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그램(21Gram)

이상효展 / LEESANGHYO / 李相孝 / mixed media   2018_0405 ▶ 2018_0428 / 일,월요일,공휴일 휴관

이상효_21g_혼합재료_43×20×15cm_2018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월요일,공휴일 휴관

소노아트컴퍼니 SONO ART COMPANY 서울 서초구 동광로 41(방배동 792-4번지) B1 Tel. +82.(0)2.3466.5151 www.sonoart.co.kr

사람이 죽는 순간에 21그램이 줄어든다고 한다. 누구나 다. 21그램은 얼만큼일까? 얼마나 잃는 걸까? 언제 21그램을 잃을까? 얻는 건 얼마큼일까? 21그램. 벌새의 한 마리의 무게. 초콜릿 바 하나. 21그램은 얼마나 나갈까? (영화 "21그램(21Grams, 2003,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중에서 폴 리버스(숀 펜 분)의 대사)

이상효_이브의 세 얼굴_혼합재료_22×7.5cm×3, 가변크기_2018

작가 이상효의 금번 『21Gram』展은 영혼의 무게에 대한 작가의 성찰이 드러나는 전시이다. 그가 삶과 죽음의 고비를 겪으며 생각하고 느꼈을 무게, 살갗에 다가오는 절망감이 안겨주는 무게. 이러한 가시적이지 않는 중량감이라는 것이 깊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저만치 물러나 있다가도, 이만치 발치 끝에 내려앉은 때의 무게. 이런 과정에서 느꼈을 무게감이 근본적이고 태생적인 물음으로 발현되어 작품에서 표현된다. 글의 서두에서 인용한 영화 "21그램"의 대사처럼 말이다. 영화 속 대사들은 필자의 길게 써 내려가는 글보다도 함축적이고 공격적이며 가슴 속 깊숙한 곳을 향한다. 모든 이에게 결국 남는 것이라는 게 수치적으로 21g이라는 주인공의 넋두리처럼.

이상효_카오스에서 카오스로_스틸에 유채_31×31×5cm_2018
이상효_카오스에서 카오스로_스틸에 유채_31×31×5cm_2018

21g, 영혼의 무게는 누구나에게 동일하게 지워지는 무게라 한다. 우리가 느끼는 삶의 무게와는 다르게 말이다. 영혼에 무게가 있다는 건, 일견 생각해 보면 꽤나 낭만적인 말이 아닐 수 없다. 육체와 영혼이라는 종교적인 이분법적 접근이라기보다 일반적으로 그게 무어라 칭해 지건 간에 현세의 사람들에게 수치적으로 가늠이 된다는 표현 아닌가. 이는 누구나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무형의 것에 형상을 만들어 가시적인 것으로 드러내는 예술 행위와도 맞닿아 있다. 그런데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면, 누구나의 사유와 어느 정도의 삶의 무게랄지 깊이가 다른 인간들의 영혼의 무게가 모두 동일한 수치로만 표현이 된다면, 과연 그 각각의 다름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동일한 무게라는 것이 철학적 사유나 탐욕스런 본능 따위와는 무관하게 같은 것으로 취급받는 다고 하면 결국에 인간사의 덧없음으로 귀결되는 이야기이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영혼의 무게 21g은 인간 본연으로 돌아가는 지점에 대한 질량일수도 있다. 결국엔 아무것도 없지 않으나 수치로 보건데 모든 이의 그것은 동일한다는 뜻이다.

이상효_카인의 변명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8
이상효_타다남은 빛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8

작가 이상효는 '카오스'를 대주제로 작품에 임하고 있다. 현재 진행형이며, 아마도 미래 진행형이 될 듯하다. 그에게 카오스라는 명제는 작품을 대하는 작가의 주제 의식이자, 본연의 자세이기도 하고 또한 작품을 이끌어 나가는 순간 순간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단지 이러한 큰 명제 속에서 작가는 삶의 무게와 시간의 속성 속에서 부던하게도 변화를 자의든 타의든 가지게 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이상효는 이전에 '카오스에서 카오스로' '어느 연금술사의 꿈' 등등으로 작품을 구연하였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 전시도 그 과정 중에 있다. 여러 오브제들을 재 조립하는 형태로 구성된 「이브의 세 얼굴」 「21g」과 「카인의 변경」 「그가 내게 준 것」과 같은 작품들에서 눈여겨 보이는 오브제는 단연 사계부리, 추 이다. 진자를 향해 내리 꽂는 추의 방향성은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나약한 선 끝에 매달려 지구의 가장 중심을 향해 방향을 가리킨다. 이러한 오브제 작업들은 본연의 다른 쓰임새를 지닌 물체들이 결국 하나로 결합이 되어 주변의 상황 변화에 흔들림 없이 지향점을 향해 가리키는 사계부리 마냥 중심점을 지향한다. 이는 결국에 작가 내부로 향하는 방향성으로 읽힌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로 글의 말미를 정리하고자 한다. "자기 안에 카오스가 있어야 춤추는 별을 낳을 수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 결국 모든 귀결은 존재하는 이의 외부가 아니라 그 안에, 내재되어 있다. 단지 형상을 달리할 뿐이다. ■ 이진성

Vol.20180405e | 이상효展 / LEESANGHYO / 李相孝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