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 Animal

전은숙展 / JEONEUNSUK / 全恩淑 / painting   2018_0403 ▶︎ 2018_0424 / 월요일 휴관

전은숙_Bomb dummy unit_캔버스에 유채_162×162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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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0403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도잉아트 DOHING ART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325길 9 DS HALL빌딩 B1 (서초동 1450-2번지) Tel. +82.(0)2.525.2223 dohingart.com

도잉아트에서는 감각적인 터치와 색감으로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감성과 본인 주변의 '작은' 사회상을 담아내는 작가 전은숙의 개인전을 오는 4월 3일부터 24일까지 개최한다. 작가 전은숙에게 작업이란 '아프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행위'이다. 예민한 감성을 속도감 있고 경쾌한 붓질과 화려하고 투명한 색감으로 캔버스 표면을 지배하며 날 것으로 전달한다. 그렇게 툭툭 던져진 관능적이고 감각적인 행위의 화면은 보는 이에게 작가가 직접 그리고 있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또한 이러한 화면은 작가의 개인사와 감정이 개입된 주관적인 주변 인식이 아슬아슬하면서도 즉흥적으로 채워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가 흩어진 시선과 불안한 감성을 정리시키며, 자기 반성적 과정을 그리는 행위를 통하여 충실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 'Green Animal'에서는 약자(작가 외 개인)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적당한 거리에서 갇혀 있는 아픔을 숨긴 채 존재하는 관상용 식물에 비유하여 표현한 작업들을 선보인다. 식물과 작가와 보는 이의 관계 안에서 실존의 즐거움을 사유하기를 바란다. ■ 도잉아트

전은숙_화초 속으로 사라진 사람_캔버스에 유채_91×91cm_2017
전은숙_어둠 가까이에서_캔버스에 유채_27.3×45cm_2017

껍질깎기로서의 회화 : 전은숙 ● 전은숙은 작지만 잘 벼린 과도를 들고 자신이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무대를 마주한다. 이윽고 휘두르는 칼날은 일상의 껍질만을 얇게도 깎아낸다. 아니, 저미어낸다. 정성 들여 곱게 밑칠한 화폭에 툭툭 던져놓은 껍질들은 깊이가 없고 위계도 없는 무차별의 화면을 구성한다. 그림의 무게중심도 따로 없고 때로는 사이키델릭 펑크한 형광색도 구사하며 수채화처럼 경쾌하고 투명하게 붓질을 해나간다. 특히나 최근의 작업들에서 더욱 그러하다. ● 요즘엔 누구나, 나 같은 아재에게는 노출증이나 허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음식사진, 여행사진 등 나르시스적인 셀카 사진들을 끊임없이 찍어대고 SNS에 올린다. 자신이 특별해 보이는 가상 세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모두가 엇비슷해 보이는 편재(遍在)하는 범속함에 스스로도 속해 있음을 재확인할 뿐이다. 하지만 뻔한 사진을 찍으면서 소비하는 것과 그것을 그림으로 생산해 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전은숙_표피 연구_캔버스에 유채_53×53cm_2017
전은숙_등교길에 남아있는 풀_캔버스에 유채_162×162cm_2017

전통적으로 현실을 그리는 화가는 각종 렌즈를 통해 세계를 해부하거나 거울을 들고 현실을 비추어 왔지만 전은숙은 무심하게 분산된 시선으로 찍은 액정 이미지를, 그 표피의 관능을 세련되게 감각화한다. 마치 관광지의 볼거리에 매료된 여행객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서 출발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깊게 빠져들지는 않는다. ● 어차피 거주할 것은 아니니까. 그녀는 본질을 괄호 친다. 심지어 대상조차도 괄호 친다. 최소한의 원근감만을 유지함으로써 보는 주체가 두드러지지 않게 하고 인물과 사물의 경계를 넘나들며 쉬크하고 패셔너블하고 스타일리시한 매끈한 회화표면을 만들어낸다. 세상을 해석하는 것도 반영하는 것도 아니고 즉 씹어 먹거나 삼키는 것도 아니고 단지 자신의 섬세한 점막을 자극하는 감각소여에 대해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듯하다.

전은숙_사라진 그림자_캔버스에 유채_45.5×37cm
전은숙_엘리베이터에서 훑어보는 화초_캔버스에 유채_60×180cm_2016
전은숙_화초의 이야기_캔버스에 유채_162×162cm_2017

"나를 내버려두란 말이에요. 나는 깊이가 없어요."(P. 쥐스킨트 『깊이에의 강요』 中)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않겠다는 태도. 그렇다고 그녀의 사사로운 그림들을 얕잡아 보지는 말자. 항상 자신을 소실점에 놓고 세계를 재구성하려는 권력욕에 젖어있는 비평과 이론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감각적인 쾌락에 원초적인 죄의식을 가진 엄숙주의가 얼마나 종종 폭력적이었던가. '나'는 본래 분열되어 있는 것이고 애초에 해체되어 있는 것이다.(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분열적인 '내'가 보는 세상도 파편적일 수밖에 없다. 그 사실을 무정부주의적으로 인정하는 것. 시에 대해 말하기 전에 시적으로 느끼는 것. 그럼으로써 예술가의 감각과 상상력을 미지의 영역으로 끌고 가는 것. 그것이 전은숙이 소녀처럼 함초롬히 앉아 세상의 껍질만으로 마련해 준 풍성한 성찬이 말해주는 것이리라. ■ 공성훈

Vol.20180403c | 전은숙展 / JEONEUNSUK / 全恩淑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