본 사람들이 하나씩 나누어 가져가 인권과 4·3의 이해, 확산을 기대한다.

장지아_약한 것의 힘_소가죽에 사포질_90×180cm_2014
제인 진 카이젠_거듭되는 항거_단채널 영상_가변설치, 01:18:00_2011~6
김홍모_터진목(4·3유적지)_만화, 종이에 수묵, 수채, 흑연_21×14.8cm_2018

제주4·3 70주년이 남기는 질문 ●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제정한 임시 헌장의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 이다. 이를 이어받아 1948년 대한민국의 제헌헌법 제1조 또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로 시작했다. 임시정부수립일로부터 대한민국 100주년을 앞두고 있다. 그에 앞서 제주4·3은 올해로 70해가 되었다. 민주공화제의 확고한 민주적 법률 아래에서 법률적 구조와 상반되게 민간에게 벌어졌던 국가 폭력 사태, 제주4·3은 이제 대한민국에게 '공화국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 우리는 진정한 공화국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자각에서 비롯한 '제주4·3 70주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특별전 『제주4·3 이젠 우리의 역사』'는 민과 관이 함께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협업을 통해 최 의 균형을 찾아낸 전시라 할 수 있다. 진정한 공화국을 만들어가는 중간 점검을 마쳤다. 제주4·3의 질문에 대한민국 100년 이젠 제주4·3의 정명, 평화와 인권, 통일을 이야기하는 진정한 공화국이라는 화답을 기대한다. ■ 이훈희

Vol.20180330h | 제주4·3 이젠 우리의 역사-제주4·3 70주년 기념 특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