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POSITE

홍수현展 / HONGSOOHYUN / 洪穗賢 / installation   2018_0406 ▶ 2018_0503 / 월,공휴일 휴관

홍수현_Opposite_합판, LED 조명, 케이블, 멀티탭_200×776cm_2018

초대일시 / 2018_0406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공휴일 휴관

아웃사이트 out_sight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35가길 12 (혜화동 71-17번지) 1층 www.out-sight.net

반대편 ● 신작의 스케치를 보여주던 작가는 문득 광고판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독일에서 기차를 타고 가면서 보았던 거대한 광고판들에 관한 강렬한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기차가 달리는 방향으로 앉아 있으면 멀리 조그맣게 보이는 매혹적인 광고판들은 기차의 맹렬한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순식간에 거대해졌다가 시야에서 곧 사라져 버리는데 혹여나 하는 미련에 뒤를 돌아보면 구조와 부속만이 휑하게 드러난 광고판의 뒷면이 소실점을 향해 빠르게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더듬더듬 뭔가 아쉬운 듯이 말했다. ●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것은 당연한 효율의 논리이다. 한쪽 방향을 향해 시속 100km 이상으로 달리는 기차 속의 승객들을 위해 뒷면에도 광고판을 달아주는 정도의 정성은 특급 럭셔리 제품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방식이다. 적어도 그 기차의 일등석에 타는 것만으로는 그런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혹시 추가 요금을 낸다면 뒤를 돌아보지 못하게 목을 고정해주는 장치같은 것을 제공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홍수현_Opposite_합판, LED 조명, 케이블, 멀티탭_200×776cm_2018
홍수현_Opposite_합판, LED 조명, 케이블, 멀티탭_200×776cm_2018

그러니까 광고판의 뒷면이라는 것은 이제 그다지 대단한 비밀조차 아닌 것이다. 문득 어느 영화에서 들렸던 대사가 기억이 났다. “ 어이 이봐 사람들은 햄버거가 먹고 싶은 거지 소가 보고 싶은 게 아니라고.” 이제 사람들은 평생 소를 직접 만나지 않고도 햄버거를 계속 먹을 수 있는 편리한 세계에 살고 있다. 그들이 TV에서 만나는 소들은 대게 잘 지내고 있으며 문제가 생기면 정부에서 대책을 내어 그들을 보살피고 인도적으로 도축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소를 직접 만나야 할 이유는 희미해져 버렸다. 북극곰을 동정하는 사람 중 대부분이 실제로 북극곰을 만나보지 못했다는 사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무튼, 금속 구조물이 공간을 가로지르는 전시장에서 작가는 그러한 광고판의 기억을 떠올린 듯했다. ● 회화를 전공했던 작가는 늘 공간에 관한 작업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녀의 작업은 마치 회화의 공간, 그 환영의 무대에 대한 강한 반작용이기라도 한 것처럼 공간을 지탱하는 캔버스를 끊임없이 벗겨내고, 분리시키고, 뒤틀어버리는, 그러니까 앙상하고 초라하지만, 여전히 완고한 캔버스의 틀을 끊임없이 드러내는 그런 일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들을 통해 그녀는 경계 내부의 서사와 경계 바깥의 서사를 경계 짓는 ‘환영적 공간의 실체적 구조 관계’를 끊임없이 실험하고 질문해온 것처럼 보였다. 사실 그 환영의 공간은 그녀에게 회화이자 미술이고, 제도이자 기호이며, 어느 날 기차를 타고 가며 보았던 수많은 광고판과 다름없는 어떤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홍수현_Opposite_합판, LED 조명, 케이블, 멀티탭_200×776cm_2018
홍수현_Opposite_합판, LED 조명, 케이블, 멀티탭_200×776cm_2018

전시장에 들어서자 공간의 한 면을 거의 완전히 막아선 거대한 목재 구조물에 설치된 약 2백 개의 전구들이 막힌 벽을 향해 빛을 내뿜고 있다. 불빛이 향하고 있는 그 막힌 물리 공간의 구조는 머리로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볼 수 없는 공간으로부터 끊임없이 새어 나오는 빛은 관객에게 그 이해 너머의 공간을 상상하게 만들 충분한 동기를 부여한다. ● 그 경계 너머로 전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작가가 만든 이 기이하고 거대한 조명장치의 뒷면이다. 촘촘히 박힌 전구의 개수만큼이나 소켓에서 흘러나와 어지러이 흐트러진 전깃줄들, 그것들이 다발지어 모여있는 멀티탭들 그리고 구조물을 지탱하고 있는 배후의 지지대들이 사실 관객의 시야에 들어오는 대부분일 뿐이다. 새어 나오는 환한 빛 너머 노출된 수많은 전구와 소켓, 전선은 쉬지 않고 전기라는 욕망의 원자재를 빛이라는 욕망의 환영—어둠에 대한 공포에서 기인하는—으로 전환시키는 작업을 수행한다. 그것들은 그저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미술’을 관람하려던 관객들은 보이지 않는 조명장치의 앞면을 상상하며 그 생산의 현장만을 서성거리게 될 뿐이다. ● 벽과 구조물 사이의 약간의 공간을 제외한 모든 전시장에 펼쳐진 건조한 현실의 넓이는 사실 우리의 현실을 닮아있다. 그러므로 점점 더 엄습해오는 두려움이, 사실 우리가 가진 것은 이것뿐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두려움이, 저 구조물 너머 환영의 실루엣을 더욱 넘실거리게 만든다. 그곳은 욕망하기 위해 현실을 살아가고 현실을 살기 위해 욕망하는 우리를 위한 영원한 구원의 공간이다. ■ 김상진

홍수현_Opposite_합판, LED 조명, 케이블, 멀티탭_200×776cm_2018
홍수현_Opposite_합판, LED 조명, 케이블, 멀티탭_200×776cm_2018

The Opposite ● While viewing a sketch for her new work, Soo Hong started a story about billboards, about her vivid memory of an occasion looking out a window in a train in Germany viewing the passing advertisement boards. Sitting towards the face of the train, she had observed a captivating billboard appeared from far away: by giving its way to the fierce speed of the train, the billboard had blown up in a flash to soon disappear from her sight. When she had looked back to grasp the perishing figure, all she could have seen was the bare structure of the board with naked components fading towards the vanishing point. The artist recollected with a sense of dissatisfaction. ● But it is an apparent logic of efficiency. Not even the most luxurious service would care about putting another advertisement on the back side of the billboard for the passengers of a train dashing at speed over 100 km per hour. At least the first class services of the ordinary trains don’t care. It is easier to imagine a service that binds one’s head on the seat with an extra cost so (s)he can’t look back. ● The backside of the billboard is not undisclosed anymore. I recalled a line from a movie: “Just cause people wanna eat the burger doesn’t mean they wanna meet the cow(Island, 2005).” We are living in this convenient world where we can eat burgers without meeting the cows. The cows on TV we encounter are mostly doing fine, and should they have any issue the government devises measures and sends the civil servants to humanely slaughter them. Chances for us to meet the cows in person is getting thinner and thinner. Likewise, most of the people who sympathise with polar bears have never met the polar bears in the flesh. Anyways, it seemed that the artist was reminded of the billboards by the gallery space, across which metal beam structures cut. ● Hong, who had been trained as a painter at school, stated that her works have always been about spatiality. Her works, as if pushing herself away from the illusory surfaces of paintings, consistently expose the desolate yet sturdy raw-bones of the frame of canvasses, by stripping, deconstructing and wrenching the structures. It seems that through the series of works she has been experimenting and casting questions on ‘the substantial structure of an illusory space’ that demarcates the inner narrative from the narratives outside the frame. Space of illusion, for her, might be painting itself as well as art, the system, signs, the many billboards that she passed by in the train that one day in Germany. ● Walking into the gallery, a viewer faces a huge wooden structure which almost completely blocks a wall, and which emits light towards the opposing wall with two hundred light bulbs installed on it. The light leaking perpetually from the invisible yet predictable space behind the wooden panel motivates the viewer to imagine something more than the predictable. ● On this side of the border, filling up the gallery space is the back of this immense and unusual lightening device she has created. The numerous electric cords coming out from the tightly gridded light bulbs and sockets; the multi-plugs around which the disheveled cords are gathered as groups; and the supporting structures that suspend the board: these are what come into the viewer’s sight. The countless light bulbs, sockets and electric cords over the leaking light continuously transform the material of desire (the electricity) into the illusion of desire (the light) which roots from the fear of darkness. They are just there, corporeally. And viewers who expected to encounter an ‘art’ in the gallery can only wander about the site of its production, imagining the inaccessible front side of the lightning device. ● The space of this reality that is occupying most of the gallery space (except for the small gap between the structure and the wall that it blocks) resembles our own lives. Therefore the seizing fear, based on our own anxiety that ‘this’ might be all that we have after all, illuminates the illusive silhouette. It is the space of the eternal salvation for us, who live the lives to desire and desire to live the lives. ■ Texted by Sangjin Kim(Translated by Jinho Lim)

Vol.20180406b | 홍수현展 / HONGSOOHYUN / 洪穗賢 / installation